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촬영된 우담바라.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우담바라가 피어나면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했으며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는 “우담바라는 신령하고 상서로우며 3천년에 한번 나타나는데 그때는 금륜왕(金輪王)이 출현한다”라고 했다. 존 위(John Yu)

기독교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이 회복된 후 메시아가 인간세상에 내려온다고 예언했다. 불교에서는 우담바라가 필 때 미래불인 미륵(彌勒)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고 했다. 최근 각종 예언서에서 이야기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구세주(救世主)는 정말 우리 옆에 와 있는 것일까?

불경(佛經)과 성경(聖經), 모두 인류의 마지막 때에 구세주가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한다고 기록했다. 불경에서는 법이 끝나는(末法) 시기에 미래불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고, 성경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메시아가 나타나 백성들을 구도한다고 했다. 두 경전이 모두 사실이라면, 인류사회에는 두 분의 구세주가 내려오는 셈인데 미륵불 혹은 메시아이다.

작고한 중국의 국학대사(國學大師)이자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지셴린(季羨林) 선생과 제자 첸원중(錢文忠) 상하이 푸단(複旦)대 교수의 주요업적중 하나는 불가(佛家)와 기독교의 관계성에 대한 발견인데, 한마디로 “미륵불과 메시아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첸 교수는 기원전 약 1천년 무렵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 및 이집트 등 광범위한 지역에 구세주에 대한 신앙이 퍼져있었음을 고증했다.

예수교의 메시아는 구세주 신앙의 대표적 사례로 구약성경속에도 언급돼 있다. 인도에 미륵불에 신앙이 존재했음은 학계에서 이견이 없다.

문화권을 초월해 이러한 구세주 신앙이 전 세계에 퍼져있었음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인도의 미륵신앙은 바로 구세주 신앙의 조성성분이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륵이 미래불인 이유는 미래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며 인도에 근원을 두거나 또는 보다 광범위한 전 세계 영역 혹은 고대 세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는 당시 보편적으로 유행했던 메시아 신앙의 일부이다.

그런데 미륵(彌勒)이란 단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인류문명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들어있는데, ‘지셴린 문집(季羨林文集)’ 12권의 ‘매달리야와 미륵(梅呾利耶與彌勒)’ 장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초기 불교의 경전들은 중국의 한자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중앙 아시아와 신장(新疆)지역의 언어로 작성됐는데, 미륵(彌勒)은 신장 투훠뤄(吐火羅)어의 ‘Metrak’ 또는 ‘Maitrak’을 음역(音譯)한 것이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maitri(자비, 자애)와 관련된 단어이다. 그래서 초기 불경 번역자들은 미륵을 ‘자씨(慈氏)’라고 의역하기도 했다. 후한이나 삼국시대의 중국어 불경을 보면 미륵과 자씨가 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기록들은 미륵이라는 단어가 시간적으로 불교에 앞서고, 공간적으로도 불교의 범주를 뛰어넘음을 시사한다. 불교가 중국에 막 전해질 당시 민간에서는 관음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아니라 미륵보살을 믿었는데, 미륵에 대한 신앙은 어느 한 지방이나 문화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러 문화권의 총체적인 산물이었다. 불경에 등장하는 부처나 보살중에 미륵만큼 넓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존재는 없다.

미륵을 산스크리트어로는 ‘메이트레야(maitreya)’, 팔리어로는 ‘메테야(metteya)’라고 한다. 발음만 들어서는
‘미러’(미륵의 중국식 발음)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불경을 번역하다가 “기존의 번역이 틀렸다”며 “매달리야(梅呾利耶·메이다리예)로 번역해야 맞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법사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미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매달리야’는 현장법사의 개인적인 주장에 그치고 말았다.

