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기승부리던 바퀴벌레,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작자: 청천(淸泉)

[정견망]

수련 전에 나는 여러 번 작디작은 바퀴벌레의 총명함과 영기(靈氣)를 감상한 적 있다. 먼저 언니의 시댁 주방에 있던 바퀴벌레를 말해 보기로 하겠다. 한 번은 언니 집에 갔는데 그 때 언니는 시댁에서 살았다. 점심 식사를 할 때 나는 몇 마리 바퀴벌레가 밥상 다리를 따라 기어 올라가 밥상에서 기어 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언니의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별 수 없어, 잡을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니까. 바퀴벌레 약도 소용없으니 그것들 마음대로 하라지.”

또 우리 집을 말해보겠다. 수련 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바퀴벌레가 기승을 부렸다. 모두가 하는 말이 어느 한 집에만 바퀴가 있어도 온 아파트에 퍼지게 된다고 했다. 우리 집도 자연적으로 재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집에서는 각종 방법을 다해 바퀴벌레를 소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때 나는 앓고 있어서 몸이 몹시 허약했는데 가끔은 의자에 앉아 바퀴벌레들이 내 발 곁에서 스멀거리며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저것들을 밟아 죽여야 되나?” 나는 바퀴벌레의 동작이 엄청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몸이 약하고 행동이 느려 바퀴벌레를 밟으려 해도 쉽지 않았으므로 힘을 모아 집중해야만 그것들이 도망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그렇게 했었는데 많은 경우에 여전히 그것들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어 놓치곤 했다. 그래서 매번 이 바퀴벌레를 볼 때마다 나는 밟아 죽여야 할지 망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놀랍고도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바퀴벌레가 내 앞을 지날 때 나는 먼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망설이다가 일단 그것을 밟아 죽이기로 결단을 내리고 아울러 몰래 힘을 모으고 있을 때면 이 작은 놈은 놀랍게도 내 생각을 알고 있기나 한 듯 재빨리 그림자도 없이 사라진다.

반대로 어떤 땐 바퀴가 지나가는걸 보면서 나는 자신의 순발력이 부족해 틀림없이 밟아죽이지 못하겠다고 짐작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내 생각을 알았는지 그 녀석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편하게 지나간다. 나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기도 하고 또 무척 우습기도 했다. 이 조그마한 녀석은 그야말로 지극히 영리했다.

가족들은 바퀴벌레를 잡는 약이란 약은 거의 다 사왔고 바퀴벌레도 적지 않게 죽였으나 그것의 번식 속도는 죽인 숫자를 훨씬 초과했다. 또 그 후에 우리 집은 바퀴벌레가 득실거려 그야말로 재해가 날 정도였다. 바퀴벌레들은 마술을 부리듯 끊임없이 나타났고 이후에는 주방에 쌓아놓은 접시와 그릇마다 모두 검은 바퀴벌레 똥을 싸 놓았는데 마치 우리가 그것들을 약으로 죽였다고 의식적으로 보복하는 것 같았다.

매번 식사 후엔 접시와 사발들을 깨끗이 씻어서 찬장에 넣어 두는데 쓰려고 하면 틀림없이 모든 식기마다 빼놓지 않고 죄다 바퀴벌레 똥이 있으므로 다시 씻어 소독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주방 싱크대와 벽의 매 하나의 하얀 타일 틈 사이마다 크고 작은 바퀴벌레 자손들이 가득 살고 있었다. 어떤 때 나는 불면증으로 밤에 일어나 주방에서 먹을 걸 찾으려고 불을 켜면 와! 온 바닥과 싱크대에 바퀴벌레들이 득실거렸다.

1996년, 내가 심신수련법인 법륜대법을 막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바퀴벌레 한 마리가 또 내 앞을 지나가기에 나는 습관적으로 생각했다. 밟아 죽일까? 즉시 또 다른 염두가 나왔다.

그 역시 하나의 생명이다. 예전에 나는 그것을 미워했는데 그것이 몹시 더럽다고 여겼다. 땅에서나 쓰레기에서 기어 다니고는 또 사발과 접시에서 기어 다니면서 병균을 사람에게 전파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수련인이라 수련후에 과거의 병이 순간적으로 종적 없이 사라졌는데 무슨 세균도 수련인의 신체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조그마한 바퀴벌레는 그저 이곳에서 먹을 것을 찾을 따름인데 그럼 그것들 더러 마음대로 먹으라지, 그릇 속 바퀴벌레 똥은 내가 좀 귀찮더라도 몇 번 더 씻으면 되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밟아 죽일게 뭐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튿날 식사 때 나는 습관적으로 그릇을 꺼내 한 번 씻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 밖에 그릇들은 깨끗한 그대로였는데 바퀴벌레 똥이 하나도 없었다!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집이 여기로 이사온지도 5,6년이나 됐는데 바퀴벌레의 피해를 받을 대로 받았으며 2년간 그릇을 씻었다는 점이다.

이때에 와서야 나는 전날의 바퀴벌레를 향한 그 선념(善念)을 발한후 바퀴벌레는 가족을 데리고 단체로 다른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됐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다시는 바퀴벌레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당시는 바퀴벌레 문제 때문에 일정 기간을 주기로 전 시내에서나 또는 전 지역적으로 바퀴벌레 약을 나누어 주고 동일한 시간 내에 바퀴벌레를 소멸하게 했다. 수련 전에 우리 집에서도 전 시내에서 하는 바퀴벌레 소멸 행동에 참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필요 없게 됐다. 이웃이 나에게 권했다. “전 건물에서 각 집마다 모두 바퀴벌레 약을 놓는데 당신 집에서만 놓지 않고 있어요. 약물이 뿜어져 나올 때 바퀴벌레들이 틀림없이 모두 당신 집으로 도망갈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정말 한 마리 바퀴벌레도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에 한 번은 한 수련생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녀 집에서 붉은 개미를 발견했다면서 개미 약을 사서 죽여야 되지 않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바퀴벌레에 대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듣고 나서 알았다고 말했다. 또 며칠이 지난 후 이 수련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나의 방법대로 했더니 그녀 집의 붉은 개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만물엔 모두 영혼이 있으므로 생명을 선하게 대해주면 당신에게는 생각 밖의 수확이 있을 것이다.

(지난달 11.27일에 타이완 타이페이에서 거행된 아시아 지역 파룬궁 수련생 연공장면)


저는 이제 수련 2년차인 신수련생 입니다만 2년 동안 겪은 경험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60년 동안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듯 합니다. 지난번 814일 있었던 중국 공산당 1억명 탈당 성원 대회에서 본인의 감수 내용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814일 중국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안산시 원곡동 근린공원에서 중국 공산당 1억 명 탈당 성원 대회가 열렸다. 지방에서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행사장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파룬궁 행사 때 마다 비가 여러 차례 내렸으나 비로인해 행사가 중단되거나 행사에 지장을 초래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날은 좀 달랐다. 행사를 위해 수련인들이 정렬을 하고 나누어준 피켓, 프랭카드, 개인용 펼침막 등을 들고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슬 부슬 내리던 비가 억수 같은 장대비로 바뀌었다. 나는 사람들이 바로 비를 피해 흩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행사장에서 나가지 않고 사람들이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행사 중단을 발표할 때까지는 기다리는구나.’ 이제 이렇게 비가 내리니 행사진행이 어려워 주최측에서 행사 중단을 선언할 것이다. 그러자 마자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비를 피하려 할 것이다. 나도 빨리 주위 건물 통로에라도 가서 비를 피해야지. 차라리 잘됐다. 우리가 타고 온 전세 버스에 가서 아침에 먹다 남긴 김밥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되겠군.’ 이런 생각으로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그런데 비가 이렇게 억수로 오는데 주최 측에선 별다른 설명 없이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놀랄 일은 비가 더 억수로 바뀌었지만 행사에 참가한 수련생 어느 한 사람도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여러 가지 일반인들의 행사에서 보면 햇빛이 강하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야외 행사 중 행사 참가자들은 햇빛을 피하고 비를 피해 흩어질 뿐만 아니라 만약 비가 오는데 행사가 진행 된다면 모두 한 마디씩 불평을 하면서 주최 측을 성토할 것이고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는 행사 진행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런데 파룬궁 수련인이 참석한 이 행사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했다. 한사람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한사람도 대열을 이탈하는 사람도 없다. 비가 이렇게 억수로 오는데도...

나는 조금 투덜댔다. ‘이정도면 주최측에서 행사를 중단해야 하는것 아닌가’ ‘이런 상태로 행사를 진행하다가 사람이라도 쓰러지면 어쩔려고 이러는가혼자 투덜거려도 주위에 어느 누구 내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모두 진지하게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만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우산도 없고 모자도 쓰지 않았고 해서 1억 탈당을 축하한다는 글귀가 들어있는 개인 펼침막을 나는 내머리에 쓰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차마 대열에서 이탈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옆 줄에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딱했는지 선생님, 이 우산을 쓰시고 펼침막은 똑바로 드세요하면서 우산을 하나 내밀었다.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펼침막을 머리에 쓰거나 허술하게 들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의연한 모습으로 똑바로 서 있었다. 나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또한 무례하게 느껴졌다. 부끄러웠다. 차마 그 아주머니가 주는 우산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우산은 아주머니가 쓰세요. 펼침막을 똑바로 들테니 염려마세요.’ 하고 우산을 돌려주고 펼침막을 똑바로 들었다.

비가 머리를 적시고 목을 타고 들어와 온몸을 흠뻑 적셨다. 아주머니보다 내가 더 강인하게 버티어야 할텐데 내가 저 아주머니 보다 이렇게 약하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자세 한 번 흐트리지 않고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일반인들 행사라면 처음부터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두 시간 이상 야외 행사가 진행 되었다면 태반은 쓰러지는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참석한 수련인은 한사람도 피곤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활기찬 모습으로 장장 두 시간 이상을 한 번 앉지도 않고 자세 한 번 흐트리지도 않고 비를 맞으며 서 있었으니 그 원동력이 어디서 오는지 놀랄 따름이었다. 사실 나도 만약 일반인의 행사라면 이렇게 버티지 못하였을 것이다.

버티지 못할 뿐만 아니라 행사가 끝나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야단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도 나 자신이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않으니 이것 또한 신기하였다. 이 힘이 그동안 수련했기 때문이라면 수련의 효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된다.

행사에 참여한 다른 사람과 나를 한번 비교해보자. 나를 제외한 사람을 그들이라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음에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오거나 관심도 없고, 옷이 젖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오직 행사에 집중하고 자신이 이렇게 오래 빗속에 서있었는데, 왜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당연히 그렇게 되어짐에 맡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비가 올 조짐을 보일 때부터 머리를 굴렸다.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지면 행사가 중단될 것이다.’ ‘빗줄기가 조금만 더 굵어지면 사람들이 비를 피해 흩어질 것이다.’ ‘주최측에서도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빨리 가서 먹다 남은 김밥을 먹어야지이렇게 나만 잔꽤를 부리고 사부님의 법 밖에서 헤메고 있었다. 이번 탈당 성원 대회에서 내가 본 수련인의 행동이야말로 사부님 말씀대로 정법 시기에 파룬따파의 사람으로서 사부님의 제자로서 보여준 위대한 수련인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나도 이제 그들과 같이 사부님의 법 안에서 수련하는 진정한 수련인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면서.........(끝)

달 궤도는 타원형 아닌 인공위성과 같은 원형 궤도
지진파 실험 결과 내부는 속이 빈 금속球임이 증명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과학 문제에 정답과 확신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발상의 폭을 넓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달의 기원’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세월 연구에 몰두했음에도 그 기원은 지금껏 시원스럽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달의 기원설’ 중 가장 획기적인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대전제로 깔고 있는, 달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위성이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달은 자연위성(천체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위성)이 아니라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위성일 것이라는 것.


달의 탐사를 통해 달의 내부가 의외로 빈 공간임이 확인되자, 이전에 지구와 비슷한 원소를 지닌 위성이라는 이론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생겼다. 세계적인 천문학연구소의 의견으로, 자연위성의 내부가 비어 있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해, 그렇다면 달의 생성과정에 누군가 다른 존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보다 신빙성 있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달의 내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왜 그렇게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일까? 그 이유는 천문우주과학 교수이자 코넬(Cornell)대학교 행성연구소 소장인 칼 세이건(Carl Sagan) 박사가 우회적이지만 명확하게 답을 해준다.

칼 세이건 박사는 자연 위성의 내부가 비어 있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달의 내부가 비어 있다면, 그것은 달이 자연위성이 아니고 누군가 만든 인공위성이라는 설명이다.


