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음악대생, 中共 방해로 해외콩쿠르 출전 좌절

홍콩에서 딸의 대회 출전서류를 들고 있는 푸위샤(傅玉霞)ⓒ 홍콩= 쉬포헝(許珀珩)기자

[대기원] 미국에서 15일(현지시간) 막이 오르는 ‘전 세계 제1회 화인성악대회’에 출전하려던 중국의 한 음악 대학생이 중공 당국의 방해로 대회 출전의 꿈이 날아갔다.

피해자는 상해 사범대학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19세 황쉬안자(黃璇佳). 피해자의 어머니 푸위샤(傅玉霞)는 이번 일을 해외 언론에 호소하기 위해 현재 홍콩에 체류 중이며, 푸는 홍콩 대기원시보와 인터뷰를 갖고 그간 모녀가 중국 내에서 중공 당국으로부터 겪었던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했다.

어머니 푸위샤는 최근 국제적 규모의 화인 성악대회가 최초로 미국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노래를 전공하는 딸에게 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상해 사범대 음악대학에 재학 중인 황쉬안쟈는 상해 제1회 외국어노래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일단 황의 어머니는 인근에 사는 친척에게 부탁해 대회 접수 자료를 대신 발송하게 했다. 그 까닭은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푸위샤는 그동안 지속적인 ‘상방’으로 인해 현지 주민위원회가 찍어놓은 감시 대상이었다고 한다.

▲ 2002년 16차 전인대(全人大)를 전후해서도 중공 당국의 인권침해 폭력을 당했던 피해를 폭로하는 푸위샤.
당시 14세였던 어린 딸 황쉬안자(黃璇佳)역시 공안에게 폭행당했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촬영했던 과거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속 눈가의 멍자국이 선명하다.ⓒ 홍콩= 쉬포헝(許珀珩)기자

이 ‘상방(上訪)’은 원래 중공이 마련한 행정제도로 각 지역에서 억울한 일을 겪은 민원인들이 상급기관의 상방소에다 민원을 제기하는 제도다. 1997년 경 푸위샤는 중공 당국이 강제로 추진한 주택 철거로 뜻밖에 보금자리를 잃자 지역 피해자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 상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푸이샤는 "지난 11년 동안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로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억울한 사연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오히려 이를 눈엣가시로 여긴 현지 주민위원회에 의해 그녀는 감시대상이 되버렸다. 법률에 나와 있는 상방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푸이샤 가족은 이 일로 그동안 공안경찰에 의해 신체적 폭력은 당함은 물론 8차례 이상 불법 감금되는 등 혹독한 보복조치를 당해왔다고 토로했다.

푸위샤는 이번 성악대회 출전 준비도 안전을 고려해 친척에게 우편접수를 부탁했던 것. 친척은 우편물이 제대로 발송되도록 1차로 일본으로 보내 다시 그곳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미국행 우편물이 이렇게 우회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주민위원회가 이들의 우편물을 수색했고, 그 결과 보내는 사람이 푸위샤임을 알고는 곧바로 압수조치했다. 결국 황쉬안자는 기한 내에 비자발급을 받지 못하게 되어 이번 성악대회 출전이 사실상 좌절된 상태다.

'전세계 제1회 화인성악대회' 출전을 준비하던 상하이 사범대 음악대학의 황쉬안자(黃璇佳). 중공 당국의 방해로 대회 출전이 사실상 좌절된 상태다.

푸위샤는 홍콩 대기원과의 인터뷰에서 “이왕 이렇게 (폭로하기 위해) 걸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다. 이번에 겪은 인권탄압을 반드시 전 세계에 알릴 것”이며, 이번 성악대회 출전 과정에서 체험한 피해에 대해 “(다른 나라에선) 마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들도 중국 대륙에선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고 침통해했다.

푸위샤는 홍콩에 머물면서 중공 당국의 인권만행 처사에 환멸을 표시하며 중국인이라면 거의 강제적으로 가입돼 있는 공산조직 중 하나인 '소선대(소년선봉대)'에서 탈퇴한다는 공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번 성악대회 관련해서 요령성 무순시에서도 참가를 준비하던 3명의 성악가들이 이유 없이 당국의 가택 수색으로 체포되는 등 일반인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상식을 초월한 ‘행패’ 수준의 인권침해가 중국내에서는 공산 당국에 의해 거리낌 없이 발생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에 '제1회 전 세계 화인성악대회'를 주최하는 NTD TV는 해외 중화권 매체들 중 중공 당국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순수민간 독립방송국으로, 중공 당국이 은폐하고 있는 중국 내 각종 심각한 인권사안을 국제사회에 가감 없이 보도해 중공 당국을 바늘방석에 앉혀놓은 매체로 정평이 나 있다.
이승진 기자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인권박해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명혜망에서 펀글

글/지진(智眞)

중국은 예부터 신주(神州)라고 불렸으며 중국문화는 神이 사람에게 전해준 것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천자(天子)에서 신하와 백성에 이르기까지 줄곧 신앙을 근본으로 하고 도덕을 존중해왔으며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하며 몸을 닦고 덕을 밝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 성현들의 경서(經書) 사람들에게 수신양심(修身養心)하게 했으며 성현의 이치를 공경하고 따르게 했으니 이렇게 하면 바로 공덕과 복을 얻을 있다.

가령 당태종 정관 연간에 홍문관(弘文館) 학사였던 소덕언(蕭德言) 경사(經史) 두루 통달했다. 특히 『춘추 좌씨전』에 정통하여 수양이 높고 깊었다. 그는 매번 ‘오경(五經 역주: 유가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경전으로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를 말한다) 등의 서적을 읽거나 강의할 때면 반드시 먼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으며 의관을 정결히 했고 근엄하며 공경하는 자세로 옷깃을 바로 여미고 꿇어앉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근면하고 더욱 공경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어르신께서는 이미 연세도 많으신데 굳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소덕언은 “경서는 성인(先聖)께서 남겨주신 가르침이니 성현의 소중한 가르침을 앞에 두고 어찌 고생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했다.

나중에 당태종이 이야기를 듣고는 소덕언의 공경하며 신중한 미덕(美德) 칭찬했다. 조서를 내려 소덕언에게 진왕[晉王 역주: 당태종과 장순황후 사이의 셋째 아들이자 태종의 뒤를 이어 고종(高宗) 이치(李治) 말한다]에게 경서를 가르치게 했다. 아울러 그를 무양현(武陽縣) () 봉했다. 소덕언은 평생 영화를 누렸고 편안히 천수를 누렸으며 97세에 세상을 떠나니 시호는 위박(爲博)이다.

불가(佛家) 경서(經書)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주고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하며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게 있을 뿐만 아니라 무량한 공덕을 얻게 있다. 그러므로 불경을 마주하면 우선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손을 깨끗이 씻고 책상을 깨끗이 하며 내심은 더욱 경건하고 공경해야 하는데 마치 신불(神佛) 앞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약 함부로 하고 공경하지 않으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자신의 천박한 견해를 고집하여 함부로 비방하는 말을 한다면 죄는 하늘보다 크며 고통스런 업보는 끝이 없을 것이다. 공경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죄업을 많이 없앨 있고 복도 그만큼 늘어날 있다.

예를 들면, ()나라 양주(揚州) 화상이 있었는데 매일 불경을 암송했다. 기산(岐山) 사미승이 있었는데 역시 매일 불경을 암송했다. 어느 사람이 갑자기 동시에 사망했고 신식(神識 역주: 불가에서 말하는 의식으로 도가의 왠선에 해당) 명부(冥府) 갔다. 염라대왕은 사미승을 청해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게 했으며 아주 공경스럽게 대했다. 반면 화상은 은좌(銀座) 앉게 했는데 대접이 간단하고 소홀했다. 화상은 마음속으로 아주 부끄럽게 여겼다. 오래지 않아 사람이 모두 깨어났다. 화상은 궁금한 마음에 기산으로 찾아가 사미승을 방문했고 까닭을 물었다. 사미승은 “저는 매일 경을 외울 때마다 반드시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향을 사른 공경스럽게 암송합니다.”라고 했다. 화상은 “내 죄가 너무나 크구나, 나는 경을 외울 위의(威儀) 가지런히 하지 못했고 신구(身口) 청정하지 않았으니 내가 너무나 불경했구나. 부끄럽도다! 부끄럽도다!”라고 말했다.

고천우(高天佑)라고 불리는 독서인(讀書人) 있었는데 명의 동학(同學) 함께 강녕(江寧) 가서 고시에 응시했다. 고시가 끝난 계명산(鷄鳴山) 있는 수원(守源) 선사가 도행이 높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그를 찾아가 절을 하고 인사를 드렸다. 선사(禪師) “당신들 사람은 모두 고시에 합격하겠지만 ()군은 합격할 없네. 왜냐하면 경서를 베개로 사용했기 때문이네. 고군이 자세히 생각해보니 원래 자신의 속에 경서를 담는 상자가 있었는데 그는 잠을 경서를 꺼내지 않은 상자를 베개로 사용해왔다. 고시결과가 발표될 가서보니 과연 선사의 말이 맞았다.

가지 기록이 있다. () 성을 가진 독서인이 있었는데 자신의 재주와 학문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소사(蕭寺)에서 독서할 『육조단경(六祖壇經 역주: 선종의 육조 혜능의 언행을 기록하여 선종에서 아주 중시하는 서적)』을 보았는데 붉은 붓으로 제멋대로 경문에 낙서를 했다. 집에 돌아온 오래지 않아 갑자기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불경에 낙서를 했기 때문에 죄를 받아 지금 지옥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자신은 지금 몸에 불타는 (죄수들에게 씌우는 형벌도구) 차고 있는데 고통이 이루 말할 없다고 했다. 그는 부친에게 소사에서 자신이 독서하던 곳을 찾아가 불경을 꺼내 자신이 낙서한 흔적을 씻어야지만 자신이 고통을 벗어날 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이 몹시 애통해 하며 급히 절에 달려가 찾아보니 과연 아들이 말한 불경이 있었다. 그는 이에 급히 낙서한 흔적을 지웠다. 아울러 불경을 새로 발간하겠다는 소원을 빌며 죽은 아들을 대신해 참회했다.

자고이래 일부 사람들은 재능이 출중하고 심지어 공을 세웠음에도 마음을 닦고 신을 공경함을 몰라 생을 마친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한다. 때문에 사람은 살아생전에 개인의 직분을 충실히 하는 외에 마땅히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본귀진(返本歸眞)이야말로 사람이 진정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法輪大法(파룬따파)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니 이는 우주의 근본대법이다. 우리 사람은 마땅히 모두 ‘眞忍’ 도덕이념에 따라 해야 하며 대법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서적을 선하게 대하며 마음을 바로잡고 뜻을 성실히 하여 “공경하면 복을 얻고 불경하면 죄를 짓는다”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제8장 습관성 당(黨)문화 사유 (상)

글이 너무 깁니다. 소제목만 읽어도 뜻은 대충알수 있습니다.

문예창작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는 중공의 정책ⓒ 대기원


하편:당문화의 구체적인 표현

【당문화 해체】제8장 습관성 당(黨)문화 사유(상)






< 목 차 >



1. 사람마다 경계하고 말 속에 투쟁의식 지녀

2. 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창작습관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자면 통상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산당은 겨우 몇십 년 내에, 상식을 뛰어넘는 선전 주입, 영혼을 뒤흔드는 피비린내 나는 실천을 통해 중국에 당문화를 건립했다. 그것이 이미 성숙했음을 알려주는 지표는 당문화 사유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데에서 결국에는 사람들의 사유습관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일단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변하면 당(黨)문화는 인간 생명의 일부분으로 되어 외부에서 주입된 것임을 깨닫기란 아주 어렵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내원한 것으로 믿게 된다. 당문화의 사유는 중국 민족의 ‘본성’이 되었다. 어떤 민족은 사색을 즐기고, 어떤 민족은 음악을 애호하며, 어떤 민족은 새로운 창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이 각 민족의 다양한 사유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기본적인 인성에서 나왔다. 그리고 공산당에 의해 강제로 가해진 우리의 ‘본성’ 즉 인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당성(黨性)이라고 한다. 당문화는 민족을 변이시켜,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경계심을 보이고 말 속에는 투쟁의식이 가득하다. 문학과 예술 창작에서도 습관적으로 당을 벗어나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도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느낀다. 습관적으로 당팔고(黨八股)를 말하며, 당과 정부, 당과 국가 그리고 당과 민족의 개념 등을 혼동한다.

이런 당문화 사유는 전 사회에서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고, 사유, 언어, 행위 등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는 ‘습관세력’을 형성했다. 우리는 설령 공산당 조직이 해체될지라도 당문화에서 형성된 ‘습관적 사유’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중국은 공산당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공산당의 어두운 그림자를 심각하게 지닌 사회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사유, 언어, 그리고 행위 중에서 당문화 ‘습관’을 청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시비 판단, 정보 분석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서로 경계하고, 여전히 자연을 약탈하며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할 것이며, 여전히 국제적으로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반(反) 중국세력의 마음이 죽지 않았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속으로 달리던 트럭이 설령 시동이 꺼져서도 여전히 관성에 의해 상당히 먼 거리까지 더 진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때문에 본 시리즈의 마지막 장에서는 당문화 중의 습관적인 사유를 청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서술했다.



1. 사람마다 경계하고 말 속에 투쟁의식 지녀


1) 사람마다 경계

중국 사람들은 자고로 순박하고 손님을 환대했다. 공자는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만약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상냥하게 대한다면 당신은 아마 ‘이유 없는’ 사랑은 없고 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저 아이는 속임수를 위해 이용하는 ‘바람잡이’일 거라고 추측한다.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당신보고 도와 달라고 하면 당신은 그의 패거리들이 부근에 숨어서 바보 같은 사람이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경각성을 높인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인들이 서양에 와서 받는 가장 큰 감수는 바로 사람들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며 당신을 아는 체한다. 만약 차가 고장 났다면 종종 어떤 사람이 차를 멈추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잘 도와줄 것이다.

