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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진상에 해당되는 글 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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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0 中 당국 '톈안먼사태' 25주년 앞두고 초긴장
- 2014.04.02 인과응보를 믿나요?
- 2011.04.18 초능력자가 말하는 자신의 삶과 2012년 (下)
- 2011.04.18 초능력자가 말하는 자신의 삶과 2012년 (中)
- 2011.04.15 미륵불과 메시아: 救世主는 누구인가
- 2009.12.10 천산설연(天山雪莲)
- 2009.12.10 예수에게 사형을 판결한 사람
- 2009.07.12 윤회기실:천재옥아(1)영롱필탑(玲珑笔塔)
- 2008.07.18 中 인터넷은 공산당, 사회주의도 금지어
- 2008.06.09 뚜쟝얜시 재해구에서의 견문, 중공의 사악함을 드러내
- 2008.06.09 대지진은 인간성을 완전히 잃은 공산당 본질을 폭로
- 2008.06.09 뉴욕 플러싱에서 중공의 박해수출 질책
- 2008.05.12 ''녹정기''도 못피한 中 검열 폭탄
- 2008.05.02 생활 속의 당문화(상)
- 2008.04.27 동․식물은 종족보존, 그럼 인간은? 1
- 2008.04.27 중국이란 나라 거짓근성
- 2008.02.20 깨지지않은계란
- 2007.12.06 이덕희 백제종합병원 회장이 밝히는 상고사의 진실
- 2007.11.06 장기 알선업자로 전락한 중국 의사들
글
<중국귀주에서 발견된 중국공산당은 망한다고 쓰인 장자석>
많은 사람은 예수를 믿고 석가모니를 믿는다. 이 두분은 진실만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 두뇌가 열려있었다. 聖經(성경)이나 佛經(불경)이나 나중에 제자에 의해 기록되어졌지만 眞理(진리)이다. 그러나 제자가 기록으로 남기면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기록에서 빼거나 자신의 인식으로 고쳐서 기록한 부분이 있어서 두 분 성자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된채 내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천국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가 아니다. 석가모니 말씀에 의하면 부처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 했다. 한사람의 부처가 하나의 천국을 주지하니 천국도 모래알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은 천국이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이 작은 별에 지상나라가 200개가 넘으니 이 넓은 우주에서 천상나라 천국이 당연히 셀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분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신으로 승화하여 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다. 사람의 私的인 욕구, 칠정육욕이 없고 자비와 무한한 사랑이 있다. 모든 일은 다 이해관계가 있는데 사적인 利己心(이기심)이 있다면 바른 말, 바른 행동을 하기 어렵다. 석가모니는 死後(사후) 2500년후에 말법시기가 오고 그때에 이르면 전륜성왕(轉輪聖王,미륵,금륜왕)이 지상에 下世(하세)해 중생을 구원한다고 했다. 석가모니가 기원전 5백수십년에 태어나셨으니 계산해보면 말법시기란 서기 2천년전후로 석가모니가 설한 불법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시기가 된다고 했다. 물론 이때가 되어 석가모니의 불경이 안 된다면, 다른 모든 성서를 포함한 地上의 어떤 경전으로도 중생을 구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구도자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신은 얼마나 있는가. 신(神)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리이스신화, 로마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지 없는 것을 거짓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지구상에 각 나라의 왕(대통령,총리)은 한분이지만 200개가 넘는 나라마다에 왕이 있는 것처럼 천국이 하나가 아니고 수없이 많은 천국이 있다. 석가모니가 말한 극락세계, 유리세계, 연화장세계 등은 다 천국이다. 만약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면 석가모니는 거짓말만 한 사람에 불과하고 그의 말을 진리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까지 불교를 믿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불교도 없어졌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면 보는 곳마다 모든 하늘에 전부 별나라이다. 하나뿐인 것은 한 나라에 왕이 하나뿐이지 지구상에 나라가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도 하나뿐이 아니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우주가 있고 그속에는 수많은 별나라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이 천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의복의 모양이나 색깔 디자인이 다 천상의 것을 가져왔고 사람의 머리모습이나 지팡이, 반지, 목걸이, 귀걸이, 팔찌, 수염모습 등 많은 것이 천상의 것을 옮겨 하고있는 것이다.
석가모니에 의하면 말세에 성인이 나타나 인류를 구원하는데 성인(聖人)이 나타난후 우담바라 꽃이 어디서나 핀다고 했다. 20년쯤 전부터 성인이 이미 와 계심을 알리는 우담바라는 한국에서 1997년7월22일 경기도廣州 곤지암 ‘우리절’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후 2000년7월21일 대전 광수사에서 2000년10월 6일에는 의왕시 청계사에서 등 2000년 들면서 부쩍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리고 중국대륙, 홍콩, 대만, 북 캘리포니아, 뉴욕 그리고 텍사스등 세계전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聖者(성자)가 천상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온 것처럼 우담바라는 天上(천상)의 꽃인데 이 특수한 시기에 지상에서 핀 것이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이끌 사람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은 이미 지상에서 활동하고 있음이 분명하고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천상에 연꽃이 있고 지상에 荷花(하화)라는 연꽃 비슷한 꽃이 있다. 말하자면 蓮花이라는 이름은 천상의 꽃이지 지상의 꽃은 아니므로 지상의 꽃은 중국에서는 하화(荷花)라고 천상의 꽃과 구별하여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연꽃으로 부른다.
중공이 통제하는 중국대륙의 신문매체에서도 처음에는 우담바라 꽃이 핀 것을 보도했다. 그에 대해 중공정권은 조용히 불경(佛經)의 진실, 부처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들이 종교를 迷信(미신)이라 하고 신이 없다며 “무신론”을 선전했던 것과 상반된다. 하지만 중공정권은 우담바라 꽃이 지린省 더후이市에 있는 파룬궁 수련생집에서 발견된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아주 두려워졌다.
전파는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전파가 와 닿았기 때문에 ‘TV’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데 전파를 사람이 보지 못한다고 TV드라마가 엉터리고 뉴스가 엉터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 현미경이 없이는 미생물을 관찰할 수 없는데 미생물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안 된다. 우담바라가 핀 것을 어떤 생물학자는 풀잠자리알이라고 억지주장을 하는데 비슷한 것은 지구상에 얼마든지 있다. 사람과 비슷한 것에 원숭이 고릴라,침팬지등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와 비슷한 것에 고양이, 삵괭이, 치타, 표범이 있듯이 천상의 꽃 우담바라가 지상에 피었다하니 그렇게 마구 말해서야 되겠는가. 풀잠자리알은 다 아래를 향해 맺히는데 어떻게 거꾸로 하늘을 향해 핀 우담바라 꽃이 풀잠자리 알일 수 있겠는가. 또 여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듣게 되었다 하여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한다면 아마 천벌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6월, 중국귀주성 평탕현에서 한 거대한 돌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 발견되었다. 갈라진 돌의 표면에는 “中國共産黨亡”이 쓰여 있다고 한다. 이 돌은 “장자석(藏字石; 글자가 새겨진 돌)”이라고 불리는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돌은 2억7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여섯 글자는 바로 ‘중국공산당망’으로 ‘중국공산당은 망한다’는 뜻이다. 중공(중국공산당;중국)은 맨 뒤 글자 ‘망’을 빼고 다섯 글자만 돌에 새겨진 것처럼 거짓되게 인민들에게 알리며 ‘중국공산당’이란 글자가 새겨진 돌이 나타났다고 선전했다. 중국이 공산당이 통치를 시작한 1921년이래 공산당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권리주장인 정권에 부정적이거나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인민을 학살하였는데 그 수가 8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숫자는 우리 남북한 인구를 합한 인민을 중국공산당이 죽였음을 의미한다.
물론 천상에는 용이라던가 봉황이라던가 천상의 기린 등이 있지만 이것들은 지상에는 없다. 지상의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면 사람들은 ‘상상의 동물’이라고 부른다. 상상의 동물이 어찌 다 모습이 같은가. 용의 모습을 보면 머리부터 꼬리까지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해냈는가. 어떻게 사람마다 똑 같이 그릴 수 있겠는가. 용의 형상은 다 같기 때문인데 모습이 다르다면 사람마다 그린 용이 다 다를 것이다.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것은 용을 본 사람이 많고 그 중에 용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화가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를 닦거나 부처수련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용을 보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용은 우리는 동물로 보지만 다 신(神)들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에서 온 보리스카라는 소년은 금년 17세인데 그는 전생에 화성에서 살았으며 지구를 자주 방문하곤 했다고 밝혔다. 보리스카는 혼자 우주선을 타고 다녔는데 그가 지구에 온 목적은 중국에서 탄생한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사명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영적 지도가가 누구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보리스카는 명확히 누구라고 지적하진 않았다. (이것은 천기로서 마음대로 발설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지금 인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으며 또 수많은 신(神)들이 그를 따라 함께 지구로 환생했다고 보리스카는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인류의 도덕승화와 인류의 건강을 위해 무료로 파룬궁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중국에서 출생한 리훙쯔란 분이 이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大法(대법), 법륜대법, 파룬따파,법륜공등으로 불리는 파룬궁은 예언이 말한 중국동토(東土;중국동부) 장춘지방 출신인 리훙쯔(李洪志)란 분에 의해 1992년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중국정부는 전면적으로 그의 파룬궁을 지원하며 수많은 상을 수여하고 온 매스컴을 동원하여 인민들에게 파룬궁이 건강에 좋다며 수련하도록 유도했다. 당시 그가 쓴 ‘전법륜’은 중국의 베스트셀러였고 몇 년만에 중국인 1억명이 넘게 온 천지에 수많은 인민들이 모여 아침마다 수련하는 것을 당시 주석 장쩌민이 보고는 안 되겠구나 싶어 정책을 결정하는 상무위에 부쳤으나 상무위원은 전원이 정부에서 여태 장려한 것과 파룬궁은 건강을 보장하는 심신수련법이고 국가에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며 단속해서는 안 된다고 했음에도 장쩌민은 질투심에서 혼자 독단적으로 갑자기 말을 바꿔 온갖 구실을 대어 몸에 해롭다며 파룬궁수련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500년전에 쓴 ‘제세기’에 1999년7월에 공포에 대왕이 내려온다 한 것은 파룬궁 박해가 1999년7월20일에 시작됨을 예언한 것이다. 리훙쯔 이분은 지금 전세계 백수십개 국가에 무료로 파룬궁을 전파했으며 노벨평화상수상자 후보에 연속적으로 몇 년간 선정되기도 했다.
파룬궁은 종교가 아니고 심신수련법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종교가 되려면 첫째 신앙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둘째 사찰이나 교당, 성당, 교회, 도관 등 신도들이 예배를 보거나 모일 곳이 있어야 하고 셋째 헌금, 시주, 기부금을 받아 운영해야하는데 파룬궁은 세가지중 한 가지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을 향해 절을 하지 못하게 할 뿐아니라 수련을 공원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하도록 하여 일체의 돈을 걷지 못하게 했다.
이 세상에 정말 좋은 것은 다 공짜이다. 돈을 받지 않는다. 하늘의 ‘태양’의 빛과 열이 공짜인데 이것이 있어야 생명이 살 수 있는데 모든 생명과 물질은 태양을 공짜로 쬘 수 있다. 만약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암흑천지가 되어 영하 몇백도의 얼음으로 덮힐 것인데 사람이 살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태양인가. 또 하나의 공짜를 들면 우리가 숨쉬는 ‘공기’이다. 이 공기 속에는 산소가 있어 사람이나 동식물은 이 산소가 없이는 잠시도 살아있지 못한다. 지상에 사람이 있게 된 것은 이 공기와 태양의 덕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를 들라면 바로 무료로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는 전세계적인 파룬궁이 아닌가 싶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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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추모 세미나에 참석한 푸즈창 변호사 (우측 앞) |
5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톈안먼 사태 추모 세미나에 참석했던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을 비롯해 베이징영화학원의 하오젠 교수와 반체제 인사 후스건(胡石根) 등이 중국 당국에 의해 외부와의 연락이 중단됐다고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세미나에는 칭화(淸華)대 위화(于華)ㆍ친후이(秦暉) 교수, 베이징영화학원 추이웨이(崔衛平) 교수, 중국청년정치학원 왕둥청(王東成) 교수 등 자유파 학자들과 톈안먼 어머니회(이하 어머니회) 장셴링(張先玲) 대표 등 많은 민주화 인사들도 참석했습니다.
RFA는 또 중국 당국이 지난달 29일 베이징(北京)대 여대생 신분으로 문화혁명 기간 우파로 몰려 총살된 린자오(林昭)를 추모하던 인권 운동가 100여 명을 연행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이들 민주 인사들은 세미나에서 톈안먼 사태의 진상이 왜곡되고 은폐된 것이 오늘날 중국 사회가 부패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공개를 당국에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홍콩 언론들도 또 반체제 유명 여성 언론인인 가오위(高瑜·70)가 지난달 26일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으며, 이후 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중국과 해외에서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맞아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이 사태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점점 거세지자 청명절을 전후해 어머니회 회원과 일부 민주 인사들을 가택 연금시키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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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나 人災는 인간의 사악함을 하늘이 내린 징벌이다.>
나의 친척 중에 작은 장사를 하는 고모부가 있다. 어릴 때 “고모부, 장사를 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고모부는 “한근을 팔 때 9냥 어치만 준단다.” 당시 나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때 나는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인과응보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속으로 ‘무게를 속여 돈을 벌어서 잘 지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성장한 후 나는 고모부의 장사가 잘되지 않고 살림이 빠듯해진 것을 발견했다. 아들들은 전부 멍청했고 억지로 장가를 보냈지만 살기가 어려웠다. 이는 무게를 속여 현세(現世)에 보응을 받은 것이 아닌가?
중학교 다닐 때 우리집 앞에는 노점상이 많았다. 모두들 학생들의 돈을 벌려는 것이다. 그중 한 노점상 할머니가 자랑하듯이 말했다.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을 척보기만 해도 한눈에 그의 돈을 얼마나 빼낼 수 있을 지 안다.” 다시 말해, 속일만한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질량을 속이거나 남을 곤경에 빠뜨려 재물을 버는 것을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전통문화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했을까? 옛날 어떤곳에 조덕방(趙德芳)이란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형편이 아주 좋았고 재물이 풍족했다. 슬하에는 아들이 셋이었고 또 모두 결혼해 아내가 있었다.
그가 60세 되던 해에 세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잘 들어라. 당초 나는 남을 속여 출세했으며 마음을 속여 이익을 취했고 맨손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내가 가업을 세운 것은 바로 속이 빈 저울이다. 저울에 수은을 채우면 물건을 살 때 20냥을 한근으로 쳐서 살 수 있는데(옛날에 16냥을 한근이라 했다) 팔 때는 14냥을 한근으로 했다. 20년 전 나는 수천 근의 면화를 샀는데 한 근마다 4냥을 더 얻었다. 면화를 파는 사람은 손해를 보아 밑천을 물어주고 화병으로 한을 품고 죽었다. 내 마음속에 이 일이 늘 부끄럽고 편안하지 못하구나. 또 약재상이 하나 있었는데 역시 나 때문에 죽었다. 또 있다... 오늘 나는 이런 가업이 있을 뿐 아니라 자손이 가득하다. 하지만 죽은 상인들을 생각하면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고 편히 잠을 잘 수 없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나는 오늘 이후부터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 너희들 앞에서 이 속이 빈 천칭저울을 부수고 더는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 아들이 듣고 말했다.
“아버님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지요. 저희는 모두 아버님을 지지합니다.” 노인은 즉시 그 저울을 부수어 버렸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말처럼 착한 일을 하고 선을 베풀었다.
하지만 풍운을 예측 못하듯이 뜻밖에 조덕방이 저울을 부수어 버리고 착한 일을 한 이후 집안은 오히려 불행이 연달았다. 한달도 안 되어 큰 아들이 급사했고 며느리는 다른 사람에게 개가했다. 노인이 큰 아들 장례를 치르자마자 갑자기 둘째가 또 폭사했으며 며느리 역시 개가했다. 그가 둘째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또 셋째가 사망했다. 셋째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기에 개가할 수 없었다.
집안에 줄초상이 생기자 노인은 매우 괴로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저울을 속여 검은 돈을 벌 때는 오히려 자손이 그득하고 재물이 잘 일어났는데 이제 좋은 일을 하는데 도리어 불상사가 생기는구나. 이것으로 보니 인과응보는 순전히 허구이구만.” 이웃들도 듣고 모두 하늘이 눈이 없어 불공평하다고 했다.
어느 날 셋째 며느리가 출산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삼일이 넘어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산파를 여럿 불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이 때문에 산모가 살수 없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산모 때문에 아이가 살 수 없다는 등등 말만 많았다. 노인은 집에 잇달아 불행이 오는 것을 보고 초조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했다.
바로 이때 떠돌아 다니는 스님 한 사람이 탁발하러 이 집에 들렀다. 대문 안에서 집안일꾼이 말했다. “대사님, 동냥을 다른데 가서 하시면 안 됩니까? 우리집 셋째 부인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사흘이 지나도 못 낳고 있습니다. 주인어른께서 경황이 없어 접대할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불교와는 인연이 없으니 아마 아무것도 희사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아, 걱정 마시고 가서 주인장에게 알려주십시오. 이 노승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 출산촉진약이 있으니 이 약을 먹으면 즉시 낳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일꾼이 이 말을 듣고는 즉시 돌아가 보고했다. 노인은 마침 마음이 조급한 상태인지라 일꾼의 말을 듣고는 얼른 스님을 청했다. 그래서 스님을 서재로 모셔 상좌에 앉히고 어느 사찰에서 오신 분인지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나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인지라 사찰이 따로 없고 인연 따라 다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약을 꺼내주었다. 노인은 얼른 며느리에게 약을 보내고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후 보고가 며느리가 스님의 약을 먹고 아들을 낳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덕방은 손자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스님에게 말했다.
“성승(聖僧)께선 진짜 신선이십니다.”
하고는 즉시 사람에게 분부하여 대청에 한상 크게 차리게 했다. 대화하는 동안 음식이 차려지고 노인은 스님을 청해 자리에 앉게 했다.
노인이 말했다. “스님 제게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스님이 묵묵히 허락하자 그는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에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과거에 저는 빈 저울로 무게를 속여 남을 해쳤습니다. 몇 년 전 그 저울을 부셔버리고 그때부터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좋은 일을 했는데 뜻밖에 반년도 안 되어 세 아들이 줄초상이 났고 며느리 둘은 개가했으며 셋째 며느리가 겨우 손자를 낳아 그저 자손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쁜 짓을 할 때는 부자가 되고 집안이 잘 되었는데 선행을 한 후 왜 악보(惡報)를 받아야 합니까?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선악의 인과응보는 그림자처럼 확실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내 분명히 알려주리다. 당신의 첫째 아들은 원래 당신이 해쳤던 약재상이요. 당신이 그를 죽게 했으니 그가 당신 아들로 태어나 원한을 갚으려 했던 것이오. 둘째 아들은 당신이 속였던 면화상인이요. 그 역시
당신 집에 태어나 집을 망치게 하여 원수를 갚으러 왔던 것이오. 셋째 아들 역시 당신이 빚진 업으로 여러 가지 악연을 지었소. 그는 당신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재난을 주려고 왔는데 당신이 나이 들면 반드시 심하게 아프고 굶어죽게 하려고 틈을 보고 있었소. 당신이 만약 정말 악을 고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이런 종말이 왔을 것이오. 그나마 당신이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운명을 바꾸었기에 하늘이 당신을 망치려던 세 아들을 차례로 데려가 큰 화를 모면한 것이오.”