인류 문명의 태동기에도 달은 인류에게 무수한 영감을 불어넣으면서 원시시대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했고 그 후에도 우주의 원리를 깨닫는데 지침이 됐을 뿐 아니라,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오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지구 가까이에 머물면서 손짓하는 달이 없었다면 감히 우주여행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에게 있어 무엇보다 특별한 우주 존재라 할 수 있는 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달의 기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찾아보자.

달의 기원설과 의혹들


달의 기원설에 대한 가설로는 첫째 ‘동시생성설’이 있다. 지구가 만들어질 때 지구가 만들어지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서 달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포획설’로 원래는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이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달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세 번째는 지구가 생성될 때 아직 완벽하게 굳지 않았을 때 원심력에 의해서 태평양 부분의 땅덩어리가 떨어져나가 지구에는 태평양이 생성되고 떨어져나간 땅덩어리가 달이 되었다는 ‘분리설’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충돌설’로 지구 생성 초기에 대략 화성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부딪쳐서 그때의 충격으로 발생한 파편이 모여 달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이 네 가지 가설은 성립 될 수 없음이 증명됐다. ‘포획설’은 지름이 지구의 27%인 달이 쉽게 지구 궤도로 끌려온다는 것은 천문물리학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달이 행성 궤도에 진입하려면 각도가 아주 정확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태양계의 다른 큰 별에 포획될 수 있다. 또한 달이 우연히 정확하게 지구권(地球圈)에 진입할 수 있다 해도 지구를 돌 때 다른 모든 위성들처럼 타원형 궤도여야지 현재의 달처럼 원형 궤도일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른 두 가지 학설인 ‘동시생성설’ 혹은 ‘분리설’은 물질구조로부터 보면 달과 지구의 성분과 구조는 응당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아폴로 우주비행선이 달에서 가지고 온 많은 증거를 통해 달의 연령을 분석해 보면 달은 지구보다 좀 일찍 형성됐다. 달 표면에 가장 오래된 암석은 46억 년 전에 형성됐지만(어떤 암석의 수명은 70억 년에 달한다)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암석은 39억 년에 불과하고 6가지 원소는 지구에 없는 것이다. 이는 ‘동시생성설’ 혹은 ‘분리설’로는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충돌설’ 역시 달의 기원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이론은 충돌 후 생긴 원반에서 달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여 진다. 무엇보다 달의 크기와 질량이 위성으로서는 지나치게 커 지구의 중력에 잡혀 지구 주위를 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달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자연계가 달을 만들었다는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달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혹시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닐까? 이 기묘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들은 일종 배척하는 정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많은 대담한 과학자들은 이미 과학적인 증거에 의해 ‘달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음은 이런 과학자들의 달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다.

달은 ‘너무 큰’ 위성이다


우선 과학자들은 달이 유난히 큰 천체임을 발견했다. 달은 다른 천체의 위성보다 훨씬 크다. 태양계 행성들이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자연스러운 사실이지만 지구의 위성인 달은 ‘자연스럽지 못한’ 크기로 돼 있다. 다시 말하면 위성으로서 그의 체적이 모 행성인 지구에 비해 너무 큰 것이다.


다음 데이터를 보자. 지구 직경은 1만 2756km, 달 직경은 3467km로 달은 지구 직경의 27%다. 화성 직경은 6787km, 화성의 두 개의 위성 중 큰 것의 직경은 23km로 화성의 0.34%다. 목성은 직경이 14만 2800km로 13개 위성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직경이 5000km이며 이는 목성의 3.5%다. 토성의 직경은 12만km로 23개 위성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직경이 4500km이며 토성의 3.75%다. 다른 행성의 위성 직경도 모성(母星)의 5%를 초과한 것이 없지만 달은 27%에 달한다. 이는 달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위성이 아님을 말해 준다.

1969년 11월 19일 아폴로12호 우주인이 달 표면에 착륙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NASA

영원히 동일 면만 지구와 마주해


달은 지구를 돌 때 영원히 동일한 면만 지구를 마주하고 있다. 이 점은 아주 불가사의한 점이다. 달은 왜 영원히 동일한 면만 지구를 마주보고 있을까? 그것은 달이 매시간 16.56km 속도로 자전하는 한편 지구를 돌며 공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이 비정상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자전하고 있으며 이는 비슷한 크기, 거리를 갖춘 유사한 행성이 가지고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달이 일주·자전하는 시간이 일주·공전하는 시간과 똑같기 때문에 달은 영원히 한 면만 지구를 마주보고 있다.


한편, 이전에 천문학자들은 달 뒷면이 앞면과 비슷해 운석 구덩이와 용암바다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우주비행선이 찍어온 사진은 많이 달랐다. 달 뒷면은 울퉁불퉁했으며 평평하지 않았고 절대다수는 작은 구덩이와 산맥이고 아주 적은 용암바다가 있었을 뿐이다. 달 양면의 차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해답할 방법이 없다. 이론상에서 달은 우주 중의 자연 성체로 어느 면이던 우주 중 운석의 충격을 받을 기회는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앞, 뒷면 구별이 있을 수 있을까?

달 궤도는 타원형 아닌 원형이다


보통 자연위성의 궤도는 모두 타원형이지만 달의 궤도는 원형이다(궤도 반지름은 38만km).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이 만든 인공위성의 궤도 역시 원형이다. 그렇다면 달은 하나의 거대한 인공위성이 아니겠는가?

‘월진(月震)’은 달 중간이 빈 금속구임을 증명


지진학자들은 보통 지진파로 지구 내부 성질을 연구한다. 월진파 역시 과학자들이 달 내부 성질을 연구하는데 쓴다. 1969년 ‘아폴로11호’에서 ‘아폴로17호’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8차례에 걸쳐 우주비행선을 달에 보내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달 표면을 기지로 고정밀도 지진탐지기를 설치하고 달 진동 자료를 지구에 보냈다.


지진연구소 책임자 모리스 윈커는 달에 관한 8차례의 연구 자료를 토대로 달의 내부가 비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직관적으로 달의 진동을 묘사한다면 마치 교회당의 큰 종을 친 것과 같은 것으로 진동파는 달 내부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달 표면을 따라 전파됐다”며 “이는 달 내부가 비어 있고 표면이 한 층의 껍데기임을 충분이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폴로12호가 달에 간 이후 아폴로13호 우주인은 무선 원격우주선의 제3급 로켓으로 달 표면을 충격했다. 지점은 아폴로12호 우주인이 설치한 지진탐지기에서 140km 떨어진 곳이었다. 월진은 3시간 20분 지속된 후 점차 멈췄다. 월진 심도는 35.4km에서 40.2km에 달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내부가 빈 구체만이 이런 형식의 진동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폴로13, 14호 우주인 역시 월진 실험을 여러 차례 했는데 제일 큰 한 차례 월진 진동은 달 표면에서 4시간 지속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16호와 달 표면’ 보고서에는 월진연구에서 달 표면 내부에는 64.3km 두께의 ‘견고한 층’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과학자 펭 브라운 박사는 64.3km 심도에서의 진동전파속도가 매초 9.7km에 달하는 것은 암석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리학적 입장에서 봐도 소리는 금속 혹은 금속 재질로 된 암석이어야 전파속도가 그렇게 빠를 수 있다.


달 내부의 진동전파속도와 금속의 전파속도는 같다. 과학자들은 달 내부는 중간이 빈 금속구이고, 그 위에 16~36km 두께의 돌이 덮여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과학자 우더 박사 등은 이 층이 몇 억 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운석과 소행성, 혜성이 달 표면에 여러 차례 충돌한 후 점차 형성된 암석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진 실험은 달의 속이 비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2편에 계속)


장제롄(張傑連) 기자

지구 곳곳서 진화론 깨는 초고대문명발견, 현대과학은 부정하는 편협한 세계관 키워


서로 다른 정보를 받은 물결정체. 왼쪽 그림은 사랑과 감사라는 정보를 받았고, 오른쪽 그림은 구역질 난다, 얄밉다, 나는 너를 죽여버릴 거다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만물이 모두 지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영적 깨달음을 얻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꽤 알려져 온 사실이다. 단지 과학이 그걸 입증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뒤늦게나마 양자물리학자들은 모든 피조물들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들로 만들어졌으며, 사람의 속마음을 척척 읽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두뇌가 없으면 지능도 없다는 생각도 두뇌를 가진 인간이 빚어낸 어이없는 착각임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책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나 현대과학이 그 일보까지 발전하지 못해 아직 인식하지 못한 부분들을 우리는 일률로 미신이라고 여긴다. 나아가 진화론 등의 과학지식은 무신론을 더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게 했으며, 그렇게 굳어진 관념은 진화론 등의 착오적인 논리에 대한 연구자체를 제약했다. 그 영향은 선악에 대한 보응을 비롯하여 우리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도덕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왔다. 나아가 과학을 맹신한 오늘날 인류는 신을 부정하는 편협하고 오만한 세계관을 갖게 됐다.

다행이 오늘날 과학이 정신과 마음에 대한 연구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으며, 몇몇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왔던 과학의 한계들을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세계각지에서 정통적인 역사의 계보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훨씬 더 선행하는 초고대 문명(사전문명)에 대한 증거들을 발견했으며, 그것은 진화론의 논리에 대한 강한 반증이다. 어떤 화석 암층에는 몇 억 년 전의 인류 발자국이 숨겨져 있었다.

물은 들을 줄 알고 볼 줄 안다

만물은 모두 영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대표적인 예는 에 대한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박사의 연구다. 물결정체에 관한 연구는 일본 I.H.M종합연구소의 에모토 마사루 박사 연구진이 10년간 진행해 왔으며, 그 연구결과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연구에 활용된 각양각색의 결정체 사진은 모두 영하 5도의 냉장실 안에서 고속촬영으로 찍었다. 최초 관찰을 통해 도시에서 표백한 수돗물은 거의 결정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자연의 물은 어디에서 온 것이든 아주 아름다운 결정체를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루는 실험하고 있는 물의 양 옆에 스피커를 놓고 물이 음악을 듣게했는데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은 물결정은 아름답고 반듯했으며,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을 들은 물결정체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펼쳤다. 나아가 물을 담은 병에 글 혹은 사진을 붙여 물에게 보여주었더니 감사하다는 글을 본 물결정체는 아주 분명한 아름다운 6각형을 나타냈고, ‘망나니라는 글을 본 물결정체는 파손돼 흩어져 있었다.

이 실험은 물도 감지능력이 있어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우리 생활 속에서 물이 치유능력, 생명의 힘을 가졌다는 물에 담긴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에 파장을 맞추라며 우주의 근본 현상인 파동과 공명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설명했다.

식물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 미국의 클리브 백스터(Cleve Backster)는 식물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그의 연구를 초심리학 국제 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Parapsychology) “식물의 삶에서 일차 인식의 증거 Evidence of a Primary Perception in Plant Life” (1968, 10)에 실었다. 그는 그의 화초를 거짓말탐지기로 검사했으며, 화초가 인간의 생각과 위협에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9662월의 어느 날, 미국 중앙정보국 거짓말탐지기 전문가 클리브 백스터는 정원의 화초에 물을 주다가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해 보고자 우설란(牛舌蘭) 잎에 탐지기 양극을 연결했다. 그는 거짓말 탐지장치의 하나인 피부반응 감지기를 잎사귀에 붙여놓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물을 주자 감지기 모니터에 즉각 기쁨의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식물에게 위협적인 행동으로 정신적 충격을 주면 사람처럼 공포감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식물의 잎을 불로 태우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백스터는 깜짝 놀랐다. 감지기 그래프가 마구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설란은 공포의 반응을 그래프에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백스터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거짓으로 식물의 잎을 태우는 척할 때면 도면엔 이런 반응이 없었다. 이를 통해 백스터는 식물에게 사람의 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전국 각지의 기타 기관에서도 다른 종의 식물과 거짓말탐지기로 비슷한 관찰과 연구를 했다. 그들은 25종 이상의 식물과 과일나무에 실험 했으며, 그 중에는 상추, 양파, , 바나나 등도 포함됐는데 결과는 같았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이 정신세계 연구로 다가서기 시작하면서 백스터의 실험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 물리학 교수인 코로트코프(Konstantin Korotkov)박사 등은 자신들이 개발해낸 최첨단 빛 촬영장치(GDV)를 화분 식물들과 연결시킨 후 연구원들에게 분노, 저주, 슬픔, 사랑, 기쁨 등의 감정을 품어보도록 했다. 식물들은 그 감정들을 정확히 읽어냈다. 코로트코프 박사는 사람의 뇌파도, 식물도, 모두 똑같은 미립자로 만들어져 있다. 식물이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고 정보를 주고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고 선언했다.