“군자는 공경하여 잃음이 없고 사람들과 공손히 예의를 지킴에 사해가 모두 형제처럼 된다(君子敬而無失,與人恭而有禮,四海之内皆兄弟也).”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선인들의 마음속에 있던 예의의 나라이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문명과 예의의 고향인 중국에서 도리어 화목을 볼 수 없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선 안 된다’고 하면서 경계심으로 가득한가? 이런 경계심은 낯선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직장 동료, 이웃, 심지어 친한 친구 사이에도 방어하려는 마음이 있다. 술잔이 빈번히 오가는 성대한 연회석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솔히 대화’ 한다면서도 배후에서는 세태의 냉담함을 간파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경계가 삼엄한 성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간의 경계심은 일종 습관적인 사유가 되었다. 정상사회의 사람들에게도 경계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몰래 숨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하기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중국인들의 경계심은 상대방이 전달하는 정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만 하면 생겨나는 경계심으로, 상대방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는 가정 하에 올라온 것이다. 사람마다 만나기만 하면 경계하는 마음이 있고 시시각각 남을 방비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정상 상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인들이 살기가 아주 힘들다고 말하는데 확실히 그렇다.


(1) 습관적인 경계심은 당문화가 조성한 것

중국 사람들은 모두 단순했고, 믿었으며, 진심으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한 차례 또 한 차례 밀물처럼 일어난 운동 중에서, 혹은 자신이 남을 괴롭히거나 혹은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혹은 오늘은 남을 괴롭히다가 내일은 또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것을 보았거나 혹은 남이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았거나 혹은 어제는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오늘은 그를 괴롭히던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중공의 지난 몇십 년 역사는 바로 사람을 괴롭히는 투쟁의 역사였다.

중국 민간은 대대로 전승되며 종족 자치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중공의 투쟁 철학은 이 관계를 억지로 찢어 버렸고 그것을 대신한 것은 경제, 사회적 지위로 구분한 계급(군체)대립 관계였다. 사람들은 적의에 찬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공산당의 폭력수단으로 각기 다른 견해의 사람들을 대처했다. 당성, 야만성. 계급성이 인성을 대체했고, 전정(專政)이 관심과 사랑을 대체했으며, 적의가 우호와 선량을 대체했고, 경각성이 신임(信任)을 대체했다. 사람들은 이른바 ‘원수’의 ‘잠입’, ‘공격’과 ‘반격’을 수시로 방비할 것을 요구 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원수’를 방비할 의무를 감당하는 동시에 ‘원수’가 자신의 절실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경각하는 우려도 생겨났다.

도덕을 믿지 않고 신명(神明)을 믿지 않으며 천리(天理)를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최대의 악의로 남을 추측하고 남을 방비해야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장시간 지속된 이런 적대적인 방비심리는 곧 사람들의 잠재의식 가운데 습관적인 생각으로 되었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집단적인 경계심은 전통적인 신앙과 도덕을 타파하였는데, 이는 중공이 계급투쟁 관념을 주입한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데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각종 비열한 수단―특무, 고발, 밀고하기, 검거, 적발, 배신, 양면파(兩面派), 담 꼭대기에 난 풀(역주: 담 꼭대기에 날 풀은 이리저리 휩쓸리는 관계로 줏대 없는 사람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경계선 가르기, 대‘의’멸친(大‘義’滅親 역주: 원래 의미는 큰 의리를 위해 사사로운 육친정을 버린다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공산당을 위해서라면 혈육도 돌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부부가 반목하고 부자간에 헐뜯으며, 이웃이 원수가 되고, 죽기내기로 서로 투쟁하며, 벽에도 귀가 있는 등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행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존을 도모하는 본능이 되었다.
“나는 당신과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래.” : 문화혁명 당시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비판하고 경계선을 그어야 했다ⓒ 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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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람이 사람을 괴롭혀 조성된 경계심에 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중공 사회는 위에서 아래에 이르는 거짓말로 곧 그 틈을 막는다. 심리학에서 발견한 데 의하면 한 사람이 만약 진심으로 믿었는데 속았다면 정서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진심으로 믿으면 믿을수록 상처받은 후의 기복이 더 격렬하며 더욱 심한 경계심으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극단으로 나아가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 중국인들은 애초 중공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지만 중공의 각종 변덕, 참여자들의 추태, 피해자들의 잔혹한 시달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여러 차례 기만과 박해를 당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방비하는 태도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더는 감히 그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매사에 우선 남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여 자신의 경각성을 높이며 이를 통해 생존의 안전을 도모한다.

경계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일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경계심이 습관으로 된 후 다시 되돌아와 자신을 강화한다. 다시 말해 ‘불신’이 더욱 커지고 경계심이 더욱 깊어진다.

『열자(列子)』에 “도끼를 잃고 이웃을 의심한다(疑隣竊斧)”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이웃집 아들이 훔쳐갔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래서 이웃집 아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의 걸음걸이, 말하는 모습을 봐도 도끼를 훔쳐간 것 같았고, 얼굴 표정, 행동거지, 모두 다 자기 도끼를 훔친 것 같았다. 나중에 자신의 도끼를 찾은 후, 그때 다시 이웃집 아들을 보니 걸음걸이, 말하는 모습, 표정이 전혀 자기 도끼를 훔친 것 같지 않았다.

중공은 일단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만들었고, 그런 다음 다시 이 선입견에 따라 증거를 수집하게 하는 습관적인 사유를 배양했다. 이때 우리는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볼지라도 모두 믿을 수 없다. 당문화는 일종 의심 문화로 ‘일체를 의심’하는 것을 사람들의 사유와 교제의 지도사상으로 만들었으며, 사람마다 서로 경계할 것을 제창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장녀인 예니의 취재를 받을 때 한 대답이야말로 당문화의 삼매(三昧)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이해―투쟁, 좋아하는 색깔―붉은 색, 좋아하는 좌우명―일체를 의심.”

당문화의 핵심을 지적한 마르크스 : 투쟁, 붉은 색, 일체를 의심ⓒ 대기원


투쟁과 거짓말은 다만 표면적으로 경계심을 형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당문화의 건립 과정을 깊이 파헤쳐 보면 경계심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더 분명히 보아낼 수 있다. 중공은 전통적인 신앙을 소멸시켰고, 전통문화를 부정했으며 투쟁철학을 주입하고,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위대함을 선전했다. 원래 존재했던 모든 신앙과 중공의 신격화(造神)운동이 파멸된 후, 사람들에게 남겨준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심리적 상처였다. 이 일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심한 경계심을 조성했다.


(2) 경계심의 전승(傳承)

아마 어떤 사람은 자신은 그런 운동을 겪지 않았고, 지금은 중공도 예전처럼 계급투쟁을 말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사람들의 습관적인 경계심을 조성한 사회적 메커니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매 사람마다 불가피하게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중공 매체 중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수시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엄밀히 방비’하며, ‘고도로 경계’하며, ‘ 엄격히 타격’ 하며, ‘반(反) 중국세력’, ‘(반혁명분자들이 공산당을) 죽이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경계심을 늦추는 사상을 극복’한다는 등의 글자들이 늘 사람들의 투쟁 심태를 격발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부모들도 자신들이 겪은 정치 운동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젊은 세대들에게 늘 경각성을 높이고 조심하라고 간곡히 가르치는데, 이런 경계심을 대대로 ‘전승’하고 있다. 친구 사이에도 흔히 “당신은 누구누구를 좀 방비해야 해.”라고 충고하고 일깨워준다. 방비하라는 기억을 수시로 떠올리게 하여 경계심 효과가 생활 곳곳에서 확대되었다.

중공이 주입한 서로 고발하고 적발하는 밀고문화는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정교해졌다. 어린이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밀고행위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격려 받는다. 대학에서는 입당(入黨)과 좋은 직장 배치를 위해 학생들은 밀고 방식으로 보도원에게 ‘진보를 요구’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다. 직장에서는 뒤에서 지도부를 제일 심하게 욕하는 사람이 종종 지도부에서 아랫사람들을 염탐하기 위해 심어놓은 밀정이다.

중공의 당 조직은 없는 곳이 없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신문 잡지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학습, 사업에서 생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통제하며 사회를 조종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당의 감시 속에 있다. 중공의 6.4 탄압, 상방(上訪) 인원에 대한 체포, 견해가 다른 인사들에 대한 탄압, 신앙 단체에 대한 박해는 중공의 계급투쟁 사상이 여전히 언제 어디서든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더욱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탄압 가운데 사용한 천지를 뒤덮을 듯한 대 비판, 전민운동, 사람마다 고비를 넘기고 태도를 표시해야 했는데 이것이 문화혁명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중공 권력계통의 거짓과 부패의 시범 효과는 사회 도덕수준의 전반적인 하락을 크게 강화했고 이런 전 사회적인 도덕 하락은 또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사람마다 서로 경계하는 이런 당문화는 국민들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사유와 행위에까지 반영되었는데 바로 늘 다른 사람을 방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억측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용’ 당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한 화교 기업인이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시찰한 후 돌아와서는 “중국 사회는 이제 아주 복잡한 사회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에게 신용과 도덕이 없고, 어떠한 사람에게 말해도 무슨 일이나 다 믿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속이고 빼앗는다. 정부는 인민을 믿지 않고 인민도 정부를 믿지 않으니 법률이 집행되지 않는다.”라고 개탄했다. 이런 사회 상태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외력이 강제로 가해지는 비자발적인 단계, 두 번째는 끊임없는 강화를 거쳐 조건반사적인 자각단계, 세 번째는 완전히 체화되어 본능적이며 습관적인 반응 단계이다. 중국인들의 전반적인 경계심은 최초에 중공의 강제 주입과 선동을 받았고, 그런 다음 역대의 정치 운동 가운데서 강화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사람들의 경계심은 이미 충분히 본능화, 자동화되어 감독이 필요 없으며 의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자연스레 습관적인 사유 상태가 되었다.


경계심이 초래한 좋지 못한 결과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게 하는 당문화 사유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아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경계심은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하거나 심지어 좋은 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원래는 솔직하게 사귈 수 있고, 서로 신임하면서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고도의 경계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마다 방비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만나기만 하면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사람마다 적으로 만들었으며 주변에 있는 가장 절친한 사람들마저 감히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하다 보니 생활의 질이 몹시 떨어져 살아가면서 신뢰와 여유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맛보기 어려우며, 정신질환과 다른 심리적 질환의 비율이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정신병 전문가의 추산 결과, 중국에는 현재 적어도 일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각종 정신질환에 걸려있다고 한다.

당문화 사유의 극심한 경계심으로 삶의 질 저하ⓒ 대기원


전쟁터에서 경각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늘 긴장된 상태로 남을 방비한다면 이것은 비정상적인 생활이다. 정상사회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는 전체 사회에서 말에 신용을 지키는 품행을 고무격려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흠집을 들춰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덕행을 은밀히 수소문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간단하고 홀가분하다.

경계하는 사유는 중국인들이 잘 협력하지 못하고 모순이 많아지게 했다. 전반 사회를 놓고 말하면 이러한 경계심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아마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경계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믿지 않게 한다. 물론 중공 체제 이외의 일체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일의 진실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중공이 덮어 감추고 왜곡한 사실의 진상이 폭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지닌다. 따라서 아주 큰 범위에서 중공의 거짓 선전, 조종과 민심 기만이 뜻을 이루게 되었다.

경계하는 심리는 중공의 국제 관계에도 어려움을 조성했다. 중공이 선동하는 경계심과 외국을 적대시하는 심리는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할 뿐더러 자신도 진정으로 세계무대에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반 중국세력’으로 보고 있으니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정확히 읽고 세계 각국과 협력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방비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바보로 업신여기지 않겠는가?’라고 여길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누가 자신이 먼저 경계심을 포기하려 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발끝을 세우는 것을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설명했다. 사람들이 모두 발꿈치를 들고 공연을 구경한다면 모두 아주 피곤할 것이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함께 발꿈치를 내린다면 모두 힘들지 않고 구경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 믿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발꿈치를 내려도 다른 사람이 내리지 않으면 나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당문화 중에서 답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상태는 바로 당문화가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중공이 해체되어야만 경계심을 조성한 큰 환경을 제거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산당의 공격과 박해가 없어져야만 비로소 신앙 자유가 있을 수 있으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 중국 전통 관념을 점차 회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스스로 발꿈치를 내려놓으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남을 선하게 대할 것이며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는 행위는 또 전체 사회도덕의 승화를 이끌 것이며 이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2) 언어 속의 투쟁 의식

2001년 중국의 한 언어학 전문가가 젊은 세대의 유행어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10대 유행어 중에서 ‘악한 마음’, ‘백치’, ‘변태’ 등 공격성이 강한 단어들이 상위에 있었고,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 것은 온통 ‘죽어라’ 뿐이었다.