서양에서는 구세주를 메시아라고 한다. 영단어 ‘메시아(Messiah)’는 고대 히브리어 마시아‘Masiah(혹은 Mashiach)’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에서는 ‘크리스토스(Christos)’로 번역하는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오늘날 예수의 이름인 크라이스트(Christ)가 나오게 됐다. 즉 ‘메시아=크리스트’이며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크라이스트를 유대의 메시아와 같은 인물로 여겼다.

산스크리트어 ‘메이트레야’와 히브리어 ‘마시아’는 발음상으로 가까운데 미륵이란 말이 메이트레아에 해당하는 투훠뤄(吐火羅)어 단어에서 유래됐다는 점에서 사실 미륵과 메시아는 같은 대상에 대해 동서양 문화권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고대 문명에서 흔했다.


불경에서는 미륵을 “만왕(萬王)의 왕(王)이 말세(末世)에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사용한 불호(佛號)”라고 적었다. 법륜성왕(法輪聖王)은 만왕의 왕이 법계(法界)에 내려왔을 때의 법호(法號)이며 인간세상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칭한다. 석가모니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법륜성왕을 미륵이라고도 부른다”고 알려줬다.

미래불 미륵은 자비, 광명,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간쑤(甘肅)성 간난(甘南) 티베트자치주의 샤허현(夏河縣)에 위치한 라브릉사의 불상들은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함을 현묘(玄妙)하게 담아냈다.

청나라 강희(康熙)연간인 1709년에 건립된 이 사찰은 티베트 불교 게룩파(황교) 6대 사찰 중 하나이다. 절을 창건한 초대주지와 2대 주지는 모두 천기(天機)를 잘 아는 활불(活佛)이었기 때문에 이 사찰의 불상에는 아주 깊고 현묘한 이치가 담겨 있다. 특히 사찰에 모셔진 두 존의 미륵대불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찰 대경당(大經堂) 근방의 서쪽 후전(後殿)에 모신 미륵대불은 절반쯤 일어선 금불상으로 두 손이 가슴 앞에서 손동작을 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라마 스님은 “미륵불이 세상을 향해 법륜을 돌리시는 모습이다. 절반쯤 일어선 것은 언젠가 법륜을 지니고 인간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간쑤성에 위치한 티베트불교 사찰 라브릉사(拉蔔楞寺)에 모셔진 미륵불상의 모습. 반쯤 일어선 금동 미륵불상은 미륵불이 이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법륜(法輪 파룬)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함을 상징한다 신지웬 DB

라브릉의 원래 명칭은 아주 길지만 간단히 자시치사(紮西奇寺)라 하는데 중국어로는 ‘길상선사(吉祥旋寺)’인데 법륜이 돌면서 길상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대금와전(大金瓦殿) 중앙에 모신 미륵대불은 이 절의 2대 주지가 약 200여 년 전에 특별히 네팔의 장인을 불러 제작한 금동불상으로 전고 10m의 크기다. 이 미륵불상 바로 앞에는 작은 석가모니불의 동상이 있다. 이처럼 크고 작은 불상 두 개를 앞뒤로 배치하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

라브릉의 라마승은 “앞쪽의 작은 불상들이 석가모니불과 제자들이며 뒷쪽의 미륵불은 손에 법륜을 들고 있는데 그는 우주에서 신통이 가장 광대하고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여래이며 장차 법륜을 지니고 우주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오신다. 다시 말해 우주 중생의 유일한 구원자이다”라고 설명했다.

불상의 배치는 미륵불(전륜성왕)의 높은 층차와 광대한 법력(法力)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석가보니불상과 크기의 차이는 전 인류를 구도하는 거대한 자비를 드러낸다. 이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를 모신 불당을 소금와전(小金瓦殿)이라 하고 미륵불을 모신 곳을 대금와전(大金瓦殿)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는 신약과 구약을 막론하고 모두 메시아가 마지막 시대에 재림한다고 예언했다. 메시아의 재림을 알리는 사건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한 후 사람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천 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나라를 다시 세웠다. 1948년 5월 13일 예루살렘 유대회에서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했다”고 선언했다. 서방 각국의 주류계층은 개신교와 카톨릭을 믿었으나 유대교의 예루살렘 수복에 대해 모두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메시아 재림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방 각국의 주류계층의 이스라엘 지지는 확고했는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대교의 예수탄압을 완전히 잊어버린 행위였다.

