가짜의 바다 중국 낙서장 2007. 6. 30. 09:38

[동아시아칼럼] 가짜의 바다 중국

조선일보 박승준·베이징 지국장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목숨을 노리는 가짜(When fakery turns fatal)’라는 기사를 실었다.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한 애완견 먹이에서 공업용 화학약품이 발견된 데 화가 나서 쓴 기사였다. 중국 안후이(安徽)성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짜 우유를 먹고 숨진 일도 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고발했다.

중국의 가짜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은 1년 동안 중국 여기저기를 여행한 뒤에 지난해‘중국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 자체가 거짓말이며, 전 세계는 중국 공산당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나 기 소르망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중국이라는 이웃을 둔 불행한 우리는 중국 가짜에 이제 엔간히 면역이 돼가고 있는 중이다. 발암물질이 든 색소로 매력적인 빨간색을 낸 가짜 고춧가루에, 타르로 물들인 검은 깨, 뭘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잘못 먹으면 죽는 일도 있다는 가짜 비아그라와 가짜 시알리스, 눈으로는 진짜와 구별하기 어려운 가짜 롤렉스 손목시계, 진짜를 능가하는 비거리를 자랑하는 가짜 골프채, 진짜와 똑같이 부드러운 가짜 캘빈 클라인 속옷….

이 가짜들의 가격은 진짜의 100분의 1에서 10분의1에 불과하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그런 가짜들은 이미 알려진 구(舊)상품들이다. 중국에서 요즘 화제가 되는 가짜의 종류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가짜 로또복권이나 가짜 여행상품은 그래도 애교가 있는 편이다. 가짜 자동차 부속품에 가짜 수혈용 혈액은 최근 출현한 가짜 신상품들로 사람의 목숨을 직접 요구하는 신개발품들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 요즘 중국이다. 베이징 시내 한가운데에는 가짜를 전문적으로 파는 슈수이(秀水)라는 5층짜리 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 빌딩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가짜야말로 가장 유명한 중국의 고유 브랜드가 된 셈이다. 이 빌딩의 종업원들은 “우리가 파는 가짜는 품질이 좋은 진짜 가짜(眞的假的)”라고 속삭인다.

가짜에 대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면 실소(失笑)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변인은 얼마 전 미국이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문제, 다시 말해 중국산 가짜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지적재산권, 지적재산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전 세계는 중국이 발명한 4대 발명품,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을 사용하는 지적재산권 사용료를 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 사람들이 가짜를 만드는 이유는 이렇다. 빈곤을 확대 재생산해온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사는 동안 생존을 위해 중국인들은 윤리 감각을 마비시켜 왔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실시된 지난 30년 간의 개방경제는 또 빈부의 차이를 극도로 벌려 놓았다. 그러다보니 돈을 종교로 삼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한 것은 가짜의 바다에 사는 중국인들도 정작 식품만은 가짜를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가짜가 판치는 중국에서 요즘 한국산 과자와 주스 등 식품들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다소 비싸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고, “한국산 식품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중국인들보다 한 수 위인 우리의 양심과 윤리라는 도덕지수가 경제적 가치로 계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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