투쟁적인 언어는 단지 청소년들의 문화 속에만 존재할 뿐 아니라 오늘날 중국인들이 생활하는 각 방면에 모두 이런 언어로 가득하다. 예를 든다면, 티셔츠에 “건드리지 마, 귀찮아”라고 쓰고, 노래 가사에 “싸워야 할 때면 싸워라”고 선동한다. 책 제목에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몇 만에 달하는 축구팬들이 축구장에서 리듬에 맞춰 다음과 같은 욕을 일제히 해댄다. “X 바보”, “병 걸렸니?”, “너 약 잘못 먹었냐?”, “머리에 물 들어갔니?” 이런 식의 말은 도처에서 다 들을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문제를 담론할 때 사실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다른 사람의 흠집을 들춰내어 일을 틀어지게 만든다. 말에 가시가 있고 언어가 날카롭고 각박하며, 공격적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일에 부닥치면 온화하게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견해에 상관없이 먼저 퇴짜를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언어 속에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이런 투쟁의식은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보면 어느 때 갑자기 나타나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줄을 서라고 말하면 그는 아마 눈을 흘기면서 갑자기 한 마디 내뱉을 것이다. “웬 상관이야! 미쳤나 봐!” 큰 길을 걷다가 그만 다른 사람과 부닥쳐 막 사과하려 하는데 벌써 거친 말이 들려온다. “눈 삐었니?” 두 사람이 다툼이 있어 티격태격할 때 구경하는 사람들은 싸움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한번 붙어봐!”라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친구사이에 농담을 해도 “기다려, 죽여 버릴 테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할 때 언어는 더 냉혹하고 화약 냄새가 난다. “너한테 전에 알려줬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첫 번째로 할 일이 숙제하는 거라고. 꼴좋다, 숙제도 하지 않더니 내일 선생님이 어떻게 혼낼지 보자!”, “다른 집 아무개를 봐라, 매번 너보다 잘하잖아.” “울어? 울 줄은 알아가지고! 운다고 누가 널 도와줄 것 같애!” “말을 듣지 않으면 시험이 끝난 후 어디 두고 보자!” “이놈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너를 길들이지 못할 줄 알아?”

대만 사람이 발견한 사실인데, 중국대륙 사람들은 말할 때 흔히 반어법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으며 말씨가 아주 충격적이라고 한다. “왜 이것도 몰라 ?” “당신 혼자서는 볼 줄 몰라?” “지금 내가 바쁜 거 보이지 않아?” “누가 그래?” “내가 당신한테 말하지 않았어?” “뭐 하러 일찍 갔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강한 화약 냄새와 남을 책망하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상대방이 ‘우둔’하고 ‘비정상’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아울러 반어법을 사용함으로써 말투가 더 강해진다.

투쟁적인 언어는 이런 정도까지 보급되었고, 일부 대중 문예 형식도 모두 언어 공격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많은 소품(小品)의 주요 내용은 남녀 배우가 서로 공격하는 것으로 떠들썩하고, 허풍을 떨며, 수다스러운 것이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랑받는 배역이다. 많은 작가들은 신랄한 것을 깊이가 있는 것으로 여기며 인터넷 논단은 더욱 악랄한 언어 세상이다. 농민, 가난한 사람, 장애인, 못생긴 사람,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 등은 모두 사람들이 공격하고 헐뜯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중국 대륙에서 한때 풍미했던 ‘슈퍼여자가수(超級女聲)’심사위원이 젊은 여자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멜로디가 틀렸어, 아가씬 정말 멜로디가 틀린 것도 몰라?” “아가씬 기본적인 음악 소양조차 갖추지 못했어!” “민요를 짓밟았어.” “당신 노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공부를 잘하면 장래가 있겠지만 노래를 한다면 앞길이 없다.” “뒤에 있는 선수들을 놀라게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은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멜로디가 틀리는데 당신은 우연히 곡조를 맞춰.” “돈을 써가며 음악을 배우는 것은 당신한텐 낭비야.” “당신은 나이도 많지 않은데 꼭 불만 가득한 아줌마 같애.” 이런 말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공격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최저한도의 존중마저 없지만 도리어 당당하게 텔레비전을 통해 몇 억 명 관중들에게 방송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일에 습관이 되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 흥미진진하게 여긴다!

중국인들의 이런 투쟁의식은 전투적인 언어에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언어에서도 투쟁의식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문제를 토론할 때면 흔히 건설적인 태도로 일을 잘하기 위한 기점에서 출발하여 긍정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이것은 틀렸고 저것은 안 된다며 부정적으로 다루는데, 어쨌든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총명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 일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한다 해도 마찬가지임에도 자신이 ‘유리한 정세’에 처해 있고 ‘멀리 내다보며’ 남보다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한다.

기성세대는 당문화에 장기적으로 잠겨 있었고,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모두들 중국인은 예전부터 이렇게 말해온 것으로 여기면서 이런 말이 어디가 틀렸고 어떻게 나쁜지 깨닫지 못한다. 사실, 예전의 중국인들은 온화하고 품위 있는 예의 교육과 온유하면서도 너그러운 시 교육을 중시했다. 그들이 신봉한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사람이 되는 준칙이었고 중시한 것은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이란 일처리 태도였기에 말하는 태도와 방식이 오늘날의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서양에서는 언어와 행위가 종교, 도덕, 법률과 직업윤리의 강력한 단속을 받으며, 투쟁적인 언어는 법정이나 선거 후보자들의 유세 등 일부 제한적인 장소에서만 허용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겸손하게 양보하면서 말한다면 전반 사회는 아주 평화로운 상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마다 말속에 전부 투쟁 의식을 지니는 것, 그것도 강렬한 투쟁 의식을 지니는 이런 현상은 중공 당문화의 독특한 산물이라 하겠다.


(1) 언어 중에 투쟁의식이 형성된 원인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중에 투쟁의식을 지니는 것’ 역시 중공의 투쟁 철학과 투쟁을 실천한 산물이다. 중공의 눈에 폭력이란 긍정할 만한 품격으로 보인다. 중공의 투쟁철학은 교과서,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 문예 프로그램, 가곡, 그림책 등을 통해 은연중에 각 세대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사상이다. 만약 사상 가운데 주입된 것이 온통 폭력이나 증오와 같은 것들이라면 사람의 언어와 행위에 반영되어 나오는 것도 필연적으로 폭력과 증오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언어 중에 나타나는 투쟁 의식은 중공의 폭력철학, 폭력문화와 폭력 실천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형성한 본능적인 반응이라 하겠다. 몇십 년에 가까운 생활과 교육 중에서 사상이나 행동 면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투쟁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니 그 후유증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7, 8년에 한 차례씩 일어나는 정치운동 가운데 폭력적인 언어는 도처에 가득 찼다. 중공 매체에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비판’, ‘투쟁’, ‘타도’, ‘때려 부수다’, ‘쓸어버리다’, ‘잡귀신’ 등 공격성이 아주 강한 언어들이다. 이런 폭력적인 언어는 신문 사설, 평론, 비판 문장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슨 “누구누구의 마귀 발톱을 잘라버리자”, “누가 감히 사회주의를 반대한다면 우리는 그의 척추를 부숴버릴 테다.”, “누구누구에게는 절대로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다.”, “기름에 튀기고, 껍질을 발라내며 힘줄을 뽑아내자”,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하자.” 등등, 모두가 폭력, 위협, 공갈, 화약 냄새로 충만한 그런 명사들이다. 이런 폭력적인 언어들은 독재자들이 대중을 협박하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며, 순한 백성으로 길들이기 위한 필요에 따른 것으로, 매체, 문건, 교과서, 문예작품에 가득한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되어 중국인들이 말하는 방식을 몹시 크게 개변시켰다.

중공이 발동한 잔혹한 정치투쟁 중에서 사람들이 투쟁하는 좋지 못한 습관이 충분히 발동되었다. 가장 악독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남을 공격하고 남을 모욕하고 모함하는 사람, 남의 죄명을 잘 날조해 검토 비판하며 배후에서 더러운 물을 쏟아 붓는 그런 사람들은 흔히 지도자와 ‘조직’의 중용을 받아 벼락출세를 하지만 모욕을 받고 공격을 받아도 해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사람들의 결말은 흔히 비참하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말재주를 다듬는데 힘을 기울였고 자신을 말 주변이 뛰어나 언제라도 신속하게 남을 반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시켰다. 오늘에 이르러 이치에 어긋나도 트집을 잡고, 목소리가 큰 것이 바로 재간이란 생각이 이미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본능적인 반응이 되었다.

언어 중의 투쟁의식은 당문화 중에서 사람들의 심각한 불안전감을 반영한다. 정상적인 인류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신봉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마음을 지니지 않으며,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방비할 필요도 없고, 마음이 침착하고 착실하여 다른 사람과 말로 싸울 필요가 더욱 없다. 하지만 당문화는 사람들을 시시각각 업신여김을 당하고 손해를 볼까 봐 걱정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실제상 혹은 언어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을 통해 안전감을 획득하려 한다. 중공은 약육강식의 ‘사회적 다윈주의’를 선전한다. 약자는 먹이사슬에서 낮은 쪽에 있으므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먹이사슬의 높은 곳에 있는 강자야말로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원래 화목했던 사람 관계를 투쟁관계로 변화시켰고, 투쟁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가 여부가 사람들이 스스로 안전감을 평가하는 데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생활 중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반응이 민첩하고 총명하여 상대방을 능가한다는 말만 들어도 자신은 고상한 사람이며 남보다 강자라고 여기면서 속으로 기뻐서 우쭐거린다.


(2) 계속 이어지는 투쟁의식

많은 사람들이 투쟁의 역사는 이미 지나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사유방식은 일단 형성되기만 하면 고치기가 아주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 체계는 안정적인 특징이 있다. 언어체계는 젊은 세대의 언어 습득을 통해 그들의 언어습관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언어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며 동시에 또한 사유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학부모, 교사와 전 사회가 장기적으로 정치투쟁에서 형성된 투쟁 심태 속에 있다면 다른 일종의 변형이 젊은 세대들의 몸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재물을 비교하고, 가난한 사람을 깔보며, 질투심이 강한데 이 모두는 일종 투쟁심의 표현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언어 중의 투쟁의식’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공 통치 속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투쟁언어는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형

사례 1 : “최근에 좌파, 우파가 출현하여 동시에 반란을 일으킨다고 외치는 괴상한 일이 나타났는데 이상할 것 없다. 너희들에게 솔직히 알려준다. 진주와 동태 눈깔은 한데 뒤섞지 못한다. 우리는 좌파가 반란하는 것을 허용하지 우파가 반란하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즉각 탄압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논리이다. 어쨌든 국가기구는 우리 손에 있다.” (청화대학 부속중학 홍위병 대자보, 1966년)

사례 2 : “나는 공무원이다. 그를 좀 때린 것이 어떻단 말인가. 때려서 다쳤다면 10만 위안을 주고 죽었다면 20만 위안을 주면 그만이다.” [2004년 충칭(重慶) 완저우(滿州)에서 수만 명 민중들의 대규모 충돌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원인은 공무원을 자칭하는 사람이 한 민공(民工)이 부주의하여 자신의 아내에게 부딪쳤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이 말은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을 자극해 대규모 충돌을 일으키는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사례 3 : “불행히도 누가 당신에게 중국에 태어나라고 했는가?” (2005년 허쭤슈가 중국에서 탄광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 취재 받을 때 한 말.)

이 외에도 “대만을 초토화 하겠다”는 등이 포함된다. 이런 말들은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심태를 전형적으로 반영하는 것들이다.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형

예를 들면, “무산계급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이 말은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심태를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무산자’만이 벼락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기타 예들 : “뭐가 대단해?”(대단할 게 없다는 의미) “얼마나 신선한데?”(조금도 신선하지 않다는 의미) “설날 물만두를 먹지 않는 집이 어디 있어?”(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만나거나 혹은 좋은 성적을 내면 설을 쇠는 것처럼 평범한 일로써 부럽지 않다는 의미) “당신이니까 된 거야!”(우쭐거리지 말라는 것으로 “사실 나는 당신보다 더욱 능력이 있다”는 의미 )


▶날카롭게 맞서는 형

예를 들면 : “당신이 그를 타도하지 않으면 그는 넘어지지 않아.” “동풍(東風)이 불고 전고(戰鼓)가 울리니 이 세상에 누가 누구를 두려워할쏘냐?” “난 그 계집애와 죽기내기로 부딪쳤다.” “나하고 해보자고? 좋은 끝장이 없을 텐데!” 등이다.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는 형(악한 자들은 수비를 공격으로 삼는다)

이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혹은 모든 사람)을 하찮게 말하고는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런 전략이 묘한 점은 말하는 사람이 도덕을 낮추면서도 도리어 발언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세상의 보편적인 도덕 준칙으로 중공을 비판할 때면 중공은 흔히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계급사회에서는 도덕이 통치계급을 위해 봉사한다.” 그 숨겨진 뜻은, “자본주의 국가의 도덕, 인권, 종교 신앙, 신문자유는 모두 ‘허위적’인 것으로 ‘자산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모두 허위적인 이상 중공의 이른바 ‘사회주의 도덕’, ‘중국 특색의 신문 자유’가 모두 공산당 통치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도 탓할 바가 못된다.”

또 한 가지 예는 “내가 깡패인데 누구를 두려워할쏘냐?”이다.


▶너 죽고 나 죽기 형

공산당의 투쟁철학이 극한에까지 발전한 후 일종 ‘죽을 물고기가 그물을 뚫고’ ‘함께 멸망하자’는 병태적 심리가 생겨났다.

예 1 : “원자탄(전쟁)은 아직 경험이 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 가장 좋기는 절반이 남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3분의 1이 남으면 29억 인구 중에서 9억이 남는다. 몇 차례 5개년 계획으로 발전하는 것과 자본주의를 전부 소멸시키는 것을 맞바꿔 영원한 평화를 얻는다면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마오쩌둥)

예 2 : “어쨌든, 우리 중국 공산당은 역사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이 전 세계, 심지어 전체 지구가 우리 당과 생사를 같이 하더라도 역사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무슨 ‘핵굴레’라는 이론이 있지 않는가? 바로 핵무기가 전 세계의 안전을 한데로 묶어놓아 죽으면 모두 함께 죽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는 사실상 다른 한 종류의 굴레가 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당의 운명과 전 세계의 운명은 함께 묶여있기에 우리 공산당이 끝장나면 중국은 끝장이고 세계도 끝장난다. (츠하오톈 《전쟁은 멀지 않고 그것은 중화 세기의 산파이다》 중에서)

이 외에도 “내가 잘 살지 못하면 너도 잘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가 죽으면 너도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등이 있다.