동방에서도 미륵(전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옴을 알리는 신호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혜림음의(慧琳音義)’ 8권에는 “우담바라는 상서롭고 신비한 천화(天花)이다. 인간 세상에는 없지만 여래가 세상에 내려오거나 금륜왕이 세간에 출현할 때 복덕(福德)이 크기 때문에 이 꽃이 나타난다”고 적혀 있다.

1992년부터 한국, 일본, 대만,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미국, 캐나다, 유럽, 중국 각지에서 우담바라가 발견됐다. 우담바라는 뿌리가 없고 잎도 없으며 물이나 흙이 없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또 유리, 강철, 불상, 나뭇잎, 종이상자, 비닐봉지에서도 모두 꽃을 피웠으며 꽃이 핀지 1년이 넘어도 생기가 넘친다.

중국 민간에 미륵의 조각상이 전해지는데 크게 웃는 불상이다. 불상 주변에는 장난스런 표정의 아이들 18명이 있는데, 서로 모습이 다르다. 이를 십팔자미륵(十八子彌勒)이라고 부르는데 십팔자(十八子)를 합하면 李자가 된다. 이는 미륵불이 말세에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할 때 속세의 성씨가 이(李)씨임을 암시한다.


조선 중기 대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쓴 예언서 ‘격암유록(格庵遺錄)’에는 “성인(聖人)은 누구인가? 목자(木子)성씨라네, 토끼해에 속하고 4월에 출생해 38이북에서 삼신산(三神山 장백산 공주령) 아래에서 출생한다. 이 성인은 천상 왕중의 왕(王中之王)이며 바로 법륜성왕이다. 이번에 속세에 내려오면 인간세상에서 미륵불이라 칭한다”라

고 했다. 여기서 목자(木子)란 이(李)를 가리킨다.

또 원천강(袁天罡), 이순풍(李淳風)이 저술한 당나라 때의 유명한 예언서 ‘추배도(推背圖)’에는 미륵불이 토끼해에 ‘중천중국(中天中國)’에서 탄생하며 아울러 금닭(金雞·우측사진) 모양인 중국 지도에서 눈에 해당하는 지역(작자주-중국 길림성)에서 목자(木子=李)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토끼해인 1951년 5월 13일(음력 4월 초파일)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중국 길림성 공주령(公主嶺)시에서 탄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그 해의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데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강림절’이다.

서방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을 가리키는 단어 ‘이스터(Easter)’에는 “동방에서 온 사람”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해보라. 서양인들은 부활절에 달걀뿐만 아니라 토끼를 기념물로 삼는다. 그러나 왜 달걀과 토끼인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또 성탄절에는 어린 나무(子木=李)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면서도 이유를 모르고 있다.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시집 ‘센추리즈(Centuries)’에서 지난 수백 년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중대한 사건과 인물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센추리즈의 2세기 29편에 말세에 사람들을 구하는 구세주에 대한 내용이 있다.

동방인이 그의 고향을 떠나/아페닌 산맥을 넘어 골(Gaul-프랑스)로 간다./ 그는 하늘, 바다와 눈을 지나고/ 누구든지 그의 지팡이에 맞으리라.

(The Easterner will leave his seat,/ To pass the Apennine mountains to see Gaul:/ He will transpire the sky, the waters and the snow,/ And everyone will be struck with his rod.)

