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도 중화민족은 매우 특별하다. 가장 오래된 문명역사를 지녔고 문화, 문자, 언어, 음악, 회화, 의식주, 인생관 각종방면에서 여느 민족과 다른 독특한 품격이 있다.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 세계인은 중화문화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 중의(中醫)의 우수함, 노자와 공자의 심오함, 시가(詩詞)와 전통회화에 표현된 아름다움, 악기의 미묘함, 주역팔괘(周易八卦)의 신비함, 의복의 풍모, 여기에 음식문화의 독특함도 포함된다. 특히, 내포가 깊은 한자는 과학자들이 미래세상에 통용될 문자로 꼽기도 한다. 기품이 흐르고 내포가 깊은 5천년 중화문화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된걸까?
▲ 2005년 6월 5일, 신강 투루판 아스타나고분에서 출토된 복희여와도
ⓒ 신기원
신주(神州)의 자손, 하늘과 조상의 도(道)를 섬기다

사람들은 예부터 중국을 “신주(神州)”라 불렀다. 많은 중서방 국가에는 중토(中土), 동토(東土) 그곳은 신의 고향으로 神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세계의 중심국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중국(中國) 또는 신주(神州)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다.

고서에 기록된 중국인의 기원은 이러하다 : 반고(盤古)가 천지를 열고 세계를 창조한 후 3분의 신황(神皇)인 여와(女媧), 복희(伏羲), 신농(神農)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여와는 중국인의 시조(始祖)로 중화민족의 어머니이다. 이 여신은 하늘의 황토(黄土)를 가지고 신의 모습을 모방하여 중국인을 만들었다. 사람을 금수와 구별하기 위해 여와는 혼인제도를 만들었고 가정은 중국인의 중심이 되었다

복희신은 고기를 잡고 가축을 기르는 방법과 사회를 관리하는지 방법을 가르쳤다. 그가 중국인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것은 ‘용마(龍馬)의 모습을 보고 팔괘(八卦)를 만든’ 것이다. 주 문왕은 선천팔괘(先天八卦)의 원시형상으로 문자의 괘상(卦象)을 만들어 ‘주역(周易)’으로 발전시켰다. 후에 공자는 주해를 달아 ‘역경(易经)’을 만들었다. 이렇게 중국인은 천상(天象)의 변화를 읽어 천명(天命)을 따르는 가치관이 생겼다.

신농황은 세상에 내려와 농기구 제작과 황무지 개간, 오곡 심는 법을 가르쳤다. ‘사기(史记)’에는 “신농이 백가지 약초를 맛보아 의약이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중의는 많은 질병을 치료했고 음양오행학설은 지금까지 현대의학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여와, 복희, 신농 삼황의 전설은 신이 세상에 내려와 인류에게 문화를 전수했으며 중화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신이 사람에게 전한 문화이므로 중국인이 하늘과 신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후, 약 5천년 전 신주에는 황제가 출현했다. 황제시대 이후에는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지 않아 이때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한 ‘반신문화(半神文化)’가 시작됐다.
▲ 쓰촨(四川) 난충(南充)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여와(女媧)두상을 건립할 예정이다. 고서에는 “여와가 구이(仇夷)에서 출생했으며, 구이는 (난충) 낭중(閬中)성 서남쪽의 자링(嘉陵) 강가에 있다”고 기재되있다. 많은 난충시민들은 여와를 고향사람으로 여긴다.
ⓒ 신기원
하늘로 돌아가려는 중국인의 소망

사서에 의하면 황제는 탁록(涿鹿)전쟁에서 치우(蚩尤)를 멸한 후 제후들의 추대를 받아 천자(天子)가 되었다. 천자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간세상에서 천도(天道)를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황제는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제왕으로, 화하(華夏)를 통일하고 백관(百官)을 세웠다. 법령과 제도를 만들고 유능한 사람을 발탁해 하늘에 제례하며 천하를 다스렸다. 문자, 의학, 역법, 산수, 악기, 도기를 발명해 중국 문명의 기초를 다져 후세 헌원황제(軒轅黄帝)로 존경받으며 인문의 시조가 되었다

‘사기’에는 황제가 도(道)로 천하를 다스려 세상을 천당으로 만듬과 동시에 수련하여 도를 얻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하늘이 내려준 보정(寳鼎, 제위를 상징하는 보배로운 솥), 신책(神策, 점칠 때 쓰는 자잘한 나뭇가지)을 가지고 “천지규율에 따라 음양변화를 추측하여 생사의 도리를 해석하며 존망의 원인을 논술”해 세상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2598년, 황제는 교산(橋山) 아래서 철로 된 큰 솥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다 만드는 순간, 하늘이 열리며 황룡 한 마리가 내려와 그를 맞았고 황제와 신하 70여 명은 황룡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 후, 중국 사람들은 생을 원만히 마치는 것이 바로 천상으로 돌아가 신이 되는 것이라 믿었고 이는 중국인의 소망이 되었다.