▶쪽박을 부수는 형

이런 투쟁적인 언어는 지극히 비이성적이며 자신을 괴롭히는 심태를 나타낸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투쟁’ 의식의 지배를 받아 견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착오적이며 의의가 없든지 상관하지 않으며 벽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는 한 돌아서지 않고, 관을 보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리하여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비이성적이며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다.

예 1 : “아무리 큰 곤란이 있다 해도 두려울 게 무언가. 봉쇄하라, 십년이고 팔년이고 봉쇄하는 사이에 중국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래 곤란을 두려워하겠는가?” (마오쩌둥)

이 외에도 많은 예가 있다. “난 원래 이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겠는가?” 등이다.

위의 이런 예들을 통해 우리는 비록 공산당 통치전략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에 각기 다른 면모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투쟁의식’은 줄곧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진솔한 언어 속에는 투쟁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속담에 “충고하는 말은 듣기 거북하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는 말이 있듯이 선의적인 언어는 처음 들을 때는 귀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문제의 관건은 사람들이 말할 때 선량한 태도로 말하는가 아니면 기회를 보아 타도하고 도발하며, 아무렇게나 남을 공격하며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가에 달렸다.


(3) 투쟁적인 언어가 초래한 나쁜 결과

투쟁적인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중국 속담에 “말은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라는 말이 있다. 투쟁의식이 가득 찬 언어는 사람의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에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언어는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풀지 못할 많은 매듭을 맺게 한다. 2006년 북경에서 발표된 한 연구 보고를 보면 교원의 폭력적인 언어사용은 보편적인 일이라고 한다. 조사 학생들 72%가 선생님이 사용한 비문명적인 언어가 학생들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조성했다고 표시했다. 또 다른 보고는 81.45%에 달하는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언어폭력’을 꼽았다.

언어폭력은 일정한 때에 이르면 행동의 폭력으로 넘어가기 쉽다. 왜냐하면 말싸움은 사람 사이에 없었던 다툼을 있게 만들며,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기 때문이다. 2005년, 북경의 한 경찰이 산시(山西) 타이위안(太原)에 갔다가 신호등 앞에서 타이위안의 경찰과 몇 마디 말다툼을 했다. 이 타이위안 경찰은 화를 가라앉힐 수 없어 사람들을 데려와 북경의 경찰을 때려 죽였다. 산둥(山東) 지닝(濟寧)시의 14살 난 소년이 단지 한 네티즌의 아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터넷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나중에 상대방은 여자 아이디를 이용해 그와 채팅하는 가운데 인터넷 접속장소를 찾아낸 후 그를 찾아가 칼로 찔러 죽였다.

투쟁적인 언어는 사람들을 투쟁철학의 시각에서 문제를 대하도록 유도한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로써 습관적인 투쟁의식을 지닌 언어는 사람들을 유도하여 ‘투쟁’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이 원래 대패로 목수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도끼밖에 찾을 수 없자 나무를 팰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아귀다툼은 언어 속에 잠재한 투쟁의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지도자는 부하직원을 마음대로 부리면서 툭하면 “내가 당신을 다스리지 못할 것 같아?”라고 한다. 부하직원은 불복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너 따위가 날 어쩔 수 있겠어?” 뒤따라오는 것은 서로간의 싸움이다.

정치와 외교의 장에서 이런 투쟁의식은 더욱 뚜렷하게 반영되며 결과도 더욱 나쁘다. 2003년 5월 19일 세계보건기구 회의장 밖에서 대만 매체가 질문했다. “당신은 2천만 대만 사람들(대만은 당시 세계보건기구에 가입했다)의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었습니까?” 그러자 유엔 주재 중국 대표 사쭈캉(沙祖康)은 경멸하는 투로 대답했다. “진즉에 거절했다!” 아울러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누가 당신들을 거들떠볼 줄 아는가!” 이 사쭈캉은 또 왜 파룬궁 수련생들을 정신병원에 수감하고 신경을 파괴하는 주사를 놓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도 서슴없이 “그들은 당해도 싸다.”라고 대답했다.

“만약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게 만들어주마.” : 중공의 사주를 받은 정신병원에서 멀쩡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감금하고 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장면ⓒ 대기원


‘홍위병 외무부장’으로 불리는 리자오싱(李肇星)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때 무지막지하고 무례하기로 소문이 났다. 한 번은 한 서양 기자가 덩샤오핑의 건강 상황을 묻자 ”그분은 아주 건강합니다.”라고 했다. 기자가 또 물었다. ”덩샤오핑이 건강하다면 집에 있나요, 아니면 병원에 있나요?” 그러자 리자오싱이 대답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마땅히 어디에 살아야 할지 알고 있다. 당신은 신체가 건강할 때도 병원에 입원하는가.” 기자의 질문은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완전히 긍정적으로 외교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자오싱 부장의 투쟁의식은 뿌리가 깊어 아무 때건 나타날 수 있었다. 또 예를 든다면 덩샤오핑이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기관총 하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장쩌민은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싸워 이기지 못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모두는 공산당의 투쟁, 폭력, 탄압하는 습관적인 사유가 언어로 반영된 것이다.

투쟁적인 언어 습관은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한 마음으로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며 이성적이고 공평하게 문제를 탐구할 수 없게 하여 토론할 때 오직 상대방을 말로 압도할 것만 추구하게 만들어 남의 권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잘못을 알아도 고칠 만한 아량은 더욱 없다.

투쟁적인 언어방식이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필연적으로 그침 없이 악화되게 마련이다. 마치 사람들이 냄새가 지독한 음식을 늘 먹으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입맛도 점점 나쁘게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장기간 강렬한 언어를 쓰면 사람들은 이 언어에 힘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어 필연적으로 더 자극적인 언어를 찾는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마비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


(4) 투쟁의식을 제거하고 언어를 순화하자

솔직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고 자신감 있는 사람은 걸핏하면 때리고 죽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더구나 말로 상대방을 압도하거나 심한 말이나 이치가 삐뚤어진 말을 하거나 온갖 수단을 이용해 말로 남을 궁지에 몰아 상대방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고 그 속에서 심리적인 만족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투쟁적인 언어의 배후에는 중공 투쟁철학이 조성한 과대망상과 자기 비하가 한데 섞인 일종의 왜곡된 심태와 기형적인 인격이 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예절 바르게 대하며, 자신보다 약하거나 불행한 사람을 대할 때면 가급적 말투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하며, 부부 사이에도 손님을 대하듯 서로 존중하며 어린이를 교육할 때면 차근차근 잘 타일러 가르치고, 이치를 말할 때면 사실에 따라 말해야 하며 냉정하고 이지적이며 잘못을 했으면 솔직하게 승인한다. 군자의 풍모 뒤에는 평화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며, 사람을 선량하게 대하는 건강한 심태가 있다.

언어속의 투쟁의식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언어적인 노력에만 의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당문화의 투쟁사유를 개변할 것이 필요하다.



2. 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창작

2005년 11월 13일 지린(吉林) 석유화학공사 솽번(雙苯)공장이 폭발하여 발암물질인 대량의 벤젠화합물이 쑹화(松花)강을 오염시켰다. 오염 물질은 쑹화강을 따라 확산되었고, 하류에서 시급히 대비책을 세워야 했을 때 중공 당국은 도리어 계속해서 소식을 감추다가 거의 열흘이 다 될 무렵에야 재난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달 말에 헤이룽장성 텔레비전 방송국은 사흘 동안 대형 특별 프로그램 《물의 정(水之情)》을 창작했다. 보도를 보면 특별 프로그램은 “밤 새워 제작한 노래극 《맑은 샘 팔방에서 흘러와》, 만담프로인 《지역사회 견문(見聞)》, 가곡 《당신에게 알려 줘요 》 등 6개 프로그램은 전문적으로 이 프로를 위해 창작한 것이다. 독창, 노래극, 무용, 만담, 소품 등 다양한 예술형식으로 성(省)위원회, 성 정부가 돌발적인 사건 중에서, 전반적으로 통일된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근본으로 하며 백성을 위하는 집정(執政)능력을 반영했다.”

재난을 경사스런 일로 여기고 수재 민중을 조연으로, 중공을 주연으로 하는 이런 창작습관은 그 어떤 정상적인 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괴상한 일이다. 그러나 중공 통치하의 중국인들은 도리어 일찍부터 이를 당연한 일로 여겨 왔다. 이런 습관적인 사유는 문예작품 창작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라디오 뉴스의 ‘창조적인 구상(創意)’에서도 나타난다. 위에서 서술한 재난이 발생한 후, 헤이룽장의 성급 신문 인터넷 사이트―둥베이망(東北網)―에 지속적으로 관련 보도를 실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물 공급이 중단된 후 내려진 휴교기간에 지식을 충실히 하다.”, “하얼빈 시 지역사회 간부들이 자기 집을 돌보지 않고 물 공급이 중단된 기간에 여러 사람을 위하는 것을 본 실상”, “무장경찰 황금부대 본부에서 노인 아파트에 물을 보내주다.”, “물 공급 중단 후, 병원 식당에서는 단 한 곳도 음식 공급을 줄이지 않았다.”, “하얼빈 다오리(道里)에서 따로 선을 개통하여 장애인들에 대한 생활용수를 보증하다” 등등. 전체적으로 말해서 “형세가 아주 좋다”거나 심지어 재난이 없을 때보다 더욱 좋다는 것인데 목적은 “성위원회, 성 정부의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집정능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얼빈 시에서 물 공급이 중단된 지 나흘 만에 물 공급이 재개된 첫 날, 헤이룽장성 성장은 군중들 앞에서 첫 번째 물을 마셨다. ‘창조적인 구상’이 제법 있는 신화사이트 기자가 특별히 일반 민중이 창작한 시가로 당을 칭송하는 것을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백성들이 자각적으로 당을 찬미한 것임을 표명하려는 것이다. 보도 《헤이룽장성 성장 첫 물을 마시니 백성이 시를 지어 찬미》에서 헤이룽장 성장은 물을 마시기전에 “내 말이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말이 유효하며, 인민정부의 말이 유효하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 한마디 말로 성장이 물을 마시는 의도를 짚어냈다. 마치 지난번에 재난 상황을 감췄던 그 정부는 중공의 영도 아래에 있지 않은 듯하다. 성장이 물을 마신 후 즉시 한 시민이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시름을 내려놓는 물을 한 컵 따르니, 마음이 갑자기 달콤해지네. 당의 따사로움 집집마다 기쁨이요, 백성들 마음속엔 찬란한 빛 넘치네.” 보도의 결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작은 집안에선 즉시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나흘 동안 쑹화강 물 오염으로 흐려졌던 기분은 웃음소리 가운데 말끔히 가셔버렸다.” 천만 민중들의 생명과 직결된 거대한 재난은 바로 이렇게 “말끔히” 가셔 버렸다. 결론은 민중은 재난을 당했지만 공산당의 구원과 도움이 있기에 다행스러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당문화 속에서 당을 떠나지 못하는 습관적인 창작 사유는 각기 다른 역사시기와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형성원인과 형형색색의 표현 특징이 있다. 그러나 창작 사유 과정만을 놓고 말한다면 도처에 없는 곳이 없는 당의 영향이 없다면 이런 작품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중공은, 문예는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아울러 층층의 선전기구와 조직으로 이런 봉사를 보증했기에 창작의 출발점이 바로 문예란 당문화의 선전품임을 결정지었다. 동시에 문예창작은 생활을 체험하고 생활을 표현할 것을 요구하지만 생활 속에는 이미 일찍부터 당문화가 충만해져 있어 체험과 표현할 내용이 바로 당문화 중에서 맴돌게 되었다. 그러나 창작자를 말하자면 그들 자신도 당문화의 사유와 이론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당의 요구와 사상에 따라서 영감을 얻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은 창작자와 그 일가의 생계, 주택, 병 치료와 전도를 통제하고 있어 작자를 협박하여 소원과 양심을 위배한 상황 하에서 자신을 마비시키고 중공과 영합하게 만드는데 장기적으로 이렇게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동기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작자의 사유는 모두 당문화의 휘장에 엄밀히 싸여 있으며 창작에서 당을 떠날 수 없다.


1) 당을 떠나지 못하는 창작 동기

작품의 창작 동기를 말하면, 상당부분은 직접적으로 당의 공적과 은덕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다. 중공의 왜곡된 역사와 당문화 ‘사회 발전사’의 영향을 받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미혹되어 중공을 민족의 ‘위대한 구원의 별’로 여기고 중공을 위해 찬양가를 부르며, 그리하여 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전반 사회에 중공과 그 괴수를 미친 듯이 숭배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했다. 전형적인 작품으로는 《홍기보》, 《청춘의 노래》, 《민들레꽃》, 《삼가(三家)골목》, 《붉은 바위》, 《홍호(洪湖) 적위대》, 《남정북전(南征北戰)》, 《동존서(董存瑞)》, 《상감령(上甘岭)》, 《열화(烈火) 속에서 영생》, 《꼬마 병사 장가(张嘎)》,《홍색 낭자군》 등이다. 문예 형식은 소설, 시가에서 가극,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도 중공이 지도한 이른바 역사적 필연성과 정확성, 그리고 중공의 ‘휘황찬란한 형상’, 백성에 대한 ‘대은대덕(大恩大德)’을 반영시키지 않은 것이 없다. 많은 가곡, 이를 테면 ‘당이여, 친애하는 어머니’, ‘마오 주석 공산당 우리를 키워주네’는 더욱 적나라하게 사람을 마비시킨다.

최근 20년 동안의 문예작품을 회고해 보면 비록 수법이 더욱 세밀해지고 소재가 더 넓어졌으며, 작품 속 인물의 인성화에 더욱 중시를 가하긴 했지만 많은 작품의 창작 동기는 여전히 중공을 분칠하는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영화 《개국대전(開國大典)》, 《저우언라이》, 《대결전》,《초유록(焦裕祿)》, 《레이펑을 떠난 날들》, 《쿵판썬(孔繁森)》 등이다.

