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송(北宋)때 청백하고 공정한 명판관 포청천이 재상으로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을에 구걸해서 먹고 살아가는 다리가 불구인 10여세의 고아가 있었습니다.


이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다리가 없어 사람들은 물속으로 강을 건너야 했으며, 노인과 아이는 혼자서는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큰 비라도 내려 강물이 불어나면, 마을은 고립되어 생활하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다리를 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고아인 그 불구소년이 다리를 질질 끌며 강가에 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동네 어른이 의아해 물었습니다.


“넌 뭐 때문에 힘들게 거기다 돌을 쌓고 있는 거냐?”


“저는 여기다 다리를 놓아, 할아버지나 아이들도 마음 놓고 강을 건널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네 마음은 기특하다만, 내가 보기엔 사서 고생하는 것 같으니 그만 두거라. 먹는 것도 시원찮을 텐데 공연히 힘 빼지 말고...”


어른이 혀를 차며 돌아간 후에도, 아이는 마음을 접지 않고 꾸준히 돌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자 돌무더기는 작은 산만큼 쌓였습니다. 그제 서야 그것을 지켜보던 어른들은 아이의 정성에 감동해 모두 협력해 그 돌로 다리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돌을 다듬던 아이는 그만 사고로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손으로 돌을 더듬어 큰 돌과 작은 돌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가져다 쓰기 좋게 배열해 놓았습니다.


드디어 다리가 완공되던 날 기뻐하는 동네 사람들 속에서 눈을 잃은 소년은 일생 중 가장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의 그 순정한 표정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리가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 돌다리는 마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에도 끄떡없는 위엄을 보여주려는 듯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비 갠 하늘은 유리처럼 맑고 푸르렀으며, 흙먼지가 깨끗이 씻긴 돌다리는 찬란한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그러나 그 다리를 건너던 첫 행인은 시력을 잃은 소년이 밤사이 벼락을 맞고, 다리 위에 숨져 있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팔자가 사납다고 탄식하며, 무정한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날 마침 포청천이 공무처리를 위해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동네사람은 포청천이 탄 가마를 막아서서 소년에 대한 내력을 이야기 하며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데 그 하늘의 도리는 어디에 있는 거냐”며 따졌습니다.


포청천도 속세의 화식(불로 익힌 음식; 생식에 대응하는 말)을 먹는지라 사람들의 정서에 이끌려 분노하며 붓을 휘둘러 '녕행악물행선 (寧行惡勿行善)', 즉, ‘악을 행할지언정 선행하지 말라’는 여섯 글자를 써놓고는 떠났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포청천으로 하여금 눈 먼 소년의 일을 까마득히 잊게 할 무렵의 어느 날 황제는 황실로 포청천을 불러들여 말했습니다.

“며칠 전 태어난 태자가 태어나면서 부터 지금껏 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네. 별의 별 방법을 다 써 봤지만, 듣지 않으니, 자네가 한 번 봐주게나.”


포청천이 태자에게 가 보니 피부가 눈처럼 흰 아기가 오른 손 주먹을 꼭 쥐고는 악을 써대며 울고 있었습니다. 포청천이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펴 보니 거기엔 ‘녕행악물행선’이라는 여섯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포청천은 얼굴이 화끈거려 그 글자를 얼른 지웠습니다. 그러자 그 글자가 지워지면서 아이의 울음도 그쳤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황제는 “아이가 울음을 그친 것은 다행이나 복점일지도 모르는 붉은 점을 그렇게 함부로 없애버려도 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황제에게는 그 여섯 글자가 붉은 점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포청천은 그 여섯 글자에 얽힌 이야기를 황제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태자의 앞날이 걱정스럽구려, 대인께서 음양침(陰陽枕)을 이용해 저승에 가서 그 내막을 알아 옴이 어떠하겠소?”


황제의 부탁으로 포청천은 음양침을 베고 저승으로 갔습니다.
염라대왕은 포청천에게 눈 먼 그 소년의 전생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년은 원래 전생에 죄업이 너무 커서 그 죄업을 갚으려면 한세에 다갚지 못하고 삼세(三世; 인간의 몸으로 세번 다시 태어남)동안 응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의 배치로 첫 번 생에는 불구의 몸으로 외롭고 힘들게 살다 죽게 하고, 두 번째 생에는 두 눈이 멀어 역시 고생스럽게 생을 살다 마치게 하며, 세 번째 생에는 벼락을 맞고 죽어 시체가 황량한 벌판에 버려져 세 번에 걸쳐서 업을 갚도록 배치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소년이 제 1세에 불구의 몸으로 구걸을 하고 살면서도, 자신보다도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돌다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는, 한 세에 두 세의 업을 갚도록 하기 위해 소년의 두 눈을 잃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소년은 남을 원망하거나 하늘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다리 만드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신은 소년의 행동에 감동하여, 마지막 남은 한 세에 갚아야 할 악업까지 이 한 세에서 다 갚도록 벼락을 맞아 죽게 한 것입니다.(사람의 생각대로라면 그처럼 갸륵하니 눈도 멀지 않게하고, 벼락도 맞지 않게 할 만한데, 신의 자비는 삼세에 갚을 걸 한세에 갚도록 한 자비를 베풀 뿐 사람처럼 인정에 이끌려 감면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선행의 덕으로 천자의 복을 누리도록 태자로 환생시킨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흔히 지금 일어나는 일만으로 그 잘잘못을 따지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죄는 자신이 갚아야 한다.’는 하늘의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년처럼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 끝없는 정성에 하늘도 감동시켜 신의 자비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