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롄] 시험대에 오른 후진타오,원자바오

▲ 지난 10월 24일 태양계의 홈즈 혜성이 갑자기 평상시보다 백만배 이상 밝아지는 아주 드문 천문 현상이 발생했다.
[대기원]약 7.1년을 주기로 태양계를 공전하는 주기 혜성 홈즈가 지난 10월 24일 갑자기 24시간 내에 백만 배 이상 밝기가 증가해 페르세우스 자리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이는 아주 보기 드문 천상(天象)변화이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아주 불가사의하며 근래에 보기 드문 사건이라고 밝혔다.

중국전통문화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전통에 따르면 갑자기 보기 드문 혜성의 극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은 반드시 인간 세상에 큰 일이 발생하는 것과 대응된다. 아울러 혜성이 아주 어둡다 갑자기 밝아졌다는 것은 오랜 억울함이 씻겨진다는 의미도 있다. 옛 속담에는 사람은 천상의 변화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정말 중국에선 17대 대회를 전후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끝내자’는 민감한 화제가 보편적인 관심을 끌고 의론이 분분할 때에 예상치 못했던 2개의 커다란 폭탄이 터져 사방을 놀라게 했다. 파룬궁 문제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와 급격히 화제가 된 것이다.

후(胡),원(溫)에게 민의를 시험하게 하는 사건 발생

첫 번째 폭발은 안후이성(安徽省) 정협 상무위원인 왕자오쥔(汪兆鈞)이 최근 중공 정권의 지도자인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약 4만자에 달하는 공개 서신을 발표해 두 지도자에게 현재 중국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바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는 것이며 아울러 정치개혁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공개서신이 발표된 후 왕자오쥔은 국내외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그 중에는 적지 않은 중공 고위층 관료도 포함되어 있다. 국내외의 이런 뜨거운 반응에 대해 왕자오쥔은 “내가 한 말은 전국의 일반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다”라고 말했다.

후, 원의 각도에서 보자면 왕자오쥔은 단지 그들에게 한 차례 시험문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생한 답안을 제시한 것과 같다. 전반 사회의 강렬한 반향으로부터 본다면 이것은 한 차례 전면적으로 민의를 고조시킨 시험이다.

후, 원이 정말로 파룬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다면 이는 거대한 정치 투자이자 정치적인 위험이 동반 될 수 있다. 그러나 왕자오쥔이 사회에 공개서신을 발표한 후 파생된 반응은 후, 원에게 진감(震撼)을 가져다주었고 어쩌면 공개서신 자체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중공의 문제는 복잡하게 꼬여 풀기 힘든데 특히 파룬궁을 탄압한 이후 국가에 많은 재난을 초래했다. 당초 장쩌민이 전 국력을 기울여 파룬궁을 소멸하는 일에 배치했기 때문에 파룬궁 탄압 문제는 점차 현재 중국 사회의 각종 방면과 연관되어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동으로 해결되고 매듭이 풀리게끔 되어있다.

이런 체제 내에서 민간, 군대 등에서 나온 공개 서신은 거대한 민의의 지지와 공감을 얻었고 후, 원에게 거대한 정치자산을 보여주었다. 후, 원이 만약 이 기회를 잃는다면 그럼 반드시 이에 대한 반대 압력을 감당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왕자오쥔의 공개서신은 민중들의 의사를 집중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시급히 결단을 내리고 바르게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할 후, 원에 대해서는 최후의 지지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왕자오쥔은 “후, 원에게는 중화민족의 고통을 끝낼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저우융캉 기소 사건은 후의 민생에 대한 시험

상상치 못한 두 번째 폭발은 상하이의 상방 인사가 9월 하순 저우융캉(周永康)을 베이징 제 2중급법원에 정식으로 고소한 사건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사건을 분석한 인사들에 따르면 이는 후,원이 ‘민생’ 카드를 힘차게 꺼내든 후 장쩌민 계열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 원흉의 일원인 저우융캉에 대한 시험으로 후,원의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아주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대기원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을 제기한 상하이 상방인사 퉁궈징(童國菁)은 2005년 베이징에 상방하러 간 기간에 베이징에 주재하는 상하이 관원에게 폭력적인 구타를 당했고, 나중에 베이징 시 공안국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퉁궈징은 이에 불복해 계속 상고했고 결국 베이징 제 2중급법원에 고소했으며, 법원에서는 1년의 시간을 끈 후 지난 9월 20일에 그의 행정소송을 수리했다. 소장에는 당시 중공 공안부 부장인 저우융캉의 행정 부작위(不作爲)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17대가 열린 다음 날인 10월 16일 중공 공안부에서는 퉁궈징에게 정식으로 행정답변서를 보냈는데 답변인 란에 서명한 사람은 공안부의 법적 대표인 공안부장 저우융캉이었다. 아울러 공안부 행정소송 전용 도장이 찍혀 있었다. 퉁궈징은 현재 상하이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 정언충(鄭恩寵)을 법정대리인으로 선임했으며 베이징에 가서 법정에 출두할 준비를 하고 있다.

법정에서 1년여의 시간을 끌다가 갑자기 이 사건을 받아들였고 그것도 17대가 열리는 민감한 시기에 베이징 공안부 명의의 정식 답변서를 보냈다. 이는 사실상 저우융캉에 대한 공공연한 반발로 저우융캉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이다.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이 없다면 누가 감히 17대의 떠오르는 별 저우융캉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저우융캉은 17대 정법위 서기를 맡았으며 그가 장쩌민 계열에 의해 강력히 추천된 배경에는 파룬궁 탄압에 세운 공과 큰 연관이 있다. 외부에서는 저우융캉이야말로 장쩌민이 숙청을 면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본다. 이런 저우융캉이 갑자기 정식으로 고소된 것이다. 이번 안건이 얼마나 진행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현재까지 저우융캉이 합법적으로 공개리에 ‘악역’으로 간주된 것은 장쩌민이 저우를 통해 한 일에 대해 후, 원의 부정적인 반응이 그대로 표현되는 셈이다. 이번 조치는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탄압하는 610세력들에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저우융캉이 어찌 이렇게 신속하게 빈껍데기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그런데도 군부는 어찌하여 움직이지 않았는가.

장쩌민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날은 갈수록 험난할 것이다. 설사 저우융캉의 고소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저우정이(周正毅)' 사건에 장쩌민 집안이 연루되어 있고, 또 새로 상하이 시 서기가 된 태자당(太子黨)의 위정성(俞正聲)이 상하이방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장쩌민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에 ‘장쩌민 체포’라는 뉴스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것이다.

후, 원이 이번 연극에서 어떤 연기를 펼치든, 바르게 행하든 대역을 쓰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바로 밤하늘에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저 혜성처럼 이번 사건이 바로 천상 변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홈즈 혜성은 1892년에도 지금보다는 약하지만 갑자기 밝아진 적이 있었는데 다음 해인 1893년에 마오쩌둥이 세상에 나왔다. 이때부터 중국은 공산당의 붉은 재앙이란 종자를 심은 셈이다. 이번에 다시 1백여 년이 지나 혜성이 다시 빛나는 것은 하늘이 마오쩌둥과 공산당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등불임에 틀림없다.
장제롄(중국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