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의 '큐브하우스'
숲을 닮은 집

/글·사진=류혜숙 객원기자

움직이는 조명탑이 있는 광장. 1997년 West8 설계.
움직이는 조명탑이 있는 광장. 1997년 West8 설계.
38개 마름모꼴 입방체의 반복적인 조합. 그 형태의 독특함을 증폭시키는 것이 선명한 노란색이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건설되어 아래로는 자동차와 전차가 지나간다.

2차 세계대전은, 로테르담을 완전히 쓸어 버렸다. 한 채의 집도 남기지 않고. 과장일까. 7만7천여명이 집을 잃었다니, 저 정도 과장은 해도 된다고 우겨야지. 라인강과 마스강 하구에 자리한 유럽 최대의 무역항이자 유럽 내륙으로 가는 관문. 게다가 공업지대와 대 소비시장까지 끼고 있으니 오죽 없애버리고 싶었을까. 그러다 보니 로테르담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생김새가 좀 다르다. 네덜란드답지 않게 운하도 적다. 1950년대부터 재건이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기존의 운하들은 도로가 되었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과도하지 않게 들어섰다.

# 환상을 자극하는 목조주택 ' 큐브하우스'

콘크리트와 유리로 빚어진 새로운 도시 속에서, 그들은 동화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1984년에 완성된 목조주택 큐브하우스(Cube house)는 이제 나이가 꽤 들었지만 여전히 바라보는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다. 38개 마름모꼴 입방체의 반복적인 조합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인 숲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 형태의 독특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 선명한 노란 색깔이다. 배우와 캐릭터의 환상적인 조화다. 빨강이나 파랑, 혹은 다른 모든 색깔의 큐브하우스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바로 곁에 있는 연필모양의 타워 형 아파트도 큐브하우스의 판타지를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다.

큐브하우스는 오래된 항구(Old Habour) 재개발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건설되어 아래로는 자동차와 전차가 지나간다. 마름모꼴 입방체를 지지하는 육각의 콘크리트 기단부에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각 가구는 3층으로 구성되어 1층은 조망이 아래로 향하는 길가의 집, 2층은 창문이 위아래로 향하는 천상의 집, 3층은 유리창이 많은 온실로 다락의 집이라 불린다. 1층에는 입구와 주방·화장실이 있고, 2층과 3층은 수납 등 최소공간을 제외하고 모두 입주자의 취향에 따라 사용된다.

단지 내의 중심역할을 하는 문화관은 상점들과 산책로, 도서관, 주차장 등의 시설과 연결되어 있다. 일종의 작은 공동체, 도시 속의 마을이다. 큐브하우스를 만든 건축가 피에트 블룸(Piet Blom)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도시 속의 마을'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큐브하우스는 기능보다 시각적인 연출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지만 경직되지 않은 사고가 낳은 파격의 미로 로테르담의 흥미로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 우아한 백조 한 마리 '에라스무스 다리'

큐브하우스 곁으로 마스강이 흐른다. 강변을 따라 도심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 위에 우아한 백조 한 마리가 도도하게 앉아 있다. 로테르담 출신의 철학자
큐브 하우스. 내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 가구를 개방해 놓고 있다. 내부를 둘러보는 비용은 7유로. Piet Blom 설계. 1984.2
큐브 하우스. 내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 가구를 개방해 놓고 있다. 내부를 둘러보는 비용은 7유로. Piet Blom 설계. 1984.
에라스무스 다리(Erasmus Bridge). 1996년 12월에 개통한 이 다리는 길이 800m, 높이 139m, 폭 30.8m 규모로 명실상부한 로테르담의 랜드마크다. UN Studio(Van Berkel & Bos) 설계. 1996.3
에라스무스 다리(Erasmus Bridge). 1996년 12월에 개통한 이 다리는 길이 800m, 높이 139m, 폭 30.8m 규모로 명실상부한 로테르담의 랜드마크다. UN Studio(Van Berkel & Bos) 설계. 1996.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딴 현수교다. 이곳 사람들은 에라스무스 다리를 '백조'라고 부르지만 언뜻보면 생각의 짐을 드리운 채 고독하게 걷는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다리의 모든 스케일들이 변하면서 멀리서의 연상들이 모두 지워진다. 커다란 것의 디테일도 미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리는, 압도적이다.

다리는 마스강이 가르고 있는 남북을 연결한다. 30m가 넘는 너비 안에 트램과 버스길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자동차길, 자전거길, 그리고 인도까지 배려되어 있다. 이 다리를 설계한 'UN Studio'는 우리나라의 서울 갤러리아 명품관 서쪽 건물을 설계한 팀이다. 건축가와 그래픽 디자이너, 뉴 미디어 디자이너, 사진가, 시공 기술자 등의 협업 연결망(United Network)이라는 의미의 UN Studio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교적 젊은 건축가 집단이다. 그들에게 있어 건축은 실용과 철학의 결합이며 그것들을 통합하고 상호 작용하도록 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것, 모든 기술, 효과, 그리고 사상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에라스무스 다리 건설을 위한 초기안은 막대를 가지고 유연성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막대 끝에 손가락을 대고 힘을 가하여 구부러지는 정도를 실험한 것으로, 더 많은 힘을 가하면 막대는 파괴된다. 이는 하나의 게임이었다. 힘들의 게임. 자연의 힘과 벌이는 생리학적 게임이자 정치적 차원의 게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도출된 에라스무스 다리의 휘어진 목선은 지금, 철학자 에라스무스보다도 더 강력한 로테르담의 상징이 되었다.

■ 움직이는 조명탑

태양의 움직임 따라 탑도 움직여

조명탑이 움직인다. 사마귀 다리처럼 날씬한 저 붉은 철 덩어리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사이 후다닥 모양새를 바꾸곤 시치미를 뚝 뗀다. 로테르담 역의 남쪽, 도심으로의 진입과 동시에 만나는 광장에 있는 조명탑이다. 조명탑은 하루 동안의 태양 광선 이동에 초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사물의 그림자가 변하듯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탑도 변한다. 물의 나라답게 동력은 수압이다. 마찬가지로 광장 역시 향후 예상되는 이용 기능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광장 바닥은 에폭시 수지, 나무, 금속 부분으로 명료하게 나누어져 그 재료에 따라 분수가 치솟기도 하고 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장이 서기도 한다. 장이 설 때, 그리고 가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포장 면 아래에 접혀져 있는 레일을 올려 자동차의 진입을 막는다. 이 조명탑과 광장을 설계한 조경 건축 사무소 'West 8'은 땅이 갖는 다양한 차원의 시공간과 주변 상황의 특수성에 초점을 두고 통시적인 국면과 공시적인 국면을 동시에 분석하여 설계한다. 도시경관을 단순히 회화적인 요소가 아닌 동적으로 기능하는 생산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경관도 도시와 함께 진화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