‘개혁개방’ 이후 ‘개혁문학’, ‘시장경제 문학’이 나타났는데 창작동기는 개혁 후의 사회 변화에 대한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중공의 공덕을 노래하려는 것이다. 개혁 자체는 일종 역사적인 조류로서 중공이 몇십 년을 봉쇄한 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지만 예술창작에서는 그것이 도리어 중공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역사의 죄책을 덮어 감추는 수단이 되었다.

또 하나의 창작동기가 있는데 바로 당문화 사상을 선전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화대혁명’ 시대에는 도처에 ‘혁명 모범극’이 있었는데 그것은 문화혁명이란 형세에 협력하여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적 선전으로 가득 찬 일부 대사는 민간의 유행어가 되었고, “사람이 되려면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앞을 다퉈 시대의 맹장이 되자.”, “보서(寶書)를 손에 받쳐 드니 마음속에 따사함이 가득 차네.”, “이리떼를 소멸하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으리라.”, “피의 빚은 피로써 갚으리라.”, “끓는 피를 뿌려 춘추(春秋)를 쓰리라.”, “원한을 가슴에 심어 싹트게 하리라.” 등이다.

이와 유사하게 대량의 군인들을 동원해 3천만 불을 낭비하면서 영화 《영웅》 촬영에 참여시켰다. 이것은 바로 역사적인 주제를 빌려 진시황을 찬양하면서 생명에 대한 멸시, 독재적인 당문화를 고취하여 간접적으로 중공 주선율의 유력한 악사로 만들었다. 영화는 공산당의 강산과 천하 사람들의 이익을 한데 뒤섞어 동등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권력에서 물러나길 아쉬워하며, 살인으로 폭정을 유지해 나가는 통치자를 마치 천하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의의 위치로 치켜세웠고, 관객들에게는 은연중에 개인 생명을 바쳐 폭군의 통치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입한 것이다.


2) 당을 떠나지 못하는 창작 내용

일찍이 옌안 시기에 중공은 문예창작을 위한 기조를 정했다. 바로 문예는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공은 정권을 건립한 후 여전히 이 ‘문예의 지도방침’을 신봉해 왔다. 중공에는 선전부가 있어 그것의 ‘문예방침’에 대한 강제적인 집행을 보증하고 있는데 이는 문예창작의 내용에서 당의 요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중공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매년 개최하는 춘절(春節) 갈라에는 전국적으로 가장 우수한 배우와 예술가, 창작팀이 집중되며, 수백 개에 달하는 전국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중계방송 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해외에 까지 마수를 뻗친다. 매년 춘절 갈라는 바로 지난 일 년 동안의 정치, 사회와 예술창작의 축소판으로 당문화가 집중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이라 할 만하다. 21세기 ‘춘절 갈라’에 이르러서는 아예 중공 통치의 암흑에 대해서는 털끝 만한 풍자도 하지 못하게 하고 주제를 미리 정하여 전문적으로 ‘춘절갈라’를 위한 전용 가사를 썼다. ‘좋은 나날’, ‘점점 더 좋아지네’, ‘5복(五福)이 문 앞에 왔네’, ‘갈라의 즐거움’, ‘태평성세의 대 친목회’ 등으로 공산당의 축제로 민족의 기쁨을 대체했고, 당문화로 전통문화를 단속했다. 백성들의 고통, 민족의 위기는 곳곳에 자욱한 짙은 정치 분위기 속에서 증발되어 버렸다.
평으로 야기된 탈당열조 속에 곧 붕괴될 위기에 처한 중공이 당문화를 이용해 형세가 좋다는 가상을 만들고 있다.ⓒ 대기원


‘당’이 문예작품의 기조를 엄격히 규정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요구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품이 봉쇄당할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곡조가 아름다운 민요들이 아주 많으며 줄곧 민간에서 전해져왔다. 그러나 민요의 내용은 대개 애정을 위주로 한 것이다. 비록 어떤 것은 고향 산천을 노래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공의 문예는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기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 이런 가곡들은 원래 대부분 중공이 허락하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민요들을 당문화에 독해된 예술계 인사들이 직접 훔쳐다가 당의 공덕을 노래하는 데 이용하거나 혹은 당문화의 요구에 따라 고쳐서 정치적인 내용을 부여한 ‘재창작’이 되어 거짓에 미혹된 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중공도 새롭게 고친 ‘민요’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를 테면, 산베이(陝北) 민요에서 탈바꿈해 나온 ‘동방홍’, ‘번신도정(翻身道情)’, ‘산단 단화 붉게 피었네’, 몽골민요에서 나온 ‘초원에 지지 않는 태양이 솟네’, ‘나는 말을 타고 초원을 지나네’, 티베트족 민요에서 나온 ‘북경의 금산위에서’, ‘ 마오 주석께 하다를 드리네’, 허저(赫哲)족 민요에서 유래한 ‘우쑤리강 뱃노래’ 하니(哈尼)족 민요에서 유래한 ‘아보(阿波) 마오 주석’ 등이다. 이런 가곡들이 ‘재창작’을 거쳐 민간으로 전해간 후 사람들에게 마치 각 민족 민중들이 모두 열광적으로 중공이나 그 당두목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가상을 준다. 그런데 중공은 파렴치하게도 민족 음악에 달라붙은 이런 부체(附體) 작품을 ‘민족 음악을 발전’시킨 이른바 ‘공헌’이라고 떠들어 댄다 .

2005년 후난(湖南) 유선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제작한 ‘슈퍼 여자가수(超級女聲)’ 프로그램은 전국을 풍미하여 젊은 사람들의 폭넓은 환영을 받았다. 이 프로의 인기는 중공의 가장 중요 매체인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그리하여 순 오락적인 이 프로그램은 곧 매체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모두 없애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금년에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최측이 특별히 당의 찬가를 불러 인기가 올라간 소위 ‘원로 예술가’를 초청하여 시합에서 일등을 차지한 가수와 함께 ‘공산당 경전’ 가곡 ‘말아, 너 좀 천천히 걸어다오’, ‘산 노래를 친인에게 드리네’ 등을 불렀고, 아울러 ‘원로 예술가’에게 젊은이들을 가르쳐 주길 청했다. 당을 떠나지 못하는 이런 ‘창조적인 구상’은 상당부분 중공이 유지하고 있는 기조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승인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창작 내용에서 당의 사유습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또 하나의 표현은 당이 부정하는 것이면 따라서 부정하는 것에서 표현된다.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이 봉건 미신으로 부정되었고, 전통문화는 독재와 전제(專制)의 동의어가 되었으며, 중공 이전의 역사인물들은 반드시 ‘역사적 제한’ 속에 존재해야 하며, ‘봉건’이란 한 마디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충효인의(忠孝仁義) 등의 전통미덕, 제왕장상(帝王將相), 재자가인(才子佳人), 성현충양(聖賢忠良) 등 인물들을 별책에 몰아넣었다. 십년 문화혁명의 파괴는 ‘4인방’의 착오로 귀결되었고 몇천 만 명이 굶어죽은 인위적인 기근은 3년 ‘자연재해’로 변했으며 ‘6.4’ 학살은 정부의 행위가 이해할 만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한다. 파룬궁에 대한 비방은 천지를 뒤덮을 지경이다. 중공과 견해가 다른 정당이나 단체에 폄하하는 색채를 띠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중공의 말을 들으면 애국이고 중공을 비평하면 반(反) 중국이 된다. 중공에 의해 부정된 이런 대상들은 대개 예술 작품에서 비판받고, 추악하게 표현되며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형상으로 왜곡된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생활 가운데 중공의 어두운 면과 중공의 공격대상은 창작의 금지지역이 되어 사람들은 멀리 피한다. 중공의 금지지역을 우연하게 건드린(이를테면 민주, 헌정, 인권 등의 화제) 기자, 작가는 분분히 체포되기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단속한다. 간혹 민감한 화제가 제기되긴 하지만 역시 진실한 면모와는 거리가 멀고 중공의 ‘휘황한 형상’에는 별로 영향이 없으며, 중공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창작범위가 아주 넓어 작품도 매우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몇 년래 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문예창작에 참여하는 민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창작의 제재도 더욱 넓어졌거니와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창작 주제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른바 음란한 성(性) 문학이 횡행하는 것이다. 이는 민중들의 창작이 완전히 자유롭고 당을 벗어났기 때문이 결코 아니고 도리어 사람들은 이런 주제가 중공의 이데올로기에 위협을 주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비로소 거리낌 없게 된 것이다. 중공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당의 금지구역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튼튼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금지구역을 에돌아 공을 치는 것은 습관적인 창작 사유의 일부분으로 이는 사실 중공이 제정한 창작 규칙에 대한 복종을 대표한다.


3) 당을 떠나지 못하는 창작 사유 과정

문예창작에 대한 당문화의 가장 큰 영향은 사람들의 사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유행하는 많은 사극 가운데 고대 궁중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전부 서로 물고 뜯는 것으로 관료 사회는 예전부터 그래왔고 모두 검은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창작 사유는 당문화 역사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결과이며, 전통 관념을 말살하고 현대인의 관념으로 옛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몇천 년 동안의 전통 중국사회를 온통 암흑으로, 사람마다 서로 투쟁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묘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공의 ‘광명’을 돌출시키려는 것이다. 부패는 고금중외에 걸쳐 관리사회의 일반적인 폐해라는 것으로 중공의 부패를 희석시키려는 것이며, 중국인들을 기만하여 중공 악정(恶政)의 원인을 전통 문화에 귀결시키려는 것이다.

실화문학작품을 창작함에는 흔히 이런 형식이 있다. 만약 천재인화가 발생하면, 이를테면 본 절의 첫 부분에 든 예처럼 당이 어떻게 인민에게 관심을 가졌는가를 말해야 한다. 만약 관리라면 곧 어떻게 당의 지도하에 인민을 위해 봉사했는가, 이를테면 《쿵판선》 따위를 쓴다. 만약 관리가 제멋대로 나쁜 짓을 했다면 마지막에는 당이 최종적으로 정의를 유지한다. 만약 정책이 잘못된 것이면 끝내 당이 어떠어떠하게 착오를 시정한다. 만약 어두운 면이 있다면 관리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최후엔 여전히 당의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함’을 부각시킨다. 경제방면의 어떤 성과이든 기필코 당의 ‘영명한 정책’의 인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떠한 기업의 발전이든 반드시 당과 정부의 ‘간절한 배려’를 떠날 수 없다. 교육, 과학기술상의 어떠한 성과든지 ‘당중앙’의 ‘정확한 영도’와 ‘친절한 배려’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인재가 나오거나, 개인이 어떤 성과를 올려도 기필코 당의 ‘배양’을 벗어나지 못한다. 군대는 더욱 ‘승리는 당의 지도를 떠날 수 없다.’ 샤강(下岗 사실은 실업)한 노동자마저 약간이라도 상황이 개선되면 역시 당의 ‘배려와 지지’를 떠날 수 없다. 종교마저도 “모든 성과는 전부 당과 정부의 지도, 배려와 지지를 떠날 수 없으며 오직 당의 지도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야만 광명한 전도가 있다.”는 등이다.

중공의 부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민중들의 원망은 발설할 곳이 없다. 최근 들어 ‘반(反)부패 영화’들이 민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형적인 것들로는 이를테면 《생사 선택》, 《신중국 가장 큰 안건》 등이다. 사실 이런 작품과 ‘문화혁명’이 막 끝났을 시기의 상흔(傷痕)문학이나 상응하는 영화들 이를테면 《천운산 전기》, 《수갑을 찬 여객》, 《해외 동포》 등과 같이, 그들이 어떻게 주제를 발굴하든지, 역사와 현실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일부 사상의 금지구역를 돌파하려 시도하든지, 어떻게 사람의 생존상태에 관심을 갖고 예술의 표현형식을 확장하든지 간에 모두 당문화의 사유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작품의 결말은 또 조직을 믿고 당을 믿으며 당은 잘못을 바로잡을 결심이 있다는 데로 귀결된다. 그러나 중공이 조성한 사회 병폐, 민중의 고난은 두루뭉술하게 ‘시대의 비극’ 탓으로 돌렸고 중공의 죄책(罪責)을 가볍게 했다.