1968년 아마추어 화석전문가 마이스터는 미국 유타주에서 6억년에서 2억여 년 전의 삼엽충 화석에서 삼엽충을 밟은 신발 자국을 발견했다. Henry Johnson

사전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들

1996년 미국 NBC TV에서 방영한 인류 기원의 신비’ (Mysterious Origins of Man)프로그램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많은 고고학적 발견을 제시했다. ‘공룡발자국과 함께 발견된 사람의 발자국’ ‘32000만 년 전의 인류의 대퇴골’ ‘28억 년 전의 인공 철 구슬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된 후 즉각 사회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삼엽충과 공룡시대 인류 흔적

1968년 여름, 미국 유타주 엔텔롭 스프링(Antelope Springs)에서 발견된 삼엽충 화석은 100년 이래 현대인이 굳게 믿어온 진화론을 단번에 뒤흔들었으며 인류발전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화석은 자연 탐사에 나선 미국의 아마추어 화석전문가 마이스터(William J. Meister) 가족과 프랜시스 쉐이프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그들은 엔텔롭 스프링 주변 암석에서 삼엽충 화석을 여러 개 발견했다. 그 암석들은 층상구조를 갖고 있어 약 5cm 두께의 돌을 망치로 깨뜨리면 마치 두꺼운 책과 같이 갈라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엽충 화석 옆에는 인간의 발자국 모양이 함께 찍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쪼개진 또 다른 면에 샌달 모양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있다는 것이었다. 그 샌달 자국의 길이는 26cm, 너비가 약 9cm로 뒷부분이 약간 깊게 패어 있어 현대 인류의 샌달 자국과 매우 흡사했다.

그 발자국의 연대는 삼엽충과 마찬가지로 3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기껏해야 100~200만 년 전에 나타났고 아주 최근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문에 삼엽충이 번성했던 수억 년 전에 이미 샌달을 신고 다니는 인류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은 진화론에 큰 의문을 낳게 했다.

또한, 미국 텍사스주 글렌로스(Glen Rose)시의 클락강 강바닥에서 백악기 공룡발자국이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공룡발자국 옆 47가량 되는 곳에 12명의 사람 발자국 화석이 있었다.

그 밖에 부근의 동일한 암층에서 사람 손가락 화석과 철 망치 화석을 발견했다. 분석결과 망치 머리는 96.6% , 0.74%의 유황과 2.6%염소가 함유됐다. 이는 매우 기이한 합금으로 지금의 기술로도 이런 염소와 철이 화합한 금속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또한 망치자루는 이미 석탄으로 변했다. 짧은 시간에 나무가 석탄으로 변하게 하려면 온 지하층에 상당한 압력과 일정한 열량이 있어야 한다. 암층이 딱딱하게 굳어질 때 망치가 그곳에 있었음을 설명한다. 이는 인류와 공룡이 동일한 시대에 생활했음을 설명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바다 밑에 잠긴 고대 건축물

최근 몇 십 년 동안 사람들은 해양 대륙붕에서 많은 사전(史前)건축물을 발견했다. 이런 바다 밑에 잠긴 문화유적은 모두 사전문명의 것이다. 그때의 건축기술은 오늘날 과학기술보다 뛰어난 것이었다.

페루 해안기슭 바다 속 200m 깊은 곳에서 사람들은 조각된 돌기둥과 거대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건축학자들에 따르면 바다 밑 건축물은 구조가 치밀해 상당한 지식이 없으면 건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프랑스와 미국 과학자들은 버뮤다 삼각지대 바다 서쪽에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밑변 길이는 300m, 높이는 200m로 수심 100m 아래에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 한다. 또 바그다드 교외의 한 옛 무덤에서 과학자들은 2000년 전의 화학 건전지를 발견했다. 오늘날 건전지는 1877년 프랑스의 F.르클랭셰가 발명한 것이 시초로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크래크 산비탈에서 광부들은 몇 백 개의 금속 공을 발견했는데 이런 금속 공이 발견된 지층은 고증에 따르면 약 28억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철공을 에두른 홈은 아주 정밀했다. 예금기술 전문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한다.


작자 : 대륙 대법제자 천오(淺悟)

우리 지방의 한 수련생이 겪은 일이다. 그 수련생은 친척으로부터 민물 게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아, 대야에 물을 담고 게를 풀어 놓았다. 외손녀가 이를 보고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놀았다. 다음 날 외손녀가 유치원에 가고 수련생 노인이 혼자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나는 소릴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게가 있는 대야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았다. 그녀는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게가 소리를 낸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게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대야 앞에서 잠시 관찰해 보았다. 역시 확실하게 게들이 - -”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 다른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면서 마치 서로 무슨 대화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만물에는 모두 영()성이 있다. 그들이 교차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무슨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련자가 아닌가. 나는 그들을 죽일 수 없다. 그럼 이들을 빨리 방생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손녀가 유치원에서 돌아오자, 그에게 게가 말을 했다는 신기한 얘기를 해 주고 그것들을 살려 줘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게를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방생을 하려고 대야를 보니 게 한 마리가 없어졌다. 문 앞뒤와 집안에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수련생은 생각했다. ‘이 게들은 법을 들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생을 한다고 하니 숨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수련생은 게들을 향해, “너희들이 우리집에 온 것은 나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숨어있는 게는 빨리 나오너라. 너희들에 내가 그것을 들려주고 나서 방생해 주면 좋지 않겠니?” 하고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하고 식사를 하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끝내고 와서 대야를 보니 게 두 마리가 있었다. 수련생은 정식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하고 소리를 내어 들려줬다. 그런 다음 내가 너희들이 원한 대로 법을 들려줬으니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러면 내일 너희들을 방생해 주겠다.”하고 말을 했다. 그러자 게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방생을 시켜주기 위해 손으로 게들을 잡았을 때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강으로 가서 게를 놓아주자 물속으로 기어들어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 삼업충 시대의 발자국 화석 (사진출처: Creation Evidence Museum)

[대기원]25천만 년 전 발자국

1938, 미국 켄터키주 베리아 대학의 지질학과장인 윌어 버로즈 박사가 석탄기의 사암층 구릉지대에서 10개의 인류 발자국과 크기와 모양이 같은 발자국 화석을 발견하였다. 현미경 사진과 적외선 사진으로부터 정밀 분석한 결과, 이 발자국은 사람 몸무게로 눌려 생긴 것이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질학자는 이 화석은 약 25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시시피강 서안에서 27천만 년 전 인류의 발자국 한 쌍을 발견했다.

삼엽충과 함께 발견한 발자국

1968년 여름에 아마추어 화석 수집가 윌리엄 마이스터씨는 미국 유타주 델타에서 서쪽 약 43마일 정도에 위치한 지역에서 6억년에서 2억 여년 전에 존재했던 삼엽충 화석을 밟은 신발 자국을 발견하였다. 사진에서 신발 자국을 확대해보면 좌측 위쪽에 삼엽충이 보인다.

그의 부인, 두 딸, 그리고 프랜시스 쉐이프 가족과 함께 탐사에 참가했다. 그 주변에서 그들은 이미 암석에 묻혀있는 삼엽충 화석을 여러 개 발견하였다.

그 암석들은 층상구조를 갖고 있었다. 마이스터씨가 약 5cm 두께 돌을 망치로 쪼갰을 때 그 돌은 마치 두꺼운 책과 같이 쉽게 열렸다. 그 안에서 인간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화석을 발견하였고, 놀랍게도 그 안에 삼엽충 화석이 같이 묻혀 있었다.

쪼개진 다른 면에도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있는데, 인간의 샌들 모양이었다. 그 샌들자국은 길이가 26cm이고 너비가 약 9cm이며 뒷부분이 약간 깊게 파져 있었다. 현대 인류의 샌들 자국과 흡사하였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미국 아리조나 투산의 클리포드 버딕 박사는 그 지역을 다시 탐사했는데 주변에서 어린 아이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이어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주립대 교수 월터도 샌들 형태의 화석 두 개를 그곳에서 추가로 발견했다. 이 발자국 화석들은 삼엽충 화석과 같은 지층에 있어서 동시대에 인간과 삼엽충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삼엽충은 조그만 해양 무척추 동물이고, 지구에서 약 3~ 6억 년 전에 번성하기 시작하여 26천만 년 전에 멸종되었다. 이 삼엽충 화석은 발자국의 생성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게 오래 전에 그런 발자국을 남길 만한 유인원나 곰같은 포유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발자국의 연대는 3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샌들까지 신은 것으로 보아 미개하지 않은 하나의 문명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류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기껏해야 1 ~ 2백만 년 전에 나타났고 아주 최근에야 (수천 년 전)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삼엽충이 번성했던 수억 년 전에 샌들을 신고 걸어 다니는 인류가 있었다는 증거는 인류와 생명의 출현을 설명하는 진화론은재론되어야한다.

원상보라는 사람이 고향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집에서 일하는 한 동자를 보았다. 동자의 용모가 수려하고 성격이 기민하여 원상보는 그가 마음에 들었으나 그의 관상이 주인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해 친구에게 그를 쫒아버리라고 했다. 이 친구는 비록 평소에 그의 신기한 관상술을 우러러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상보는 또 여러 번 그 일을 제기했다. 그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동자는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서 의지할 데가 없어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여러 사람 집을 다니며 빌붙어 살았다. 어느 날 밤 어느 낡은 절간에 거처를 정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벽에 구석에 떨어진 승복을 발견했다. 승복 안주머니에 황금과 은 수백 냥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본래 그것을 가지려 했으나 마음을 바꿔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운명이 천박하여 주인의 환심을 얻지 못하고 이런 화를 만나 쫓겨나게 됐다. 만일 오늘 탐욕심이 크게 일어나서 이런 물건을 삼킨다면 그건 불의한 일이 아닌가. 하늘은 나를 더욱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곳을 지키며 주인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날이 밝자 동자는 예정대로 절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곡소리가 들렸는데 문득 보니 어떤 부인이 얼굴을 가리고 울며불며 오는데 사방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찾으면서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말했다.

우리 남편은 군졸인데 사고로 감옥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죄를 물으면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지휘관은 이 사건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 일을 알고 즉시 가산을 팔고 곳곳에서 돈을 빌려 약간의 금은으로 바꾸어 그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찢어진 승복 안에 싸매어 줄곧 휴대하고 다녔는데 지금 온데 다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으니 남편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자가 그 금은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물어본 후 승복을 가져와서 부인에게 돌려주었다. 부인은 감격해마지 않아 일부를 사례금으로 주려고 했으나 동자는 결코 받지 않으려 했고 부인은 할 수 없이 다 갖고 갔다. 남편은 이후 석방됐다.

이 부인은 동자의 미덕을 잊지 못해 도처에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곳 지휘관은 이 일을 듣고 매우 놀라 사람을 보내 이 동자를 찾아 집에서 키웠다. 그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고 동자의 미덕과 지혜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그를 양자로 삼았다.

수년이 지난 후 지휘관은 퇴직하게 됐다. 이 양자는 부친의 직위를 세습하게 됐고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 원래 자기를 고용했던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은 찬탄하며 말했다. “원군의 관상술이 어찌 이같이 잘못 됐을꼬!” 그래서 그에게 원상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만류했다. 이어서 그에게 낡은 하인의 옷을 입게 해서 차를 받들고 가도록 했다.

원상보가 보더니 놀라 일어나며 말했다. “이 사람은 원래 이 집에서 일하던 아이가 아니오? 그는 이 집을 떠났는데 지금 어째서 다시 이곳에 나타났소?” 옛 주인은 고의로 그가 쫓겨난 후 돌아갈 곳이 없어 오늘 또 왔다고 말했다.

원상보는 웃으며 말했다. “나를 놀리지 마시오. 지금 그는 당신의 하인이 아니라 삼품 무관이오. 용모와 얼굴을 보니 지난날과 완전히 다릅니다. 혹시 아주 좋은 일을 해서 이같이 된 것이 아니오?” 동자는 이에 상세히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 친구는 비로소 탄복하며 충심으로 원상보의 관상술이 신기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찬탄했다.

옛말에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그것을 증명하기에 족하다. 원래 동자의 운명은 다만 남의 하인으로 어렵게 살 운명이었는데 낡은 절에서 거액의 재물을 얻고서 비록 잠시 챙기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자기의 운명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잃은 부인 남편의 억울한 옥살이도 해결됐는데 그 부인까지 합해 세 사람을 구한 셈이 됐다.

