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좋은 글 2012. 5. 17. 16:00


우리들의 일상은 모두 모르던 데로부터 알게 되며, 생소한 데로부터 익숙하게 된다. 보통 어떤 한 부분에서 잘하기 시작하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느낄 때 교만하기 시작한다. 비록 표면적으로 자랑하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며,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시간이 길어지고 일하는 것이 갈수록 익숙해질 때 교만심이 또 팽창하기 시작해 다른 사람을 깔보는 것으로 변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조금 나은 것을 보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오래되면 버리기 힘든 질투심이 형성된다.

인간의 습성의 변화를 되새겨보면 겸손한 데로부터 교만하고 다시 질투로 발전함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는 자신을 종으로 부르고 시시각각 하나님을 칭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행동거지를 반추해보면 겸손을 몰랐고 조그마한 능력을 과시하고 남의 능력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투심으로 멸시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심리변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모를 때는 사람에 대해 온화하고 성실하며 심지어 비평도 겸손하게 접수한다. 하지만 일단 교만심이 일어난 후 표현해낸 선은 위선적으로 변하고 만다. 비록 표면적으로 누구를 깔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비교하며 말과 본심이 다를 수 있는데 입은 선(善)하나 마음은 악(惡)하다. 다시 발전해 내려가면 질투심이 형성된 후 선은 이미 사라진다.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을 뛰어 넘을까? 마땅히 시종 겸손을 유지해야 한다.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다. 우선 겸손은 자신을 마성(魔性)에서 벗어나 신성(神性)의 일면에 서게 한다. 순조로울 때나 역경일 때를 막론하고,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를 막론하며, 능력이 크거나 작거나를 막론하고 겸손은 우리들에게 ‘참음(忍耐)’을 이탈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겸손은 자신에게 양호한 심태를 주고 쟁투를 피하게 한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 쟁투심은 인간의 원죄에 해당하는 명(名), 리(利), 정(情)의 집착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사람과 서로 다투면서 누구도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악이다. 이것이 바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주창한 공산당(共産黨) 문화유산의 잔재가 아닌가? 도덕과 상식(五常 : 仁·義·禮·智·信)을 무시하고 일체를 업신여기며 신성을 멸시하는 것이 공산철학의 핵심이다. 그 여파가 아직도 세계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개인, 사회, 국가 간에 만약 겸손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을 성심으로 대하게 될 것이며 복잡다단한 일들도 자율과 자정작용을 통하여 원만히 수습되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