조덕방이 이 말을 듣고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성승의 가르침에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제 우둔함을 알았고 선악과 인과의 천리(天理)를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손자를 얻었으니 이 아이가 성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손자가 아버지 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인지 또 제게 빚을 받으러 온게 아닌 지 걱정스럽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의 업보는 이미 다 갚았습니다. 이 손자는 장래 당신 집안을 밝게 해줄 것인데 이는 당신의 선행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조덕방은 듣고 매우 기뻐하며 선행에 더욱 더 신심이 굳어졌다.
스님이 또 말했다.
“당신은 천칭 저울로 왜 16냥을 사용하는 지 아십니까?”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북두칠성, 남두육성(南鬥六星), 게다가 복록수(福祿壽) 삼성(三星)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한냥을 덜 주면 복(福)을 손해 보고 두 냥을 덜주면 녹(祿)을 손해 보며 세냥을 덜주면 목숨(壽)을 손해 보며 더 적게 주면 줄수록 손해가 더 많습니다. 나쁜 저울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 지 생각해보시오.”
조덕방은 스님의 말을 듣고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정말로 두려웠다. 그는 경건하게 재차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내심으로 선악인과는 틀림없다는 도리를 믿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고모부가 장사하면서 남에게 질량을 속여 덜 주었기 때문에 아들이 어렵게 살고 또 아들들이 멍청해졌으며 이는 인과응보임을 알았다. 중공은 이것을 타파해야 할 미신이라고 하는데 인과응보의 이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천리는 곧 천리다.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이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천리에 부합하고 천리에 순응하면 반드시 부국강병한다. 천리에 위배되고 역행하는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
‘9평 공산당’을 읽고 나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중공은 天理를 역행하는 사악한 조직으로 중공 정권은 바로 깡패정권이며 서양에서 온 유령이다.
중공은 바로 이 유령이 인간의 인체에 나타난 것으로서 정말 인류를 훼멸하려고 온 것이다. 때문에 그것이 선전하고 행한 짓은 모두 반인류적이고 반우주적이며 반인성적이다.
전통문화는 유신론(有神論)을 말하지만 중공은 무신론(無神論)을 말한다. 또 전통문화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말하며 사람과 대자연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을 말하지만 중공은 투쟁철학을 강조하고 인간관계를 정글의 법칙과 잔혹하고 무정한 계급투쟁의 관계로 본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윤리가 완전히 뒤집어졌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나쁘게 변질되었으며 중공 사당의 거짓, 사악, 투쟁이 처세 표준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중공의 사악한 유도하에 천리를 해치고 있다. 특히 파룬궁 박해 중에 수많은 사람이 공산당 당문화에 이끌려 파룬궁 박해에 가담했다.
물론 파룬궁 진상을 마주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성하고 박해를 중단했으며 파룬궁수련자를 선량하게 대했다. 또한 중공 관련조직을 탈퇴하라고 진상을 알렸다. 이는 진정한 속죄이자 자신과 가족에게 좋은 미래를 다져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어리석은 자들은 여전히 박해에 가담하고 있다. 수련자들이 여전히 자비로 진상을 말하고 박해받는 와중에도 생명을 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인과응보는 하늘의 이치다. 피비린내 나는 파룬궁박해를 도발한 자들(혈채파;피를 채취하는 정부관료란 뜻으로 생체장기적출을 하는 집단)은 이미 보응을 받고 있고 두려움에 떨며 단 하루도 편안히 지내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중공의 내부 권력투쟁에서 세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은 죄악에 대한 보응이다.
오늘의 선택은 생명의 미래와 영원을 결정할 것이다. 선과 악 앞에서 중공의 유혹 하에서 진선인을 믿는 선량한 민중을 박해하는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감옥, 당, 정부 등 관련자들이 부디 하루 속히 지혜로운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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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오성은 지능의 높고 낮음, 총명 여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심리상태가 평화적이고 정서와 관념, 욕망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인 사고와 자주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오성이 높은 사람이다. 예를 들면 불경에서 말한 내용을 오성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주입한 후천적인 관념으로 가늠한다. 당연히 그는 불경의 크고도 넓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오성이 높은 사람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모든 관념을 버리고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는 불경의 함의를 이해하는 만큼 높아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근(慧根)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선천적으로 초능력이 있는 사람을 바로 혜근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틀렸다. 혜근과 초능력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쩌면 당신 같은 일반인이 신기한 일을 겪어보지 못했고 초능력을 믿지 않더라도 혜근이 깊을 수 있다. 그럼 혜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선량하고 순진하며 부처를 향한 확고한 마음을 뜻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불성(佛性)이 있지만 인간세상의 미혹 속에서 차츰 잃어버린다. 선량한 마음이 들 때면 그때가 바로 불성이 나온 것이며, 이 선량한 마음이 가장 큰 혜근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불성 지녀
불가에서는 늘 부처의 문은 넓지만 인연 없는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인연’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 두 가지로 나뉜다. 인연은 모두 당신이 인간세상에 환생하기 전에 다 배치해 놓은 것이다. 계약서를 맺은 것과 흡사하다. 환생하기 전에는 계약서 체결을 잘 하고 환생한 후에는 계약서대로 행해야 하는데 대체로 이런 뜻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금세에 부처와 인연 있는가 묻는데 이 오독악세(五毒惡世)에서 인간의 몸으로 전생했다면 반드시 부처와 인연이 있으며 오로지 당신이 의지가 확고하면 반드시 정각(正覺)을 얻을 것이라 나는 알려준다.
자비는 불가에서 쓰는 단어다. 자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 세상의 ‘사랑’을 말해보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사물에 대해 무조건 받아들이고 보답,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준다면 당신은 이 사람, 혹은 어떤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외에 또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요구를 제한 없이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원칙 없이 상대방의 착오를 봐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친 사랑’으로 된다. 사실 이는 상대방을 해치는 것과 같다. 소위 말하는 자비의 표면적인 뜻은 바로 이성(理性), 박대(博大), 깊은 사랑이다.
지금의 세계는 바로 불경에서 말하는 험악하디 험악한 오독악세이자 이른바 말법시기다. 사회에 전해 내려온 각종 종교, 신앙, 수련 법문은 무엇이나 다 있지만 이 중에는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이 섞여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사도(邪道)에 잘못 들어서 결국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선악과 바르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까? 이는 아주 관건적인 문제로서 당신이 이 단락을 자세히 읽길 바란다. 만약 한 번 봐서 잘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 될 때까지 여러 번 보라. 나는 정말로 당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부디 믿어주길 바란다.
선과 악을 가늠하는 표준은 다르다. 인간세상에서 선악을 가늠하는 표준은 사실 이익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만약 국익을 지켰다면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할 것이다. 또 만약 그가 당신에게 잘 대해 주고 그의 행동이 당신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면 그를 선량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의 언행이 당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을 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 일을 생각해 볼 때 내 말이 맞지 않은가? 하지만 이익이라는 잣대로 불법 수련의 선악을 가늠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절에서 불상에 절을 할 때 구하자고 하는 것은 돈벌이, 승진, 액땜, 혼인 등이다. 이런 요구는 모두 인간세상의 이익이 아닌가? 이런 사람들 마음속엔 그의 이익을 만족해 주는 신은 바로 바른 것이며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익을 만족해 주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 인간세상의 표준으로 신과 부처의 선악을 가늠해서 되겠는가?
오늘날 종교는 모두 부패해 사교로 변질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불교, 도교, 기독교도 포함된다. 소림사 주지 쓰융신, 중국도교협회 리이 부회장, 진화론을 인정한 로마 교황을 보면 당신은 이 점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일부가 아직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종교의 정체를 알고 보면 확실히 부패했다. 종교 지도자들부터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신과 부처를 믿지 않는데 어찌 이런 종교가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사람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종교와 신앙은 별개라는 점이다. 소위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 낸 형식에 불과하지만, 신앙은 법(法)과 도(道)이자 진리다. 불교와 불법은 그래서 다른 것이다. 불교는 불법을 대표할 수 없으며 불교가 부패했다고 해서 불법도 부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수련하는 것은 불법이며, 불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같은 이치로 불교와 기독교가 부패했다고 해서 석가모니와 예수가 부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법(邪法)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이익이다. 모든 사악한 신앙과 종교단체가 홍보하는 것은 이익으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교가 당신에게 ‘어서 오세요, 여기에 오시면 집이 생기고, 진급하고, 월급이 오릅니다’라고 말하고 혹은 ‘우리는 폭력을 숭배하고 단결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부유한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똑같이 나눕시다’라고 말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께 묻는다. 탈레반, 나치스, 폭력조직, 기타 단체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수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가? 사교의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은 바로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당신을 공격하고 심지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른 법과 바른 신앙은 그렇지 않다. 선을 권하며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며 자비롭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하며 이치를 깨닫게 하고 이성과 선량함을 일깨워 폭력을 버리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법과 바른 신앙, 바른 수련은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걷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떤 수련이 바른지 사악한지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에 의거하지 말고 반드시 이성과 양심으로 스스로 깊고 자세히 알아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부가 사교라고 규정할 때, 당신은 정부의 판단을 수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이것이 이성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을 책임지는 태도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어떤 정부가 강대하다고 할지언정 인간세상의 정부로서 무슨 자격으로 신과 부처가 창설한 수련 법문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 정부가 그렇게 정확한가? 그러므로 어떤 수련과 법문의 바르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이성과 양심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양심이 정사를 가리는 척도이며, 당신의 오성과 혜근의 진실한 체현이다.
◆선과 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어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의 이성과 양심으로 필자가 한 말이 일리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을 위함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라. 만약 당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필자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해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 누구든 당신의 자유 의지를 박탈할 수 없으며 사람은 자신의 길과 미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2012년에 대한 갖가지 설이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2012년에 천지를 뒤흔드는 대재난이 닥쳐 인류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과연 이러한 일이 있을까? 없을까? 이에 대해 내가 명확하게 당신에게 말한다면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나와 당신 모두 화를 모면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법을 수련하고 믿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든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 세상은 오독악세다. 그럼 독과 악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모두 신앙의 붕괴에서 시작됐다. 특히 중국에서는 신앙이 사라졌으며 중국인들은 오로지 돈을 추구할 뿐이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으면 신도 사람을 버린다. 신이 자비롭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독악세는 영원할 수 없다. 이른바 2012년은 이에 대한 한차례 숙청이다. 이때가 되면 악한 자는 응당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공덕을 쌓은 자는 자연히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늘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으며,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2012년은 선이든 악이든 보응의 시기가 왔음을 말한다. 사람이 역사의 긴 시간 동안 한 일들이 모두 이때 심판 받는다.
앞에서 필자가 신앙에 대해 언급하고, 정사를 어떻게 가릴 수 있는지 말했을 때 어떤 사람은 폐부가 찔린 것처럼 안절부절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독악세다. 왜 중국인은 신앙이 없으며 중국 사회의 신앙은 붕괴됐는가? 그건 당신이 신앙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가 강제로 당신의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박탈했는지 생각해 봤는가?
인생은 연극 같으며 세상 일은 바둑과 같다. 사람의 운명, 사회의 흥망성쇠는 모두 다 짜여진 대로 움직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에게 아무런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앙이다. 어떤 신앙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미래가 결정되며 심지어 미래가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 한 사람이 정법 수련에 들어서거나 정법 신앙이 있다면 그의 운명에는 변화가 생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필자가 말한 도리를 인정한 것이며, 당신도 선량하고 부처를 향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도 미혹 속에 있기에 많은 관념과 학설, 지식이 당신을 교란해 당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게 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마음속의 어둠을 걷어줄 정법과 신앙을 찾지 못했는데 필자가 한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필자에게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 법을 전해줄 수는 없다. 필자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 글을 다 읽은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더 말해도 쓸모없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필자가 당신에게 알려준 정과 사, 신앙을 선택하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를 포함한 어떤 사람, 어떤 관념이 당신의 판단을 흐려도 자신의 양심으로 스스로 선택하길 바란다.
둘째, 만약 앞으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정법을 전한다면 그것은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기에 꼭 열심히 법리를 보고, 자세히 정사(正邪)를 가려서 당신이 정법이라 확신한다면 당신이 선택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인즉 기연을 잃으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당신 자신의 선택은 바로 자신의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기에 당신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면 후회해도 늦다.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정법을 얻기 힘들고 동방에서 태어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 정법을 얻고 정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이런 기회는 얻기 어려운 것으로 마지막까지 읽은 당신들이 자신의 양심과 선한 혜근을 소중히 여겨 다음 기회를 기다리길 바란다. 만약 인연이 된다면 2012년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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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옌숭(白岩松)의 말에 의하면 고물 줍는 나날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풍찬노숙하며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에 땟물이 흐르며 경찰의 꾸지람과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은 모든 고물 줍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난이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노숙자를 봐 왔으므로 여러분은 다 알 것이다. 그러면 고물 줍는 생활의 쾌락은 무엇일까? 바로 자유다. ‘3년 거렁뱅이 황제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자유롭고 구속이 없으며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일반인은 이런 쾌락을 체험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평생 고물 줍는 사람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시안에서 몇 년 있다가 서서기가 퇴직하거나 다른 지방으로 전근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계속 내가 하던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 후 시안에는 세계를 진동시키는 큰 일이 발생했는데 내 계획을 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운명까지 바꾸었다.
나는 고물 줍는 생활에 아주 충실했다. 매일 밥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자 따뜻한 곳에서 추위를 막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가운데 시간은 어언 1986년 12월이 됐다. 어느 날 오전 내가 거리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가 변한 듯 온 도시가 눈부시고 강렬한 빛에 휩싸였다. 나는 무슨 일이 발생 했는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며 이 빛의 출처를 찾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었고 주변 사람들도 나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태양이 다섯 개다!”라고 외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맙소사, 정말 다섯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나는 여태껏 이런 광경을 본 적 없었다. 하늘 주위가 모두 태양이었는데 동서남북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나를 더욱 흥분하게 한 것이 있었다. 하늘에 은은하고 거대한 영상이 나타났는데 이 영상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석가모니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초능력이 있지만 이전에 절에 가 부처에게 절을 해도 귀신은 본 적 없었고 부처의 법상(法像)을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은연중에 구천(九天) 밖에 반드시 인류가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로 이날부터 나는 불법을 배울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생각한 나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몇몇 절을 찾아가 알아보았지만 결국 절에서는 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곳은 나에게 돈 몇 푼을 주었고 나쁜 곳에서는 직접 나를 쫓아냈다. 이런 냉대를 받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바로 나의 옷차림이 너무 허름하여 거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출가하려면 반드시 먼저 돈을 좀 벌어 상황을 바꾸어야 했다. 어떻게 돈을 벌까? 고물을 줍는 것으로는 안 되겠기에 생각 끝에 나의 본업인 점보는 일을 하기로 했다. 1년 동안 모은 백 위안으로 목욕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한 옷으로 바꾸고 시안(西安) 뚱관(東關)의 빠셴안(八仙庵) 부근에 점치는 노점을 차렸다.
◆돈 많이 벌자 욕심 생겨 수련은 뒷전
빠셴안은 시안에서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은 절이었는데 타지방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때 빠셴안 주위에는 몇몇 점치는 노점을 벌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나의 관찰에 따르면 장사가 괜찮아 하루에 20~30위안은 버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동전3개로 고객에게 점을 치게 하고 주역으로 풀이했다. 나도 그런 모습을 흉내 내어 그런 자세를 취했지만 물론 주역은 모르고 초능력으로 보고 손님들에게 말했다. 나는 인체투시를 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를 잘 맞추었으며 아주 빨리 이름을 날려 수입도 수직 상승했다. 처음에 나는 1위안을 받았었는데 1987년 4~5월경에는 점 한번 치는데 5위안을 받아 하루에 백십 위안 정도를 벌었다.
돈이 많이 들어오자 생활 조건도 자연히 나아져 나는 잠시 시안 남쪽 교외에 있는 개인주택에 세 들어 살면서 생활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고물 줍는 사람이었던 것을 모른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자 점차 내게도 탐욕이 생겨 불법 수련을 하려던 생각은 뒷전에 두고 돈벌이에만 전념했다. 얼마 후 나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시안으로 모셔왔다. 그 후 우리 일가는 시안에서 안정을 찾아 보통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했다.
하루하루 나는 계속 평범한 생활을 했으며 점을 잘 본다는 내 명성은 갈수록 높아갔고 돈도갈수록 많아졌다. 1992년, 나는 시안에 15만 위안을 들여 사합원(四合院: ‘ㅁ’자 형태의 마당을 4개 건물로 둘러싼 화베이, 베이징지역의 전통건축 양식)을 샀고 형님과 누나들도 시안으로 데려왔다. 계속 이렇게 살았더라면 아마 나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사회에서 성공한 인사가 됐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초능력을 하사하신 것은 절대로 나더러 인간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부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게 한 것은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1993년 6월 TV에서 쓰촨(四川) 어메이산(峨嵋山)에 ‘불광(佛光)’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방송됐다. 나는 당시 석가모니 법상을 본 기억이 나서 어메이산에 가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7월이 되어 나는 혼자 어메이산에 올랐다. 당시 어메이산에는 아직 케이블카가 없던 때라 나는 관광객 대열에 참가하지 않고 사람들 뒤를 따라 천천히 산에 오르면서 부처님이 다시 나타나시길 내심 기대했다.
◆불법수련 깨닫게 해준 스승 만나
내가 산의 절반까지 올랐을 때 맞은 편에서 한 30대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옷차림은 소박하고 정결했으며 얼굴은 인자하고 선했다. 나를 끌어당긴 이 사람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몸에는 내가 여태껏 보지 못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일반인의 광채는 모두 단일한데 많아야 3가지 색이다. 내 경험으로는 출가한 사람만이 2가지 이상 색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광채는 오색찬란했으며 화려하고 눈부셔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었고 강대한 광채는 불가사의 해 광염이 끝이 없다고 형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그 분을 주시하면서 이 사람이 도대체 일반인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보려 했다. 뜻밖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오더니 나더러 당신에게 전할 불법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분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그분은 나를 한 여관에 데리고 가 함께 열흘 동안 지내면서 내게 그의 수련 공법 전부와 이론을 전수해 주고 떠나기 전에 나에게 불법 수련 책 한 권을 주셨다. 이 법을 전수한 분이 바로 나의 사부님이다. 그때부터 나는 정식으로 불법수련을 했다.
선천적으로 나에게는 초능력이 있어 타고난 수련 기질이 있었다. 불법수련을 한 후부터 짧은 시간, 아마 2년 전후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또 질적인 비약이 나타났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초능력을 나는 불법수련을 통해 지금 다 갖고 있으며 어떤 제한 없이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시간 당신이 컴퓨터에 앉아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을 때 사실 내가 생각만 하면 순식간에 당신 앞에 나타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할 수 없다. 그건 당신을 해치는 것이며 이번 생에 마련된 당신 수련의 기연(機緣)을 망치기 때문이다.