물론 이것은 자비로운 하늘이 준 은혜이며 덕을 중하게 보는 하늘이 준 보답이다. 누가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던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고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면 하늘은 반드시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채소 파는 노인의 행운

나는 2009년 7월 하순 어느 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가 작은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오전 10시경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맞은편 길 가에서 역시 채소를 파는 사람은 시골에서 온 노인부부였는데, 비가 쏟아지자 하나뿐인 우산으로 부부둘이서 비를 가리고 있자니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비를 막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큰 양산이었다. 이때 그 노인이 내게로 걸어왔다. 그런데 그 노인의 걸음걸이는 아주 힘들어 보였으며,신고 있는 신발은 누런 고무신인데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포장할 때 쓰는 편직물 끈을 잡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그 끈은 불편한 오른쪽 발에 매어져 있었으며 끈을 잡아당기며 힘들게 걷고 있었다.

그 노인은 그런 모습으로 비바람 속을 헤치며 한 발짝 한 발짝 어렵게 움직이며 길 건너편에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얼른 그에게 자리를 내주고 좀 쉬게 한 후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몸이 그렇게 되었나요?” 그는 대답했다. “1년 전에 뇌졸중에 걸려 오른쪽 발이 말을 듣지 않네요.”내가 말했다.“저는 파룬궁을 수련한지 여러 해가 되어 일체 병이 모두 나았어요. 당신께서도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으로 묵념하면 몸이좋아질 것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내말을 믿으며 내게 읽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여러 번을 되풀이해서 가르치며 읽어보도록 했으나, 그는 기억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쓴 호신부를 그에게 주고 그대로 읽으라고 했다. 그러자그는 또글자를 모른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계속 반복해서 읽어주며 외우도록 했다. 그러자 어느 정도 외울 수 있겠다고 했다. 이때 비도 그쳐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얼마간 다시 채소를 팔다 집으로 돌아갔다.

3일이 지난 후 그 노인부부가 또 채소를 팔려고 왔다. 그런데 그 노인이 멀리서부터 뭐라고 크게 소리치며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외치는 소리는 “나는 사부님을 보러 가련다! 나는 사부님을 보러 가련다!”였다. 나는 급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우리의 사부님은 리훙쯔(李洪志) 님 이시어요!” 노인은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발을 끈으로 매어 들면서 걷지 않아도 된다!” 과연 그의 신에는 끈이 보이지 않았고 보행이그전처럼 크게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지팡이만 짚고 내 앞에서 기쁜 듯이 큰 걸음으로 왔다 갔다 했다. 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해 기뻐했다.

또 4일이 지나 그는 역시 채소를 팔려고 왔는데, 이번에는 그의 지팡이마저도 보이지 않았으며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처럼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서 내 앞에 와서 서있는걸 보고 나 자신도 감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내게 읍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저에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리훙쯔 사부님께 감사 드려야합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 노인은 보름 후부터는 차를 타고 15리 밖 시장에 가서 좀 더 크게 채소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파룬따파를 믿어 진상을 알고 얻은 복에 대해 정말로 기쁘다. 이것은 내가 친히 겪은 대법(파룬궁;파룬따파)의 신기함이다!

신전중의(神傳中醫); 손사막(孫思邈)의 전설

작가: 홍명

중의(中醫, 한의), 특히 중국 고대 중의의 정수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신기한 지식을 얻었는지는 더욱 모른다.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사람이 신과 함께 살았던 휘황한 역사를 투철히 말해주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신화와 전설이 되었다.

『열선전전(列仙全傳)』 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손사막(孫思邈)은 화원(華原)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과 지혜가 뛰어났으며 7세 때 하루에 천자를 외울 수 있었다. 당시 독고신(獨孤信)이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신동이다. 하지만 천부적 재질이 너무 뛰어나 이 속세에서 할 일이 있을까 두렵구나.” 라고 했다.

손사막은 성장한 후 도가 노자(老子)의 책을 읽는 것을 즐겼다. 주선제(周宣帝) 때 혼란한 시기를 맞아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해 도를 배우고 연기양신(煉氣養神)하여 천문을 추리하고, 의약에 정통했으며 남몰래 적지 않은 좋은 일을 했다.

한번은 ‘작은 뱀’ 한 마리가 목동에게 상해를 입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벗어 뱀을 구하고 상처에 약을 바른 후 풀 섶에 놓아주었다.

십여 일이 지난 후 문을 나서는데 흰 옷을 입은 영준한 소년이 말을 타고 지나고 있었다. 그 소년은 말에서 뛰어내려 손사막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제 동생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손사막은 깜짝 놀라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소년은 정성껏 손사막을 집으로 모셨다. 가는 도중에 그는 손사막에게 말을 타게 하고 자신은 말을 끌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리다시피 했다. 눈을 돌려보니 한 성곽에 도착했는데 속에는 꽃과 나무가 만발했고 집은 금과 옥으로 휘황찬란하여 왕가의 위엄이 있었다.

소년은 손사막을 안으로 청했고, 안에는 홍의(紅衣)를 입고 작은 두건을 쓴 사람이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영접했다.

그는 손사막에게 세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에 특별히 제 자식을 보내 청했습니다.” 그는 머리를 돌려 푸른 옷을 입은 남자 아이를 가리키면서 “요 며칠 전 저 아이가 혼자 집을 나갔다 목동한테 상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가 옷을 벗어 구해 주어 오늘이 있게 되었소.” 그러면서 청의 소년더러 그에게 절을 하게 했다.

그제서야 손사막은 며칠 전 옷을 벗어 뱀을 구한 일을 상기했다. 그는 남몰래 옆에 있던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은 “여기는 경양(?陽)의 수부(水府-역주: 용왕이 사는 곳)입니다”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가 구한 뱀은 보통 뱀이 아니라 용왕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홍의를 입은 용왕은 연회를 열어 손사막을 정성껏 대접했다. 삼일이 지나 용왕은 그에게 많은 진주, 보석을 주었으나 손사막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용왕은 그리하여 아들에게 명해 기묘한 처방 30개를 손사막에게 주었다. 헤어질 때 손사막에게 말하기를 “이 처방은 사람을 널리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용왕은 곧 인마를 준비하여 손사막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손사막이 이 약 처방을 사용해본 후 그것이 확실히 영험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약방문을 『천금방(千金方)』에 써 넣어 하나의 기서(奇?)가 되게 했다. 알고 보면 이 처방은 원래 선인(仙人)에게서 온 것이 때문에 영험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수문제(隋文帝)가 손사막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불러 관리로 임명하려 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그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몰래 말한 적이 있다. “50년이 지나면 성인이 나올 것인데 나는 그 때가 되면 성인을 도와 백성을 구제할 것이다.”

나중에 당태종(唐太宗)이 부르자 그는 경성에 갔다. 당태종은 그의 젊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내가 듣기에 도인은 모두 존경할 만하다고 하더니 원래 수도한다는 말이 정말입니다.”

영휘(永徽) 3년 손사막은 이미 일백여 세가 되었다. 어느 날 목욕 후 의관을 잘 정비한 후 손자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이곳을 떠나 어디에도 없는 고향으로 가야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는데 시신은 일 개월이 넘도록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관속에 넣고 장례를 치를 때 관속에는 단지 의복만 남아있었다.

당 현종이 난을 만나 촉(蜀) 지방에 피난 갔을 때 하루는 꿈에서 손사막이 웅황(雄黃)을 구하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명해 열 근의 웅황을 아미산 꼭대기로 보내게 했다.

황제의 사신이 산을 절반 정도 올라갔을 때 한 사람을 만났다. 백발의 머리에 두건을 쓰고 무명옷을 입었는데 뒤에는 두 명의 청의동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큰 바위를 가리키며 “자네 그 약을 거기 놓게, 그 바위에는 황상께 감사하는 글이 씌어 있네.” 사신이 가 보니 과연 바위 위에 백여 개의 글자가 있었다. 사신은 그 글을 베껴 썼는데 그가 베끼면 바위 위의 글자는 그가 베끼는 것에 따라 한 글자씩 사라졌다. 다 베껴 쓰자 바위의 글은 모두 사라졌다.

눈을 돌려보니 한 가닥 흰 기운이 올라갔는데 약을 가져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중의는 중국의 오랜 수련에서 온 것이다. 중국 고대의 수련인은 자신의 수련을 통해 인류에게 휘황한 문화를 남겨놓았다. 수련을 떠나서는 영원히 중국 고대의 과학과 역사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우연히 유럽권 문명의 성화(聖畵)를 보다 신기한 것을 알게 됐다. 유럽은 대개 기독교, 천주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로 예수와 성모(聖母)를 소재(素材)로 한 그림이 많다.

그런데 성모와 아기예수의 모습을 보면 얼굴 주변에 광환(光環)이 있는데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 그림에도 예수주변의 신도들도 머리에 둥근 빛의 고리가 있다. 또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합장(合掌,合十;허스)을 하고 있다. 기도나 합장이나 같은 의식으로 경건히 하는 것이다. 부처 그림에 보면 광환이 있고 불교신도들이 예를 올리거나 인사할 때 합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으로 광환이나 합장은 불교에서만 있는 것으로 보지만 천주교나 기독교도 불교와 의식은 서로 비슷한 것이다.

우주에는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양대(兩大) 산맥이 있고 그렇다면 이 세상의 정교(正敎)라면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고 한다면 불교(佛敎)와 천주교 및 기독교(基督敎)는 결국 불가(佛家)에 속하고 도교(道敎)와 유교(儒敎)는 도가(道家)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같은 불가인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는 왜 서로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것은 기독교, 천주교는 서양식의 불가(佛家)이고 불교는 동양식의 불가(佛家)이기 때문인 것같다.

사실 불교의 자비, 합장이나 기독교, 천주교의 사랑이나 기도는 같은 행위가 아닌가?

기독교, 천주교의 사랑이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고상하고 품격 높은 베푸는 사랑으로 불교의 자비와 흡사하다.









영화 ‘2012’가 개봉하면서, 세계 종말에 관한 예언들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신기한 것은 마야 예언, 자기장의 역전, 엘니뇨 현상, 타임웨이브 제로(TimeWave Zero)등 대부분이 인류가 곧 새로운 신기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 영화 '2012'의 한 장면.

올해개봉한 미국 재난영화 ‘2012’는 2012년 세계가 종말을 맞는다는 마야 예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 ‘투모로우(2004)’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흥행시켰던 롤랜드 에머리히가 각본(제작자 헤롤드 클로저와 공동 집필)과 감독을 맡았다. 2008년 8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이 시작됐고, 2009년 11월 13일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됐다.

‘2012’, 현실과 허구의 만남

‘2012’는 2012년이라는 미래의 시간에 마야 예언을 토대로 한 현실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영화를 즐긴 관객들도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을 즐기는 동시에 저런 치명적인 재난이 정말로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2012’는 쓰나미가 히말라야를 뒤덮는 장관을 보여주며,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하지만 각국 정부는 재난을 막을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강력한 지진이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무너뜨리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초대형 화산이 폭발한다. 라스베가스는 지진으로 갈라져 협곡이 생기고 캘리포니아는 태평양으로 가라앉는다. 존 F 케네디 호는 백악관을 덮치고 워싱턴DC는 홍수에 잠긴다.

에머리히 감독은 마닐라 홍수나 사모아 해일, 인도네시아 지진 같이 최근 더욱 거세지는 천재지변에 관심을 둘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이번 작품이 결코 재난을 소비하는 영화가 아니라 재난을 맞았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헤쳐 나가는 희망을 담은 영화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태양의 이상 활동으로 대량의 미립자가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폭풍’이 발생해 지구 중심부의 활동이 격화되고 온도가 상승해 대륙판이 이동하는 사태를 맞는다. 이 장면은 우리가 사는 지구와 주위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고대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

마야 예언에 쏠린 사람들의 관심

수많은 민족이 모두 종말에 대한 예언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마야인의 종말 예언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마야 역법의 계산이 굉장히 정확하기 때문이다. 마야인이 현대의 과학기술은 가지지 못했지만, 천문학과 수학에 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마야 역법을 보면 마야인들은 지구가 공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공전주기를 365일 6시간 24분 20초라고 계산했는데 실재 시간과 비교해도 거의 오차가 없다. 또 다른 행성의 운행시간도 알고 있었는데 그 시간 역시 매우 정확하다.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단위인 ‘0’도 마야인들은 이미 3천 년 전에 사용했고, 그들이 작성한 항해도는 현재의 것보다 훨씬 정확하다.