중국 사서에는 많은 수련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강자아, 제갈량, 유백온은 모두 천명을 받고 즉위한 천자를 도운 군사요, 도사였다.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넌 달마대사, 아미산으로 나무를 운반한 제공,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풍은 모두 수련하여 공능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 후 수 천년 중화역사는 유(儒), 불(釋), 도(道) 속에서 수신(修身), 수행(修行), 수련(修煉)하는 문화로 가득찼고 중국인은 하늘로 가장 돌아가고픈 한 무리의 사람이 되었다.
▲ 인문의 시조로 불리는 황제(黃帝)
ⓒ 신기원
도(道)를 따르며 살다

옛날, 중국에서는 수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천일합일(天人合一)’ 사상은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5대 원칙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선악유보(善惡有報,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란 보편적 가치관이 포함된다.

‘천일합일(天人合一)’은 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 적혀있다. ‘황제내경(黄帝內經)’은 “夫道者, 上知天文, 下知地理, 中知人事(무릇 도라는 것은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며, 가운데로는 인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한(西漢)의 동중서(董仲舒)는 “天人之際, 合而爲一(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로 합쳐진다)”라며 천일합일 사상을 명확히 제기했다.

중국인에게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관은 중국인의 일상생활 각 방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늘에 상제(皇天)가 있고 푸른 하늘(蒼天)에는 눈이 있어, 중국인은 하늘이 안배한 ‘도’를 따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일을 할 때 도리와 규범에 비추어 자기의 언행이 도의에 맞는지 살폈다. 중국의 무용, 음악, 의복, 음식 진상품도 모두 신령을 모시는 의례에서 처음 나타났다.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경천예불(敬天禮佛, 하늘을 경외하고 신불에 예의를 다함)의 장엄함과 경건함이 항상 배어있었다.

예술과 도덕은 서로 통한다

많은 당대 대륙인은 음악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공자는 사람은 반드시 예악(禮樂)을 배워야만 도덕적으로 원만하고 자신의 수양을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며 낡은 풍속을 고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예술영역의 ‘미(美)’와 도덕범주의 ‘선(善)’은 모두 ‘인(仁)’의 경지에서 통일되며 ‘인(仁)’중에 악(樂)이 있고 악(樂)중에 ‘인(仁)’이 있어 예술과 도덕은 상통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중국 선인의 예술에 대한 독특한 이해다.

선인은 음악을 덕음(德音)인 아악(雅樂)과 속음(俗音)인 음악(淫樂)의 두종류로 구분지었다. 오행(五行)간의 대응관계에 따라 순정한 오음(五音)은 혈맥을 통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바른 마음으로 병을 제거하는 작용을 일으킨다. 악(藥)자는 약(樂)자에 초두(草頭)변을 더한 것으로 음악도 일종의 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선인은 음(音)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공자는 ‘문왕조(文王操)’의 고금(古琴) 연주를 듣고 말하길 “이 사람은 얼굴은 거무스레하고 체구는 장대하며 눈은 하늘을 향하고 마음은 사방의 감화를 바라네, 이는 문왕이 아니고서 누가 이렇게 하겠는가?”라며 음악의 운율과 내포를 듣고 작곡자가 누구인지 알아 맞췄다. 유백아(俞伯牙), 종자기(鐘子期)의 ‘고산유수(高山流水)’로 지음(知音)을 만난 고사도 중국 전통음악이 포함하고 있는 풍부한 내포를 잘 설명하고 있다.
▲ 머리를 높이 올리고 모란화관을 쓴 당(唐)대 여성의 모습. 당대 유행하던 복식을 알 수 있다.
ⓒ 신기원
다시 꽃을 피우는 전통문화

신전문화의 깊은 내포를 가진 중국의 전통문화는 공산당이 들어서며 서서히 파괴됐다. 중공은 무신론으로 5천년동안 중국인이 이어온 신을 공경하는 문화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문예는 정치를 위해”, “모든 것은 혁명을 위해”라는 구호를 외치며 모든 예술은 정치도구로 삼았다. 최근 올림픽을 앞둔 중공은 민족문화를 살린다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절을 수리하고 사당을 세우웠지만 그것은 단지 보여주기 위해 껍데기만 포장했을 뿐 전통문화의 내포까지 살린 것은 아니었다. 당문화와 중화 전통문화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라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 ‘공산당 탈당’이라는 큰 움직임이 일고있고 이에 일부 화인 엘리트들은 중화전통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NTDTV 세계화인경연대회와 신운예술단(神韵藝術團) 순회공연이다. 올해 세계대회는 무용,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한복회귀 디자인, 사진작품, 요리, 무술, 유화 9가지 분야에서 열린다. 2년 연속 이뤄진 신운예술단 세계 순회공연은 순진(純眞), 순선(純善), 순미(純美)의 인류정통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NTDTV 세계대회가 선도하는 것은 중화신전문화를 되살리는 것으로 이는 단순한 복고운동이 아니다. 중국인이 도덕과 전통문화를 회복하는데서 더 나아가 전인류가 신을 경외하는 문화로 회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움직임은 곧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를 열어줄 것이다.
▲ 5월 12일 쓰촨 지진으로 부근 댐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기원전 256년에 건설된 더우장옌(都江堰)의 수리시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중국 고대인의 과학기술은 매우 놀라운 수준이다. 사진은 더우장옌 고대 수리시설건물 천정에 있는 수호신 조각상.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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