중국 민간에는 ‘악고(惡搞)’ 창작이 상당히 유행하였다. 예를 들면 모 공장의 상인은 레이펑(雷鋒)과 마오쩌둥의 어록을 콘돔 박스에 인쇄했다. 보기에는 이것이 몇 년래 중공 당문화 주입에 대한 일종의 배반인 것 같지만, 사실상 여전히 중공이 수립한 우상의 권위에 대한 인정으로 여전히 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당문화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생활은 일체 방면에서 모두 ‘당’에 점령되었다. 이는 곧 사람들의 사유가 당문화의 언어요소를 벗어날 수 없게 했으며 이런 요소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부 이른바 특수한 창조적 구상이 있는 광고어 “××를 끝까지 진행하자”, “××를 꼭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것 역시 창작 사유 과정이 당문화의 언어 요소를 떠나지 못한 예들이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아주 많은 중국인들은 이른바 ‘옛노래 다시 부르기’에 몰두하였다. 즉 적나라하게 중공을 찬양하는 이른바 ‘홍색경전’을 현대악기로 새롭게 연주하거나, 혹은 현대 창법으로 부른다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은 순전히 옛날을 회고하기 위해서이며 ‘위대한 수령에 대한 열애’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학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1945년 이후 독일 민중들은 히틀러를 노래하는 형식으로 옛날을 그리워했으며,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대표대회 이후 구(舊) 소련 민중들도 2천만 명이 넘는 소련인들을 학살한 스탈린을 찬양하는 가곡을 통해 옛날을 그리워했다. 사람들이 지나간 노래에 열중하는 것은 사실상 당의 유전자가 일찍부터 사람들의 문화세포에 스며들었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창작 습관이 당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표현은 당문화로 뒤덮인 거대한 사회 환경에 장기적으로 물들었기 때문인데 자각적으로 형성된 습관이 있고 또 장기적인 압력 하에 강요당해 이렇게 된 상황도 있으며, 개인 이익, 정치자본을 긁어모으기 위해 의식적으로 이렇게 한 것도 있다. 또는 당문화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도리어 벗어나지 못하고 창작 사유습관이 비자각적으로 여전히 당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다(이를테면 ‘악고’ 작품은 여전히 당문화 중에서 맴돌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당은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당문화를 민중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양식’이 되게 했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에 걸쳐 문예 창작자들을 양성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또 되돌아와 대중과 그들 자신에게 영향을 끼쳐 결국에는 당문화를 사람들이 창작하는 사유습관의 고정적인 추세로 되게 했으며 사람들의 창작이 습관적으로 당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특별히 제기할 것은 문예는 단지 창작 중에서 아주 전형적인 한 방면일 뿐이라는 점이다. 창작이 습관적으로 당의 사유방식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각 업종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구체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마 같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당문화의 영향을 받아 소재 선택에서부터 사고, 구체적인 창작에 이르기까지 매 과정마다 모두 당문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정으로 자유롭게 창작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려면 우선 당문화 사유 속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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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중 9평】중국 공산당의 깡패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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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중 7평】중국 공산당의 살인역사
【9평 중 6평】중국 공산당의 민족문화 파괴
【9평 중 5평】장쩌민과 중공(中共)이 서로 이용하여 파룬궁을 박해
【9평 중 4평】공산당은 반(反)우주적 힘
【9평 중 3평】중국 공산당의 폭정(暴政)
【9평 중 2평】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일어섰는가
【9평 중 1평】공산당이란 무엇인가

【신전문화(神傳文化)】




【명혜망 】 항주성(杭州城)의 모(某) 비단가게는 생긴 지 이미 몇 십 년이 되었다. 가게 주인은 이미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느 해, 이곳에 화재가 발생해 비단가게도 재난을 면치 못했다. 가게 뒤편에 가난한 집이 하나 있었는데 온 가족 세 식구가 빨래를 해서 겨우 생계를 꾸려갔다. 그들이 출입하자면 반드시 비단가게 옆문을 지나가야 한다.

불길이 세차게 타오를 때 가난한 집에서 큰소리로 “문 좀 열어 주세요.”라고 외쳤다. 옆문을 통해 빠져나가 살아남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비단가게 주인은 화물 운반의 편리를 위해 있는 힘껏 옆문을 막고 그들이 열지 못하게 했다. 물자들을 다 운반하고 불길이 잡힌 후에 보니 가난한 집 식구들이 모두 불에 타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일 년이 지난 후 비단가게 주인이 갑자기 죽었다. 어느 날 저녁 가게 주인이 아들의 꿈에 나타나 말하길,

“내가 가난한 집 식구들을 죽였기 때문에 저승에서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게 하고 돼지 태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구나. 지금 나는 이미 어느 농가에서 돼지로 태어났다. 돼지 새끼가 네 마리인데 몸에 꽃무늬가 있는 것이 바로 나다. 네가 그 농민에게 가서 나를 사다가 집에서 키워줬으면 한다. 그래야만 남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단다.”라고 하면서 말을 마치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들이 깨어난 후 꿈이 너무나 생시 같아 꿈에서 말해준 곳을 찾아갔더니 과연 돼지새끼 중에 꽃무늬가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상한 것은 새끼 돼지가 아들이 온 것을 보고는 울면서 가련한 모습을 보였다. 아들이 돈을 주고 돼지를 사온 후에 방을 하나 준비해 돼지를 키웠다. 사람을 고용해 매일 돼지를 목욕시키고 제일 좋은 음식을 먹였는데 마치 생전에 부친이 살아 있을 때처럼 잘 대해주었다.

며칠 지나 아들의 꿈에 부친이 나타나 말했다. “내가 생전에 지은 죄악이 너무나 커서 죽은 후 이미 가축의 무리에 속하니 만약 음식이 사람과 같다면 내 죄만 더 중해질 뿐이다. 앞으로는 좋은 음식을 먹이지 말고 매일 목욕시킬 필요도 없다. 그냥 가축 키우듯이 키우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더 심하게 죄를 갚아야한다. 나는 죽은 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알았다. 지금은 단지 후회만 남았을 뿐이다. 너는 꼭 사람 몸을 소중히 여기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옛말에 이르길 “전생의 일을 알고 싶다면 금생을 보고 미래의 일을 알고 싶으면 금생의 행동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天理)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역사의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는가는 지금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법(佛法)은 자비롭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잘할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며 이는 자신이 미래를 선택하는 관건적인 시각이다. 더 이상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영원히 만회할 수 없는 고통스런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한다. 선념(善念)을 지니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잘하는 것만이 생명의 진정 현명한 선택이다.

국경없는 기자회, 베이징서 올림픽 보이콧 활동

▲ 지난 8월 6일, 국제 언론자유기구인 ‘국경없는 기자회(RSF)’ 대표들이 베이징 올림픽준비위원회 사무실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공 당국의 억압에 항의하며 수감되어 있는 기자, 인터넷 반체제인사 및 언론자유인사 등 100여명의 석방을 촉구 있다.
ⓒ PETER PARKS/AFP
[대기원] 지난 6일, 국제 언론자유기구인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베이징 올림픽준비위 사무실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공 당국의 억압에 항의하며 수감되어 있는 기자, 인터넷 반체제인사 및 언론자유인사 등 100여명의 석방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이 사건을 취재한 외신기자들은 중국 경찰들에게 감금됐다.

‘국경없는 기자회’ 사이트에 따르면 이 기자회견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자단의 아시아, 유럽 등 대표들로서 그들은 올림픽마크가 수갑으로 대체된 티셔츠를 입은 채 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의 로베르 메나르(Robert Menard) 사무총장은 “중국 감옥의 검은 그림자 아래에서 올림픽과 같은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 중공 당국은 이미 이 사건 관련인사들을 체포했다. 중공 관영이 부르짖는 ‘동일한 세계, 동일한 꿈’ 등 구호는 갈수록 공허하게 느껴지고 있다. 베이징 당국은 인권상황 개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계속 올림픽정신을 선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경찰측은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 중이던 AFP기자들을 포함한 10여 명의 기자들을 일시 감금했다. 기자들은 약 1시간 동안 감금된 후 풀려났으나 당국은 어떠한 해석도 하지 않았다.

▲ 지난 6일, ‘국경없는 기자회’ 대표들이 베이징올림픽준비위 사무실 빌딩 밖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 PETER PARKS/AFP
한편,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1주일 전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전 국내 인권개선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번 스포츠대회는 중국뿐만 아니라 올림픽대회와 전 세계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앰네스티의 아이린 칸 사무총장은 “중공 당국의 올림픽 개최를 중국의 인권을 개선하는 하나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승낙했지만 개최 1년밖에 남지 않는 현재 여전히 인권문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중국에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올림픽 정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8월 7일에 ‘중국, 올림픽 카운트다운-인권개선 약속을 실현하기까지 1년’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해 사형제도, 불법 구류, 인권 민주화 및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중국인권 문제의 4가지 방면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중공 당국이 재판 없는 구류수단을 사용해 ‘올림픽 장소를 청소’하고 있으며 인권운동가와 기자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의 이들 인사들은 여전히 각종 형식으로 연금상태에 처해있으며 기타지역 인사들은 더욱 가혹한 학대를 받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올해 6월 말, 국경 없는 기자회는 중국이 국제사회를 멸시하고 인권개선 약속을 어겨왔다는 이유로 5개의 수갑으로 만든 베이징올림픽 로고를 발표했다.

『인권 성화』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합니다


2001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2008년 올림픽 개최권을 베이징에 준 것은 중공이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2008년 올림픽이 겨우 14개월 남아 있지만, 중공의 인권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그리고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웹사이트를 보면 수많은 중공의 인권위반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중국정부가 최근 언론매체에 대한 통제를 해제했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언론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있는 미아 파로(Mia Farrow)는, 국제사회가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을 “집단학살 올림픽(The Genocide Olympics)”이라 칭하고 만약 중국이 수단정부의 인민학살 행위를 지원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와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킬고어 (David Kilgour)(http://organharvestinvestigation. net)가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들로부터 불법으로 장기를 적출하여 매매한다는 조사보고를 발표한 다음 창립된 파룬궁 박해진상연합조사단(CIPFG)은 최근 베이징 올림픽을 “피에 물든 장기적출 올림픽(Bloody Harvest Games)”이라 규정했습니다.


중국은 유엔인권이사회의 일원이므로, 인권 원칙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오늘날까지 중공정권은 이 원칙을 존중하거나 준수하겠다는 아무런 징조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이징 올림픽이 위에 상술한 잔혹행위와 동시에 진행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올림픽 정신을 크게 우롱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평화로운 사회의 건립”을 고무 격려한다는 올림픽 헌장의 성명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현 지도자들은 올림픽의 성공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인권문제를,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의제로 올려놓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올림픽 성화 릴레이에서 영감을 받은 전 세계 인권성화릴레이에 참여하고 지지하도록 귀하를 초대합니다. 귀하의 지지로 우리는 인권성화의 횃불을 붙일 수 있고 2008년 올림픽으로 하여금 인간존엄성을 우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인권성화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전 세계 인권성화 릴레이를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해진상연합조사단 (CIPFG) www.cipfg.org

7월은 전세계 중공 탈당 해체의 달

전세계가 ‘천멸중공(天滅中共)’ 조류에 가담

▲ 2007년 4월, 대만민중들이 이미 공산당을 탈당한 2천만 명의 ‘용사’를 성원하고 있다
ⓒ 대기원
[대기원] 전세계 탈당서비스센터과 세계인권발기(世界倡導人權) 등 단체는 7월 1일부터 7월을 ‘전세계 중공 탈당해체의 달’로 삼아 전세계를 향해 ‘중공악당을 해체’하고 ‘중공이라는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메시지를 전파할 계획이다.

전세계 탈당 서비스센터 대변인 가오다위(高大維)는 “7월 1일은 중공악당의 창당일이다. 현제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얻은 소식에 의하면 중공은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로 중공 고위층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9평공산당’(중국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일으킨 ‘3퇴’(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등 공산당 관련조직 탈퇴) 물결로 인터넷에 기록된 탈당 인원수는 이미 2천3백만을 초과했으며 중공 내부인사는 실제 탈당인원수는 이를 훨씬 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사회는 이미 천인공노할 지경에 이르렀다. 끊임없는 대규모의 민중항쟁과 고위층의 극심한 권력투쟁으로 중공은 더이상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악당을 해체하고 악성종양을 제거하자”

이번 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중공 해체의 달’ 활동은 7월 1일부터 전세계 각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각지에서는 ‘3퇴’ 성원집회, 대형 퍼레이드 등 활동을 개최하며 서방 각국의 정부인사, 중국문제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구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활동은 7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클라이막스에 달하게 된다. 대기원시보, 희망의소리 방송, NTD TV 등 중국의 진실한 정보를 전하는 매체들이 현장에서 직접 중국대륙과 해외민중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생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가오다위는 중공이 중국인민을 해칠뿐만 아니라 그 독성이 이미 세계각지로 뻗어나가고 있다며 “중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과 해외 민중들이 각성 후 연합하는 것이다. 중국민중들은 하루빨리 중공악당에서 탈퇴해 자신을 구해야 하며 서방국가 역시 중공의 경제가상에 넘어가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킨다)’ 최후시각에 중공의 순장품이 되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 2007년4월8일, 뉴욕 맨해튼광장에서 열린 탈당성원 집회 현장
ⓒ 쉬밍/대기원
중공이 해체되기 전 세인들에게 진실한 중국 알려야

가오다위는 이번 ‘중공 해체의 달’ 행사 주요내용은 서방 각국의 정부인사, 중국문제전문가 등 인사들이 공동으로 ‘진실한 중국을 알자’는 고품격 연구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가오다위는 중공이 해체되기 전, 전세계 민중과 정부가 ‘진실한 중국’을 알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활동은 아직도 중공에 환상을 품고 있는 각국 정부와 국민들이 각성해 중공의 거짓번영에 미혹되지 말고,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간파하며, 중공 집정기간의 위기와 중국인들의 중공 탈당 결심 및 2천여만 명이 중공을 탈당한 상황을 인식시키는데 있다.”

중국인들은 이미 중공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다

전세계 탈당서비스센터는 이미 수많은 중국민중들이 각종 경로(방송, 이메일, 팩스)를 통해 탈당물결의 진상을 안 후 인터넷 봉쇄를 뚫고 해외와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탈당 자원봉사자가 되어 ‘9평’을 전하고 탈당을 권고하고 있는 사람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외 각국 탈당서비스센터에서는 매일 수천수만의 사람들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가장 많을 때에는 하루에 수십만 명에 달하며 이들은 모두 ‘9평공산당’과 탈당 정황에 대해 문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안후이성 쉬저우시 정부 대문 앞의 탈당 소식이 붙어 있다
ⓒ 대기원

▲ 산시성 타이위안시의 ‘천멸중공(天滅中共)’ 표어
ⓒ 대기원
센터 자원봉사자들은 중국 민중들이 여러차례 인권수호운동이 중공의 거짓말과 폭력에 의해 실패하자 점차 중공에 대해 더이상 희망을 품지 않는다고 전해 왔다.

예를 들면, 토지를 잃은 쓰촨성 농민들은 몇차례나 당국에 체포된 후 자각적으로 해외 매체 및 국내 농민들과 연계해 조직적인 반중공단체를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한번에 수천 명이 중공을 탈당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올해 5월, 광둥성 선전시 택시기사들은 불공평한 대우 때문에 파업을 진행했으며 이는 2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는 대규모 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파업 중에 한번은 수천 명이 탈당했으며 이 여파는 지금도 계속 전파되고 있다.