이외에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이 남아있다. 마야인들은 매우 발달한 도로 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바퀴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소나 말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바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바퀴로 장난감을 만들어준 사실이 후대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의 뒷모습을 조각한 장식을 달의 사당 문에 걸어두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 추측조차 하지 못했고, 이후 달의 뒷부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달은 항상 지구에 한쪽 면만 향하기 때문에 달의 뒷부분을 볼 수 없는데 마야인들은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아마도 마야인의 우주의식이 그들에게 특별한 지혜를 가져다주고, 그들만의 특별한 수련 체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번성한 문명을 뒤로 한 채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졌고, 후대인들은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멸망? 새로운 문명의 시작?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마야 예언에는 세계의 마지막이 온다는 내용은 없으며, 다만 하나의 주기가 끝나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에 접어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기의 종결 또한 세계의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식방면에서의 인류의 각성과 발전을 뜻한다. 인터넷에는 적지 않은 소문이 돌지만 이는 예언의 일부분만 보았을 뿐 전체를 모두 본 것이 아니다.

마야 역법에 의하면 지구는 총 5개의 태양기로 나뉜다. 이는 5번의 대재앙을 나타내는데 4번의 대재앙은 이미 지나갔으며 현존하는 문명은 바로 제5태양기에 속한다. 마야인의 장주기력(Long Count Calendar)에 따르면 2012년 12월 21일이 바로 이번 인류문명이 끝나는 날이 된다. 이후 인류는 이번 문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문명에 들어가게 된다. 마야인은 2012년 12월 21일의 어두운 밤이 온 후, 12월 22일의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이번 문명이 끝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스페인 법원, 역사적 심판의 서막을 열다

대기원 특별보도

최근 스페인 국가법원은 역사적인 판정을 내렸다. 즉 집단학살죄 및 혹형죄를 적용해 전 중공 국가주석 장쩌민을 포함한 5명의 전·현직 고위 관리를 기소한 것이다. 법원은 장쩌민이 1999년부터 독단적으로 중국 전 지역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탄압한 사건을 심리한 후 기소를 결정했다. 법원통지서에는 만약 피고인의 죄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소 20년의 징역에 처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피고인에게는 4주에서 6주간의 항소 기간이 주어졌으며, 이의가 없을 경우 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국제 체포령을 내리게 된다.

스페인 국가법원은 이번 사안을 스페인 최고사법기구로서 ‘보편적 사법관할권’ 원칙에 근거해 임하고 있다. 국가법원은 조사위원회에 의뢰해 2년여에 걸쳐 기본적인 조사를 진행했고, 입안과 동시에 피고인에 대한 심문을 결정했다. 판사는 조사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장쩌민 등 피고인에게 소환장을 송달했다.

스페인 국가법원의 결정은 양심과 도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파룬궁 수련생들이 10년간 기울여 온 탄압 중지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당대 최악의 인권 탄압을 저지하고 탄압의 장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파룬궁 탄압의 원흉을 심판하는 서막이 열렸음을 시사한다. 파급 효과 또한 클 것으로 보인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룬궁 수련자를 탄압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파룬궁 수련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신체적으로 소멸하라”, “때려죽여도 추궁하지 않으며, 죽으면 자살로 간주한다”라는 구체적인 지령을 내렸다. 10년 동안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혹형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2006년 밝혀진 바와 같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당하는 천인공노할 사건도 발생했다. 이 한차례의 탄압의 기간, 파급 범위 피해자 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이는 문명 사회의 치욕이다. 지속되는 비극은 시시각각 인류의 양심과 정의를 시험하고 있다. 장쩌민을 소환하는 것은 국제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탄압 초기 무단 감금과 고문에 직면한 파룬궁 수련자들은 탄압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와 친지를 위해 꾸준히 법적 대응을 모색해 왔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어, 정의를 수호해야 할 사법기구와 집행 기관은 파룬궁 수련자를 탄압하는 범죄자들의 우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동적으로 탄압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결국에는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하는 살인 도구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10년간 수십여 나라에서 장쩌민을 비롯한 탄압 주동자를 집단학살죄, 혹형죄, 반인류죄로 고소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파룬궁 관련 소송을 2차 대전 후 최대의 인권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폭력에 맞서 비폭력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수호함으로써, 비폭력 항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소송이 시작된 후 이미 많은 중공 고위 관리들이 파룬궁 탄압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장쩌민은 법의 올가미가 조여오자 외교 채널을 통해 각국 정부를 경제적으로 매수하고 정치적으로 압박했고, 전직 국가원수로서 ‘면책특권’을 주장해 기소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스페인 법원은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장쩌민을 정식 기소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모범이 됐다.

비록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중국에서 잔인한 탄압을 계속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정의로운 변호사들이 중공의 예리한 칼날에 맞서 파룬궁 수련생 변호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법률계의 각성은 중국 대륙 곳곳에 정의로운 목소리를 퍼뜨리고 있다.

스페인 법원의 결정은 바다 건너 중국에도 전달돼, 공산당의 본질을 파헤친 평론집 ‘9평 공산당’의 확산과 공산당 탈퇴 운동을 촉진할 것이다.

주목할 사항은 스페인이 중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한 첫 번째 국가라는 점이다. 1998년 10월 스페인은 독재자로 악명 높은 전 칠레 대통령 피노체트에 대해 스페인 국적이 아니더라도 집단 학살죄가 인정될 경우 스페인에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일단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스페인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모든 국가는 스페인으로 피고인을 인도할 수 있다. 이밖에 1948년 UN의 집단학살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국가 원수를 포함한 어떤 사람이든지 인류를 해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장쩌민 등 피고인들이 처한 결말이다.

중국 공산당은 인권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범죄인 인도 조약 등 각종 인권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도리어 전직 국가원수가 처벌받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거대하고 성글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스페인 법원의 결정은 역사적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을 집단 학살한 것을 세계의 정의는 용인할 수 없으며, 탄압에 가담한 주역은 반드시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공은 지금까지 국제 사회에서 각종 수단으로 정치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면서도 정의의 심판을 받기를 거부해 왔다. 이 결정과 신념은 인류의 정의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됐다. 현대 사회에서 반인류 범죄의 엄중한 법률적 잣대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소인들의 대리를 맡은 카를로스 이글레시아스(Carlos Iglesias) 변호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페인 법원의 결정은 피고인들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집단학살은 단지 중국사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 대해 죄를 저지른 것과 같다.

스페인 법원은 탄압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는 탄압 주동자에 대한 처벌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과 세계를 놀라게 한 이 한 차례 탄압에서 모든 사람들은 증인이자 원고이며, 모든 재판에서 정의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 이번 판결로 국제적 협력이 더욱 활발해 질 것이며, 더욱 많은 인사들이 탄압 중지에 나설 것이다.

정의를 수호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현대 문명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인 동시에 사회를 지탱하는 기초다. 파룬궁 수련자의 인권과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파룬궁 탄압을 종식시키는 것은 단지 파룬궁 수련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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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에 있은 아시아지역 수련생 법회 대만 대중현에서 개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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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지역 6천4백여명의 수련생이 만든 전법륜 서적 모형(대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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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장면: 위사진


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

법륜대법은 대법이라고도 하며 중국어로는 파룬따파라고 하며 파룬궁이라고도한다. 92년 중국에서 보급되기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 백여나라에서 1억명이상이 수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숫자가 정확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관리체계가 없이 각자 집에서 혼자 수련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법은 세계 각나라의 도시마다 지역별로 수십개의 연공장이 있으며 연공장은 주로 돈이 전혀 들지 않는 자연속의 공원이나 학교운동장을 사용한다. 한국도 왠만한 시급 도시에서는 연공장이 여러곳 있다.



대법을 내놓은초기에는 수련후의 효과가 탁월하여 중국정부에서 많은 표창을 하고 인민들에게 수련하도록 장려하였으며 당시 주석 장쩌민(강택민)의 부인도 수련하였을 뿐만아니라 고위관리들 대부분이 수련하였는데 몇 년만에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원 숫자6500만명을 넘어서자 갑자기 장쩌민이 질투심이 생겨 못하도록 구두 조치하였다. 왜냐하면 창시자가 이홍지선생인데 인민들이 자신보다 이선생을 더 받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 상무위원8명중 7명이 대법은 중국정부에 도움이 될뿐 해가 없으므로 절대로 탄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장쩌민은 고집으로 밀어붙여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금지지시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 탄압하여 고문으로 죽은 사람이 공식적인 것만 4천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수십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를(간,콩팥,눈,심장등) 강제로 적출시킨후 몰래 화장시킨것도 부지기 수이다. 장기는 한국이나 일본등 중국보다 조금 살기나은 나라의 환자가 이식을 받는다고 하는데 산사람의 장기라 하지 않고 사형수의 장기라고 속여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한다. 억에 가깝거나 수억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각국 정부의 인권관련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탄압을 중지하도록 중국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부터는 장기이식 숫자가 전처럼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각나라에서는 무역등 이해타산이 얽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모른척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수련은 眞善忍을 수련하는 것으로 책을 읽어 마음을 닦고, 연공을 하는데 연공동작은 바쁜사람은 주로 자신의 집에서 하고 시간적여유가 있는 사람은 집주변에 있는 연공장으로 사용하는 공원이나 공지, 학교운동장에서 아침 일찍 또는 저녁 퇴근시간후에 한다. 법륜대법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과 자기 사는 집주변에 설치된 연공장 위치를 알 수있다. 사이트에는 지역의 연공장과 책임자및 연락처가 표시되어 있다. 물론 책임자라고는 하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것으로 연공음악을 틀어주고 연공동작을 가르쳐주며, 같이 연공하는 사람이다. 연공동작은 간단한데, 서서하는 것이 4개 공법으로 1시간소요되며, 앉아서 가부좌상태로 하는 것이 1시간 소요된다. 물론 처음 접하는 사람은 한달정도 참여하면 처음에는 두가지다 각각 30분으로 단축하여 연공할 수 있다. 가부좌도 해야하는데 80넘은 노인도 뼈가 굳어도 연습해서 다 틀고있으므로 처음부터 바로 틀수없으면 노력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차차틀수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거의가 다 공짜인데 공기와 자연의 물과 햇빛과 산천과 대법이다. 대법은 일체가 돈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다. 배우는 것도 공짜이다. 전법륜책이나 설법집, 연공동작 동영상등 필요한 것은 사이트에서 봐도 되고,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다. 소지가 필요하면 전법륜책에 한하여 교보문고등 서점에 가면 구입가능하다.



대법을 수련하는 이분들이 왜 좋은 사람인지 알아보겠다. 수련중 필요시 모여서 단체행사를 할 수 있는데 물론 참여해 가도 되고 안가도 되며 연공장책임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주고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할 경우에 알려준다. 알려온다고 다 가야하는 것이 아니고 형편이 되면 가면 된다. 안 온다고 오지 않았다고 할 사람 없고 왔다고 그리 반길 사람도 없다. 모두가 자율적이다.

단체행사에서 식사시간이 되면 거의 김밥으로 하는데(단체식사는 대개 이천원 이내이다) 보통 두줄에 천원또는 이천원을 받는다. 물론 수련생중 누가 이역할을 맡은 사람이 예를 들어 100명정도분의 김밥200개를 자신의 돈을 들여 근처식당에서 사서 입구에 가져다 놓고 ‘두줄에 천원입니다’하고 써놓고 돈을 넣을 바구니를 옆에 갖다놓으면 김밥은 없어지고 정확히 10만원이 바구니에 담겨있다. 지키는 사람 아무도 없고 바구니만 놓아두었는데도 정확히 계산이 딱 맞는다. 김밥을 가져가고 돈은 내지 않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데 요즘 세상에 어디에서 이런 곳이 어디 있을까 싶다. 말하자면 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물론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는데 소지품을 아무렇게 차에 두어도 없어지지도 않고 실수하여 분실해도 언제나 보관자가나타나 찾을 수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남의 말도 말만하면 그대로 무조건 믿어준다. 예를 들어 이분들이 입장을 관리한다면 극장에서라면A 대학 대학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입장하는 가운데 어떤 학생이 “A대학 다닙니다”하고 말만 하면 그냥 믿고 무료로 입장시켜 준다는 뜻이다. 사람이 말한 그대로 믿어주고 서로 존중한다는 것 요즘 세상에서 그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물론 이분들은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은 기본이고 남에게 해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복권을 사서 남이 차지할 수 있는 복을 자신이 당첨되어 가로 챈다던가 경품권을 응모하여 경품을 탄다던가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응모해도 당첨이 되어야 하겠지만 당첨될 수 있는 그 자체를 아예 응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직장에서도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도맡아 하는 어디서나 모범생이다. 물론 수련중에 있으므로 아직 미달될 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진, 선. 인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물론 누가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돈이 오가는 사행행위(노름,포커등)나 남에게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든 피해가 가는 행동이나 행위는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몸이 깨끗하고 병이 없는데 병은 모든 죄에서 오는 것이라 현세에 아무리 죄를 짓지 않아도 전생이전 세세생생에 죄가 있는 것이라 그 죄값은 언제라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됨은 수련을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수련이 될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마음이 맑고 건전하게 된다. 따라서 수련으로 면역력이 일반사람보다 몇십배나 증강되어 기침이나 감기나 기타 각종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제대로만 하면 1,2週면 확인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우주는 오묘한 것이라 전자가 원자를 둘러싸고 돌고 있듯이 이 지구도 태양을 둘러싸고 돌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동력이 가해지지 않아도 스스로 자전하며 공전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몸속에서 피가 돌고 있고 맥이 뛰고 있고 위(밥통)이나 장기가 운동하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 이럴수 있는가. 현대의 미진한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없다.

