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어록평설] 어머니와 목민관
「원제」 연암어록평설/어머니와 목민관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는 자지 않으면 우는데, 말로써 족히 그 사연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어떤 의지로써 그 바람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소리만 듣고도 젖을 줄 줄 아는 것은 오직 자애로운 어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그 가슴만 쓰다듬어도 울음을 뚝 그치게 하니, 이는 반드시 먹여 줄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따스하게 쓰다듬고 부드럽게 다독거리는 것은 그로써 친근해지려는 것이요, 가만히 살피고 고요히 듣는 것은 그로서 때를 맞추자는 것이니, 이 어찌 이웃집 사람이나 길 가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襁褓嬰孩 不眠則啼 非有言語足以達其辭也 非有志意足以通其願也 聞其聲而知其乳 惟其慈母者爲然 摸其胷而止其啼 是有必哺者存焉 故溫摩柔按 所以體之也 潛候默聆 所以時之也 是豈隣舍行路所能及哉 (「答巡使論賑政書」)
연암이 충청도 면천의 군수로 재임 중에 흉년으로 인해 구휼 정책을 실시했는데, 감사에게 사진(私賑)의 허락을 청한 편지의 일부이다. 구휼에 공곡(公穀)을 사용하면 공진(公賑)이라하고, 공곡(公穀)을 사용하지 않고, 수령이 자비(自備)하여 주는 것을 사진(私賑)이라 한다. 공곡의 경우 굶주린 가구의 정확한 선정과, 감시나 확인, 보고 등 절차가 복잡하였다. 때가 급한 연암은 그래서 사진을 실행하려 하며, 갓난아기와 어머니의 곡진한 비유를 들어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못 배우고 헐벗어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저 백성들이 무슨 언설이 있어 그 사연을 전달할 수 있으며, 무슨 힘과 통로가 있어 그 괴로운 심사를 풀어낼 수 있겠는가? 목민관이란 무릇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그들이 애써 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원하지 못하는 것들과 그들의 숱한 애환들을 스스로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젖이 있는 어머니의 가슴은 아기의 울음을 곧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연암은 백성이 울 때를 대비해 곡식을 따로 비축해 두었다.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그들의 사정을 꼼꼼히 살펴보며, 그들의 숨결과 하나가 되는 어머니 같은 마음 그것이 어찌 이웃 사람이나 길 가는 사람이 체득할 수 있는 일이리요.
연암은 굶주린 가구의 선정이나, 순찰, 보고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순찰사에 부탁한다. 백성의 어미인 연암에게 순찰사란 이웃집 사람이나 길 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백성의 고충과 마음을 미리 알 수 있고, 백성의 울음이 생기기 전에 그 울음에 대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목민관의 따뜻하고 깊은 마음! 우리시대에도 이런 아름답고 영민한 목민관이 있는가? 이처럼 크고 숭고한 뜻을 본받아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줄 뜻 깊은 이는 없는가?
김주수, 한국학
나들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