초능력은 불법수련의 부산물로서 추구할 가치가 없다. 내가 불법수련을 통해 진정하게 얻은 것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이치를 알게 되어 많은 마음 속 수수께끼를 푼 것이다. 이 몇 년을 수련해 나는 곧 성공을 하게 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전 생에 맺은 많은 인연을 풀기 위함이다.
다음 글은 내가 불법수련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2012년의 일부 일들을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것만 골라 쓰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당신이 말할 필요 없이 내가 하나하나 해답하겠다.
나는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동안 거의 떠돌아다니며 보냈다. 천하 명산대천, 세계각지의 기이한 광경을 나는 다 보았다. 모두 걸어 다녔으며 초능력을 사용한 적은 없다. 떠돌아다니면서 나는 중국 각지 명산에 은거한 채 수련하는 많은 이들을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 몇 백 년을 수련했는데 많은 사람은 수천 년을 수련했다. 이런 곳에 은거한 수련인은 모두 초능력이 아주 강대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세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며 더욱이 속세 일에 간섭하지 않고 더 이상 도제를 받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은 그렇게 강한 초능력이 있으면서 산속에 숨에 세속의 일을 묻지 않고 인간의 고난을 구제하지 않으면 수련을 높게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 것이다. 이 문제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인류 사회의 고난, 예를 들면 지진, 쓰나미, 돌림병 등 재난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바로 소위 말하는 겁난이다.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 아닌 석가모니 부처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는 수련인이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라도 우주 법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재난은 정해진 것이며 일반인의 운명도 정해졌다. 예를 들면 수명, 빈부, 귀천, 질병 이 모든 것은 다 개변할 수 없는데 모두 각자의 인연 업보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나의 강대한 공력으로 내가 생각만 하면 어떤 질병도 모두 즉시 완쾌시킬 수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도 치료하지 않는다. 왜인가? 그것은 당사자의 업보이고 전생에 악한 일을 한 것을 금세에 갚는 것으로서 그는 이 병에 걸려야 하며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규칙이며 누구도 이 규칙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의 운명에 간섭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운명을 바꾸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수련이다. 그 외 다른 길은 없다. 사람들은 수련하면서 늘 ‘오성(悟性)’, ‘혜근(慧根)’, ‘연분(緣分)’, ‘자비(慈悲)’ 이 4가지 단어를 말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누구도 이 4가지 단어에 들어있는 진정한 의미를 똑똑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해하기 쉽게 말하겠는데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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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촬영된 우담바라.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우담바라가 피어나면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했으며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는 “우담바라는 신령하고 상서로우며 3천년에 한번 나타나는데 그때는 금륜왕(金輪王)이 출현한다”라고 했다. 존 위(John Yu)
기독교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이 회복된 후 메시아가 인간세상에 내려온다고 예언했다. 불교에서는 우담바라가 필 때 미래불인 미륵(彌勒)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고 했다. 최근 각종 예언서에서 이야기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구세주(救世主)는 정말 우리 옆에 와 있는 것일까?
불경(佛經)과 성경(聖經), 모두 인류의 마지막 때에 구세주가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구한다고 기록했다. 불경에서는 법이 끝나는(末法) 시기에 미래불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고, 성경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메시아가 나타나 백성들을 구도한다고 했다. 두 경전이 모두 사실이라면, 인류사회에는 두 분의 구세주가 내려오는 셈인데 미륵불 혹은 메시아이다.
작고한 중국의 국학대사(國學大師)이자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지셴린(季羨林) 선생과 제자 첸원중(錢文忠) 상하이 푸단(複旦)대 교수의 주요업적중 하나는 불가(佛家)와 기독교의 관계성에 대한 발견인데, 한마디로 “미륵불과 메시아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첸 교수는 기원전 약 1천년 무렵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 및 이집트 등 광범위한 지역에 구세주에 대한 신앙이 퍼져있었음을 고증했다.
예수교의 메시아는 구세주 신앙의 대표적 사례로 구약성경속에도 언급돼 있다. 인도에 미륵불에 신앙이 존재했음은 학계에서 이견이 없다.
문화권을 초월해 이러한 구세주 신앙이 전 세계에 퍼져있었음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인도의 미륵신앙은 바로 구세주 신앙의 조성성분이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륵이 미래불인 이유는 미래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며 인도에 근원을 두거나 또는 보다 광범위한 전 세계 영역 혹은 고대 세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는 당시 보편적으로 유행했던 메시아 신앙의 일부이다.
그런데 미륵(彌勒)이란 단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인류문명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들어있는데, ‘지셴린 문집(季羨林文集)’ 12권의 ‘매달리야와 미륵(梅呾利耶與彌勒)’ 장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초기 불교의 경전들은 중국의 한자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중앙 아시아와 신장(新疆)지역의 언어로 작성됐는데, 미륵(彌勒)은 신장 투훠뤄(吐火羅)어의 ‘Metrak’ 또는 ‘Maitrak’을 음역(音譯)한 것이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maitri(자비, 자애)와 관련된 단어이다. 그래서 초기 불경 번역자들은 미륵을 ‘자씨(慈氏)’라고 의역하기도 했다. 후한이나 삼국시대의 중국어 불경을 보면 미륵과 자씨가 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기록들은 미륵이라는 단어가 시간적으로 불교에 앞서고, 공간적으로도 불교의 범주를 뛰어넘음을 시사한다. 불교가 중국에 막 전해질 당시 민간에서는 관음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아니라 미륵보살을 믿었는데, 미륵에 대한 신앙은 어느 한 지방이나 문화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러 문화권의 총체적인 산물이었다. 불경에 등장하는 부처나 보살중에 미륵만큼 넓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존재는 없다.
미륵을 산스크리트어로는 ‘메이트레야(maitreya)’, 팔리어로는 ‘메테야(metteya)’라고 한다. 발음만 들어서는
‘미러’(미륵의 중국식 발음)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불경을 번역하다가 “기존의 번역이 틀렸다”며 “매달리야(梅呾利耶·메이다리예)로 번역해야 맞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법사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미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매달리야’는 현장법사의 개인적인 주장에 그치고 말았다.
서양에서는 구세주를 메시아라고 한다. 영단어 ‘메시아(Messiah)’는 고대 히브리어 마시아‘Masiah(혹은 Mashiach)’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에서는 ‘크리스토스(Christos)’로 번역하는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오늘날 예수의 이름인 크라이스트(Christ)가 나오게 됐다. 즉 ‘메시아=크리스트’이며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크라이스트를 유대의 메시아와 같은 인물로 여겼다.
산스크리트어 ‘메이트레야’와 히브리어 ‘마시아’는 발음상으로 가까운데 미륵이란 말이 메이트레아에 해당하는 투훠뤄(吐火羅)어 단어에서 유래됐다는 점에서 사실 미륵과 메시아는 같은 대상에 대해 동서양 문화권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고대 문명에서 흔했다.
불경에서는 미륵을 “만왕(萬王)의 왕(王)이 말세(末世)에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사용한 불호(佛號)”라고 적었다. 법륜성왕(法輪聖王)은 만왕의 왕이 법계(法界)에 내려왔을 때의 법호(法號)이며 인간세상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칭한다. 석가모니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법륜성왕을 미륵이라고도 부른다”고 알려줬다.
미래불 미륵은 자비, 광명,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간쑤(甘肅)성 간난(甘南) 티베트자치주의 샤허현(夏河縣)에 위치한 라브릉사의 불상들은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함을 현묘(玄妙)하게 담아냈다.
청나라 강희(康熙)연간인 1709년에 건립된 이 사찰은 티베트 불교 게룩파(황교) 6대 사찰 중 하나이다. 절을 창건한 초대주지와 2대 주지는 모두 천기(天機)를 잘 아는 활불(活佛)이었기 때문에 이 사찰의 불상에는 아주 깊고 현묘한 이치가 담겨 있다. 특히 사찰에 모셔진 두 존의 미륵대불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찰 대경당(大經堂) 근방의 서쪽 후전(後殿)에 모신 미륵대불은 절반쯤 일어선 금불상으로 두 손이 가슴 앞에서 손동작을 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라마 스님은 “미륵불이 세상을 향해 법륜을 돌리시는 모습이다. 절반쯤 일어선 것은 언젠가 법륜을 지니고 인간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간쑤성에 위치한 티베트불교 사찰 라브릉사(拉蔔楞寺)에 모셔진 미륵불상의 모습. 반쯤 일어선 금동 미륵불상은 미륵불이 이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법륜(法輪 파룬)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세인을 구도함을 상징한다 신지웬 DB
라브릉의 원래 명칭은 아주 길지만 간단히 자시치사(紮西奇寺)라 하는데 중국어로는 ‘길상선사(吉祥旋寺)’인데 법륜이 돌면서 길상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대금와전(大金瓦殿) 중앙에 모신 미륵대불은 이 절의 2대 주지가 약 200여 년 전에 특별히 네팔의 장인을 불러 제작한 금동불상으로 전고 10m의 크기다. 이 미륵불상 바로 앞에는 작은 석가모니불의 동상이 있다. 이처럼 크고 작은 불상 두 개를 앞뒤로 배치하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
라브릉의 라마승은 “앞쪽의 작은 불상들이 석가모니불과 제자들이며 뒷쪽의 미륵불은 손에 법륜을 들고 있는데 그는 우주에서 신통이 가장 광대하고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여래이며 장차 법륜을 지니고 우주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오신다. 다시 말해 우주 중생의 유일한 구원자이다”라고 설명했다.
불상의 배치는 미륵불(전륜성왕)의 높은 층차와 광대한 법력(法力)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석가보니불상과 크기의 차이는 전 인류를 구도하는 거대한 자비를 드러낸다. 이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를 모신 불당을 소금와전(小金瓦殿)이라 하고 미륵불을 모신 곳을 대금와전(大金瓦殿)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는 신약과 구약을 막론하고 모두 메시아가 마지막 시대에 재림한다고 예언했다. 메시아의 재림을 알리는 사건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한 후 사람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천 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나라를 다시 세웠다. 1948년 5월 13일 예루살렘 유대회에서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했다”고 선언했다. 서방 각국의 주류계층은 개신교와 카톨릭을 믿었으나 유대교의 예루살렘 수복에 대해 모두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메시아 재림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방 각국의 주류계층의 이스라엘 지지는 확고했는데,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대교의 예수탄압을 완전히 잊어버린 행위였다.
동방에서도 미륵(전륜성왕)이 세상에 내려옴을 알리는 신호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혜림음의(慧琳音義)’ 8권에는 “우담바라는 상서롭고 신비한 천화(天花)이다. 인간 세상에는 없지만 여래가 세상에 내려오거나 금륜왕이 세간에 출현할 때 복덕(福德)이 크기 때문에 이 꽃이 나타난다”고 적혀 있다.
1992년부터 한국, 일본, 대만,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미국, 캐나다, 유럽, 중국 각지에서 우담바라가 발견됐다. 우담바라는 뿌리가 없고 잎도 없으며 물이나 흙이 없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또 유리, 강철, 불상, 나뭇잎, 종이상자, 비닐봉지에서도 모두 꽃을 피웠으며 꽃이 핀지 1년이 넘어도 생기가 넘친다.
중국 민간에 미륵의 조각상이 전해지는데 크게 웃는 불상이다. 불상 주변에는 장난스런 표정의 아이들 18명이 있는데, 서로 모습이 다르다. 이를 십팔자미륵(十八子彌勒)이라고 부르는데 십팔자(十八子)를 합하면 李자가 된다. 이는 미륵불이 말세에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할 때 속세의 성씨가 이(李)씨임을 암시한다.
조선 중기 대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쓴 예언서 ‘격암유록(格庵遺錄)’에는 “성인(聖人)은 누구인가? 목자(木子)성씨라네, 토끼해에 속하고 4월에 출생해 38이북에서 삼신산(三神山 장백산 공주령) 아래에서 출생한다. 이 성인은 천상 왕중의 왕(王中之王)이며 바로 법륜성왕이다. 이번에 속세에 내려오면 인간세상에서 미륵불이라 칭한다”라
고 했다. 여기서 목자(木子)란 이(李)를 가리킨다.
또 원천강(袁天罡), 이순풍(李淳風)이 저술한 당나라 때의 유명한 예언서 ‘추배도(推背圖)’에는 미륵불이 토끼해에 ‘중천중국(中天中國)’에서 탄생하며 아울러 금닭(金雞·우측사진) 모양인 중국 지도에서 눈에 해당하는 지역(작자주-중국 길림성)에서 목자(木子=李)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토끼해인 1951년 5월 13일(음력 4월 초파일)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중국 길림성 공주령(公主嶺)시에서 탄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그 해의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데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강림절’이다.
서방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을 가리키는 단어 ‘이스터(Easter)’에는 “동방에서 온 사람”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생각해보라. 서양인들은 부활절에 달걀뿐만 아니라 토끼를 기념물로 삼는다. 그러나 왜 달걀과 토끼인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또 성탄절에는 어린 나무(子木=李)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면서도 이유를 모르고 있다.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시집 ‘센추리즈(Centuries)’에서 지난 수백 년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중대한 사건과 인물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센추리즈의 2세기 29편에 말세에 사람들을 구하는 구세주에 대한 내용이 있다.
동방인이 그의 고향을 떠나/아페닌 산맥을 넘어 골(Gaul-프랑스)로 간다./ 그는 하늘, 바다와 눈을 지나고/ 누구든지 그의 지팡이에 맞으리라.
(The Easterner will leave his seat,/ To pass the Apennine mountains to see Gaul:/ He will transpire the sky, the waters and the snow,/ And everyone will be struck with his rod.)
이 시는 리훙쯔 선생이 중국대륙에서 법(法)을 전하는 것을 끝낸 후 서방으로 건너가 여러 나라에 법을 전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는 것을 예언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또 10세기 70편 3행에서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신화 속에서 헤르메스는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는데 지팡이는 평화와 의술을 상징한다. 지팡이에 맞음은 평화와 새생명, 즉 법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불경에서 전륜성왕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32상(相)과 7보(寶)를 지니는데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고 정의롭게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를 돌려 세계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왕이다. 불교, 기독교, 유교를 가리지 않으며 다만 사람들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푼다. 다시 말해 종교와 국적, 신분을 막론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은 전륜성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신(神)이 정말로 내려왔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머뭇거리고 있다.
중국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尚)이 미륵불의 속세화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포대화상은 실존인물이며 후량(後梁) 정명(貞明) 2년, 다시 말해 서기 916년 3월 3일 봉화(奉化)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아래 돌 의자에서 원적했다. 당시 그는 “미륵 진짜 미륵, 천백억으로 분신해, 수시로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지금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구나(彌勒真彌勒,分身千百億,時時示時人,時人自不識)”라는 게송(偈頌)을 남겼다.
포대화상이 남긴 게송은 사람들에게 미래불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할 때 진상이 끊임없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은 도리어 현실을 바로 직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1:10-11)에서는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여 구주(救主)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오실 때 그의 광환으로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세계를 비추지만 세인들은 오히려 그가 구주임을 몰라보고 또 무수한 고통을 겪게 하며 진상을 모르는 세인들에게 비방 받게 한다고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서 ‘센추리즈(Centuries)’에서 “1999년 7월 공포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1999년 7월 ‘제세기’에서 적그리스도로 가리킨 장쩌민이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천안문 사태 이후 사라졌던‘피바람’이 다시 몰아쳤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어린 양과 짐승의 최후의 정사대결―아마겟돈이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이미 12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무수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각종 마난(魔難)을 당했지만 이들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중공은 ‘진선인(眞善忍)’ 우주불법(宇宙佛法)을 공격하며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당나라의 예언서 ‘추배도’에서도 “99년에 큰 잘못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18권에는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면 동방의 여러 작은 왕들이 대왕(大王)에게 이르러 모두 진귀한 보물을 받들며 귀순을 표시한다. 나머지 남방, 서방, 북방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7:9-10)에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비록 마난을 겪어야 하지만 최후에 사람들은 모두 신에게 귀의해야 하며 이는 나라와 인종을 초월한 것이다. 불경과 성경에서 기술한 내용은 바로 이 점에서 일치한다.
구주가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한 후 인간세상은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인류를 맞이한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는 “그 나라는 땅이 기름지고 풍족해 많은 사람들이 유복하게 살아 거리마다 번화하기 이를 데 없다. 곡식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번창하고 갖가지 보배가 수없이 많으며, 마을과 마을이 잇따라 있어 닭 우는소리가 서로 들리느니라. 아름답지 못한 꽃과 나쁜 과일, 시들한 나무는 다 씨가 마르고, 더러운 것은 다 없어진다. 그래서 감미로운 과일 나무와 향기롭고 아름다운 풀, 나무들만이 자라느니라. 저 세상의 기후는 온화하고 화창하며, 사계절이 순조로워 108가지 질병이 없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도 마음 깊이 있을 뿐,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라고 묘사했다.
성경의 ‘이사야’서(65:19-20)에서는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곳에는 요절하는 유아와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노인이 더는 없을 것이다. 백세에 죽는 자가 어린아이이며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
또 ‘이사야’서(65:23-25)’에서는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이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스런 산에는 해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했다.
‘요한계시록’(22:2)에서는 “강 좌우에 생명수(生命樹)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민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라고 했다.
이상을 통해 보건대 이번에 정(正)과 사(邪)의 대전을 겪은 후 불법(佛法)을 수호하여 남겨진 사람들에겐 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장수와 안락을 누리고 재난을 당하지 않으며 먹을 것이 풍요롭고 화목하게 지내 다툼이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이때로부터 새로운 기원(紀元)으로 들어갈 것이다.
장제롄(張傑連)/ 중화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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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천애지기(天涯知己)
전에 어느 누나가 내게 쓴 시를 나의 형에게 전해주어 받아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매우 슬펐으며 그중에는 이런 두 구절이 있었다.
“마음에 보옥이 있고 한스러움이 없는데 나무 아래서 퉁소 부는 소리를 누가 들으랴?” 그 대강의 뜻은 “재능이 있으나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당시 그들에게 한 수의 시(詩)로 답했는데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향기로운 바람은 하늘밖에서 유유히 나부끼누나!” 연후에 또 이렇게 썼다.
"사실 다른 사람이 나를 중요하게 보는지,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산(天山)에 핀 설연(雪莲)을 보시라. 일생 동안 아마 한 사람도 그것의 곁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며 그의 의의를 음미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조차도 그 옆에 내려앉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바람과 눈을 친구삼아 동반하여 조용히 아름답게 피어 자기 생명의 특유의 광채를 피웁니다."
각설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자!
일은 당나라 안사의 난(안록산, 사사명의 난) 이전에 발생한 것이다. 나는 조정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관리로 지내고 있었다. 한번은 실수로 어느 중신에게 죄를 지었다. 그는 현종에게 나를 탄핵했고 나는 천리밖으로 유배가는 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딸린 권속이 없었고 대신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늘 함께 글장난을 치고 이야기 하며 의기투합했다. 그는 내가 양관(阳关-감숙성 서부의 관문)밖으로 유배된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아무 연고자가 없는 것을 알고 나를 배웅해주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정말 감동했다. 이런 친절은 매우 얻기 어려운데 매우 소중히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유배된 자의 신분으로 장안을 나서서 줄곧 양관을 가는데 그는 나를 동반하는 한편 나를 돌보았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나를 압송하는 병정들을 감동시켰다. 양관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그곳에서 하나의 총병(통솔하는 군사)이 바뀌었는데 그는 나의 위인됨을 듣고 나를 위해 불평했다. 그는 나를 위해 통사정을 했다.