삶이 어렵고 고달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어 보세요. 신비합니다.


1. 한 세인(世人)이 진술한 이야기

나는 1996년에 행운으로 법을 얻은 대법제자(파룬궁수련생)이다. 매번 사부님께서 세간에서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실 때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이야기들을 듣거나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곤 한다.

다음은 내가 들은 사존(師尊)에 관한 실화이다. 2004년 가을, 내가 문구점을 하는 한 사람을 찾아가 대법진상을 알리려 했으나 불행히도 그 사람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뒤였다. 새로 온 집 주인은 안마사였는데 그의 아내와 젖먹이 아들이 함께 집에 있었다. 그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나를 맞아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파룬궁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말하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마사가 말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을 정말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으로 직접 당신들의 사부님을 뵌 적이 있거든요.” 이어서 자신이 사부님을 만나게 된 경과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아마 당신들 사부님께서 법을 처음 전하기 시작하셨을 때일 겁니다. 한번은 내가 요녕성 철령에 있는 한 친구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어느 날 당신들 사부님과 식사 약속을 했다면서 나와 함께 갔어요. 당신들 사부님은 체격이 크고 온 얼굴에 온화한 빛을 띠셨는데 말씀하시는 것이 아주 겸손했고 말투도 아주 상냥했습니다. 앉은 자세도 아주 단정하셨고 손은 늘 그렇게 가만히 내려놓으셨죠. 식사할 때 내 친구가 이웃에 사는 한 할머니에게 4명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들 효심이 없고 아주 거칠어서 걸핏하면 욕설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당신들 사부님은 그 네 사람을 찾아서 데려오라고 하셨고 그 4사람이 정말로 찾아 왔습니다. 당신들 사부님은 아주 온화하게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들은 모두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에 앉은 채 조용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후 네 아들들은 할머니에게 아주 효성스럽고 순종했는데 아주 좋게 변했습니다.”

당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안마사에게 말했다. “우리 사부님을 직접 뵈었다니 아우님은 정말 연분이 크네요.”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그런 것들을 한번 보더니 곧장 다 거짓말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좋으신 분이 어찌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럴 수 있겠느냐면서요.”

나는 비록 직접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진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 행운으로 느끼며 또 이 역시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6/5/74107.html)

2. 사존께서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의 신체를 정화해주신 것을 목격

1994년 3월 27일 사존께서 처음 대련(大連)에 오셔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셨다. 이날 설법반이 열린 강당 앞으로 한 대의 차량이 달려왔다. 한 50대 여사가 차에서 내렸으나 혼자서는 보행이 곤란해 남편이 등에 업고 강당에 입장한 후 맨 앞줄에 자신들이 가져 온 긴 의자를 놓고 앉았다. 이들의 특이한 모습은 자연히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원래 과학기술자였으나 1991년 경추 질환으로 큰 수술을 받은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출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외출했다가 찬바람을 쐰 후 다시 병이 재발해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 치료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바로 이때 사존의 학습반에 참가했던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했고 아울러 『중국 법륜공』이란 책을 추천해주었다. 또한 사존께서 대련 기공협회의 초청을 받아 조만간 대련에서 학습반을 여신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책을 본 후 느낌이 아주 좋았고 일부 법리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에 미리 입장권을 구입해 사존의 학습반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설법이 시작되기 전 사존께서는 의자위에 앉은 수련생을 보고는 진행요원들과 대련 기공협회 관계자에게 알려 그녀를 퇴장시키고 표값을 환불해주게 하셨다. (주: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꾸리신 2년 동안 후기 학습반에서는 모두 수련을 말씀하시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중병환자들은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수련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부님의 이 말씀을 전해 듣고는 아주 조급해했다. 그녀의 남편이 무대에 올라와 사존을 찾아 뵙고 자신들의 상황을 말씀드렸다. 사존께서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시자 남편은 “저희는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반달 전부터 당신의 책을 보기 시작했고 당신의 녹음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공을 배우러 온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존께서 이 말을 들으신 후 이 수련생은 그래도 오성(悟性)이 좋으니 그럼 가서 보시겠다고 하셨다.

사존께서 그녀 앞에 오시자 그녀가 일어났다. 사존께서는 그녀에게 앉아 있으라고 하신 후 그녀의 목 앞에서 손뼉을 두 번 치셨고 머리 위에서도 두 번 손뼉을 치셨다. 또 두 어깨를 청리하신 후에 일어나서 걸어보게 하셨다. 그녀가 무대 중간까지 걸어왔을 때 멈춰 서게 하신 후 두 다리를 정화해주셨다. 그 후 사존께서 “좋아요, 한번 걸어보세요.”라고 하셨다.

그녀가 무대 앞을 두 바퀴 돌자 현장에 있던 수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이날 설법이 끝났을 때 그녀는 두 다리가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스스로 강당을 걸어나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강당을 들어오고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계단을 올라갈 수도 있었으며 더는 다른 사람에게 업혀 다니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존께서 진수자(眞修者)를 위해 신체를 정화시켜 주시며 펼쳐 보이신 기적이다.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9/17/52519.html)

3. 동료가 천병천장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보다

1994년 4월 나는 한 동료가 심각한 혈액질환에 걸려 병원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를 면회하러 갔다. 그녀는 눈 위, 신체피부 등 도처에 황갈색 반점이 나타났는데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뽑아낸 피가 마치 흙탕물처럼 황갈색을 띠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혈액을 뽑아 화학치료를 거친 후 깨끗하게 만든 후 다시 수혈했는데 한번 할 때마다 약 1만여 위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연속 3차례나 시술했지만 병원 문만 나서면 다시 병이 재발해 병원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녀를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안색이 좋아졌다면서 물었다. “지금 몸이 좋아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해요. 연마한 지 한 1년이 넘었고 지난 1년여 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연공하는 첫날부터 약을 다 버렸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렇게 좋은 공법이 있다니 나도 가르쳐줘요!” “퇴원하면 가르쳐 드릴께요.”

며칠 후 그녀는 정말로 퇴원했고 우리 집을 찾아와 나더러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연공동작을 가르쳐주었고 또 『중국 법륜공』책을 주었다. 그녀는 오성이 좋았기 때문에 단번에 모든 것을 믿었고 1994년 4월부터 지금까지 더는 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좋아졌다. 피부도 정상으로 변했다.

1994년 연말 나는 그녀와 함께 광주(廣州)시에서 열리는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 광주로 가는 기차에서 그녀는 사부님의 법신을 뵈었고 또 천병천장(天兵天將)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광주에 갈 때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그러나 밖은 아주 혼란했는데 각 왕조(王朝)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말하자면 좀 이상하겠지만 광주에서 설법을 듣던 8일 동안 매일 비가 내렸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러 오가는 중에는 비가 멈췄고 강당에 들어가거나 집에 도착하면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우리는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다.

4. 내 눈으로 직접 뵌 사부님

1993년 봄 사부님께서 무한(武漢)에서 법을 전하셨는데 당시 장관급 과학연구단위의 강당에서 학습반이 열렸다. 무한에서는 첫 번째 학습반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알리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북경에서 온 제자들을 데리고 3일 동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다. 3일 동안 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특히 3일째 되는 날에는 병을 보러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떠나려하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었는데 특히 오랫동안 각종 치료를 했음에도 고치지 못했던 난치병 환자들이 많았다. 사부님의 치료를 거친 후 현장에서 기적처럼 좋아졌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알게 되었다.

이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한 가지 실화가 있다.

한 노파가 있었는데 병으로 몸이 마비되어 5-6년간 침대에 누워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다. 이번에 기공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는 남편과 며느리 두 사람의 부축을 받고 왔다. 그녀가 사부님 앞에 와서 의자에 의지해 섰는데 선 자세가 구부정했다. 사부님께서는 단지 그녀를 보기만 하셨고 손을 대지도 않으셨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똑바로 서보라고 하셨다. 그녀는 처음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사부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시자 곧 몸을 똑바로 폈다. 사부님께서 앞으로 걸어보라고 하시자 그녀는 잠시 주저했으나 모두들 격려해주자 마침내 한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뒤이어 자신 있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중에 그녀는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얼마 후 내가 강당 밖에 가보니 그녀가 혼자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왜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웬일인지 모르겠네요. 늘 걷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오늘 집에 돌아가서 한번 시험 삼아 걸어봤어요.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지난 수년 동안 이렇게 걸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신통해요.”

또 한 가지 사건은 내가 평생 잊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학습반은 1기에 열흘이었고 사부님께서는 매일 1시간 30분 이상 설법하신 후에 다시 연공동작을 가르치셨다.

학습반이 시작된 첫날 약 40대 가량의 비쩍 마른 남자가 학습반 수강증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가고자 했다. 진행요원이 출입을 저지하면서 수강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도리어 큰 소란을 피우면서 “나는 그(사부님을 지칭)와 도술을 부려 싸우러 온 것이다. 우리 사부님은 100살이 넘으셨지만 그는 이렇게 젊지 않은가?” 그러면서 또 듣기 싫은 많은 말들을 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이 일을 아시고는 진행요원에게 그를 들어오게 하셨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끝내신 후 그는 아주 안정된 상태로 떠났다. 특히 진행요원을 찾아가 “더는 시끄럽게 굴지 않겠소.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사부님이오.”하고 말했다.

나는 매번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던 그 즐거운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에 늘 사부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격을 느낀다. 자신이 직접 겪은 한 건 한 건 기적과도 같은 사실들 속에서 나는 사부님의 위대하고 자비하신 구도를 깊이 느낄 수 있으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념이 더욱 견정해진다.

5. 이 분은 신선이 아니신가?

1993년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서 법을 전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수련생들과 함께 계시는데 한 할머니가 등에 두세 살 가량의 아이를 업은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께서 “이 아이는 어찌된 일입니까?”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할머니는 “마비가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그 아이를 내려놓으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아이가 마비되었다고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다시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자 할머니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사부님께서 아이를 두 번 정도 흔들자 아이는 곧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모두들 둘러싸고 이 광경을 보고는 “일어섰다! 일어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격동되어 “이분은 신선이 아니신가! 그분께 감사드려야 겠다.”라고 하면서 머리를 돌려 감사 인사를 하려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이미 그곳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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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부님께서 내 딸의 전세(前世)의 대도(大道) 사부를 구해주셨다

이 일 전에 어떤 동수가 명혜문장 가운데 이 일을 써 넣었다. 층차가 같지 않기 때문에 보아낸 정경도 같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본 정경을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려 한다.

92년 11월 콴현에서의 사부님의 전공 설법이 끝난 후, 23일 사부님은 북경으로 돌아가시려 하였다. 22일 저녁 나와 딸은 사부님 계시는 곳으로 가서 사부님을 배웅하려 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수련생들이 많이 가있었다. 사부님은 나의 딸에게 사과를 씻어서 여러 사람이 먹게 하였다. 나의 딸은 시키는대로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그가 철이 들지 못했다고 말하자 딸이 갑자기 울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인 나의 선생님이 아니예요. 나의 선생님은 빙산 밑에 깔려 있어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내가 18살 때 깔렸는데 18년이 됐어요." 나는 그 아이의 밑도끝도 없는 소리를 듣고 정신에 이상이 생겼나보다 하고 생각 했다.

