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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1 그림 속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무얼 보고 놀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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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생이 1638~1640년에 그린 유화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185×121cm,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신기원DB
고전예술작품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익숙해서 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림 속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두고 연구하면 알수록 재미있고 마음의 양식도 되는 것이 고전예술이다. 작가가 암시한 화폭에 담긴 비밀을 파헤쳐본다.
천국처럼 아름다운 아르카디아. 서양에서 아르카디아는 동양으로 말하면 무릉도원이다. 이곳에 세 명의 양치기와 한 여인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이 즐겁지만은 않다. 아니 조금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한 남자는 비석의 글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고,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주목하고 있다. ‘아르카디아에 있어도 죽음은 있다(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에 있어도 나는 있다)’. 과연 이 글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프랑스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년)은 작품에 천기(天機)를 담은 화가다. 푸생이 살던 17세기는 예술의 기능이 왕과 귀족문화를 과시하는 것으로 변질되던 때다. 그러나, 푸생은 회화의 최고 목적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선(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규모와 화려함을 추구해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라는 이름까지 얻은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던 때에 푸생은 고대 신화로 눈을 돌려 신이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그림에 담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르카디아의 목자들(Les bergers d’Arcadie)’은 미적으로도 뛰어나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심오한 철학적 이치가 담겨 있어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장약허(張若虛)의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봄 강의 꽃 핀 달밤)’와 매우 유사하다.
아르카디아에 있어도 죽음은 있다
아르카디아는 전설 속의 천국이자 무릉도원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속세에서 멀리 떠난 이상적인 곳이다. 이곳에 양치기 세 명과 한 여인이 등장한다. 양치기, 즉 목자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기도 하고 아르카디아의 아름다운 목가 생활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나타났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건 ‘아르카디아에 있어도 죽음은 있다’라는 명문(銘文)이다. 영원할 것만 같은 천국 아르카디아에 생사(生死)가 있다는 것이다.
천국과 비할 수 있는 아르카디아에 이들이 한데 모여 비석의 명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은 이 문장이 일종의 예언임을 설명한다. 이들이 놀라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죽음’을 겪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 토론하고 깊게 사고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죽음’이란 다시는 이 아름다운 비경(秘境)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세에 남긴 예언
다시 인물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이들 네 사람의 표정만 봐도 충분히 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네 사람의 표정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이다. 놀라고는 있지만, 속세의 사람들과는 다른데, 넓은 지혜와 안목이 엿보인다. 특히 옆에 서 있는 여인의 자태와 옷차림을 보면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다른 세 사람도 자태가 고귀하고 우아하다.
여인은 눈부시게 빛나는 진주와 보석이나 화려한 옷을 걸치거나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자세와 깊게 사고하는 표정으로 볼 때 그녀가 아르카디아의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성모마리아와도 흡사한 자태에서 그녀가 아르카디아를 주재하는 여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깊이 생각해볼 게 있다. ‘죽음’의 예언이 비석의 명문에 나타난 것은 아주 오래전 아르카디아에 있어도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아르카디아의 모세 같은 선조가 특별히 후세에 일깨워주기 위해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여신을 다시 보자. 여신의 표정은 사실 가장 의미심장하다. 우선 그녀는 ‘사망’이라는 예언 앞에서 깊은 사색에 빠진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고 아주 평온하게 사색하고 있다. 높은 경지의 지혜가 있어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녀가 세 양치기와 함께 이 명문을 읽고 사색한다는 것은 그녀가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천국 같은 아르카디아에 문제가 나타나 이곳의 생명들이 죽음의 위험에 닥치게 됐고 점차 멸망으로 가게 된다는 것, 아르카디아의 여신은 깊은 사색 속에서 이미 이곳의 생명을 구제할 생각을 하고 있다.
거장들은 뇌리에 스친 장면을 화면에 담곤 했다. 오랜 전 것 같은 색조와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장면은 마치 회고록 같다. 여신이 비석의 명문을 통해 세계가 멸망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푸생이 이런 장면을 떠올릴 수 있던 것은 신(神)이 그의 재능을 빌어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워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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