나를 관리하는 그 관원은 나를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나더러 다만 중원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만약 돌아간다면 그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나와 이 친구는 서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배의 생애를 벗어났고 우리 마음은 비록 고생이었지만 문인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늘 세간을 초월한 상태였다. 특히 서역에 가서 중원문화와 다른 각종의 부동한 문화를 보았을 때 우리의 눈을 크게 넓일 수 있었다!
한번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여기 하늘 좀 봐라, 평탄한 것이 끝을 볼 수 없지 않니? 여기의 일체는 정말 단순하고 그 생명 본연의 의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정의 궁궐에서 처세하느라 조심해야 하며 잘못하면 이런 말로에 떨어진다. 설사 백성을 위해 간청해도 때로는 머리를 잘 굴려야 겨우 한번 성공할 수 있다. 여기는 숨길 것이나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일체는 표면에 드러나 있으며 일체는 매우 진실하고 순수하구나!
그렇지, 내가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만일 우리가 유배되지 않았다면 그건 아직도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바로 기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다른 선택이 없다!
나중에 우리는 천산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설련화를 보았다. 그 순간 우리 둘은 멍하며 멈추었고 오랫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것은 매우 독특한 풍경이었으며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누가 칭찬해도 여기에서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근본적으로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고상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러한 생명이었으며 바로 이런 존재방식이었고 속세의 일체 변이의 요소에 의해 오염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누구를 위해 자기의 심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의 얼굴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순수한 것은 이같이 현묘하고 진실했다!
친구는 한참동안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 형, 내 생각에 우리가 여기에서 살면 좋겠소. 이같이 현묘한 경치와 심경이 있으니 우리는 금생에 또 무엇을 추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도 좋다고 말했다. 이 설련화의 심정을 위해, 다시는 속세에 오염을 받지 않기 위해 금생에 우리는 여기 있으면 좋겠다!
천산은 수련인의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밖의 고인(高人)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그 생에서 그를 따라 수련했다. 그리고 그 생애의 생명의 과정을 완성했다! 상세한 것은 쓰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형에게 써준 시로 결말을 삼는다 :
고산의 설연(雪莲)
설련은 고산(高山)에서 혼자 피는데
눈을 동반하여 바람속에 펼쳐 있으며
누가 와서 칭찬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향기로운 바람은 하늘밖에서 유유히 나부끼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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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게 사형을 판결한 사람
작자: 모국을 사랑하는 중국교포 파룬궁 수련생
우리는 예수님이 세인을 구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형에 판결한 사람은 누구이며 최후에 어떠한 보응을 받았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여러분들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말해보고자 한다.
예수를 사형에 판결한 사람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로 그는 서기 26년부터 36년간 로마 제국에서 유태인 거주 지역 총독으로 파견 되었다. 유태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유태교를 믿어 아주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당시 예수의 신도들이 갈수록 많아지자 유태교 사제들과 장로들은 질투와 원한으로 예수를 꼭 죽여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믿지 않을 것이고 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의 제자인 유다를 매수했고 예수를 납치해 대제사장에게 보냈다.
그러나 로마 통치하에 있던 유태교 최고 평의회(Sanhedrin)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묶어 로마 총독 관저로 보내 빌라도에게 심판하도록 했다. 그들은 예수가 민중을 선동해 국가를 배반하게 했고 로마제국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반대했다고 모함하면서 빌라도에게 사형을 판결하도록 요구했다. 빌라도는 전에 예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외아들이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말라 들어가는 괴상한 병에 걸려 일어날 수가 없었고 다른 의사들도 방법이 없었는데 나중에 예수의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
빌라도가 예수를 처음 심문할 때 예수는 유태교 장로들의 모함을 부인하고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말해주었다. “나는 이로 인해 세상에 태어났고 진리를 위해 왔다.” 예수가 무고 함을 분명히 알았던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죄가 있는지 조사해 내지 못했다.”라고 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이 질투심으로 예수를 모함한 것을 알았고 또 자기 아들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길 거절했다.
하지만 유태교 장로들의 선동 하에 유태 민중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외쳤다. 그때는 바로 유태교의 명절이다. 유태인들의 관례에 따르면 명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석방할 수 있었다. 유태민족은 살인 강도를 석방할지언정 예수를 석방하려 하지 않았다. 유태 장로들은 심지어 빌라도에게 “당신이 만약 예수를 석방하다면 로마제국의 충신이 아니다.”라고 위협했다.
결국 빌라도는 자신의 승진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나약하고 비굴한 본성으로 물을 가져다 민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의로운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당신들이 감당해야 한다!” 민중들은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라고 했다. 그러자 빌라도는 곧 명령을 내려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했다.
빌라도는 당시 최고 사법관으로서 예수가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상황하에서 사법의 존엄을 수호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직책을 포기하고 사악에 순종해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을 판결 영원한 오명을 남겼다.
그럼 빌라도는 나중에 어떤 보응을 받았을까? 빌라도가 예수의 사형을 판결하자 예수에 의해 건강을 회복했던 외아들은 곧 땅에 넘어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빌라도 역시 얼마 후 고열로 오랫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로마에서 어떤 사람이 빌라도를 모함해 빌라도는 추방당하는 판결을 받았고 승진의 꿈도 철저히 파멸 되었다. 이렇게 되자 빌라도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고 혼자 고립되어 로마에 있던 재산도 몰수당했다. 최후에는 동전 한 푼 없는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귀양지에 도착 한 후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비웃는데 어린이들도 빌라도를 피해 다녔다.
로마 황제는 그래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또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빌라도는 소식을 듣고 절망감으로 불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빌라도의 시체는 큰 돌에 묶어 강에 던졌는데 가라앉지 않고 그대로 물위에서 떠 있어 고기 떼들이 달려들어 먹었다.
빌라도뿐만 아니라 예수를 살해하는데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도 모두 무서운 보응을 받았다. 배신자 유다는 목을 매 자살한 후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유태교 제사장과 장로들 및 그들이 선동한 민중들과 그 자손들도 모두 로마 군대의 도살을 당했고 유태인의 성전(聖殿)도 철저히 파괴되었다.
세상 사람을 구도하는 각자(覺者)를 처벌한 이 죄악은 얼마나 큰 것인가! 지금 중공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살해하고 박해하면서 이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수많은 수련생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병마에서 벗어났으며 심지어 암 등 불치병에서 건강을 회복했다. 또한 심신수련을 중시해 인류 도덕과 정의를 위해 큰 공헌을 하여 파룬궁이 사회와 국가에 대해 백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단 한가지 해로움도 없음을 입증했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사이에 파룬궁은 114개국으로 전파 되었고 파룬궁 저서는 30여 종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파룬궁은 지금까지 각급 정부로부터 1500여개에 달하는 상장과 표창을 수여받았다.
이는 파룬궁은 진정한 불가(佛家)의 상승(上乘)수련공법이며 정법(正法)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완전히 진(眞) ,선(善) , 인(忍) 원칙을 지침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고층차의 수련법이기 때문에 파룬궁은 심신건강에 뛰어난 효과가 있고 단시간 내에 전 세계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질투심에 눈이 먼 장쩌민과 중공은 유태교 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박해했던 것처럼, 파룬궁 수련생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명성이 높아지며 전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것을 시기해 박해를 가했다. 중공은 박해 중 일체 사악한 수단을 사용했는데 지금(2009년 하반기)까지 적어도 3300여 명이 비인간적인 박해로 사망하고 심지어 수 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장기를 적출 당했다.
또 파룬궁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심을 선동하기 위해 천안문 분실자살사건을 조작해 세상을 기만했다. 이는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반 인류죄이다. 이외에도 외교 및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 정부와 매체를 매수했고 파룬궁 문제에서 중공과 같은 길을 가도록 협박했다. 이렇게 하여 중공은 중국 민중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부와 국민들을 선동하여 중공의 거짓된 선전을 믿게 하고 적개심을 갖도록 선동하여 파룬궁을 미워하게 했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과 함께 하면 반드시 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은 천고의 진리이다. 때문에 누구든 중공과 함께 하면 그에게는 장차 화가 닥치게 된다. 왜냐하면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며 이는 천리(天理)이기 때문이다.(현재 매일 4,5만 명의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 관련 조직에서 탈퇴하고 있다)
중공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9평 공산당》을 읽어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빌라도와 예수를 증오했던 그 민중들이 받은 보응을 생각해보라! 작게는 개인과 그 자손들이 피해를 받았고 크게는 나라와 민족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했다.
얼마 전 중국 국적의 파룬궁 수련생들(대부분 중국 교포)이 중공의 잔혹한 박해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 법원에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중공의 박해가 끝날 때까지 잠시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들의 인도적인 요청은 한국 정부에 의해 기각당했다.
결국 2009년 7월 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3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반 인류죄인 중공의 파룬궁 탄압에 협조한 것으로 국가와 민족의 명예에 큰 손실을 초래한 치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과 양심에 대한 자유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이자 가장 중요한 인권입니다. 중공 정권의 파룬궁 탄압 문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권문제이며 전 세계는 각국의 파룬궁과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태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파룬궁에 대한 태도는 매 사람 또는 각국 정부가 진정으로 진리를 수호하는지,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는지를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과거 역사의 전철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며 절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중공의 박해를 도울 것인가, 아니면 박해에 반대할 것인가 하는 이 문제는 전 인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리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장래와 그 자손들의 미래,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부디 선택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할 것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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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小蓮
머리글:최근 인연 따라 나는 한 어린 동수를 만났다. 그와 만난 짧은 며칠 동안 나는 윤회방면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생각났기에 정리하여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대법제자들 속에서 필로 법을 실증하는 동수들의 역사적 경력과 우리가 예전에 맺었던 비할 바 없이 성결한 법연, 그리고 인류에 다져준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비록 “옥아”라고 적지만 나의 능력과 경지에서 나온 것은 거친 벽돌에 불과하니 여러분들이 수련인의 이야기로 여기고 보기 바란다. 절대로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바 시간은 현재 정말로 아주 제한되었고 중생 구도는 정말로 긴박하다!
이는 작은 시리즈물로 여러 부분으로 나눠 쓰려고 한다.
영롱필탑(玲珑笔塔) 상고홍황(上古洪荒) 고산유수(高山流水) 황주적벽(黄州赤壁) 호구시회(虎丘诗会) 근대금생(近代今生)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1, 영롱필탑
우주의 광활함은 아득히 끝없고 천지의 크고 무궁함 역시 끝이 없다. 홍대한 천체 속의 무궁한 중생들은 예전에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들은 각자의 주 혹은 왕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무수한 세월을 보냈다. 우주가 수차례 천지개벽의 거대한 변화를 거친 후에 그 생명들은 멀고 먼 역사의 끊임없는 운행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변이되어 점차적으로 해체와 훼멸로 나아갔다.
위대한 주불께서는 중생을 소중히 여기시어 노고를 마다하고 창궁의 가장 정상에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한걸음한걸음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가시어 가장 낮은 층의 인간세상에서 정법하고 대궁을 다시 만드셔야 했다.
부동한 체계의 천체 심지어 대궁 층차, 그리고 더욱 높은 층차의 법왕 혹은 주들은 주불께서만이 우주를 구원할 수 있고 중생을 구원할 수 있음을 알고 사부님과 서약을 맺었다. 물론 일부 대법제자들은 다른 두 가지 내원이 있는데 더 말하지 않겠다.
우주의 많은 불도신들 그리고 부동한 층차의 천신들이 삼계에서 멀지 않은 높은 경지를 지나갈 때 주불께서는 장래에 인간세상에서 법을 얻고 법을 실증할 뭇 신들의 구체적 사명을 더 잘 배치하기 위하여 그 곳에서 한차례 법회를 여셨다.
그 장면은 정말로:
만 갈래 불광이 하늘을 감싸고
상서로운 천송이 구름이 천지에서 떠다니며
뭇 신들은 꿇어앉아 주불의 말씀을 듣는데
무한한 자비와 법광에 눈이 부시네
그 시기에 무수한 천신들은 모두 이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주시하고 있으며 주불께서는 높고 높은 연대 위에 앉아계시는 그 장면은 이러하다.
비할 바 없는 위엄이 창우 사이를 감돌고
무한한 자비가 대천을 비추네
중생을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몸소 낮은 층에 임하시어 홍원을 이루시네
주불의 그러한 위엄과 자비, 지혜, 능력은 홍미(洪微) 시방우주의 모든 일체 신들과는 비길 수가 없는 것이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신의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인류의 제한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주불께서는 아주 많은 문제들을 말씀하셨다. 그 중에는 장래에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대법제자는 마땅히 어떻게 잘 해야 비로소 역사가 부여해준 위대하고 신성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셨다. 최후에 주불께서
거대한 손을 한번 저으시니 보탑이 나타나
천지 사이에 우뚝 서서 위엄을 드러내네
9가지 색채가 보탑을 감싸고
무수한 신필이 보탑에서 나타나네.
하늘에서 거대한 연꽃 하나가 먼저 천천히 나타나고 연꽃 위에는 눈부시고 투명한 보탑이 나타났다. 무척 크고 거대한 보탑은 자체로 색채를 끊임없이 변화했다. 적등황녹청남자 유색무색, 그리고 이런 색감의 교체는 우리가 상상하는 아주 간단한 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은 너무나 현묘하여 이를 문자로 써내려면 힘이 들기 때문에 여러분들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보탑 위에는 아주 많은 원형 구멍이 나 있고 각종 필들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필의 끝에는 한 송이 작은 연꽃이 달려있었다. 이 필들을 자세히 보니 형태와 크기가 모두 다르지만 필의 끝부분에는 전부 작은 금색 장식물이 달려 있으며 그 장식물의 형태 역시 다르게 생겼다.
바닥에 꿇어앉은 무척 지혜롭고 능력 있는 이 신들마저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데 대법은 정말로 현묘하고 수승하기 그지없으며 자비와 법력 역시 무한하다!
뭇 신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주불께서는 자비롭고 위엄있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모두 인간 세상에 내려가 법을 얻고 법을 실증해야 한다. 그렇다면 장래에 법을 실증할 때 필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 (비교적)관건적인 항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나는 당신들 매개 신들에게 약간의 필들을 줄 테니 이는 당신들이 그때에 가서 책임진 일들이 얼마인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매 한 개의 필은 한 가지 방면을 대표할 것이다(대체적 의미) ”
뭇 신들은 가장 엄숙하고 가장 순정하고 가장 성결한 마음으로 두 손을 공중에 내밀며 꿇어앉아 신필을 받았다. 바로 이러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내밀자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신필이 위엄을 드러내네
인간세상에서 호법하고 중생을 구도하여
서약을 잊지 말고 홍원을 이루리
이때 땅에서는 무수한 금색 연꽃이 솟아나고 하늘에서도 미묘한 법악이 흘러나왔다. 언제부터인가 먼 곳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과 중생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극도로 주목하는 눈빛에서 나는 그들이 기대하며, 바라며,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신들의 인간세상에서의 호법이 순조롭기를 기대하고 장래 인간세상에서의 호법신들이 자신이 맺은 서약을 제때에 실현하기를 바랬으며 이 주들이 돌아와서 그들을 구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신들이 모두 많은 필들을 얻었는데 일부는 십여 자루에서 심지어 몇 십 자루를 받았다. 이때 주불께서 거대한 손을 한번 휘젓자 이 신필들은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갔다. 뭇 신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그 신필들은 보탑에서 질서있게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고대전쟁에서 나오는 진법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이 신필들은 하나로 합쳐져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원주체를 이루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들이 본래 개체였음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이때 주불께서는 아주 위엄있는 어투로 말씀하셨다.
“이 신필들도 서로 간에 협조를 잘 해야 비로소 그들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고 당신들도 역시 그러하다!”
그 다음 뭇 신들은 한 분씩 모두 주불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주불께서는 매개 신들에게 자비롭게 신신당부하셨다.
그때 마침 몇몇 신들이 이곳에서 만났다. 다음에 나올 글의 편이를 봐서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이름을 먼저 밝히겠다.:운(云), 동(冬), 연아(莲儿), 옥아(玉儿), 정아(晶儿), 정아(静儿), 명아(明儿), 검(剑), 취아(翠儿) 등등.
이곳에서 운과 검, 그리고 동의 모습이 크게 보였는데 그들의 모습이 아이와 같다고 보지 말라. 비록 그들의 나이가 보기에는 아주 어려도 그들의 나이는 그들보다 성숙해 보이는 신들을 몇 배 더 초과했는데 그들의 내원이 다르고 그 생명 상태의 표현 물론 다르기 때문이다.
주불께서는 그들을 보시더니 자비롭게 한번 웃으시며 손을 가볍게 한번 움직이셨다. 단번에 이 몇몇 신의 오른쪽 어깨에는 동전만큼 크기의 황금색 낙인(수기가 아님)이 똑같이 생겼다. 이로부터 그들은 모종의 연결이 있게 되고 또한 이러한 연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었다.
다른 많은 신들 역시 이러한 정황이므로 여기서 세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때 정아(晶儿)가 물었다. “그럼 저희가 함께 속세로 내려가서 윤회하는 중에 주불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실 때 저희는 서로를 찾을 수 있습니까?” 주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개(盖)’자 하나를 찾아야 하는데 다른 일체는 스스로 배치가 되어 있을 거다.”
이 몇몇 들은 주불께서 주신 신필과 낙인을 지니고 주불의 자비로운 기대어린 시선 속에서 그 곳을 떠났다. 곧 삼계로 내려가기 전에 옥아玉儿가 말했다. “주불께서 말씀하신 ‘개’자가 무엇을 가리키시는지 모르겠어요.”
연아가 입을 열었다. “천계에는 아주 순정한 물질 하나가 있는데 ‘옥(玉)’이라고 불러요. 장래 사람들은 옥을 고결한 품질의 상징으로 여길 것이니 나는 그때에 속세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 옥이란 글자를 가진 이름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출생할 때 곧바로 얻고 신필로 법을 실증할 때도 옥에 관한 것을 일부를 써낼 것입니다.”
옥아는 “그럼 나는 ‘옥’을 글 쓸 때의 서명으로 할 것입니다.”고 하였고 취아는 그들의 말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비취도 옥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나는 옥이라고 하지 않고 ‘비취’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들 몇몇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불께서 고공에서 자비롭고 엄숙하게 그들을 내려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여 서로 알려주며 즉시 무릎을 꿇었다.
동(冬)과 검(剑)이 주불께 맹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반드시 서약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주불의 소원을 완성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손 안의 신필로 주불의 부탁을 져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명아(明儿)와 정아(静儿)가 말했다. “반드시!!!” 모두들 함께 맹세했다.
이때 뭇 신들은 그들의 자비하고 단호한 서약에 눈물을 흘렸다!
좀 지나서 주불께서는 비로소 떠나셨다. 그들은 서로 당부하면서 남천문에 들어가 삼계로 진입하여 그들의 멀고 먼 윤세전세를 시작했다… … 후에 그들 중에서 두 명은 헤어질 때 이러한 시를 써냈다.