이튿날 사부님을 배웅하여 요성에 이르렀을 때 사부님은 왜 따님을 데리고 놀러 안 가는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어제 저녁 일을 사부님께 여쭈었다. 듣고 나시더니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왜 일찍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일찍 말했더라면 제가 진작 해결해 주었을텐데요." 차가 핑인대교에 이르자 길이 많이 막혔다. 사부님은 차에서 내리시자 동쪽을 향해 한 동작을 하시고 나서 돌아와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당신 따님은 도가(道家)의 사람입니다. 그의 사부는 빙산 밑에 있는것이 아니라 냉궁 안에 있습니다. 제가 그를 구했으니 오늘의 일을 당신께서는 돌아가셔서 그녀에게 말해 보십시오.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이때는 이미 점심 12시가 되었을 때였다.

차에 오른 후 나는 눈을 감고 가부좌하였다. 이때 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고동색 도포를 입은, 온 몸에 흑백 음양 어(鱼)도형이고 서쪽을 향해 가부좌 하고 앉아 있으며, 어깨에 먼지털이채를 걸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연공을 마치고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영암사의 고인(高人)이 저를 맞으러 왔습니다. 저는 차에 앉은 사람이 제가 가부좌 중에서 본 사람과 모양이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말씀하시기를, "그건 영암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본 것은 당신 따님의 사부님이고 그가 입은 것은 도가의 도포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딸에게 물었다. "내가 지난에 간 날 점심 때 너에게 무슨 감각이 있더냐?" 이에 딸이 말했다. 12시에 밥을 지어 놓고 빨래가 말랐기에 난 마음이 아주 기뻤어요. 저에겐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기에 전 정말 행운스러워요." 나는 그 아이가 기뻐하는 원인을 알고 있다. 우리의 사부님이 딸이 내려오기 전의 사부님을 냉궁에서 구원해 주셨기에 그애가 이토록 기뻐하는 것이다.

이상은 내가 대법수련에 들어간 후의 또 하나의 사소한 일이며, 내가 몸소 겪었고 직접 본 사실이다. 바로 이렇듯 신기한 일들이 내 신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을 수 있었고, 수련의 마음이 종래로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써내어, 나는 아직도 정법 진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동수들께서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고 어서 빨리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 진행을 따라잡고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11. 사부님 신변에서 직접 본 신비한 일들

92년 11월 12일 사부님께서 산둥 콴현에 오셔서 학습반을 꾸리셨다. 나에게 제일 잊을 수 없는 날은 처음으로 사부님 얼굴을 뵙게 된 날이다. 그날 저녁 식사 후 현 호텔에 가서 사부님을 만났다. 사부님은 내가 천목이 열려서 수련하고 있다면서 나에게 물건이 보이는가라고 물으시기에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사부님은 나의 천목을 향하여 공을 내 보내셨다. 잠시 후에 "보입니까?" 하고 물으시기에 나는 "보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사부님이 물으셨다. "처음에는 흰 구름 같은 것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더니 후에는 뚱뚱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실은 부처의 형상이었는데 당시 몰랐다)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보살을 청해 왔습니다."

이때 하얀 옷을 입은 보살이 날아오면서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전 듣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한참 후에 또 물으셨다. 연속 연달아 몇 번을 물으셨으나 당시 나는 오성이 차하여 시종 "듣지 못했습니다." 라는 말만 하였다. 마지막에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무슨 요구가 있으면 보살에게 말해보세요." 나는 그때 깨우치지 못하고 곧바로 말했다. "우리 집이 평안 무사하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명은 각자 따로 있습니다."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사부님은 먼저 사흘 동안 병 치료를 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셨다. 7일 학습반에 150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이때로부터 수련자 중에서 무수한 신비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우리가 현장에서 연공 비디오를 켰을 때 숫한 파룬들이 솟아나왔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았으며, 대법의 신비로움을 견증하였다.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설법은 이 자그마한 곳에서 실증을 얻었으며 많고 많은 신비한 일들이 나타났다. 대법수련에 참가한 사람도 아주 많아 마을마다 수련생이 있게 되었고 보도소가 20~30개씩 세워졌다. 많고 많은 신기한 일의 존재와 대법을 배운 기초,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대법제자 그 누구도 동요시킬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장 마두가 대법을 파괴한 후 콴현을 "중점재해구역"이라고 일컬었다.

92년 현 호텔에서는 손님들에게 식권을 발급하였는데 한 끼 식사에 표 한 장씩 주었다. 하루아침, 우리는 사부님과 거리에서 함께 거닐고 있는데 한 수련생이 계란 세 개를 사서 사부님께 드렸더니 사부님은 자애롭고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우린 이미 식비를 냈고 매 한 끼마다 표 한 장씩을 주는데 먹지 않으면 표도 되돌려 주지 않습니다. 이건 낭비가 아닙니까?" 이 수련생은 또 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사부님께서 입으신 니트는 구멍이 이렇게 크게 났는데도 새 걸로 사지 않았습니다. 콴현에 온 그날 사부님과 사업 인원들에게 배당된 방은 매일 주숙비 40원을 내야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하루만 주숙하시고 12원씩 하는 보통방으로 옮기셨습니다."

11월 23일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은 베이징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기차역으로 사부님을 배웅하러 가는 도중 청칭불묘를 지나게 되어 우리 일행 6명은 그 곳을 참관하기로 하였다. 산으로 올라갈 때 40여세 돼 보이는 부인이 음료수, 생수를 들고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11월의 날씨는 오후 4시가 되자 추워지기 시작하여 산 위에는 이미 사람이라곤 볼 수 없었다. 나와 사부님은 맨 뒤에서 걸어가면서 수련에 대한 일들을 얘기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미신"이라 할 것 같아 그 음료수를 들고 오는 부인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다. "날이 곧 어두워지겠는데 우린 당신의 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산 위에도 물을 사먹을 사람이 없는데 우리를 따라 오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해도 그 부인은 돌아가지 않았다. 길에서 사부님은 그녀의 물 두병을 마셨고 산꼭대기까지 함께 갔다. 우리가 산을 내려올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졌고 그 부인은 물 흐르는 골짜기 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산 뒤에는 길도 마을도 없는데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산허리까지 왔을 때 산꼭대기로부터 60여살 돼 보이는 노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줄로 알았는데 우리와 10여 미터 떨어져 있을 때 갑자기 돌아서서 또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걸으면 그도 걷고 우리가 사진을 찍느라고 멈춰서면 그도 멈춰서면서 우리를 끝까지 절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이 절은 바로 10여 미터 되는 돌 부처였는데 한 칸 방으로서 사람이 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자 사부님은 우리 매 사람마다 돌부처에게 향을 피우라고 하셨고, 사부님은 돌부처 곁에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으신 후 곧바로 산을 내려왔다. 이 노인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어디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절을 나설 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물으셨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만 합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다. 사부님은 "그 물을 지닌 사람은 토지(土地)입니다."라고 말씀 하시기에 나는 "토지 나으리(土地爷) 이십니까?" 하고 물었고 사부님은 "우리는 그를 나으리라 부르지 않고 바로 토지(土地)라고 부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산신(山神)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때에야 나는 한 사람은 사부님 시중을 들고 한 사람은 사부님을 맞으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6명 중,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는 발에 군살이 있어 길 걷기가 아주 힘들었다. 산을 내려올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웠고 자갈이 가득 깔린 산길을 나는 가장 빨리 걸어갔다. 자갈이 널린 산길은 마치 해면처럼 푹신푹신하였다. 이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시죠? 우린 구름을 타고 왔습니다!"

12. 사부님께서 북경에서 功을 전하실 때의 신기한 일

한번은 내가 사부님을 모시고 학습반에 갈 때였다. 학습반이 비교적 먼 곳에 있었기에 제때에 도착하기 위해 나는 사부님과 함께 앞당겨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시내 중심에 이르렀을 때 차가 막혔다. 번화한 거리에서 차가 막히면 그야말로 번거롭기 그지없다. 특히나 북경에는 각종 승용차가 유난히 많아서 차가 막힐 때면 몇 분 만에 매우 긴 거리에 차량이 길게 늘어서 단번에 교통이 막힌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정말로 조급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조급해 하는 모양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살펴보십시오.” 나는 곧장 차에서 내려 큰 길에 나가 바라보았다. 아이고! 앞뒤로 차가 꽉 막힌 것이 족히 수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고 얼마나 기다려야 교통이 소통될지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학습반까지 제시간에 가기는 다 틀렸다. 나는 급히 차를 세워둔 곳으로 뛰어가 사부님께 보고 드렸다. 아직 차에 오르지도 못하고 단지 한쪽 발만 차 위에 놓고 한쪽 발은 차 아래에 놓은 채 사부님께 보고 드렸다. “사부님, 잠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꽉 막혔는데요.” 이때 사부님께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셨다. “올라오시오! 올라오시오!” 나는 사부님의 목소리에 따라 바라보았다. 누가 알았으랴?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이미 차와 함께 학습반 입구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마침 2층 학습반 밖 베란다에 서신 채 내게 미소를 보내시면서 올라와서 학습반에 참가하라는 암시를 주셨다! 마술을 부려도 이렇게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 ‘무술기공’의 한 단락에서 말씀하신 법리가 생각났다. “어떤 사람은 가히 높은 데서 오가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갈 수 있다.” 원래 사부님께서 나를 차와 함께 운반해 오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온 몸에 따스한 기류가 흐르는 감각을 느끼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리 사부님, 우리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을 말하자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내 눈으로 직접 보았고 내가 직접 겪은 일이기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명혜망 대륙소식>중에서







우선 두자리 숫자를 생각하세요, (10~99)



생각한 숫자를각각의 자릿수로 더하세요,

(예) 23을 생각했다면, 2+3=5,



이숫자를원래 생각했던 수에서 빼세요,

(예) 23이였으니깐 5를 빼면 18이겠죠, ?



그 번호에 있는 그림을 잠시 보세요,
(숫자는 오른쪽아래에서 부터 위로 왼쪽으로 참조)

속으로 그 그림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

구슬 그림을 클릭하세요,
신기하게도 생각하는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출처] 신기한 요술구슬|작성자 도솔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녀 갈리아 



1996년 1월 9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는
선천적인 뇌손상으로 보통 아이들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10세 소녀 갈리아 가드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정성껏 키운
모친 샤우라밋 가드가
사온 FC(Facilitated Communication -손가락으로 글자들을 지목하며
대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
를 처음으로 사용해본 일이 있었습니다.



항상 갈리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정성을 기울여 아들 2명과 함께 갈리아를
돌봐온 샤우라밋은 아이가 FC를 통한
첫 대화에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크게 놀라며 감동했다고
합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얼마전 이스라엘의 채널 2 방송국에 소개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의 신비한 소녀 갈리아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처음에 갈리아의 도우미가 FC 스펠링 기구를 앞에다 가져다
놓자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쓴 갈리아는

이에 감동한
샤우라밋이 울음을 터뜨리게 했다는데 계속 글자들을 지목한
갈리아는 "엄마, 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심챠의 혼이에요.

천국이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토라(모세 5경 율법[律法])을
교육시키지 않은 것을 고치라고 보내셨어요"라고 말해 아이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을 어떻게 아나
하며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토라를 거의 배우지 않고 신의 존재도 깊히 믿지
않은 샤우라밋은 갈리아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으나

갈리아가 구원자와 구원, 천사, 윤회, 노세(老世), 꿈, 그리고
천국의 영향 등에 관해 써내려가자 무슨 말인가 몰라 당황하다
아이가 예루살렘에 있는 한 랍비의 이름을 가르쳐주며 그를
찾아가 물어보면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내용인지 다 가르쳐줄 것
이라고 하자 아이의 말을 듣고 그 랍비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얼마후 갈리아에 관한 말을 듣고 아이가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랍비는 깜짝 놀랐다고 하며, 곧이어 갈리아가
말한 내용을 조심스레 읽은 랍비는 아이가 전한 내용이

고대
헤브루의 문서들인 조하와 탈무드, 미스나, 라베이누 요나
등에 나오는 내용임을 확인하고 샤우라밋에게 갈리아가 토라를
깨우친 심챠 할머니의 영혼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얼마후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말하는 내용을 적고 심챠 할머니가
원한 토라 공부를 한 샤우라밋은 아이가 천국으로 부터 전하는
내용이라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자 이를 정성껏 적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줬다고 합니다.




구원자

"구원자는 이미 우리와 함께 있어요,
우리 사이에 살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에 알릴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의 실체가 밝혀질 날은
이제 멀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회개를 통해
그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욕설하는 것

"욕을 해서는 안돼요. 왜냐하면 말은 영적인 세상에서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소리와 음성의 중요성)
"욕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
이고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칭찬
하는 사람이에요."

