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가 왜 울고 넘어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 싶기도 하고해서 시간을 내어 제천으로 박달재로 승용차로 가다보니 구길을 보지 못했네요. 구길에 조각상이 있다던데.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박달재가 소개돼 있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504m, 길이 500m. 구학산과 시랑산이 맞닿은 곳에 있으며, 능선이 사방을 에워싼 첩첩산중에 위치한다. 원서천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에 솟은 천등산과 마주 보고 있으며,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1217년(고종 4)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곳이다. 육송·잣나무·전나무·향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며, 주위에는 금남루(錦南樓)·팔영루(八詠樓)·청풍향교·한벽루(寒碧樓)·덕주사마애불상 등이 있다. 제천과 서울·충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나 있다.

현재 금남루, 팔영루, 한벽루는 청풍문화재단지내로 이전되어 있다.

이곳 지기가 음기가 강해서 음을 보충하는 양의 상징인 남근을 많이 조각해 놨다는데 차로 다니다 보니 보지 못했네요. 영주, 단양쪽에서는 예전에는 이 길을 통해 한양(지금의 서울)에 선비들이 과거보러 지나던 길인 모양입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없어 주로 지름길을 그것도 걸어서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주로 산길이 많았지요. 신이라고는 요즘처럼 가죽구두가 아니라 짚으로 엮어만든 짚신이라 바닥이 잘 닳아서 자주 바꿔 신어야 했으므로 노자꾸러미와 같이 짚신을 많이 엮어 등에 지고 다녔습니다. 닳아서 더 신을수 없을 정도로 덜덜거리면 한 켤레 꺼내어 새것으로 바꾸어 신고 이렇게 갈아신어가며 며칠씩 걸었어요.

고개마루에 식당에는 느즈막한 시간에 점심차 들렀는데 몇팀이 앉아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주문도 받지도 않고 한참이나 정신을 못차리고 있길래 싱겁게 그냥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밥을 먹을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요. 그런데 나와도 왜 가냐고도 묻지도 않고 나도 말도 않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나이 ‘박달’이라는 작자는 과거를 보러가는 자신을 망각한채 어째 촌가의 아가씨 '금봉이' 얼굴에 마음이 빼앗겨 사랑을 줍니까. 좀 밝히는 사람같습니다만.과거 다 보고 내려오는 길이라면 모를까 멀쩡한 아가씨 망쳐놓고 자신은 여자에게 헤어나지도 못하고 科場(과거시험장)에서 까지 엉뚱한 생각이 가득하니 무슨 과거에 급제하겠습니까. 어찌보면 지지리도 못난 사람같네요.


그건 그렇고 박달재가 있는 산이 천둥산입니까. 천등산입니까. 그리고 박달재 부근에 사는 사람이외에는 노랫말에 천둥산으로 되어있으니 모두 그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데 박달재비에는 왠 천등산입니까. 이렇게 많이 대중에게 산이름이 알려져 있다면 이 산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한번 거쳐서 천둥산이라고도 하고 천등산이라고도 한다던지 아니면 작사를 한 반야월선생이 잘못알고 표현했다든가 제대로 한번 알려주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요. 노래비를 세운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언제 세운 것인지 얼른봐서는 알수없데요. 어디 안보이는 한구석에 날짜를 적어두었는지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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