때에 맞춰 왔네
나는 때에 맞춰 왔네
수많은 엄동설한을 겪으며
끝내 꼬불꼬불한 길에서
서약을 안고 때에 맞춰 왔네
돌이켜보니
당신의 부탁은 여전히 귀가에 머물러 있고
많고 많은 속세의 나날 속에서
우리는 함께 희열과 비애를 연출하네
세월이 당신의 기억을 흐릿하게 하여도
나는 오히려 예전의 기억을 잊지 않으리
아득히 먼 옛날
당신의 부탁과 기대 때문에
오늘 나는 끝내 변함없는 발걸음을 걸을 수 있었네
희미해진 원한의 사랑을 품에 안고
당신의 바램을 싣고
때에 맞춰 왔네
마음이 서로 통하다
우리는
수승하고 높은 곳에서 걸어왔네
우리는
똑 같이 아름다운 소원을 안고 있네
천년의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멀리 헤어지게 하고
만년의 비는
우리로 하여금 엎치락뒤치락 떠돌게 하였지만
얼마나 큰 바람도
우리 사이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얼마나 큰 비도
우리 마음속의 소원을 없애지 못하네
세월의 아득함으로
당신의 옛적 하늘에서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지만
바다와 하늘의 가로 막음으로
당신의 오늘날
미소 어린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은 서로 통하여 있고
우리의 뜻은 서로 연결되어 있네
우리의 같은 서약을 위하여
우리는 매 하나의 오늘을 잘 걸어가야 하네
나는 당신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험난함을 지나서
당신은 시종 나의 마음속에 맺어져 있네
이 한 단락은 내가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로 적은 글인데 지금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고 다음 편<상고홍황>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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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터넷은 공산당, 사회주의도 금지어 | |
올림픽 관련 단어도 저작권 핑계로 통제 | |
그러나, 얼마전 저작권 문제를 핑계로 올림픽 관련 단어들이 무더기로 금지어가 되더나 최근에는 공산당,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금지어 목록에 올랐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러한 중공 당국의 검열 확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지어가 폭증하면서 금지 항목과 관련성이 낮은 게시물도 별표나 엉뚱한 단어로 대체되는 일이 빈번해 읽기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이러한 결정에 산시성TV 기자 출신 마샤오밍 씨는 “공산당, 사회주의 같은 단어를 중국인이 사악에 대명사로 생각하고 있으며, 인터넷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글보다 비난하는 글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최근들어 금지 단어가 폭증한 이유로 중국인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있는 공산당 탈당운동이나 민중 항쟁을 지목했다. 한편, 당국의 인터넷 봉쇄가 강화되면서 이에 돌파하려는 중국 네티즌들의 대응 역시 기발해지고 있다. 단어 사이에 부호나 띄어쓰기를 넣거나 일부 단어는 약자로 표시한다. 최근엔 가로쓰기된 게시물을 세로쓰기로 바꿔주는 프로그램까지 개발됐다. 중공 당국이 봉쇄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자유로운 정보 소통을 원하는 중국인들이 열망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원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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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쟝얜시 재해구에서의 견문, 중공의 사악함을 드러내 (2)
글/장명로(章明路)
[명혜망] (위문에 이어)
3 , 탐오부패로 조성된 "부실공정"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매몰 되었는가!
몇 년 전 뚜쟝얜시 신잰 초등학교는 위험건물로 감정되었고, 학교에서는 해마다 시 교육국에, 시 교육국은 시 정부에 보고를 올려 건물을 보수하거나 이전 할 것을 요청해 왔으나 해마다 모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최근들어 뚜쟝얜시 부동산이 활기를 띠면서 땅 값이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뚜쟝얜 시정부는 고가로 땅을 매도해 년간 재정수입이 30억원을 돌파하였고,행복도로 양쪽의 공안국, 세무국, 무장부 등 당 정 단위 사무청사는 호화롭게 장식을 하였는데 얼핏봐도 수천만원을 쓴 것 같았다.
그런데 몇 십만이나 백만원 정도면 해결할 수 있는 신잰학교 부실건물은 도리어 몇 차례나 교육국, 시위, 시정부 지도자를 거쳐도 결연하게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 5.12" 지진이 발생한 후 500여 명의 어린 생명들이 미처 대피고 하기전 갑자기 울리는 요란한 소리속에 이미 페허더미로 변한 학교건물 잔해에 매몰되었다. 건물 잔해 중 어떤 조립판에는 철근이 들어있지 않았고, 시멘트는 흙덩이 같아 손으로 만져도 곧 부셔졌다. 죽은자가 너무 많아, 또 소방도로도 없어, 시간을 쟁취하기 위하여 파낸 시체들을 길가에 버린채 살아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구급하고 있었다. 맞은켠 수리전력10국 병원의 의료진들은 한 편으로 죽은자의 조그마한 손과 발, 갸냘픈 몸을 밟고 지나 다니며 한 편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면서 페허 속에 살아남은 사람을 찾아 구급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도 참혹해 피흘리는 장면에 익숙한 의료진마저 여러 날이 지나도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뚜쟝얜시 쥐왠중학교와 중의원 입원대청은 모두 쥐싱 건축 공사에서 지었다. 지진 발생 후 , 주변 건물들은 파괴되긴 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는데 이들 학교는 "약속이나 한 듯" 와그르르 무너졌다. 쥐왠 중학으로 온 구원대는 선후로 파카스탄 지진, 이란지진, 인도네시아 해일 등 국제 재난 구원사업을 했던 중국국가지진재난긴급구조대 였다. 쥐왠중학 페허에서 구조대 대원들은 비분에 차서 외쳤다. " 이는 전형적인 부실공정이다! 이게 어디 철근인가, 그야말로 쇠줄을 넣었다!" 학교가 너무도 빠르고 철저하게 무너진 탓으로 구조대는 대량의 시간과 인력을 들였지만 겨우 소수의 학생만 구해냈을 뿐이었다.
뚜쟁얜시 화쌰광장 앞도 지금은 이 시의 큰 초점이다. 화쌰광장은 뚜쟝얜시 화쌰 부동산 개발 회사에서 건설한 것이다. 회사 회장은 전임 시위서기 쉬 전한인데 뚜쟝얜 시민들은 모두 그를 "쉬정란"( 徐整烂)이라고 부른다. 총지배인은 그의 양아들 뤄스푸이다. 이 주택가는 모두 뚜쟝얜시에 준공된지 얼마 안되는 고급 주택가 중 하나로 항진성이 비교적 강한 틀 식 구조에 속하였다. 이런 집은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모아야만 겨우 살수 있다. " 5. 12" 지진으로 이 주택가의 모든 단원이 모두 엄중한 파괴를 당했고, 건물 두 곳이 무너졌다. 이에 비해 기타 2000년도 후에 지은 주택들은 기본상 무너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주택가 한 켠에 있어 없애버리고 싶은 "눈에든 가시"라는 낡아빠진 층집 한 채가 있었는데 도리어 아무탈 없이 안전하였다. 건축 전문가들은 이들 무너지고 파손된 주택 잔해를 검사한 후 이 주택가는 " 설계에도, 시공에도, 재료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건물이 준공검험시 "우량공정"으로 뽑혔으니 페허에 매몰된 사람들이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으랴!
이로부터 볼 수 있는바, 중공의 탐오부패는 지진보다 더 무서운 재난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삼켜 버렸는가! 그러므로 비분에 찬 학생 가장들이 아이들의 유체옆에 " 우리는 천재를 탓하지 않고 인재를 원망할 뿐이다! " 라는 표어를 내붙인 것이다.
4 , 불난 집에서 도둑질 하고,엎친데 덮친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 중공의 많은 곳은 모두 "땅 파는 경제"로서 땅값 수입은 현 시 재정수입의 절반내지 대부분이다. 정부는 개발상인들과 결탁하여 집값을 잔뜩 높인다음 국민들에게 파는데 손쉽게 국민들이 일생동안 저금해 놓은 것을 갈취해 감으로써 산더미 같은 빚을 지게 한다. 사실 개발상은 고가로 정부부지를 매입하다보니 건설 원가가 땅 원가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백성들이 집 사는 돈은 대부분 모두가 기한이 몇 십년밖에 안되는 "토지사용권"을 사는데 써버리는 것이다 ! 도리대로 말하면 땅은 전민 소유제로서 매 공민은 모두 토지 거주권을 향수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중공 특권계층이 이른바 "전민소유제" 를 이용하여 매 공민의 토지 사용권을 몰수하고 박탈하여 원래 당신 것이었던 물건을 다시 당신에게 고가로 팔아 먹는데 흡혈귀처럼 당신의 재산을 빨아간다. 그러길래 사람들은 불평이 분분하여 말하는 것이다. " 전민 소유제는 바로 전민 몰유제(没有制)다! "
뚜쟝얜시는 세계 문화 유산인 "칭청산 ㅡ뚜쟝얜" 에 인접하고 있는데, 풍수가 좋고 환경이 아름다워서 땅값이 아주 높다. 지진 전 새로 개발한 주택가 판매가격은 이미 매 평방미에 4천 ㅡ5천에 달했다. 뚜쟝얜 시정부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1환로 이내의 전부의 땅과 2환로 이내의 대부분 땅을 죄다 팔아 버려, 땅이 부족한 국면에 부딪치게 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후 중공 뚜쟝얜 시정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고, 재난을 기회로 엿보고 천막안에서 아직도 이재민들이 덜덜 떨고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1환로 이내의 90%, 2환로 이내의 50 ㅡ60%를 허문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진의 고험을 견뎌내었고,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비엄중 파손으로 되어 입주할 수 있거나 간단한 수선을 한 후이면 얼마든지 입주할 수 있는 집마저 지금 모두 정부의 무단적인 검증으로 위험건물이 되어 반드시 통일적으로 허물어야 했을 뿐만아니라, 허문 후에는 토지 사용증도 따라서 폐기한다는 것이다. 많은 주택가 업주들은 육신으로 굴착기, 불도저 앞을 가로막고 높이 외쳤다. " 나의 땅을 돌려 달라!" , "허물겠거든 내 몸위로 지나가라" 그 장면은 아주 긴장 하였다.
싱푸대로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 전력망 사무청사는 양쓔완 발전소에서 투자하여 시공하였고, 또 그 부근의 공지를 샀다. 지진 후 뚜쟝얜 시정부는 이 기름진 고기덩이에 눈독을 들인 나머지 갑자기 사람을 파견하여 이 땅을 강점 하였다. 양쓩완 발전소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여서 상급인 쓰촨성 전력 총국에 보고하였다. 원래 이 땅은 성 전력총국에도 한 몫이 있었으므로 뚜쟝얜 시정부가 혼란한 틈을 타 땅을 점령했다는 말을 듣자. 무장 경찰 부대의 모 중대에 도움을 청했다. 그 중대는 평소 늘 전력국의 식사 요청을 받았고 전력국과 관계가 무척 좋았으므로 한 소대의 병력을 파견하여 땅을 점령한 사람들을 쫓아 버렸다. 그러나 땅을 점령한 사람들은 지방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총을 메고 총탄을 재우는데로 발전하여 강력하게 쫓아서야 혼란한 기회를 타 땅을 점거하려던 지방 정부는 잔뜩 골이나 하면서 가버렸다. 마피야 무리가 분열되어 서로 싸우는 것과도 같은 이런 장면이 놀랍게도 지진 중점구역인 뚜쟝얜시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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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은 인간성을 완전히 잃은 공산당 본질을 폭로
글 / 흐어밍탠
매번 중화대지의 재난은 중화의 아들 딸에게 거대한 고난과 비통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공단당은 도리어 매번 변태적인 선전수단을 통해 인민의 고통을 공산당의 경사로 치렀다. 인민이 고난을 당할 때면 공산당은 언제나 이재민을 구제한다는 명의를 빌어 자신의 허위적인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정확한" 형상을 부각시키고는 하였다. 이번 쓰촨대지진에서 공산당은 진심으로 이재민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분장하고 포장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의 수치스런 선전은 인간성을 완전히 잃은 그의 본질을 여전히 덮어 감추지 못하였다.
1. "올림픽 경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지진예보를 하지 않고 인민의 생명을 경시
이번 쓰촨대지진은 전문가의 예고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산당은 "올림픽 경기"의 이른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감추기 시작했다. 2년 전에 바로 지진연구소 전문가들이 쓰촨 서부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비전문가도 지진 전에 이미 예고하였다. 하지만 공산당은 이런 예고를 모두 숨기고 봉쇄시켰다. 32년 전 당산대지진이 생각나는데, 근래 폭로된 사실에 따르면 허다한 전문가들과 비전문 지진 연구가들이 지진이 발생하기 반 년 내지 몇 시간 전에 끊임없이 중공 각급에 연락하여 당산에 곧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지만 공산당에 의해 정치적 명의로 소식이 봉쇄되어 버렸고 결국 몇십 만 명의 죽음을 초래하였다. 이번에도 공산당은 같은 이유와 방법으로 인민의 생명을 경시하고 지진예고를 봉쇄하여 대량적인 인원의 사망을 초래하였다.
2. 민간의 지진 소문을 요언이라고 하면서 "요언을 배척한다"는 요언을 살포
지진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에 쓰촨 아베이 지역의 민간에서는 이미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이 당국에 지진에 관한 정보를 물었을 때 요언이라 하였으며, 아울러 이른 바 "지진 요언"의 출처를 조사하였다. 2008년 5월 9일, 중공 쓰촨성 정부 사이트에는 뜻밖에도 공개적으로 이른 바 "지진 요언 배척"을 진행하여 쓰촨에는 지진이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인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 과연 3일 후 쓰촨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던 것이다.
3. 인민의 생명을 경시하여,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시기를 앉아서 놓쳤다
대지진이 발생되었을 때, 지진발생 후 72시간 특히 24시간 이내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황금시기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선전하는 데는 아주 빨라 적극적으로 이재민을 구하라고 떠들었으나 실질 행동으로는 꾸물거리면서 지진의 중심구역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앉아서 제일 좋은 구원의 시기를 놓쳐 버렸다. 허다한 인민들이 바로 이렇게 생명을 잃고 말았다. 지금 요해한 소식에 따르면, 관광단의 가이드, 대만의 유람객, 쓰촨의 중년 부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지진이 발생한 후 각자 10시간이 안 걸려, 심지어는 몇 시간의 시간 동안 지진 중심 구역에서 두쟝얜 밖의 안전지대로 걸어갔다. 공산당은 날씨 원인, 여진 원인, 도로 원인 등등이라고 말하지만 훈련을 많이 받은 군대가 나이 많은 보통 사람, 심지어 부녀자들보다도 못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공산당은 사실상 진짜로는 쇼를 하면서 가짜로 이재민 구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4. 마음이 음침하여 대만과 외국의 전문 구조대의 지원 신청을 거절
지진이 발생한 후 대만, 외국의 일부 나라들에서 즉시 전문적인 구조대를 조직하여 입국해 사람을 구하겠다고 요구하였다. 이런 전문 구조대가 만약 즉각 입국하였다면 아주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대량의 이재민 생명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만약 이런 전문 구조대가 무너진 집 밑에 깔린 대량의 이재민을 구해낸다면 공산당 및 그 군대의 주체적인 지위와 형상에 영향이 있을까봐 두려워 필요없다고 하여 구조대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여러 날을 질질 끈 후에야 공산당은 소량의 이런 전문 구조대 행렬이 입국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량의 이재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뒤였다. 하지만 공산당은 또 "도로가 막혔다", "불편하다"는 등의 구실로 전문 구조대의 입경을 방해하였다.
5. 적극적으로 재해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집중하여 인터넷과 여론을 통제하고 세뇌와 비방을 하다
지진 발생 후 공산당은 일체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을 집중하여 재해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역량을 조직하여 미친듯이 인터넷과 여론을 통제하고, 아울러 공산당의 눈에 적대역량이라고 보이는 것은 모두 헐뜯었다. 지진 발생 후 불과 몇 시간 사이에 공산당은 전국 각지에 있는 인민의 피땀으로 기른 몇 십만의 인터넷 평론원들을 끌어 모아 해내외 인터넷에서 여론을 압제하고 파룬궁을 비방하였다.
6. 재해를 구제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탄압하다
비록 공산당은 표면적으로는 적극적으로 구제한다고 하면서 매체에 자신의 구제 형상을 부추켜 세우고 있었지만, 암암리에는 진실한 재해상황을 말하고 인권을 주장하는 민중들을 체포하였다. 재해구역에서 탈출해 나온 일부 사람들이 재해구역의 진실한, 비참한 소식을 갖고 왔지만 도리어 공산당에게 "요언을 살포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다.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재해 구제에 역량이 급히 수요되는 이때에 도리어 부분적인 역량만 구제하는 일에 파견하고, 도리어 중국 인민을 위해 인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인사들을 체포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다.
7. 세뇌를 선전하고 구원을 지체하였다
공산당의 재해구제 선전은 재해구역의 재해 상황과 수요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및 그 지도자, 군대가 구제에서 어떻게 "위대하다"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선전하여, 외부에서 더 상세한 재해구역의 엄중한 상황을 요해할 수 없게 하여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허다한 지방에서는 여전히 구원을 얻지 못했으며, 이재민들의 생명은 갈수록 공산당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다.
8. 교묘한 수단으로 재물을 빼돌리고, 부실공정은 아이들을 죽였다
대지진에서 대부분의 학교들이 무너져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낡은 학교이든 새 학교이든 모두 지진에 무너졌다. 그런데 중공 관리들은 죽은 사람이 별로 없고, 중공의 사무청사도 학교처럼 무너진 것이 아주 적다. 십몇 년 전, 카라마이(克拉玛依)에 화재가 발생 했을 때 "지도자가 먼저 나가게 하라"는 명령으로 인해 몇백 명의 아이들이 타서 죽거나 질식해 죽었지만 지도자들은 모두 살았다. 지금 중공은 여전히 인민의 피땀을 짜내고 있으며, 자신이 사는 집과 사무실은 모두 호화로운 집들이지만 아이들은 부실공정의 위험한 건물에서 공부하고 있다.
공산당의 유일한 목적이란 바로 자기의 통치를 유지하는 것이며, 쓰고 있는 방식은 일관된 거짓말과 폭력이다. 비록 지금 공산당이 표면적으로는 구제에 적극적인척 하고, 매체에 결사적으로 재해를 구제하는 자신의 형상을 선전하고 있지만 공산당의 가면을 벗겨버리면 공산당의 인민생명을 경시하는 사악한 본질이 백일하에 철저히 드러나게 된다.
[명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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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생들, 뉴욕 플러싱에서 중공의 박해수출 질책 (사진들)
[명혜망] 5월31일, 천여 명 이상 모인 파룬궁수련생들과 사회 각계층에서 온 사람들이 뉴욕 플러싱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에서 중국 지역사회에서 파룬궁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폭력을 획책하고 있는 중공을 질책했다. 플러싱은 뉴욕시와 가까운 지역사회로 수많은 중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플러싱에서 1천명 집회, 중공의 박해 수출을 질책하다。 |
플러싱에서 1천명 집회, 중공의 박해 수출을 질책하다。 |
플러싱에서 1천명 집회, 중공의 박해 수출을 질책하다。 |
플러싱에서 1천명 집회, 중공의 박해 수출을 질책하다。 |
파룬궁수련생들의 ‘천국악단’이 “파룬따파 하오”를 연주하고 있다。 |
파룬궁수련생들에게 가한 폭력 배후세력에 대해 진상을 밝힌, 대기원 시보 특간을 읽고 있는 한 행인 |
집회는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세계는 眞-善-忍이 필요하다,” “파룬따파 하오,” “중공이 왜 眞-善-忍을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저우융캉이 스파이를 이용해 증오심을 퍼뜨려 파룬궁을 박해한다,” “뉴욕 중국총영사가 친-중공단체를 선동하여 파룬궁을 공격하게 했다,” “天滅中共, 退黨保平安”이라고 쓴 현수막을 전시했다.
