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건축기행] 암스테르담 외곽의 건물들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글·사진=류혜숙 객원기자

MVRDV가 설계한 노인 아파트 WoZoCo.
MVRDV가 설계한 노인 아파트 WoZoCo.
조금 무리를 해 볼까. 느긋한 호사의 시간을 가졌으니 하루는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남쪽의 오피스 지구, 서쪽의 전원마을, 동쪽의 신도시, 이를 커다랗게 연결해 암스테르담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대장정에 나선다. 가방엔 맥주 두 캔과 초콜릿 한 봉지, 주머니엔 주소와 가는 방법을 메모한 종이 한 장, 나머지 필요한 것은 튼튼한 두 다리와 언제든 '익스큐즈 미'를 외칠 수 있는 배짱. 그리고 미소는 필수.

# '곧장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ING그룹 본사

암스테르담의 저 아래 남쪽. 고층 빌딩이 몰려 있는 오피스 지구인 소우다스(Zuidas)지역이 있다.

국제무역센터와 같은 굵직한 현대 첨단 건물이 많은 이곳은 순환도로를 사이에 두고 녹지대인 뉴메이르(De Nieuwe Meer)지역과 마주보고 있다. 녹지대가 시작되는 순환도로 가에 네덜란드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험사인 ING 그룹의 본사 건물이 있다. 각 나라마다 ING 그룹의 건물은 특이하고 파격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본사 건물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투명성과 적극성 그리고 혁신이라는 기업 이념에 맞는 상징적인 건물을 원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막연하게 바랐던 건물을 확실하게 얻은 듯하다. 이 투명하고 즐거운 디자인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만화적이고 동화적인 건물 앞에서 정서적인 휴식을 느낀다. 자연 친화성의 테크놀로지적 구현이라는 현대의 추세에 따라 이 건물도 런던 시청사처럼 자연 친화적이고 경제적인 환경 컨트롤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중으로 된 유리벽은 도로와 철로의 소음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차단함과 동시에 환기 장치의 역할을 한다. 또한 공기 처리 장치, 지하수 이용, 냉·온수를 저장하는 자동 펌프 시스템이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여주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전통 목각 신발 모양을 따서 만들었다고도 하고 ING 로고 곁에 순하게 앉은 사자 모양 같다고도 하지만 내 눈에는 우주 열차다. 이제 한량 한량씩 덧붙여 백년쯤 뒤에는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22세기형 은하철도. ING 그룹은 그렇게 쭉쭉 뻗어가고 싶은가 보다.

# '커다란 장난감 가게 같은' Almere-Stad 지역

알미르 슈타트 지역은 암스테르담 동쪽에 있는 신도시로 도심의 인구과밀로 인한 주택난 해소를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커다란 장난감 가게 같다. 뭘 고를까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빛이 되고 만다.

마스터플랜은 렘 쿨하스가 맡았다. 그는 호숫가를 따라서
알미르 알솝(W. A. Alsop)의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레네 반 쥐크의 시티센터 더 웨이브.2
알미르 알솝(W. A. Alsop)의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레네 반 쥐크의 시티센터 더 웨이브.
로베르토 마이어와 예뢴 판 스코텐이 디자인한 ING 본사 건물.3
로베르토 마이어와 예뢴 판 스코텐이 디자인한 ING 본사 건물.
나 있는 큰길과 시청 광장 사이의 부지, 그리고 역 주변의 두 군데 부지를 9개의 건축가 팀과 함께 디자인했다. 기반시설을 포함한 주거 유닛과 주차 공간, 레저 공간, 극장, 콘서트 홀, 도서관, 학교, 병원, 사무 공간, 호텔, 중앙 역 확장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곳을 다니다 보면 굉장히,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새롭게 만들어진 개봉 박두의 도시여서도 그렇지만 비밀은 땅 속에 있다. 도로 아래에 미로 같은 관이 숨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쓰레기 관로수송 시스템이다. 쓰레기를 투입구에 버리면 지하에 매설된 관을 통해 중앙 집하장으로 운반되고 그곳에서 종류에 따라 분리되어 제 각각의 운명대로 처리되는 장치다.

2000년에 설계를 시작, 중심지역의 3천가구를 대상으로 2003년 운영을 시작했는데 이는 네덜란드 최초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고정식 시스템이다. 또 한 가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일정 가구에 부여된 마그네틱 카드가 있어야만 투입구를 열 수 있고, 카드에 기록된 사용량에 따라 이용료를 부과하게 된다. 이곳의 마그네틱 카드는 우리의 종량제 봉투와 비슷하다. 대신 얌체 짓을 할 구멍은 없다. 철저한 사전 봉쇄. 진정, '더치 페이'의 나라답다.

이제 암스테르담을 떠나야 할 때. 다음엔 로테르담에서 만나요.


# '건물만 봐도 심심치 않다' WoZoCo 노인아파트

"심심하지 않아. 여기 있으면 세계 각국의 사람이 다 오거든." 트램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하는 한적한 서부 전원마을, 건물 하나가 세계의 사람들을 부른다. 실로담을 설계한 MVRDV의 또 다른 실험 주택 WoZoCo 노인아파트 때문이다. 이 소박한 동네에서 이 건물을 놓치고 지나칠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건물의 기하학적 박스의 조합은 도미노식 블록에 익숙해져 있는 시각의 습관을 확실하게 깨트려 준다.

돌출되어 있는 박스들은 조각적 효과를 위한 형태적 유희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환경을 극복한 결과다. 원래 한 블록 안에 100가구가 들어가야 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부지는 87가구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머지 13가구를 매스의 외부로 돌출시킨, 거대한 캔틸레버 유니트들이 탄생한 것이다. 딱 요만큼의 땅밖에 못 사용하니 나머지는 공중으로 띄워버린 그 깜찍함이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조금 외진 곳이 아닌가 싶었지만 호숫가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심심하지 않아." 건물만 보고 지내도 '심심하지 않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