이 시는 리훙쯔 선생이 중국대륙에서 법(法)을 전하는 것을 끝낸 후 서방으로 건너가 여러 나라에 법을 전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는 것을 예언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또 10세기 70편 3행에서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신화 속에서 헤르메스는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는데 지팡이는 평화와 의술을 상징한다. 지팡이에 맞음은 평화와 새생명, 즉 법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불경에서 전륜성왕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32상(相)과 7보(寶)를 지니는데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고 정의롭게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를 돌려 세계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왕이다. 불교, 기독교, 유교를 가리지 않으며 다만 사람들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푼다. 다시 말해 종교와 국적, 신분을 막론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은 전륜성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신(神)이 정말로 내려왔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머뭇거리고 있다.


중국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尚)이 미륵불의 속세화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포대화상은 실존인물이며 후량(後梁) 정명(貞明) 2년, 다시 말해 서기 916년 3월 3일 봉화(奉化)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아래 돌 의자에서 원적했다. 당시 그는 “미륵 진짜 미륵, 천백억으로 분신해, 수시로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지금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구나(彌勒真彌勒,分身千百億,時時示時人,時人自不識)”라는 게송(偈頌)을 남겼다.

포대화상이 남긴 게송은 사람들에게 미래불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할 때 진상이 끊임없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은 도리어 현실을 바로 직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1:10-11)에서는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여 구주(救主)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실 때 그의 광환으로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세계를 비추지만 세인들은 오히려 그가 구주임을 몰라보고 또 무수한 고통을 겪게 하며 진상을 모르는 세인들에게 비방 받게 한다고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서 ‘센추리즈(Centuries)’에서 “1999년 7월 공포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1999년 7월 ‘제세기’에서 적그리스도로 가리킨 장쩌민이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천안문 사태 이후 사라졌던‘피바람’이 다시 몰아쳤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어린 양과 짐승의 최후의 정사대결―아마겟돈이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이미 12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무수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각종 마난(魔難)을 당했지만 이들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중공은 ‘진선인(眞善忍)’ 우주불법(宇宙佛法)을 공격하며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당나라의 예언서 ‘추배도’에서도 “99년에 큰 잘못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18권에는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면 동방의 여러 작은 왕들이 대왕(大王)에게 이르러 모두 진귀한 보물을 받들며 귀순을 표시한다. 나머지 남방, 서방, 북방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7:9-10)에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비록 마난을 겪어야 하지만 최후에 사람들은 모두 신에게 귀의해야 하며 이는 나라와 인종을 초월한 것이다. 불경과 성경에서 기술한 내용은 바로 이 점에서 일치한다.

구주가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한 후 인간세상은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인류를 맞이한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는 “그 나라는 땅이 기름지고 풍족해 많은 사람들이 유복하게 살아 거리마다 번화하기 이를 데 없다. 곡식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번창하고 갖가지 보배가 수없이 많으며, 마을과 마을이 잇따라 있어 닭 우는소리가 서로 들리느니라. 아름답지 못한 꽃과 나쁜 과일, 시들한 나무는 다 씨가 마르고, 더러운 것은 다 없어진다. 그래서 감미로운 과일 나무와 향기롭고 아름다운 풀, 나무들만이 자라느니라. 저 세상의 기후는 온화하고 화창하며, 사계절이 순조로워 108가지 질병이 없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도 마음 깊이 있을 뿐,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라고 묘사했다.

성경의 ‘이사야’서(65:19-20)에서는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곳에는 요절하는 유아와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노인이 더는 없을 것이다. 백세에 죽는 자가 어린아이이며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

또 ‘이사야’서(65:23-25)’에서는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이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스런 산에는 해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22:2)에서는 “강 좌우에 생명수(生命樹)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민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라고 했다.

이상을 통해 보건대 이번에 정(正)과 사(邪)의 대전을 겪은 후 불법(佛法)을 수호하여 남겨진 사람들에겐 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장수와 안락을 누리고 재난을 당하지 않으며 먹을 것이 풍요롭고 화목하게 지내 다툼이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이때로부터 새로운 기원(紀元)으로 들어갈 것이다.


장제롄(張傑連)/ 중화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