TV보는 것

"TV는 몹시 불결해요. TV는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공해를
만드는 요소를 갖게하죠. TV는 영혼을 다치게 해요."

거짓말 하는 것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영구한 삶을 살 수 있는 권한을 받지
못해요. 만약 거짓말을 하는 이가 다른 계율을 행한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해요. 천국에는 거짓말쟁이들이 있을
장소가 없어요."

험담하는 것

"험담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죄악들중 하나에요.
험담은 남을 비난하고 자신도 비난하는 행동이에요.
천국은 남을 험담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보면 천국이 그를 크게 벌줄 것이라고
말하세요."

사랑과 자비

"사랑과 자비는 지위가 무척 높아요, 사람을 죽음으로 부터
구할 수 있는 밋즈바(계율)이죠. 사랑과 자비는 하늘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해주는 계율이에요. 사랑과 자비는 베푸는
이를 보호해주고 현세와 다음 생애에 큰 힘을 줘요.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천사가 자비를 베푼 사람과 항상 같이
다니며 돌봐주는 것과 같아요."

[출처]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녀 갈리아  |작성자 도솔



www.LN.XINHUANET.com   2009年03月06日 09:20:41  来源:大连晚报

중국 다렌만보에 실린 걸 다시 신화망에 3월6일자로 실은 사진입니다.

파란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불덩어리 비행체가 화제입니다.

화제의 불덩어리는 지난 2월24일
난징(남경)으로 향하던

남방항공여객기 탑승객 다렌만보 기자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대단히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여객기에는 기자들과 관료들이 여럿 타고 있었으며

한명의 기자가 창밖에서 우연히 이 비행 불덩어리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내 사람들을 웅성이게 만들었던 이 기묘한 불덩어리는

약 1분 후 갑작스럽게 방향으로 바꾸며 북동쪽 하늘로 초고속으로 사라졌답니다.

호공의 제자가 되다

ⓒ 박영철
호로병 속으로 들어가다

壺公호공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費長房비장방을 불러 세우더니 “오늘밤 늦은 시간에 길가는 행인들이 없을 때쯤 너는 이곳으로 다시 오너라.”한다. 비장방은 알겠다면서 연거푸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늦은 시간에 비장방이 다시 호공의 집을 방문하자, 호공은 “나는 지금 이 호로병 속(壺中)으로 뛰어 들어갈 것인데, 너도 내가 하는 모양을 보고 내 뒤를 따라 호로병 속으로 뛰어 들어오너라!”한다.

말을 마친 호공은 훌쩍 몸을 솟구쳐 호로병속으로 들어가는데, 더 이상 종적이 보이지 않는다. 비장방도 호공을 뒤따라 훌쩍 뛰어 가볍게 호로병속으로 들어갔다. 호로병속에 들어간 비장방은 눈앞에 펼쳐진 다른 세계를 보고 놀랄 뿐이었다.

그곳에는 神仙신선들의 세계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수많은 누각들이 즐비하다. 누각들을 잇는 복도는 마치 무지개처럼 허공에 놓여있다. 호공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약을 파는 늙은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몸에는 널찍한 도포와 높은 모자를 쓴 仙官선관의 모습인데, 좌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호위하고 있다.

호공은 비장방에게 “이제야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는데, 나는 仙人선인이다. 이전에 나는 하늘에서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임무를 소홀히 하여 문책을 받았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 귀양 왔다. 보건대 너는 가히 가르칠만한 재목이라서 이번에 나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다.”한다.

호공의 제자가 되다

이 말을 들은 비장방은 즉시 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면서 절 하고, 또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저는 無知무지한 속인입니다. 그 동안 지은 罪業죄업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다행스럽게 仙師선사께서 연민의 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원하옵건대, 마치 죽은 시체와 같은 이 사람이 재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죽어가는 고목이 다시 봄을 만나 새싹이 돋을 수 있도록 거두어 주십시오. 다만 제가 용렬하고 죄업이 많아 선사님의 가르침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두려우나, 선사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거두어 주십시오. 거두어 주신다면 바로 하늘과 같은 크나 큰 恩德은덕이라 사료되옵니다”한다.

호공은 “내가 너를 살펴보니 너의 骨相골상은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썩은 나무에 조각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너에게 仙道術法선도술법을 가르쳐줄 것이니 절대로 세상 밖으로 유출시켜서는 안된다.”라고 한다. 이때부터 비장방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호공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과 제자가 되어 仙術선술을 배운지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호공이 아무 연락도 없이 비장방이 살고 있는 이층집으로 찾아왔다. 호공이 “내가 술을 조금 가져왔는데, 자네와 함께 마시고 싶구나!”한다. 비장방은 사람을 시켜 호공이 아래층에 갖다놓은 술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런데 호공이 가져온 술 단지가 제법 큰 술 단지인 줄 알았는데, 단지 작은 술잔 하나였다. 그러나 작은 술잔 하나에 불과하였으나 하인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들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움직여 보려고 하였으나 땅바닥에 붙은 듯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비장방은 부득이하여 호공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호공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와 가볍게 술잔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온다.

(다음호에 계속)





빚진 인정(人情)은 천 년이 지나도 갚아야 한다


작자:해안(海岸)


나는 여러 차례 꿈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의 여러 전생前生을 보았다. 비교적 오래전 일세一世에는 중국 역사상 작은 나라 황제 신변의 호위護衛 장군이었다. 당시 갑옷을 걸치고 칼을 허리에 찬 모습이 역력히 떠오른다. 그 한 단락의 인생 역정을 직접 그 경지에 가서 체험한 것은 나를 매우 진감하게 하였다.


그 일세에 황상皇上(임금)은 매우 자비로왔으며 나를 형제처럼 대했다. 한번은 황상이 고향에 갔다 돌아오는 왕비를 황궁으로 맞으라고 명했다. 왕비를 맞이하여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교롭게 대홍수를 만났는데, 길이 중간에 끊기고 폭우는 연일 계속되어 도처에 다 물바다였다. 나는 왕비를 보호하여 높은 산속으로 도피했는데, 도중에 피로하고 길이 힘들었으며 폭우와 세찬 비바람에 놀라서인지 회임한 왕비는 이날 밤 두 계집 수종隨從(몸종)의 도움 하에 질퍽거리는 산림 속에서 아이를 조산早産했다.


그때 황명을 책임졌고 여러 차례의 윤회를 경험한 후 홀연 꿈을 깨니 일 천 년이 지났다. 당시 황제는 금세에 나의 대학 동창으로 전생했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는 형제처럼 친했고 또한 같은 방에서 4년을 지냈다. 서로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게 되어 헤어진 지 몇 년 후 뜻밖에 같은 학교에서 대학원생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대학원 입시 2차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쌍방 모두 매우 놀라 감탄했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같은 지도교수, 같은 전공, 같은 침실에서 함께 산지 벌써 5년이나 된 것이다. 금생의 이런 큰 연분 때문에 나는 그를 친형제처럼 거의 십 년을 돌보게 되었다.


홀연 천 년이 지나

군신이 형제로 변해

지난 날에 황제의 명을 졌는데

오늘은 형제의 정이네


인과응보는 진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결과가 있는 것이다. 부귀영화이든 비참한 고통이든 다 내려놓게 되고 죽을때는 어느 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단지 업業(죄)만 몸을 따라다닌다. 사람이 빚진 것은 재물이든 인정이든 조만간에 갚아야 하며 금생에 갚지 못하면 설령 천 년의 세월을 지나도 내생에 갚아야 한다. 자기와 익숙한 사람 사이에는 모두 인연이 있으며 친척 친구들도 모두 이렇다. 연애에는 선연과 악연이 있다. 선연善緣(좋은 인연)은 때로 스쳐지나가지만 악연은 늘 일생을 동반한다. 우리는 정말 인연을 아껴야 한다. 시비是非(옳고그름을따짐)는 모두 전세의 원한이니 인생의 성패는 눈앞의 연기와도 같다.


나는 나자신의 여러 차례 과거세를 보았다. 여인으로 전생한 것이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또 한 생에서는 매우 처참했는데, 그 일세를 본 후 비통하여 오랫동안 탄식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남자로 전생했으며 장군, 왕자 등으로 전생했었다. 더욱 의외인 것은 중국에서만 전생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믿건 안 믿건 당신에게 달렸다. 사실은 서양의 많은 나라는 기독교 사회인데 거의 90%는 하느님을 믿는다. 미국, 영국에 다년간 유학한 우리 영어 선생님은 수업 중에 우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앙이 없는 나라이며, 이것은 서양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 이전에 득도한 고승과 다른 불교 거사가 다른 사람의 전생과 금생의 인과를 볼 수 있다고 들었을 때, 나는 근본적으로 믿지 않으면서 미신이라고 배척하고 헛소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후 비로소 우리 근대인은 대륙의 다년 간의 틀에 박힌 절대무신론의 교육에 세뇌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때로 당초의 무지하고 협착한 시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또한 어릴 때 우리 집에 와서 연을 맺으려고 온 수염이 허연 노도사를 내쫓은 것이 늘 후회된다.


한국 처녀와 아내
작자:이자건(李子健)


이것은 매우 흔한 화제인데 그리 신선하지도 않고 오래된 가르침을 재차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말로 확실히 정해진 법칙이 배후에 있다. 일찍이 어떤 스님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괴상하구나! 괴상해! 손자가 할머니에게 장가가고 딸이 어머니의 살을 먹으며 자식이 부친의 엉덩이를 때리는 구나. 돼지가 부엌에 앉아 육친을 솥에 끓인다. 그럼에도 뭇 사람들이 와서 축하하니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고통이로다.”

이는 인간의 육도윤회(六道輪廻)를 가리킨다. 한 가족은 곧 이와 같이 생명의 윤회 중에서 역할을 바꾸고 있다. 유감스런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꿈속에 있으며 단지 생명이 끝나는 그 때에 가서야 큰 꿈에서 깬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전생에 대해 알거나 심지어 내생에 대해 알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다수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며 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알게 된다. 내 친구 A군이 바로 이런 사람인데 다음에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적어본다.

나는 1980년대 말 아내와 함께 미국에 건너와 텍사스의 아주 외진 소도시에 정착했다. 그곳에는 대학이 하나 있었는데 중국인은 매우 드물었다. 당시 막 미국에 와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으로 집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찾아보니 모두 적합하지 않았다. 하루는 아내가 인근에 있는 작은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계산대에서 한국 처녀를 우연히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아는 사이처럼 느꼈다. 마침 그녀도 집을 함께 사용할 다른 사람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아내는 이 말을 듣자마자 장소와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적합해 즉시 그리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이사하자마자 한국 처녀와 아내는 곧장 서로 잘 어울려 가깝게 지냈고 매일 소근 거리며 수다를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내의 생활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많았다. 때로 우리 부부가 생활상 자질구레한 의견차이로 다툴 때도 있었는데 그 처녀는 그때마다 매번 나에게 불평을 하며 아내를 옹호했다. 처음에 나는 그리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보통이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미 수련한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늘 일부 초상적인 상태가 나타나곤 했다.

하루는 정공 중에 눈앞에 한 폭의 화면이 펼쳐지더니 점점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침상에는 한 여자가 누워있었다. 보아하니 병이 깊었고 그녀의 옆에는 딸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아직 젊었음에도 세상을 떠났다. 어린 소녀는 마른 체격의 남자가 안고 있었는데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이었다. 아이는 알 듯 모를 듯 했다. 그러자 장면이 한번 바뀌더니 점점 더 똑똑히 보였는데 세상을 떠난 그 여인은 바로 우리와 함께 사는 옆방의 한국 처녀였다. 또 원래 그녀 옆에 있던 어린 소녀는 지금의 아내였다.

아내는 다섯 살 때 어머님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모친이 사망하기 전에 가장 마음 놓지 못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십 년 후 이들 모녀는 뜻밖에도 이런 방식으로 재회한 것이다.

그 한국 처녀는 당시 결혼 적령기였는데 늘 우리를 찾아와 생각을 묻곤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남자 친구에게 시집을 가야 좋을지 모르겠어?”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은 사위와 딸에게 혼처를 묻는 군요!’ 하면서 웃었다. 사람이 인간 세상에 살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아내에게 이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생에 마치지 못한 소원과 인연이 금생에 떨어지는 것으로 절대 인연 없는 사람이나 일이 찾아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기왕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인연이라면 선연(善緣)과 악연(惡緣)이 모두 존재하게 마련이며 무슨 일을 만나든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이 바로 생생세세의 인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