가오다위는 “이는 민심의 반영으로 사람들은 중공이 더이상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 탈당, 중공은 더이상 군 장악 불가능해

전세계 탈당서비스센터 발기인 리다융(李大勇)은 탈당 물결은 일반 민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공이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군대에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공군의 8대군구,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국방대학, 군사과학원 등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이미 탈당했다. 중공의 처급 이상 사람들은 대부분 ‘9평공산당’을 보았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장성급의 군인으로 밝혀졌다. 리다융은 그들이 더이상 중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으며 중공 역시 더이상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2006년 9월 18일, 중국해군함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도착했다. 당지 탈당센터 봉사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탈당내용을 중국 군인들에게 알려주었다
ⓒ 대기원
2006년 중공은 군인과 공무원의 급여를 올려주었다. 외부에서는 중공이 군심(軍心)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이밖에 각 큰 군구에는 모두 특별한 프로그램를 설치해 군인들의 인터넷서핑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군대는 이미 자유민중들 곁에 서있다는 것이 리다융의 설명이다.

중공은 민중항쟁 막을 길 없어

중국 공안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근년래 민중항쟁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1994년 1만 건으로부터 2004년 7만4천 건으로 발전했으며 참가 인원수는 73만에서 376만으로 증가했다. 2005년에는 8만7천 건의 민중항쟁이 발생, 매일 평균 241건이 발생한 셈이다.

▲ 5월 19일, 광시성 보바이 수만 명 민중들이 당국을 상대로 항쟁에 나섰다. 민중들이 ‘중국공산당’이 새겨진 간판을 짓밟고 있다
ⓒ 인터넷이미지
최근 광시성 보바이(博白)에서 발생한 산아제한 반대 시위와 광둥성 차오양(潮陽) 농민들의 토지항쟁에서 민중들은 심지어 정부청사를 직접 공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중공 고위층에서 진압을 시도하자 민중들은 현지 공산당위원회와 당원들의 집을 공격해 통신연락을 끊고 조직을 철저히 마비시켜 중공 탄압에 항의했다.

2006년 쓰촨성 싼샤(三峽)댐 공사 때문에 강제 이주당한 민중 십여만 명은 성(省) 당위서기를 억류했으며 중공 경찰과 무장경찰부대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민중항쟁은 현저한 변화가 발생했다. 즉 많은 항쟁이 민중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이런 새로운 변화는 ‘9평’과 탈당전파와 일맥상통한다. 민중의 끝없는 지탄 속에서 중공의 옛 기염은 천천히 사그러들고 있다.

가오다위는 최근 발생한 산시성 벽돌공장 노예사건, 타이호(太湖)의 오염, 민중들의 올림픽보이콧 운동, 유독성 식품, 미사일로 위성을 폭파시킨 사건, 극심한 고위층 권력투쟁, 홍콩에서 대량의 파룬궁 수련자를 강제송환한 사건 등 때문에 중공은 국민을 대면할 자신감을 잃었으며, 홍콩의 ‘일국양제’는 실패했고 중공이 멸망하기 전 몰골을 여지없이 폭로했다고 평가했다.

서방 정부인사들의 9평과 탈당 성원

중공이 중국민중들의 탈당물결 속에서 해체되기 시작하자 서방사회 역시 이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 서방 각국의 정부인사들은 세계 각지에서 중국민중들의 ‘3퇴’운동에 성원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시기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헌법을 제정해 공산당이 역사상 국민들에게 범한 죄악을 청산하고 공산당의 여독을 제거했다.

▲ ‘공산주의 수난자 기념비’ 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 SAUL LOEB/AFP/Getty Images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공산주의 피해자 기념비’ 제막식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발표했다. “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침통한 세기이다. 공산주의는 20세기에 1억 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중국만 해도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각성을 높여야 할 것은 사악과 원한을 기초로 하는 공산주의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피해자들을 잊어서는 안되며 장래에 이러한 죄악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강경한 연설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중공을 비판하는 것을 꺼려왔던 미국 정부의 강렬한 메시지를 반영했다.

샌디에이고 라메사시의 아트 마드리드 시장은 바바야 공원에서 진행됐던 2천3백만 중공 탈당성원 집회에 특별 축하편지를 보내 2천3백만 중국민중이 자유를 추구하는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 샌디에이고 라메사시의 아트 마드리드 시장이 보낸 축하편지
ⓒ 대기원
캐나다 국회의원 빌 식세이, 페니 프리디 및 캐나다 민주연맹 국가안전문제 위원 데이비드 해리스 등은 편지를 보내 2천여 만 민중들의 탈당에 지지와 격려를 보냈다. 캐나다 BC 의료고용 프레드 뮤진 회장은 “나는 4만2천 명 의료고용회 인원들을 대표해 당신들의 항쟁에 지지를 보낸다. 당신들의 항쟁은 곧바로 우리의 항쟁이다”라고 말했다.

▲ 캐나다 국회의원 롭 앤더스는 “탈당조류는 중국을 개변할 것이다. 우리는 멀지않아 공산주의가 중국에서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 Rob Anders의 개인 홈페이지
캐나다 국회의원 롭 앤더스는 “탈당조류는 중국을 개변할 것이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현재 중국민중들의 각성은 중국사회에 깊은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는 멀지않아 공산주의가 중국에서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는 대기원시보에서 공산당의 행위와 그 진상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심할 바 없이 성세는 언제나 정신적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 편에 있다. 나는 이런 성세가 계속 증가하고 더욱더 커질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토론토=리자(李佳) 기자



관련 동영상: 중국공산당2천3백만 탈당 성원집회 장면-
호주 멜버른

"한국인 5만 명 서명이 구원의 힘"

찰스 리, 가네코 요코 내한 기자회견
중국 내 파룬궁 탄압, 고문 실상 알려

지금 전 세계의 이목 속에 서울행정법원(제6행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룬궁 난민인정불허처분취소 청구 사건”에 최초로 해외 증인들이 한국 법정에 출두하여 중공에 의해 불법 감금되어 직접 고문과 박해를 받은 체험을 생생히 증언하고 이 사실을 폭로하고자7.5 프레스센터에서기자회견을 개최한 내용입니다.

▲ 찰스 리, 가네꼬 요꼬 기자회견
지난 4일서울 행정법원에서 열린 파룬궁 수련자 난민인정불허 취소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법원에 찰스 리 박사와 가네코 요코 여사. 이들은 외국 정부와 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신들도 고문과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며,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의 박해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임을 강조했다.ⓒ 고덕희

찰스 리(李祥春) 박사 1965년 중국 강소성에서 출생, 1987년 중산의과대학 졸업 후 강소성 핵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1991년 미국으로 이민, 2002년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자기공명영상(MR imaging)을 주제로 하여 박사 후 연구과정을 거쳤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자기공명영상촬영센터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였으며 1998년 미국의과대학 교육위원회가 주관하는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한 뒤 2003.1.22.부모님을 뵙고 또 파룬궁 진상을 알리려 중국에 갔다가 광저우국제공항에서 체포된 뒤 강소성 양주시 인민검찰원에 의하여 2003. 2. 28.‘텔레비전 방송 시설 불법 사용 예비죄’로 기소되어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하였음.

가네꼬 요꼬(Kaneko Yoko) 여사는 1964년 중국 흑룡강성에서 출생하여 1985년 흑룡강성 교육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계서市 제17고등중학교에서 8년간 영어교사로 근무한 뒤 계서市 건설위원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음. 1999년 일본인과 결혼하였고 2002년 5월 베이징에서 파룬궁 전단지를 나누어 주다가 체포되어 노동교양 1년 6월의 처분을 받고 복역하였음. 일본 국회의원 21명의 구명운동과 13만 명의 서명운동으로 구출되었음.


[대기원] “그들은 베이징공안병원 지하실 침대에 나를 묶어놓은 채 20일 동안 방치했습니다. 요도에관을 꽂고, 음식 주입관을 코에 넣은 상태였습니다. 당시(2002년) 베이징은 6월말로 섭씨 35도가 넘는 무더위였습니다. 침대에서 풀려났을 때, 이미 욕창이 생겨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문 직후 내게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한국 법정에서 중국 내 파룬궁 탄압의 실상을 증언하기 위해 일본 국적의 가네코 요코(중국명: 뤄룽, 43세)여사와 미국 국적의 찰스 리(중국명: 이상춘, 남, 42세)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증인 심문을 마친 이들은 다음날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 참석, 중국 감옥과 노동교양소(강제노동수용소)에서 그들이 겪은 고문과 학대 실상을 알렸다.






▲ 가네꼬 요꼬 여사 고문 당한 '사인상(死人床, 십자모양의 침대)
ⓒ 고덕희


전단지만 배포했지만 '노동교양 1년6개월'

이들은 지난 1999년 7월 장쩌민 당시 중공주석의 명령으로 금지된 중국전통 기공 파룬궁수련자들이다. 가네꼬 요꼬 여사는 2002년 5월 중국에 입국한 날 베이징에서, 찰스 리 박사는 2003년 1월 광저우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됐다.

헤이룽장성 출신인 요꼬 여사가 체포 전 한 활동은 천안문 광장으로 가는 길에 행인들에게 전단지 몇 장을 나눠준 것이 전부였다. 당시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중국 국적을 갖고 있었던 요꼬 여사는 체포 한 달 후 노동교양을 받았다. 공안(경찰)이 발급하는 노동교양결정은 행정벌칙이나, 처우는 일반 형사범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파룬궁 수련자들의 경우,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간수들의 고문과 일반 재소자에 의한 학대에 시달리게 된다.

요꼬 여사는 수감 중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맞았다고 전했다. 체포 직후 베이징해전구 간수소의 지정병원에서 길이 2m 넓이 50cm인 고문전용침대인 사인상(死人床, 십자가 모양의 고문 전용 침대)에 결박당한 채 사흘간을 방치된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요꼬 여사는 “보통 사인상에 7시간 이상 결박되면 죽는다고 합니다. 많은 수련자들이 이 고문으로 죽었습니다.”고 말했다. 공안(경찰)은 요꼬 여사가 실신한 후에야 풀어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베이징공안병원에서 20일간 침대에 묶인 채 다시 죽음의 고비를 맞아야 했다.



▲ 가네꼬 요꼬, 고문 당한 사인상 소개
ⓒ 고덕희
수면 박탈로 10명 중 4명 정신병

베이징시 여자노교소에 갇힌 요코 여사는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에 시달리며,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세뇌반에 갇힌 한 파룬궁수련자는 2개월 간 수면 박탈을 당해 결국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함께 수감됐던 수련자 10명 중 4명이 같은 고문으로 결국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요코 여사는 “가장 두려웠던 것은 깊은 밤에 (간수들이) 수련자들만 호출하는데,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라 전했다. 그는 일본 언론을 통해,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이 장기적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돌아오지 않은 수련자들이 바로 그 대상이 됐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전했다. 또 2002년 10월, 노교소 내에서 파룬궁수련자들만 전원 신체검사를 받은 일도 있었는데, 이 신체검사도 장기적출의 사전검사라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체포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찰스 리 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광둥성 광저우시의 중산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1년 도미, 일리노이대,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미국 의사자격증까지 받은 엘리트다. 백혈병으로 장쑤성 고향에서 투병 중인 노모를 뵙고, 중국 내에서 파룬궁 실상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졌던 그는 ‘방송시설불법사용 예비죄’란 혐의로 기소돼, 단지 서너 시간 재판 후 3년형을 언도받았다.

리 박사는 감옥에서 시달렸던 ‘피더후이(批鬪會, 비판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방에 사람을 가둬두고 죄수들을 시켜 온갖 인격적 모독과 육체적 폭력을 가합니다. 피더후이는 중국공산당이 반우파투쟁(57-58년), 문화대혁명(66-76년) 등에서 사용한 방식으로 당시 많은 이들이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저는 이에 항의해 단식을 했으나, 단식은 또 다른 박해 구실이 됐습니다. 침대에 결박당한 채 고문의 일종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습니다.”


▲ 찰스 리 난징 감옥에서 만든 캐릭터
ⓒ 고덕희
병든 노모 이용해 수련포기 강요

체포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찰스 리 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광둥성 광저우시의 중산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1년 도미, 일리노이대, 하버드대 등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미국 의사자격증까지 받은 엘리트다. 백혈병으로 장쑤성 고향에서 투병 중인 노모를 뵙고, 중국 내에서 파룬궁 실상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졌던 그는 ‘방송시설불법사용 예비죄’란 혐의로 기소돼, 단지 서너 시간 재판 후 3년형을 언도받았다.

리 박사는 감옥에서 시달렸던 ‘피더후이(批鬪會, 비판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방에 사람을 가둬두고 죄수들을 시켜 온갖 인격적 모독과 육체적 폭력을 가합니다. 피더후이는 중국공산당이 반우파투쟁(57-58년), 문화대혁명(66-76년) 등에서 사용한 방식으로 당시 많은 이들이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저는 이에 항의해 단식을 했으나, 단식은 또 다른 박해 구실이 됐습니다. 침대에 결박당한 채 고문의 일종인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했습니다.”

실제 감옥이나 노교소 내에서 파룬궁 수련자로 하여금 수련을 포기하도록 만든 재소자는 2개월 감형을 받고, 이들에게 동정을 보인 재소자는 형기가 연장된다고 리 박사는 설명했다.

리 박사는 중공이 사용한 가장 잔인한 방법은 병든 노모를 이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간수들은 수련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3년 판결에 승복하면 석방 날짜를 앞당겨 주겠다는 회유책을 썼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남은 생을 모욕 속에서 살고, 정신적으로 공산당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을 하다 강요를 못 이겨 수련을 포기했던 노모가 누구보다 그를 지지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노모는 그가 체포된 후 충격을 벗어나지 못해 끝내 사망했고, 그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 찰스 리
ⓒ 고덕희


“한국인 5만 명 지지서명에 감사”

기자회견 도중 찰스 리 박사는 갑자기 미국 만화영화 ‘심슨네 가족’에 나오는 호머심슨 캐릭터로 만든 실내화를 꺼내들었다. 2006년 3년 수감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중고로 구입한 물건이었다. 바로 그가 섭씨 41도를 오르내리는 난징 감옥 15평 남짓한 작업실에 재소자 60명과 함께 만든 물건이었다. 전일 서울행정법원 파룬궁난민재판에서도 그가 판사들에게 보여줬던 같은 실내화였다.