집회 사회자: 모든 화인들에게 중공에 이용당하지 말고, 공동으로 박해를 제지하자고 호소
집회 사회를 본 사회자는 “파룬궁은 어떤 정치적 의제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화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진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다만 박해에 대해 진상을 알리며 이 비인간적인 잔혹한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이 날 사회를 본 사회자는 쓰촨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관련하여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재해라고 했다. “당신들이 알다시피, 중국은 지지예측에 종사하는 선진적 기술과 재능있는 엔지니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1976년, 탕산 지진이 정확하게 예측되었던 것과 똑같이, 쓰촨 지진 역시 예측되었다. 하지만 사악한 공산정권이 지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지 않아 수만 명을 죽게 했다. 게다가 부패된 체계로, 학교 건물이 대부분 부실건축되어 아주 많은 어린이들이 죽었다.”
구제활동에 힘쓰는 대신, 중공은 지진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증오 선동을 하고 있다고 사회자는 말을 이었다. “중공은 민중들의 시선을 구제노력에 실패한 중국정부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쓰고 있다. 중공은 우리가 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성금을 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바로 이 정권이 증오심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또 하나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플러싱 주민들이 중공의 사악한 본성을 명확하게 꿰뚫어 보고 박해제지를 위해 우리를 돕기를 희망한다.”
다음 파룬궁 박해 국제 추적조사단(WOIPFG)의 즈위안 왕씨가 전화조사한 녹음을 틀었다. 녹음에는, 뉴욕 중국총영사, 펑 커위가 비밀 조사자에게 플러싱에서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폭력 뒤에는 영사관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다웨이 가오: 중공은 정의의 심판에서 도망칠 수 없다
전세계 퇴당 서비스센터 책임자, 다웨이 가오 |
다웨이 가오 박사는 지난 주, 전세계가 플러싱에서 일어난 파룬궁수련생들과 퇴당 서비스 센터 자원봉사자들을 계속해서 공격해 온 중공에게 획책당한 친-중공계 중국인 단체들을 주시해왔다. “우리 탈당센터는 지진지대로부터 중공과 그와 연관된 조직으로부터의 탈퇴성명과 중공의 폭정을 밝히는 성명을 무수히 받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애끓는 사연을 전세계에 밝혀주기를 원하고 있다.
가오 박사는 “매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중공폭정이 더욱더 밝혀지고 있다. 부디 그것의 거짓선전에 속지 말기 바란다.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저우융캉은 그 많은 학생들의 죽음에 직접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는 플러싱에서 이런 폭력적 공격을 도모했다. 저우는 쓰촨의 당서기였고 부실빌딩건축에 관여한 많은 부패관리들을 승진시킨 장본인이다. 두려움 때문에 저우는 파룬궁이 지진구조에 협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함으로써 민중들의 분노를 파룬궁으로 돌리려 했다.”고 말했다.
가오는 또한 중공의 비밀을 새나가게 한 뉴욕 중국총영사, 펑 커위에게 중공에서 탈퇴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당신이 퇴당 서비스 센터와 접촉하기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天滅中共”은 더 이상 슬로건이 아니다. 이것은 고위 중공관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제 중공폭정의 말로가 다가오고 있고 당 또한 정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사실화되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당을 탈퇴하여 안전한 미래를 가질 것을 아주 열심히 설득해왔다,“고 가오 박사 결론지었다.
썬 양: 플러싱 사건은 파룬궁수련생들의 풍모를 전시한다
썬 양 박사, 중미 파룬따파 불학회 책임자 |
집회에서, 중미 파룬따파 불학회 책임자, 썬 양 박사는 플러싱사건 중에 파룬궁수련생들은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면서, 수련자의 풍모를 충분히 전시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친-중공계 폭민들의 언행은 시종 중국인들의 형상을 파괴했고, 매 중국인을 수치스럽게 했다. 폭력이 중공의 폭정을 감출 수 있고 이런 공격이 희생된 어린이들이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있는가?
“파룬궁 수련생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회복지에 공헌해 왔다. 1998년 양쯔강 홍수 때도, 많은 수련생들이 최선을 다 해 홍수와 싸워 희생자들을 구출했지만,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았다. 쓰촨 지진 후, 많은 수련생들이 묵묵히 여러 단체를 통해 돈을 보냈다. 나 자신도 적십자를 통해 기증했다. 나는 이 돈 전체가 지진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희망한다.
우환: 파룬궁은 두려움이 없다
우환, “중국사무” 웹사이트 주필 |
“중국사무” 웹사이트 주필, 우환은 지난 9년 간 파룬궁과 그가 가진 경험을 재음미했다.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단체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은 수련생들이 ‘眞-善-忍’ 원칙을 따르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지지하고 있다.
그는 발언 중, 우씨는 또 수련생들을 욕하는 친-중공계 사람들에게 충고도 했다. 그는 “당신들이 그 날, 한 노년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둘러싸고 그녀를 욕했을 때, 그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첫째, 이 노부인은 당신들을 흡인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둘째, 그녀는 이렇게 많은 당신들 전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당신들은 파룬궁을 얕보지 말라. 왜냐하면 정의가 그들 손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를 알고 난 후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내가 그들을 지지하기 때문에, 나의 지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곳으로 날아왔다.”
우씨는 또 후-원 정권 (현 중국주석과 총리)에게도 박해 중지를 촉구했다. “즉시 박해를 중지하라, 그리고 장쩌민 집단을 핑계 삼지 말라 (장이 중국 주석이었던 1999년에 박해를 시작했다). 더욱이 그들의 공범이 되지 말라. 중국의 옛말, 선악유보(善恶有报), 선은 선의 보답이 있고 악은 악의 응보가 있다. 고집 부리지 말라, 응보가 머리에 떨어졌을 때는 후회해도 너무 늦을 것이다.”
웨이징성: 天滅中共, 사실 중공은 자멸상태에 놓여있다
저명한 인권운동가, 웨이징성은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워싱턴 DC로부터 몇 시간을 운전해 왔다.
친-중공계 단체를 향한 그의 첫 논평은 “중공은 외국에 문화혁명을 가져왔다.”
웨이는 중공의 흑색폭력에 참가한 사람 중 두 부류가 있다고 믿는다. “일부는 중공특권계층의 사람이다, 그들이 이런 폭력에 가담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공을 사랑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부류는 중공의 조정을 받고, 다른 중국인들을 모욕하고 구타한다.”
“당신들이 이렇게 한 것은 바로 당신들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고 당신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웨이는 길 건너편 단체에 경고했다. 중국폭도의 폭력이 미국매체에 보도되었을 때, 중국인들의 이미지가 손상되었고 우리 매 한 사람이 수치를 느꼈다. 중공에게는 그렇게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해외 중국인들은 이에 속아서는 안 되며 더 이상 우리의 이미지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조국을 사랑한다. 나는 당신들이 명석해져 중국의 이미지를 수호하기 바란다. 중공은 자멸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미국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해 나가기를 바란다.”
플러싱 주민들: 파룬궁은 좋다!
아직 일부 친-중공계 사람들이 길 건너편에서 수련생들을 욕하고 있지만, 많은 행인들이 파룬궁에 대해 그들의 지지를 표시했다.
70세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인은 그녀가 박해에 대해 그리고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들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만행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진리, 평화, 그리고 자비를 필요로 한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중국말로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하오, 하오, 하오! [좋다]” 수련생들에게 욕하는 조그만 단체를 가리키며, “부 하오.” [좋지 않다]
차이윈 이에 여사는 근처 타운에서 살며 의사와의 약속 때문에 플러싱에 와서 집회장소를 지나치다 발언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듣고 기뻐하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노력을 계속하세요. 신은 당신들을 축복합니다!”
왜 파룬궁을 지지하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에 여사는 “파룬궁은 인류에게 좋은 공헌을 했습니다. 나는 신문에서 장기적출 만행에 대해 알았죠. 중공은 그냥 그처럼 사악합니다. 중공의 멸망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이에 여사는 또 길 건너편 중공에 매수된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치우씨는 플러싱에서 살고 있으며 중공에 선동된 폭력단체들이 어떻게 파룬궁수련생들을 공격했는지를 목격했다. 그는 중공에 이용당하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아주 큰 슬픔을 느꼈다. “그들이 그처럼 오랜 동안 중공에 의해 탄압받아왔으면서도, 그들은 아직도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이곳에서 같은 동족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 아닌가?”
지진과 관련하여 추여사는 “그처럼 부실빌딩을 많이 짓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구조할 수 있었던 처음 72시간의 긴박한 시기에, 중공은 국제구조대가 지진지대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얼마나 사악한가? 하늘은 이것을 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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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정기'도 못피한 中 검열 폭탄 | |
“중공 치부 드러낸다.”…100곳 이상 수정 명령 | |
대중매체를 통제하는 중공 광전총국(廣電總局)은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녹정기에 나오는 전쟁장면·일부다처제 등 '불량한 내용' 100 군데 이상을 수정할 것을 명령했다. 녹정기는 중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인 김용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톱스타 황샤오밍(黃曉明)이 출연한 화제작이다. 청대 강희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김용의 마지막 무협소설 녹정기는 국내에도 출간돼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당국이 문제삼은 녹정기의 전쟁장면은 어떤 것일까? 주인공인 위소보(韋小寶)가 강희제를 도와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반청(反淸)의 선봉장이었던 정성공(鄭成功)의 손자가 다스리던 대만을 수복한다는 내용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중국(청나라)과 러시아와 관계를 다루는 대목에 있다. 강희제는 러시아와 싸워 약 1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확장했다. 여기에는 지금의 외몽골(몽골공화국)과 연해주 일대가 포함된다. 또 극중에서 위소보는 연인인 러시아 공주 소비아를 도와 섭정여왕이 되게 한 후 중국과 러시아의 첫 번 째 국경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제 역사 사실인 네르친스크 조약의 내용은 러시아 상인의 중국 출입을 허용하는 대신 러시아가 헤이룽(黑龍) 강 유역에 설치한 전초기지를 철수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1999년 12월 9일 당시 중공 주석 장쩌민은 중국을 방문한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맺은 ‘중러국경협정(中俄全面勘分邊界條約)’을 떠올리게 한다. 60년대 무력분쟁으로 치닫을 정도로 중국과 러시아는 국경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자주 벌여 왔다. 장쩌민은 협정을 통해 외싱안링(興安嶺) 남부, 헤이룽강 북부 60여 만 평방킬로미터 지역, 우수리강 동부 40만 평방킬로미터 지역, 현재 러시아 투바공화국 지역인 17만 평방킬로미터, 사할린 지역 7만 평방킬로미터를 러시아에 넘겼다. 이는 대만 면적의 40배에 달하는 규모이지만, 중국이 러시아에게 받은 대가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는 중국 최초의 평등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싸워 영토를 확장한 강희제의 업적과 비교된다. 중공 당국이 중러국경협정에 얼마나 민감한 지는 홍콩 문회보 부편집장을 역임한 전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의 홍콩특파원 청샹(程翔)을 통해 알 수 있다. 청샹은 홍콩 명보(明報)에 중궈런(鍾國仁)이라는 필명으로 몇 편의 글을 발표했다. 청샹은 글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중러국경협정’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후 중공 당국의 표적수사에 걸려 2005년 4월 전중공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의 인터뷰 사본을 입수하다 체포됐다. 청샹은 간첩죄로 3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지난 2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당국이 문제 삼은 또 하나의 '불량한 내용'은 일부다처제에 관한 것이다. 위소보는 극중에서 부인을 7명이나 둔 것으로 나온다. 광전총국은 이를 두고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국이 우려한 것은 실제로는 일부다처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위소보를 보고 떠올릴 ‘누군가’에 있다. 지난해 실각한 전 상하이 당서기 천량위(陳良宇)는 톱모델, 여성공무원 등 여러 명의 얼나이(二奶·둘째 부인, 즉 첩)를 두었고 손녀뻘 되는 호텔 직원 사이에 자식까지 뒀다. 한때 상하이방(장쩌민 측근 세력)의 황태자로 불렸던 천량위는 거액의 부정축재와 문란한 생활이 드러나면서 철창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최근 중국 언론들은 공산당 간부 낙마의 90%는 축첩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현재 부자와 고위 관료들 사이에 축첩이 성공의 징표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무협 매니아들은 이미 여러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녹정기의 2008년 황샤오밍 버전을 학수고대했지만, 아쉽게도 ‘완전판’ 녹정기를 보기는 앞으로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지난 11월 중국에서 30분 분량이 삭제된 색계가 개봉됐다. 하지만 극장은 텅텅 비었고 중국인들은 무삭제판 색계를 보기 위해 대거 홍콩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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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
생활 속의 당문화(상) | |
1. 중국 전통 책력을 농력(農曆) 또는 음력으로, 설을 춘절(春節)로 부름 2. 전통 명절을 없애버리고 당 명절을 배치 3. 결혼할 때 천지신명에게 알리는 대신 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위대한 문명은 모두 오랜 세월의 누적과 연화 과정을 거쳐 왔다. 5천년 중화(中華)문명 중에 여러 대(代)의 제왕이 서거했고 역대로 여러 왕조가 끝났지만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백성을 사랑하고 재물을 아끼는 가치의 핵심만은 종래로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이런 가치의 지도하에 전통 중국 사회에는 다양한 사회부문이 존재하여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ㅡ생존 요구, 정서적 요구, 안전에 대한 요구, 정신적인 요구들을 만족시켰다. 정치란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며 사회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그 역(逆)은 아니다. 종교 신앙, 윤리도덕, 풍속 습관, 이런 사회적 기본 내용은 정치에 대해 제약하고 인도(引導)하는 작용을 한다. 정권이 정의(正義)의 궤도를 이탈하면 사람들은 사회에서 공인하는 준칙으로 정권을 규범하거나 바로잡으며 심지어 정권을 뒤엎고(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함) 정권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공자는 “예를 잃으면 민간에서 찾아라(禮失而求諸野 역주: 한서 예문지)”라고 했다. 의미는 만약 조정에서 예의(禮儀)를 잃었다면 민간에 가서 찾으라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사회에서 가치의 중요성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중국 전통 문화의 심후(深厚)한 정신적 내포는 전체적으로 말해서 중국 전통 사회가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사회라는 것을 결정한다. 건강한 사회란 인민들의 심지(心智)가 건전한 것을 의미한다. 심지가 건전한 인민이라면 공산당의 우롱과 위협을 듣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공산당은 사회생활 중에서 전통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뿌리 뽑고 당 문화로 대체해야 했다. 공산당 통치하에서 사회는 고도로 정치화되었고 정치는 고도로 일원화되었다. 공산당은 ‘불파불립(不破不立 역주: 낡은 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새것을 세울 수 없다.)’, ‘대파대립(大破大立 역주: 문화대혁명 기간에 낡은 사상․사물을 철저하게 비판, 타파하고 새로운 사상과 사물을 단호하게 수립하자는 의미)’, ‘이풍역속(移風易俗 역주: 낡은 풍속과 습관을 고친다는 의미)’, ‘파구입신(破舊立新 역주: 사상, 풍습 등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대치한다는 의미)’을 내세한다. 이런 살벌한 구호 속에서 타파한 것은 5천년 유구한 중화문명이었으며 건립한 것은 중공의 사악한 당문화였다. | ||||
어쩌면 자신은 당문화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과 신문의 시사를 아주 적게 본다거나, 기본적으로 중공 정치 학습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공이 실행한 것은 “당이 일체를 영도한다”는 것이지 “당이 일체를 영도하여 당신의 개인 생활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다. 당문화는 중국인들의 생활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은 이후 중국 대륙에 당문화의 독해를 받지 않은 곳은 없다. 중국사회에 대한 당문화의 파괴는 심각하고도 철저하다. 역법이나 명절, 관혼상제, 의식주, 심지어 가정과 양육마저 중공의 의도대로 변질되었다. 아래에서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생활 속의 당문화에 대해 토론해 보고자 한다. 1. 중국 전통 책력을 농력(農曆) 또는 음력으로, 설을 춘절(春節)로 부름 오늘날 중국인들은 전통적인 역법(曆法)을 농력(農曆) 혹은 음력(陰曆)이라고 부르며, ‘정월 초하루’를 춘절(春節)로 부른다. 여기에서 사용한 ‘농력’, ‘춘절’ 등의 설법은 뚜렷한 당문화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지 한 명사의 변화로 보이지만 수천 년 역사의 전승은 이로 인해 단절되고 말았다. 1) 황력(皇曆)을 농력 혹은 음력으로 부름 중국인들은 역사를 아주 중시해 왔으며 역사에 대한 기재의 상세함과 정확함은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이나 혹은 아프리카와 비교해 볼 때도 차이가 몹시 크다. 이것은 물론 중국인들이 역사 기록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특유의 역사 편찬의 이기(利器)인 기년방식(紀年方式)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역사’는 바로 ‘어느 해’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를 기재하는 것이다. 만약 기년(紀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곧 역사를 편찬하는데 아주 큰 장애를 초래한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의 역사에서 통일 역법(17-18세기)이 존재하기 이전의 연대는 모호하거나 심지어 혼란했던 것이다. 중국 전통 역법은 간지(干支)로 연도를 기록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소위 ‘간지’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줄인 말이다. 이 중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10 천간이라고 하고,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12 지지라고 한다. 기년(紀年)은 순서에 따라 간지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오는데 갑자(甲子)를 시작으로 6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데 끊임없이 돈다. 이와 같은 간지 기년의 방식은 중국 역사로 하여금 연대를 정하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몇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아주 쉽게 중국 사서(史書) 중의 기년을 서기로 대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중국인들은 월(月), 일(日)과 시간까지도 모두 간지로 기재했다. 바꾸어 말하면 천간과 지지에서 각기 한 글자를 이용하여 매 시각을 모두 연, 월, 일, 시의 간지로 표기할 수 있다. 때문에 모두 여덟 글자로 특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6월 6일 아침 6시를 간지로 표기하면 병술년(丙戌年) 갑오월(甲午月) 병인일(丙寅日) 신묘시(辛卯时)에 해당한다. 만약 이 시각에 출생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생진8자(生辰八字 역주: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주팔자라고 부르는 것)’는 바로 병술(丙戌), 갑오(甲午), 병인(丙寅), 신묘(辛卯)가 된다. 중국 최초의 역법은 헌원황제(軒轅黃帝)가 반포한 것이다. 헌원황제가 ‘인문초조(人文初祖)’로 존중받는 것에서도 역법에 대한 중국인들의 중시를 보아낼 수 있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기재된 황제,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와 순(舜)은 모두 역법을 수정했다. 순임금 시대에 사람들은 이미 일 년의 날짜 및 절기 구분에 대해 상당히 정확히 알고 있었다. | ||||
