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윤회기실 : 천산설연(天山雪莲)


작자 - 천애지기(天涯知己)


전에 어느 누나가 내게 쓴 시를 나의 형에게 전해주어 받아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매우 슬펐으며 그중에는 이런 두 구절이 있었다.


“마음에 보옥이 있고 한스러움이 없는데 나무 아래서 퉁소 부는 소리를 누가 들으랴?” 그 대강의 뜻은 “재능이 있으나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당시 그들에게 한 수의 시(詩)로 답했는데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향기로운 바람은 하늘밖에서 유유히 나부끼누나!” 연후에 또 이렇게 썼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중요하게 보는지,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산(天山)에 핀 설연(雪莲)을 보시라. 일생 동안 아마 한 사람도 그것의 곁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며 그의 의의를 음미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조차도 그 옆에 내려앉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바람과 눈을 친구삼아 동반하여 조용히 아름답게 피어 자기 생명의 특유의 광채를 피웁니다."



각설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자!


일은 당나라 안사의 난(안록산, 사사명의 난) 이전에 발생한 것이다. 나는 조정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관리로 지내고 있었다. 한번은 실수로 어느 중신에게 죄를 지었다. 그는 현종에게 나를 탄핵했고 나는 천리밖으로 유배가는 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딸린 권속이 없었고 대신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늘 함께 글장난을 치고 이야기 하며 의기투합했다. 그는 내가 양관(阳关-감숙성 서부의 관문)밖으로 유배된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아무 연고자가 없는 것을 알고 나를 배웅해주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정말 감동했다. 이런 친절은 매우 얻기 어려운데 매우 소중히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유배된 자의 신분으로 장안을 나서서 줄곧 양관을 가는데 그는 나를 동반하는 한편 나를 돌보았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나를 압송하는 병정들을 감동시켰다. 양관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그곳에서 하나의 총병(통솔하는 군사)이 바뀌었는데 그는 나의 위인됨을 듣고 나를 위해 불평했다. 그는 나를 위해 통사정을 했다.


나를 관리하는 그 관원은 나를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나더러 다만 중원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만약 돌아간다면 그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나와 이 친구는 서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배의 생애를 벗어났고 우리 마음은 비록 고생이었지만 문인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늘 세간을 초월한 상태였다. 특히 서역에 가서 중원문화와 다른 각종의 부동한 문화를 보았을 때 우리의 눈을 크게 넓일 수 있었다!


한번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여기 하늘 좀 봐라, 평탄한 것이 끝을 볼 수 없지 않니? 여기의 일체는 정말 단순하고 그 생명 본연의 의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정의 궁궐에서 처세하느라 조심해야 하며 잘못하면 이런 말로에 떨어진다. 설사 백성을 위해 간청해도 때로는 머리를 잘 굴려야 겨우 한번 성공할 수 있다. 여기는 숨길 것이나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일체는 표면에 드러나 있으며 일체는 매우 진실하고 순수하구나!


그렇지, 내가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만일 우리가 유배되지 않았다면 그건 아직도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바로 기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다른 선택이 없다!


나중에 우리는 천산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설련화를 보았다. 그 순간 우리 둘은 멍하며 멈추었고 오랫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것은 매우 독특한 풍경이었으며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누가 칭찬해도 여기에서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근본적으로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고상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러한 생명이었으며 바로 이런 존재방식이었고 속세의 일체 변이의 요소에 의해 오염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누구를 위해 자기의 심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의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순수한 것은 이같이 현묘하고 진실했다!


친구는 한참동안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 형, 내 생각에 우리가 여기에서 살면 좋겠소. 이같이 현묘한 경치와 심경이 있으니 우리는 금생에 또 무엇을 추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도 좋다고 말했다. 이 설련화의 심정을 위해, 다시는 속세에 오염을 받지 않기 위해 금생에 우리는 여기 있으면 좋겠다!


천산은 수련인의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밖의 고인(高人)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그 생에서 그를 따라 수련했다. 그리고 그 생애의 생명의 과정을 완성했다! 상세한 것은 쓰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형에게 써준 시로 결말을 삼는다 :


고산의 설연(雪莲)


설련은 고산(高山)에서 혼자 피는데
눈을 동반하여 바람속에 펼쳐 있으며
누가 와서 칭찬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향기로운 바람은 하늘밖에서 유유히 나부끼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