찰스 리와 가네코 요코는 미국과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각 국 정부, 전 세계 NGO 단체의 서명과 구명 활동으로 자신들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실제로 노동교양결정의 경우 어떤 사유 없이도 공안이 임의대로 연장을 할 수 있다.

찰스 리는 당시 한국에서 사용됐던 구명활동 전단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만 5만 명이 저의 구명활동에 서명해 주셨습니다”
가네코 요코는 일본인과 결혼만 하고 일본 국적 취득 전이었음에도 “일본 국회의원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항의를 해주셨다”고 밝혔다.

리 박사의 경우도 베이징 주재 미국 영사관 직원이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해 육체적 학대가 가해졌는지를 확인하고, 면회 후 보름 후에도 항상 전화로 상황을 점검했다.
하지만 리 박사와 요코 여사는 외국 정부와 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신들도 고문과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며,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의 박해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임을 강조했다. 그들은 한국 법정에서 파룬궁난민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을 염두에 두어, 한국 국민과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정미 기자

중국공산당 실명 탈당 서막 열리나

중국공산당원 2,200만 탈당을 성원하는 집회가 캐나다토론토에서열려

▲ 집회 현장에서 실명으로 중공 공청단 조직 탈퇴를 선언하고 있는 토론토 시민 리샤오바이씨(우)
ⓒ 멍위안(孟圓) 기자
[대기원] 현지시각 20일 오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중국 2,200만 탈당 성원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온타리오주 의회당 건물과 이어진 퀸스 파크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1천여 명의 인사들이 모였으며 특히 현장에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실명으로 중공 관련 조직을 탈퇴해 주목을 받았다.

실명 탈당으로 가장 각광 받은 주인공은 중국 하얼빈 출신인 리샤오바이(李笑白)씨. 그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잔인한 연좌제 정책을 실시했다며 중공공청단과 소선대에서 실명으로 탈퇴함을 공개 성명했다.

리샤오바이씨는 집회에서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17살 때 고모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대륙에서 중공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공안은 고모의 집에서 가족사진을 찾아냈는데 그 사진 속에 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저를 불러 심문했습니다. 지금 제가 손에 들고 있는 문서가 바로 소환장 복사본입니다”라고 증언했다.

역시 실명으로 소선대와 공청단 조직을 탈퇴한 토론토 시민 쑨다리(孫大力)씨는, “실명이든 가명이든 탈당 효과는 같지만 실명으로 탈퇴하는 이유는 마음이 후련하기 때문”이라며 “중공은 사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2,200만 명의 탈당이 이뤄지면서 이제는 종이호랑이보다도 못하게 됐습니다. 중공은 지금 마치 금방이라도 꺼질 수 있는 돌풍 속에 촛불과 같습니다. 이제는 실명으로 탈당할 시기가 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실명 탈퇴는 중국인들이 이제는 중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5년 전만 해도 중국 대륙 사람들은 뒤에서도 중공을 뭐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길거리에서 중공을 욕해도 아무 일 없고 술자리에서 중공을 욕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화제입니다. 이건 중공이 좋게 변해서가 아니라 중공의 힘이 갈수록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공을 욕할 용기가 있다면 중공을 탈퇴할 용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명으로 중공을 탈퇴한 다른 한 중국인 쑤밍(蘇明)씨는, “제가 실명으로 탈당한 이유는 제가 숨길 것이 없고 당당하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중공은 제가 민주화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저를 당조직에서 축출했을 뿐만 아니라 수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제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중공이 독재를 실행한 57년 동안, 거의 중국 매 한 가정에서 재산를 약탈하고 피를 흘리게 했다며 현재도 많은 도시민을 실업시키고 주택과 토지를 빼앗고 있다고 질책했다. 그는 “우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중공과 선을 그어야 합니다. 중공의 죄악은 조만간 청산될 것이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중국인들의 탈당을 격려했다.

이날 실명으로 공청단과 소선대에서 탈퇴한 허우선(候申)과 스칭(石靑)씨도 “우리는 진심으로 중공 조직을 탈퇴하길 원했고 실명으로 탈퇴하니 정말 가슴이 후련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토론토= 장잉(張塋) 기자
"중국공산당 탈당 인원 1,900만명 돌파" 지원행사 열려 ☞공산당 해체되다

中 공산당 1900만명 탈당 축하 퍼레이드

3월 4일 전주역에서...

지난 4일 전주역에서 열린 ‘중공 탈당 1900만 성원행사’의 한 장면. 이 날 행사에는 10여 개 단체가 참여해 중국의 민주화를 기원했다.ⓒ 김진태 기자
[대기원] 중국공산당 탈당 인원이 지난 달 27일 19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지난 4일 전주에서는 이를 성원하는 퍼레이드가 열렸다.

퍼레이드에 참석한 대기원시보, 한중전통문화연구회, 신중국인권사랑동호회, 파룬따파학회 등 10여 개 참여단체 회원 400여 명은 중공 탈당을 지지하고 중국의 민주화를 기원했다.
이 날 중국 공산당 탈당 성원 퍼레이드에 전주 시민들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 시민은 “지금까지 몰랐던 중국의 인권 탄압 실상을 보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공산당은 있을 수 없다”며 “공산당 탈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성원했다.

퍼레이드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나온 한 경찰은 “행사 참가자들이 질서 있고 차분하게 행동해 주어 힘들지는 않다”면서 “오히려 퍼레이드 음악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1900만명 탈당은 2004년 11월, 대기원에서 ‘9평 공산당(9評共産黨)’이란 평론을 통해 중공의 사악한 면을 폭로한 이후 시작됐다.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신앙 등 다각도로 중국공산당의 기만성, 폭력성, 사악함을 전면적으로 폭로한 9평 공산당은 발표되자마자 인터넷, 전화, 팩스, TV, 광고지, 소문 등으로 중국 전역에 확산됐다. 이를 통해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인식한 중국인들은 대기원 웹사이트을 통해 공산당과 그 관련 조직 탈퇴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세계 탈당센터’의 대변인 가오다웨이 박사는 2006년 중국대륙의 탈당 열풍을 정리하는 발언을 통해 “중국대륙의 민심이 각성하고 있고 중공의 군심이 동요되어 당이 붕괴되고 있다. 중공 사당(邪黨)의 해체는 이미 역사의 필연이 됐으며 어떤 힘도 이를 역전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얼마 전 공개적으로 탈당을 선언한 중국 산시성 과학기술전문가 협회 전 비서장 자자(賈甲.55)는 “현재 중국 대륙에서 탈당하려는 사람은 모든 당원의 95% 정도로 추정한다. 만약 천안문 광장에 장소를 지정해 자유롭게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하거나 가입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최후에는 중공 중앙만 남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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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http://www.ntdtv.com http://www.ntdtv.co.kr

http://epochtimes.com/ http://www.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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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2평3평4평5평 6평7평8평9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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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手(Qian shou guan yin)천수관음》에 대하여 몇가지.....

천수관음은 중국장애인 예술단《我的(wo de meng)나의꿈》의 공연으로 모두

21명의 장애인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사진에서 가장 앞쪽에 서있는 배우는

丽华(Tai li hua 타이 후아) 올해 29살의 湖北省(Hu bei sheng)출신으로

중국인들에게 '천수관음 언니(혹은 누나) 불려지면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로

현재 [중국 특수 예술협회 부주석] 맡고있다.

그녀는 2살때 고열로 청각을 잃고 얼마지나지 않아 목소리 마저 잃게된다.

6 생일때 그녀의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새하얀 무용신발 한켤레를 선물하면서

그녀 인생의 가장 전환점을 맏게된다.

15살때 중국 장애인 예술단 무용가들에게 발탁되면서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게되는데

처음 그녀를 가르친 무용선생이 그녀의 청각장애로 인해 전도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몇가지 동작만을 가르쳐 주고는 가버리게 된다.

그녀는 혼자서 밥먹고 자는 시간을 빼곤 일주일 동안 하루종일 피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모습을 보고 감동한 선생이 다시한번 그녀에게 기회를 주면서

정식으로 무용교습을 받게된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이 돋보이게 되는데 2005 중국 CCTV

(chun jie설날)특집프로그램에서 20명의 장애 배우들과 《千手音》의

공연을 성공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된다.



출처 :중국요리 | 글쓴이 : 노태권 원글보기

中장기적출, 은밀히 지하실에서

중국가서 장기이식하면 중국 멀쩡한 생사람 장기이식하는 것이다. 산사람 장기를 이식하는 것은 죄이다.

중국의 사형수는 많지 않다.대부분은 심신수련하는 중국인들을 불법감금하여 그들의 것을 불법이식하는

거라는데..

앵커: 몇달전, 중국에서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들로부터 장기를 적출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캐나다 독립조사관들이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장기들이 적출되어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자: 장기적출만행 보고서를 둘러싸고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NTD 기자가 군병원과 지린(吉林 길림)대학의 제1병원 간이식과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습니다....more
중국내 파룬궁 수련자들의 인권 위기를 감시(2007/1/4 12:51)

• 중국에서 확인된 파룬궁 수련자의 사망자 수 3,000명 이상
• 중국 군 병원,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 사용을 시인
• 파룬궁 창시인,신년 인사에 답례
• 베이징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오스트리아에서 피소
• 호주 외무장관에게 파룬궁에 대한 소송비용 지불명령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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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공산당은 변화했는가?

      중공의 부정부패와 폭정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중공도 차츰 변하고 있으니 좀더 시간을 주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민중들은 긴 시간동안 중공에 많은 기회를 줬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경제는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 발전은 모든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일 뿐 대서특필할 사항이 아니다. 사실 중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인위적인 통제 정책으로 발전이 더뎠고,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당국의 실정으로 경제가 붕괴되기도 했다. 현재 중국 경제가 다소 발전하기는 했지만, '발전'이라고 하기 보다는 '회복'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다.

      중공은 경제 이외에 정치, 사회, 뉴스, 문화, 예술,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계속 통제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발전을 제한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중국 사회에는 법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등 곳곳에 병태가 만연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급속도로 국제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중국인과 중국사회, 중국공산당도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중국 민중의 사상은 점차 자유로워지고 생활도 다채롭게 변하고 있으며, 사회는 다원화되어가고 있다. 오직 중공만이 변할 것인가 변하지 않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현 시점에 중공이 변화하고 있다기 보다는 중국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중국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낫다. 세계는 눈깜짝할 사이에 변화하고 있다. 세계의 변화는 중국의 변화를 이끌고 있고 중국의 변화는 중공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주의할 것은 다만 변화의 과정과 항목에서 중공은 소극적이고 저지하는 역할을 할 뿐 절대 적극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민중도 조급하게 사상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민중의 변화는 주동적이고 중공의 변화는 수동적이다. 따라서 중공의 변화는 영원히 민중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중공은 민중의 지속적인 압력 하에 피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외 비평의 파도가 중공의 변화를 핍박하고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화한 것은 중공의 표면이지 본질은 아니다. 독재과 전제, 거짓말과 폭력, 탐욕과 부패는 여전히 중공의 특성이다. 중공은 여전히 걸어가고 있으며 그 본질은 변치 않고 있다.


      글/ 천포쿵(陳破空, RFA 특약해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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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고어, 장기적출 새 증거 확보

      "중공 여전히 장기적출 진행중"


      검찰 출신으로 캐나다 아태 국무지원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데이비드 킬고어(David Kilgour)ⓒ AFP/ Getty

      중공의 파룬궁 수련자 생체 장기적출 진상을 조사하고 있는 데이비드 킬고어가 장기적출의 새로운 증거 9가지를 찾아 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킬고어씨는 캐나다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장기 적출이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언급하면서 데이비드 메이터스와 이미 30여 나라를 방문해 사건의 정황을 알렸다고 발표했다.

      또 중공이 만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에 박해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각국의 정부 관리와 국민들에게 ‘중국이 인권침해로 발생한 것이 무엇인지, 파룬궁을 어떻게 했는지’라는 표어를 옷에 붙일 것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당국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빠른 시간 내에 박해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큰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킬고어와 메이터스가 지난해 7월 발표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독립조사 보고서는 법률적 관점에서 중공의 파룬궁 수련자 생체장기적출의 진실성을 밝혀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전세계 정계와 사람들 사이에 큰 반향이 일어났고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파룬궁 박해진상 조사단을 구성했고 한국, 대만 , 일본, 말레이시어, 홍콩, 마카오 등은 아시아 연합조사단을 구성하여 작년 말부터 이미 조사활동에 착수한 상태이다. 중공당국은 박해진상 연합조사단의 활동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현재 조사단원들에 대한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조만간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중대국면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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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정한 욥 진실,진상 2007. 1. 12. 17:42

      여호와의 제자 중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호와를 매우 굳게 믿었으며 물질생활도 매우 부유했다. 어느 날 사탄이 여호와에게 말했다. “당신께서 그에게 많은 재산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비로소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재산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곧 당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자신에 대한 욥의 믿음을 고험하기 위해 다음 날 여호와는 사탄을 세상에 내려 보내 하룻밤사이에 욥의 모든 재산과 집을 파괴하고 돌림병으로 모든 친인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오직 욥 한 사람만을 남겨두었다. 다른 사람이 욥을 조롱하면서 “당신은 주를 믿지 않는가? 왜 주에게 당신을 보호해달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욥은 대답했다. “내 모든 것은 내 생명을 포함하여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뜻을 존중합니다.”욥은 나중에 여호와의 천국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주: 《구약성경 욥기》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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