헌원황제는 도가 문화의 창시인이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문명 초기부터 도가의 음양 학설을 매우 중시했다. 역법에서도 음양평형(陰陽平衡)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즉, 중국 전통 역법은 음양합력(陰陽合歷)으로 단순한 음력이나 단순한 양력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는 양력은 바로 태양력(양력으로 간칭)으로 그것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를 기초로 한 것이다. 때문에 양력에서 달의 구분은 실제 달의 주기와는 관계없는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이슬람교 역법은 전형적인 태음력(음력으로 간칭)으로 그것은 완전히 달의 주기를 기초로 달을 정한 것이다. 이 경우 1년 12개월은 대략 354일이 된다. 그러므로 33년이 지나면 양력과 1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음양 평형을 중시한 중국 고인(古人)들이 제정한 전통 역법은 달의 주기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 주기를 동시에 고려했다. 매월 평균 길이는 삭망월(朔望月)에 가까운데 ‘삭일(朔日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일 때 지구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날을 말함.)’을 매월의 초하루로 정했다. 그러므로 매월 중간에 ‘망일(望日 보름)이 있게 된다. 한편 윤달을 설치하여 일 년의 평균 길이를 실제 공전주기에 가깝게 했으니 이는 ‘음월양년(陰月陽年)’식의 음양합력이다. 이 역법은 매 년이 기본적으로 계절 변화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또 매 달의 날짜와 달의 주기를 서로 대응시킬 수 있다. 그 외에도 일찍이 순임금 시기에 계절 변화의 24절기(節氣) 구분을 이미 완성했다. 전통 역법 중의 절기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주기의 변화에 따라 결정하는데 이것은 태양력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중국 전통 문화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중시했고, 도가에서는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라고 여겼다. 때문에 천상(天象)에 대한 관측을 몹시 중시했다. 한(漢)나라 초기에 사마천(司馬遷)이 《사기》를 쓸 때 전문적으로 ‘천관서(天官書)’를 썼는데 별의 운행 규칙, 위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영향 등 각 방면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한편 천간과 지지를 오행(五行)에 대응시킴으로써 방위, 색깔, 계절, 오장(五臟), 사회 구조 등에 진일보 대응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주역 예측학이 발달했다. 간지로 월(月)을 표기할 때에는 여기의 ‘월’ 역시 전통 역법 중에서 실제 달의 운행주기를 기초로 한 월이었다. 즉 주역 예측 역시 반드시 전통 역법을 기초로 한다. 역사적으로 한 황조(皇朝)가 건립된 후 황제가 새로 등극하거나 혹은 무슨 큰 일, 천재지변 등이 발생할 때면 모두 연호를 고쳤다. 그러므로 역법 속에 또 연호를 더했다. 예를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정관(貞觀)’, ‘영락(永樂)’, ‘강희(康熙)’ 등은 모두 연호에 해당한다. 전통 황조의 역서(曆書)는 모두 황제가 반포했기 때문에 황제의 연호와 연계되어 있었고 아울러 관방에서 출간했다. 때문에 전통 역법을 ‘황력(皇曆)’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최초의 역법이 황제(黃帝)로부터 내원한 까닭에 ‘황력(黃歷)’이라고도 부른다. 황력(皇曆)은 간지 기년, 24절기를 포함하여 매일의 길하고 흉함, 마땅함(宜)과 꺼림(忌), 혼례, 의식과 잔치(仪式庆典), 건축이나 이사, 일상생활, 제사와 장례 등의 방면과 관련된다. 중국 역법은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을 충분히 체현했고 자연 순환의 운화(運化) 법칙 즉, 시공(시간과 방위)이 서로 움직이고 ‘음’과 ‘양’이 작용한 결과를 함축하는 동시에 우주의 상생상극, 화복(禍福)의 전환, 왕조의 변환, 순환왕복 등 법칙에 대한 중국 고인(古人)들의 이해를 반영하였다. 그 배후에 반영된 것은 도가 문화와 중국 전통 사회의 천지신명을 경외하고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화(人和)를 고려하는 가치관이다. | ||||
중국 역법은 음양 평형, 천인합일, 예측학의 내포로 인해 중공이 소멸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 ‘황력(皇曆)’이 전통 사회의 통치 질서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중 아주 많은 예측학, 풍수 등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고 여겨 ‘황력’을 폐지했다. ‘황력(黃歷)’ 혹은 ‘하력(夏歷)’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역사를 돌아보게 할 수 있기에 중공은 전통 역법을 ‘음력’으로 부르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음력’이란 말은 마땅히 틀렸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 역법은 ‘음양합력’인데 ‘음력’이라고 부르면 전통 문화 중의 음양평형이란 관념을 깨뜨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공은 ‘음’이란 글자 역시 여전히 도가의 술어이므로 이 역시 수련의 내포를 지닌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중공은 1968년 ‘네 가지 낡은 것’을 없앨 때 전통 역법을 ‘농력(農曆)’으로 고친 것이다. 중공이 전통적인 황력을 농력이라고 부르자 사람들에게 일종의 착각이 생겼다. 마치 전통 역법의 역할이 농업에만 제한된 것 같고 농업에서만 쓰이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또한 중공의 유물론 원칙과도 일치하는데, 즉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듯이 농업 사회에서 생겨난 역법은 그 작용이 농사에만 국한된다는 것이다. 마치 농민들에게만 쓸모가 있을 뿐 현대 사회와 다른 사람들과는 별로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전통 역법은 이때부터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사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전통 황력의 작용은 절대로 농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생활과 더욱 밀접한 부분이 있으며, 직접적으로 ‘천지인’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을 포함하여 천간과 지지를 기초로 오행의 상생상극에 근거하여 확정한 매일의 길흉과 의기(宜忌), 그리고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각종 명절이나 제사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일상생활과 긴밀히 연관된 이런 문화 내용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수시로 자신의 전통 문명을 되돌아보게 할 수 있었다. 중공은 그것을 쉽게 농력이라 불렀지만 실제적으로는 박대(博大)한 문화내포를 함축한 전통 황력을 얕잡아 보고 파낸 것으로 전통 문화의 전승을 단절시켜 버린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과 농력을 말해 보면 다만 얼마 남지 않은 겨우 몇 가지 명절만 알 뿐이며 농민들의 농사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뿐 그 중에 포함된 심후한 전통문화의 내포는 모른다. 그 외 중공 당문화 중에 농민은 늘 ‘정치적 각성’이 높지 않고 ‘봉건, 우매, 낙후’ 등과 연계되어 있다. 중공이 황력을 농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전통 역법에 대한 일종의 폄하이다. 2) 신년(新年)을 춘절(春節)로 호칭 설을 쇠는 것은 중국인 사회에서 최대의 전통 명절이다. 《설문해자》중의 ‘년(年)’의 의미는 ‘오곡이 무르익는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둔 후 신명(神明)의 보우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 신에게 감사드리는 제사를 거행했으며 아울러 새해에도 기후가 순탄하길 기원하는 중요한 의식을 거행했다. 전통적인 신년(新年)은 섣달 초파일부터 시작해 정월 보름에야 끝난다. ‘섣달 초파일(臘八)’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개오(開悟)하여 성불하신 날인데 민간과 사찰에서는 이날 모두 납팔죽(臘八粥)을 먹어 새해에도 오곡이 풍성하고 가축이 흥성하기를 빌었다. 이어 섣달 이십삼일에는 ‘작은 설을 쇤다.’ 이 날은 조왕신(灶王爺)이 승천하는 날이다. 민간에서는 조왕신이 일 년 동안 식구들의 일거일동을 감독한 상황을 섣달 이십삼일에 천정(天庭)에 가서 보고하는 날이라고 여긴다. 섣달 그믐이 되면 다시 조왕신의 새로운 초상을 붙인다. 이런 활동은 중국인들이 “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다(頭上三尺有神靈)”는데 대한 일종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왕신의 감독 역할을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 단속을 하게 된다. | ||||
섣달 삼십일을 ‘섣달그믐(除夕)’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 신년 축하가 최고조에 이른다. 이는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그중 천지상[天地桌]을 차려놓고, 문신(門神)을 붙이고, 복신(福神), 재신(財神), 귀한 신, 희신(喜神), 태세신(太歲神)을 맞으며, 조왕신의 초상을 청해오고, 춘련(春聯)을 붙이며, 폭죽을 터뜨리는 등은 모두 중국인들이 신을 공경하는 전통과 관계가 있다. 천지상은 신불을 공양하고 신을 맞이하기 위해 임시로 만든 상이다. 춘련의 원형은 도부(桃符)인데 전설에 귀신이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한다고 여겨 오대(五代) 때 촉(蜀)나라의 군주 맹욱(孟旭)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에 “신년납여경 가절호장춘(新年納餘慶,嘉節號長春)”이란 글을 쓴 것이 춘련의 정식 시작이었다.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것도 설을 쇠는 중요한 부분이며 대개 자신의 집에 조상의 위패를 순서대로 정문 대청에 세워놓고 제물(祭物)을 진설했다. 그런 다음 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나이 순서에 따라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논어》에 이르기를 “초상(初喪)을 삼가고 멀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운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慎終追遠,民德歸厚矣 역주:《논어 학이(學而)》)”. 때문에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것은 효도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옛 사람의 도덕 전통에 대한 계승이기도 하다. 1949년 9월 27일,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후 정부를 세울 토론을 하면서 ‘정월 초하루’를 ‘춘절’로 고쳤다. 마치 그저 ‘봄’을 경축하는 일반적인 명절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이것은 그럴듯한 이름처럼 보이지만 중공이 전통 문화를 비판하고 대체하며 무신론을 선양할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다. 이렇게 고침으로써 전통적인 설 명절에 신명의 보살핌에 감사드리고 신명과 선조를 공경하는 문화적 내포가 사라졌다. 이때 설날에 나누던 덕담이 “금년에 북경에 가서 마오 주석을 뵐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혁명 정신을 대대로 전하자!” 등과 같은 정치적인 말로 변했으며 춘련은 “착취에서 벗어나도 공산당을 잊지 말고, 행복할 때도 마오 주석을 잊지 말자!”로 변했으며, 신을 공경하고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으로 변했으며 조직적으로 정치적인 영화를 보고 ‘교육적 의의’가 있는 갈라 공연을 조직한다. ‘단배’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인민 공사에는 새 풍속이 많기도 하네. 시어머니 작은어머니 모두 노래 부르네. 춘절에는 미신을 믿지 말고 모두들 무대에서 공연을 하네.”였다. 설에 집에 붙이는 그림은 신을 공경하고 복을 빌던 것에서 ‘대약진’, “인민 공사는 좋다”, “춘절에 노삼편(老三篇)을 학습하자”, “온 집이 공보(公報)를 읽자!”로 변했다. 중공 신문에서는 백성들이 설을 쇠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어떤 사람은 온 가족이 모인 기회를 이용해 마오쩌둥 사상 가정 학습반을 꾸릴 작정을 했고, 어떤 사람은 그믐날 밤에 쓰라린 과거를 회억하는 밥(忆苦饭)을 먹을 준비를 하면서 ‘이 설밥은 계급 교육의 밥으로 우리는 꼭 뱃속에 넣을 것이며 마음속에 기억하며 영원히 계급의 쓰라림을 잊지 않으며 영원히 당을 따라 혁명할 것이다!’ 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정 비판회를 열거나 혹은 친척친구를 만나 함께 ‘사상 수확’을 교류하며 ‘문화 대혁명의 아주 좋은 형세’를 마음껏 이야기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의 전통 명절인 설은 공산당에 의해 백성들에게 당문화를 주입하는 정치수업으로 변질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전통적인 경축 방식이 약간 회복되긴 했으나 30년 동안 파괴를 겪고 새로 태어난 세대는 이미 전통을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최근 20년 동안의 ‘춘절 연합 갈라’를 중공은 중국 백성들의 ‘새로운 풍속’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이 갈라는 완전하게 ‘주선율’을 노래했는데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주제로 시종 관통하고 있다. 아울러 격조는 날이 갈수록 거칠고 저속하다. 천백년 동안 설 속에 포함되었던 정신적 추구와 인생의 감회는 중공에 의하여 거의 다 파괴되었다 2. 전통 명절을 없애버리고 당 명절을 배치 중공은 전통 명절인 설을 ‘춘절(春節)’로 부른 것 외에도 또 아주 많은 명절을 없애버렸고 그를 대신해 당 명절을 배치했다. 이를 통해 당 문화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전통문화의 영향을 대체한 것이다. 중국의 전통 명절은 모두 수련, 신불(神佛)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교적 중요한 전통적 명절로는 설을 제외한 외에도 또 원소절(元宵節), 청명절(清明節), 단오절(端午節), 우란분회(盂蘭盆會), 중추절(中秋節), 중양절(重陽節), 동지(冬至), 그 외에도 욕불절(浴佛節), 칠석(七夕) 등이 있다. | ||||
원소절은 보통 ‘정월 대보름’이라고 한다. 원래 도교의 ‘상원절(上元節)’에서 온 것인데 전설에 의하면 천궁대제(天官大帝)의 탄신일이라고 한다. 한나라 명제(明帝)가 불법(佛法)을 믿고 존중하여 사찰과 민간에 명을 내려 이날 하루 등불을 켜게 함으로써 불법이 크게 밝은 것을 상징하게 했다. 이때부터 원소절은 또한 등불을 밝히는 날이 되었다. 청명절은 조상의 제를 지내고 성묘하는 때를 말한다. 단오절의 기원에 관해서는 하나는 굴원을 제사 지낸 데서 기원했다는 설과 용신(龍神) 숭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은 주(周)나라에서 기원한 것으로 주나라 천왕(天王)이 매년 한가위에 달에 제사를 지냈으며 나중에 점차적으로 달을 감상하는 풍속으로 남았다. 중양절은 9월 9일을 말하는데 중국의 술수(術數)에서 ‘구(九)’는 가장 높고(도가에서는 9층천을 말한다), 극히 넓으며(九州方圓), 극히 깊고(九地之下), 장구함 등을 상징한다. 이때 사람들은 국화를 감상하고 산수유를 몸에 달고 국화주를 마셨다. 동지는 제왕(帝王)이 천단(天坛)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욕불절(浴佛節)은 음력 사월 초팔일인데 또 석가탄신일(佛誕節) 또는 용화회(龍華會)라고도 한다. 이날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이다. 이 날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찰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재회(齋會)에 참가하며, 시주를 거행하고 방생 등의 활동을 한다. 칠석은 7월 7일을 말하는데 견우와 직녀의 전설에서 기원한 것이다. 우란분회는 음력 7월 15일을 말하는데 망자를 달래는 명절이다. 이 날은 목건련(目犍連) 존자가 그 모친을 아귀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재를 베풀어 스님들께 공양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의 명절을 간단히 요약하면 제사, 신화 혹은 부처, 도교와 관계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명절들이 보존될 수 있고 아울러 전통을 좇아 경축할 수 있다면 중국 문화 중에서 신과 관련 부분들이 대대로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공산당이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들과 중화 전통의 문화 도덕, 전통 문화 가치 사이의 전승과 연계를 끊어 버리기 위해 중공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더는 전통 문화의 영향과 보호를 받지 못하게 했고 완전히 당문화 속에 잠기게 했으며, 일상적인 풍습을 통해 민중들에 대한 세뇌를 진행했다. 중공은 정월 초하루를 ‘춘절’이라고 바꿔 남겨놓은 이외에, 기타 전통적인 명절들 중 중공이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전통적인 명절 풍속은 중공의 압제로 생존 공간을 잃어버렸고 유감스럽게도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중공은 다른 ‘명절’을 제정하여 자신의 통치를 위해 봉사하도록 했다. 이런 ‘당 명절(黨節)’에는 ‘3․8 부녀절’, ‘5․1 노동절’, ‘5․4 청년절’, ‘6․1 아동절’, ‘7․1 당 생일’, ‘8․1 건군절(建軍節)’, ‘10․1 국경절(國慶節)’ 등이 있다. 명절을 쇨 때면 명절의 기원을 되돌아보는 것이 늘 그날의 인기 화제가 된다. 그러나 중공이 지정한 명절은 ‘계급투쟁’ 혹은 ‘혁명’과 관계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거나 혹은 중공 자체의 이정표적인 기념으로 명절을 정치화한 이런 작법은 바로 사람들을 중공의 이데올로기에 순종하게 하려는 목적이며, 중공의 성립과 발전을 경축하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절(黨節)에는 휴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노래 경연 대회’, ‘문예공연’들을 조직해 공산 악당의 공덕과 은덕을 찬양하게 한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중공이 걸핏하면 그것의 명절 앞에 ‘국제’라는 두 글자를 씌우는데 마치 정말로 전 세계적으로 성대한 명절인 듯하다. 하지만 외국에 나온 후에야 사람들은 몇몇 작은 공산 국가들을 제외하고 외국 사람들이 쇠는 것은 모두 자기 민족 전통의 명절로 근본적으로 ‘3․8’, ‘5․1’, ‘6․1’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산당은 고의적으로 ‘노동자, 부녀와 아동’은 착취당하는 계급과 군체(群體)임을 과장하여 그들을 선동해 투쟁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공산국가의 ‘노동자, 부녀자와 아동’이야 말로 진정하게 압박을 받고 있다. 공산당이 이 몇 가지 명절을 이용하는 것은 그것의 계급투쟁의 필요에 협력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3․8 부녀절’에 흔히 볼 수 있는 활동은 모범 혹은 ‘3․8 붉은 기수’를 선출해, 여성을 주체로 한 운동회, 문예공연 등이거나 혹은 표창회, 경축회, 갈라 등 집회의 성격을 띤 활동을 거행한다. 최근에는 3․8절 경축에서도 새로운 것을 창조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사용하던지 막론하고 주제는 이런 명절을 이용해 사람들 머릿속에 “여자는 세상의 절반”이며 “남녀는 모두 같다”는 당문화를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여성에 대한 당의 ‘관심’을 표현하며, 당이 부녀를 ‘해방’시켜 ‘평등’한 지위를 얻게 했다는 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동시에 여성 모범들로 하여금 당의 공덕을 노래하고 충성을 표현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을 세뇌한다. ‘5․1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약 35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과 시위에서 기원한 것으로 시위자들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5․1이 당절로 변하자 경축 활동은 주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주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특색은 ‘노동 모범’을 선거하는 것인데 아래에서 위에 이르기까지 사업이 출중하고 성과가 좋은 사람 혹은 각 항목 각 업종의 두드러진 대표에게 영예를 주거나 심지어 직접 입당시켜 스스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기쁜 가운데 자신의 일체는 당이 베풀어 준 것임을 잊지 않게 한다. 이런 우수한 자들과 통일 전선을 통해 각 업종을 진일보로 통제하는 동시에 자신의 외면을 강화한다. ‘5․4 청년절’은 1919. 5. 4 운동에서 기원한 것이다. 원래는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애국 운동이었으나 공산당의 선전을 통해 ‘각성한 중국 무산계급이 최초로 독립적인 정치역량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한 표지로 되었다. ‘6․1 아동절’을 경축하는 나라는 모두 ‘사회주의’ 혹은 ‘이전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아동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치된 결론이 없다. 중공은 이 명절도 ‘반제국주의’에 귀결시켰다. ‘아동절’의 경축 활동은 부녀 연합회에서 관할한다. 공원에 가거나 문예 공연을 하거나 간에 아이들이 명절을 쇠는데 도리어 아이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들이 말을 하려면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어린이 말’을 해야 한다. 각종 활동은 교사들이 모두 준비해 놓는데 그 의의는 단순히 경축과 오락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5강4미(五講四美)’, ‘계승자가 되자’, ‘영욕을 알고 6․1을 경축하자(知榮辱慶六一)’ 등 활동의 주제는 모두 당의 어느 단계 정책과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아이들이 늘 보고 듣는 것은 당문화 속에서 문예라는 명의를 빌려 정치적인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또 ‘주제대의 날(主題隊日)’, ‘노래 대회’가 이 있는데 천진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허위적인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6․1 무렵은 소선대(少先隊)에 들어가는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소선대 깃발’ 아래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받아들이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평생 분투할 것”을 선서한다. 사실상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중공의 사악한 정치 속으로 끌어넣는 것이다. ‘7․1’은 이도저도 아닌 ‘명절’이다. 왜냐하면 중공은 7월 1일 성립된 것이 아님에도 중공에 의해 ‘당의 생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중공은 소련이 1920년 8월에 보이틴스키를 중국에 파견하여 건립한 것으로 당명 역시 소련이 지어준 것이다. 당시에는 ‘제3 인터내셔널 중국 지부ㅡ또는 중국 공산당이라 칭함’이라고 했다. 그것의 사명은 소련을 대신해 ‘중화민국을 뒤엎고 중국 국민당을 소멸하는’ 무산계급 혁명이었다. 1921년 7월에 소집한 것은 다만 중공의 대표대회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추론해도 먼저 공산당이 있었고 대표대회는 나중에 있어야 한다. 중공 제1차 당 대표대회는 소련 사람이 돈을 대어 열렸다. 나중에 왕정위(汪精衛)에게 빌붙어 매국노가 된 천궁보(陳公博)가 중공 창시인이자 제1대 대표였다. 그는 갓 결혼한 부인을 데리고 회의를 이용해 상해로 ‘공짜여행’을 왔고 대동(大東)여관에 투숙했다. 7월 31일, 천궁보가 투숙한 옆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프랑스 조계지 경찰들이 와서 안건을 조사하게 되자 중공은 자싱(嘉興) 남호(南湖)로 옮겨 회의를 열었다. 그때에는 정당을 설립하는 것이 합법적이라 경찰이 중공 대표를 체포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지만 중공은 도리어 경찰이 온 것은 ‘대적 투쟁’의 험악함이라고 과장했다. 1981년, 중공 당사 연구실은 1921년 8월초 《신보(申報)》에 실린 살인 사건 보도로부터 중공이 설립된 시간을 7월 23일로 추산해 내고 아울러 《중공 당사 대사년표(中共黨史大事年表)》에 써 넣었다. | ||||
‘7․1’은 ‘명절’이긴 하지만 ‘휴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리어 각급 당위원회와 중공 선전부에서는 사회적으로 전력을 다해 선전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외부적으로 그럴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더욱 그러하다. 당원은 각종 조직 활동에 참가해야 하며, 당의 각급 지도자들은 연설을 해야 하는데 역시 해마다 한 번씩 당원들에게 다시 충전시켜 당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외에 신입 당원을 입당시키는 것도 대개는 7․1 무렵을 선택한다. 중국에서 온 사회가 7․1을 명절로 승인하는 것은 바로 중국에 대한 중공의 점거를 승인하는 것이다. 이런 명절은 매년 한 번씩 중공에게 수혈(輸血)해 주고 중공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 ‘8․1 건군절’은 중공이 ‘난창기의(南昌起義)’ 폭동을 경축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의 배경은 국민 혁명군이 장제스(蔣介石)의 통솔 하에 1926년 북벌 전쟁을 일으켜 북양(北洋) 정부를 토벌했다. 인민들의 옹호가 있었기에 북벌군의 진전은 순조로웠고 국가는 곧 통일되는 듯했다. 그러나 중공은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고 끊임없이 북벌을 파괴했고 심지어 무장폭동의 방법으로 광동까지 공격해 국민당이 북양 군벌을 무너뜨리는 것을 저지했다. 장제스는 할 수 없이 1927년 4월 27일 국민당 중에서 공산당을 제거했고 중공은 그해 8월 1일 난창폭동을 발동하여 무장 할거(割據)를 했다. 난창 폭동은 중공이 자신의 군대를 장악한 발단이었기에 ‘건군절’로 부른 것이다. | ||||
‘10․1’은 중공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건립한 날이다. 그럼에도 중공은 전 인민들에게 공동으로 소위 ‘국경절’을 경축하라고 요구한다. ‘국경’ 활동에는 중대한 정치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바 경축 행사의 주체는, 북경에서 거행되는 국빈 연회, 열병식, 불꽃놀이, 행진이다. 한편으로는 무력을 자랑하여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꽃놀이, 국빈 연회, 원예 등으로 태평한 것처럼 꾸민다. 천안문 광장에 손중산(孫中山)의 거대한 초상을 놓아 대만과 ‘통일전선’을 나타내고, 행진으로 ‘만민이 옹호’하는 가상을 만들어 낸다. 이때쯤이면 텔레비전에서는 언제나 ‘개국대전(開國大典)’ 등 영화를 상영해 중공이 ‘해방’시키기가 쉽지 않았음을 추억하게 하여, 인위적으로 중국은 중공이 건립한 나라라는 정의를 내리게 함으로써 “공산당이 없으면 新중국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여 당과 국가를 뒤섞는다. 사람들에게 마치 중국은 중공이 건립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실상, 지금 아주 많은 중국인들은 10․1을 ‘국상일(國殤日)’이라고 부른다. 중공은 당을 건립한 그 때부터 중국인들에게 끝없는 고난을 가져다주었으며 특히 전국 정권을 탈취한 후에는 약 8천만 중국인들을 비정상적으로 죽게 했다. 아울러 수백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팔아먹었으며, 중화문화의 정화를 훼멸시켰고, 도덕과 생태방면에 만회할 수 없는 파괴를 조성했다. 중공은 인민들을 강요하여 그것의 성립과 발전을 경축하게 하는데 이것은 인민들에게 나날이 심각해지는 자신의 고난을 경축하게 한 것과 같다. | ||||
중공은 ‘5․1’, ‘10․1’을 일주일간의 긴 휴가로 변화시켰는데 비록 날은 많지만 스스로 조절할 여지는 없다. 중국인들은 이 며칠간 여행, 결혼 혹은 기타 중요한 활동을 배치하는데 이런 활동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놓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결혼사진 혹은 여행 기념사진을 가리키며 “이것은 내가 어느 해 ‘국경절’에 찍은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로부터 은연중에 중공의 명절을 일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중대한 사건을 연계시키게 했다. 3. 결혼할 때 천지신명에게 알리는 대신 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1) 정통 문화 속의 혼례 정통 문화는 4대 예절을 중시하는데 바로 관혼상제이다. ‘관례(冠禮)’란 성인이 되는 예절을 가리키는데 유가의 예절에 따르면, 남자는 20살이 되면 관례를 통해 성년이 된 것을 나타내는데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상례(喪禮)’는 사람이 세상을 뜬 후의 장례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승려나 도사를 청해 망자의 혼을 달랜다. ‘제례(祭禮)’란 바로 조상과 신에게 제를 지내는 예절이다.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후, 위 세 가지 예의를 모두 버렸는데 이는 그 속에 하늘과 신을 경앙하는 것을 포함하여 제사를 경건하게 지내는 요소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혼례(婚禮)’는 필경 인생의 4대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죽거나 살거나 함께 고생하자며, 당신과 굳게 언약했었지, 섬섬옥수 고운 손 힘주어 잡고, 오순도순 백년해로하자고(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중국의 옛 사람이든 서양인이든 막론하고 혼인은 일생의 약속이므로 천지신명에게 예를 올리고 정중하게 혼례를 치렀다. 《예기(禮記)》에는 전문적으로 ‘혼의(昏義)’를 따로 언급한 장(‘昏’은 가차한 글자로 ‘婚’과 같다. 옛 사람들은 혼례를 황혼 무렵에 거행했기 때문에 이 글자로 가차한 것이다)이 있다. 이곳에서는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친영(親迎)’ 육례(六禮)이다. 그 중 ‘납채’는 혼사를 제기하는 것이고, ‘문명’은 신부 측 성명을 물어 길흉을 점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납길’은 점친 기쁜 소식을 신부 측에 알려 주는 것이고, ‘납징’은 신랑 측에서 여자 측에 예물을 보내는 것이다. ‘청기’는 신랑 측에서 점을 쳐 선택한 혼례날을 신부 측에 보내 허락을 받는 것이다. ‘친영’은 신랑 측에서 신부를 맞아 오는 것을 가리킨다. 유가에서는 혼례는 남녀가 합하여 위로는 사당을 지키고 조상에 제를 지내는 일을 책임지게 하고 아래로는 후대를 키우는 것으로 여겨 혼례는 정중하고, 신중하며, 혼인을 존중하는 것을 바른 예로 보았다. 신부를 맞는 날, 신랑신부는 먼저 천지에 예를 올리고 하늘과 땅에 혼인의 증인이 되어줄 것을 청하며 부모님께 절을 올려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림과 아울러 혼인의 증인이 되도록 한다. 부부가 맞절을 하는 것은 손님을 대하듯 서로 존중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서양에서도 신자가 결혼하려면 교회에 가서 천주를 모시고 증인으로 삼는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선서문을 읽어야 한다. “나는 오늘부터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 할 것을 약속합니다.” 2) 혼례에 대한 중공의 왜곡 정통 문화 중의 혼례는 한편으로는 천지신명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륜을 겉으로 드러나는 기쁨과 함께 예절의 정중함을 잃지 않고 표현하는 것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 부모님께 대한 효성, 그리고 부부간의 은혜와 의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혼례의 세부적인 절차는 흔히 사람 일생의 가장 행복한 추억거리이다. 때문에 공산당도 필연코 혼례를 그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수호하는 중요 방식으로 만들려 했다. 중공의 간섭으로 중국인들의 혼사는 강렬한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당 조직’의 비준이 있어야 하며 서로 다른 ‘계급’ 사이의 혼담은 경고를 받거나 비준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 간부는 흔히 ‘조직’에서 배우자를 맞춰주는데 이런 가정들은 당에 대한 감격으로 충만 되기에 당의 ‘미시적인 전투 보루’로 변한다. 혼례의 의식은 ‘새로운 일을 새로 할 것’을 고취하기에 더는 천지신명에게 절하지 않고 대신 당에 대한 찬가로 바뀌었으며 당이 전통적인 신의 위치를 대신했다. 《백년풍속변천(百年風俗變遷)》은 중공이 정권을 세운 후의 혼례형식을 제기했다. 복장에서 남자의 마고자 창파오(長袍), 여자의 봉황 모양의 모자와 예장이 레닌의 복장으로 바뀐 외에도 결혼 증인이 천, 지, 부모로부터 ‘당지부 서기’로 변했다. 결혼 시간도 ‘5․1’, ‘10․1’과 같이 중공이 규정한 명절을 선택하여 ‘천지에 절하던’ 데에서 ‘마오 주석의 초상에 경례’하는 것으로 변했다. 문화대혁명 때에는 결혼 전에 더욱 마오쩌둥 어록을 읽어야 했다. “우리는 모두 사면팔방에서 하나의 공동 혁명 목표를 위해 함께 모였다. 혁명 대오 중의 일체 사람은 모두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 애호하며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리하여 혼인이란 사사로운 일이 ‘혁명’의 높이로 솟아오르게 되었다. 이중 한 가지 구절을 주의해 살펴보면, 바로 ‘혁명 대오중의 일체 사람’만이 비로소 “서 로 관심을 갖고 서로 애호하며 서로 도와주어야” 하며 혁명성이 인성보다 높다는 것이다. 동시에 또 “하늘이 크고 땅이 크다 해도 당의 은정(恩情)만은 못하다”, “부모의 정이 깊다 해도 마오 주석의 은정만은 못하다”, “마오쩌둥 사상은 대물림의 보배이니, 누가 반대한다면 그는 곧 우리의 원수라네”를 불러야 했다. 결혼식장에서도 ‘계급투쟁’의 활줄을 팽팽히 틀어쥐고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심을 표시해야 했던 것이다. ‘하늘이 크고 땅이 커도(天大地大)’라는 이 노래는 1966년 싱타이(邢台) 지진이 발생한 후 전해지기 시작했다. 혼례 때 ‘찬미시’와 같은 이런 가곡을 불렀는데 이것은 공산당이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아울러 사람들로 하여금 달콤한 혼인을 추억할 때 자연적으로 중공을 찬미하는 이런 가사들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아주 긴 시간 동안, 직장이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체면이 있는 사람들의 혼사일지라도 여전히 당 조직, 당 지도부의 개입을 피하지 못했고, 신랑 신부는 당의 관심에 감사를 표시해야 했다. 지금은 비록 중공이 혼인 형식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지는 않지만 몇십 년 격리를 거친 정통 혼인예절은 이미 버려졌다. 그런데 이와 함께 혼인에 대한 신성함과 책임감마저 함께 버려졌다. 오늘날 매우 많은 혼례는 난잡하기 이를 데 없으며 이미 그 속의 신성함과 전통적 예의의 규범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많은 가정의 모순, 부부 사이의 감정 파탄, 하룻밤 정사의 유행은 중공이 정통적인 혼인 관념과 혼례 형식을 파괴한 것과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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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은 종족보존, 그럼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의 인간은 영원토록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은 멸종되어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설령 인간들의 죄악이 극에 달하여 모두를 훼멸시키더라도 신들은 또 다른 인간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새끼를 낳는다. 포악한 짐승은 새끼를 한 마리나, 많아도 두․ 세 마리를 넘지 않는다. 또 그게 태어나더라도 어미로 자랄 확률은 낫다. 그리고 어미가 아무리 동물의 세계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그 새끼는 다른 약한 동물의 먹이감이 되어 어미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약한 짐승은 다섯 마리 열 마리,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수억 마리를 낳는다. 파리, 모기, 바퀴벌레, 세균 같은 것 들일 것이다.
식물은 종족보존을 위해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데 그것이 온갖 모양과 가지가지 색깔로 꽃을 피우면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우리는 그걸 보려고 이산 저산 찾아 구경하러 다닌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을 인간으로 친다면 그게 바로 임신상태와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런데 임신한 부인을 꽃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잘 없다. 하등의 꽃은 아름다운 줄 알면서도 고등의 인간이 배태한 임신은 아름다운 줄 모르는 것이다.
동식물은 종족의 보존을 위해 이생에 자라고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은 이 생으로 끝을 맺기 위해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걸 자각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나무가 살아 움직이고 우리의 피부가 계속적으로 움직이지만 우리는 그걸 보지 못한다. 미혹의 세상에 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살게 되면 그 누구도 볼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세상의 신들이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고 더 이상 또 다시 인간으로 윤회하지 않고 원래 자신이 살던 신의 세계로 가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참되고, 선하며, 모든 것을 꾹 참고 살아가는 것이 신의 길로 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도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가지 못할 사람은 갈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지금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세상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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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나라
중국은 실제 두 나라로 되어있다.
하나는 자유체제인 중화민국으로 자유중국, 타이완, 대만으로 불리는 섬나라로 수도가 대북(타이베이)이고 중국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유엔 상임이사국(1945년부터)이었으나 1971년부터 유엔으로부터 강제탈퇴 당했으며 국제사회에서 23개국만이 대만을 독립국가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1949.10모택동주석이 수립한 공산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 차이나, 중공으로 불리는 대륙 국가로 수도가 북경(베이징)으로 1971년에 유엔에서 자유중국이 퇴출되고 그 대신 중국의 정통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또는 중국)에서는 대만(자유중국)을 그들 중공의 하나의 성(省)으로 보고 있지 나라로 보지 않고 있으며
자유중국(대만) 또한 유엔의 입장과는 달리 스스로 중국의 정통정부로 자칭하고 있으며 중공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이라 하면 '중국공산당'을 말한다. 약칭하여 '중공'이라 일컫는다.
중국의 거짓근성
공산당문화가 들어선 중국은 일당 독재체제유지를 위해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권력투쟁에 따른 숙청, 6.4천안문사건을 거치면서 거짓, 살인, 문화파괴, 폭정, 공산사상의 신봉, 권력투쟁, 개인숭배, 암살, 자아비판, 평등주의, 유물론, 무신론, 자연파괴, 전통적 가치부정, 자본가부정의 정책을 폈다. 따라서 중국인민들의 사상에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참됨, 선함이 없고 살기위해서는 어떤 일도 감히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성으로 변질시켰다.
"내가 지은 농산물은 어떤 경우에도 변질되면 안 되니 방부제를 필요이상으로 사용하여 그걸 먹는 사람이 죽던 살던 알바 없다. 내가 만든 나무저가 지나친 표백제를 써서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중독되어 죽던지 살던 알바 아니다. 독이야 들던 말던 나무젓가락이 우선 표백이 잘되어 잘 팔린다면 그래서 돈이 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남의 눈을 속여 돈을 만들면 그만이다." 라는 심보를 길러냈다.
무게가 더 나가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납덩이(금속 중에서 부피가 작고도 가장 무겁다)를 생선 배에다 몰래 집어넣어 중량을 늘려 돈을 더 만들 수만 있으면 되고, 남의 회사에서 봉급을 받으면 성실히 노력해주고 그에 맞는 봉급을 받아야 할 텐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사장인 당신은 당연히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남이 일을 더해서 보너스를 타면 나는 일을 안했더라도 똑같은 직원이니 당연히 보너스를 저 직원과 같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다.
중국정부의 각급관리들은 정책이 변하면 그전의 정책을 열심히 추진했던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관료주의적인 소심성이 만연하게 되었다.
중국의 현행 헌법(1982)에는 중국공산당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중국의 유일한 정책결정기구이며, 중앙과 각 성(省) 및 하급지방의 정부기관이 당의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중요한 정부 기구들을 중국 공산당 위원회가 장악하며 정치적인 지침을 내리고 있으므로 비당원들이 공산당의 규율에 도전하는 자치기구를 만들지는 못한다. 정부 조직은 물론 경제, 산업, 문화 전반에 걸쳐 공산당의 통제력은 가장 강력하여 노동조합도 공산당에 속해있다.
현재 세계의 집권 공산당6개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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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지 않은 계란
http://minghui.co.kr/tt/board/ttboard.cgi?act=read&db=tian&page=1&idx=910
[명혜망 2008년 2월 8일] 2005년 상반 년의 어느 날, 호북성 무혈시에 사는 40여 세 되는 부녀가 계란을 담은 광주리를 멜대에 지고 연도에서 "계란 사려!"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중계촌 큰 길에 이르러 차에 부딪쳐 넘어졌고 광주리에 가득 담았던 계란들이 몽땅 쏟아져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과 계란이 조금도 다친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차는 그의 등허리를 탁 치면서 멈춰 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운전사는 다급히 차에서 뛰어내리며 물었다. "다치지 않았어요?" 그녀는 일어나 허리를 돌려보았다. 아픈데가 없자 연속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운전사는 또 계란이 깨지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가 둘러보니 놀랍게도 온 땅에 쏟아진 계란이 하나도 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또 연속으로 말했다. "깨지지 않았어요. 하나도 깨지지 않았어요."
차에 부딪쳐 넘어져도 상하지 않았다는 이 일만으로도 이미 신기한 일인데, 한 광주리 가득 담은 계란이 땅바닥에 쏟아져서 한 알도 깨지지 않았다는 이 일은 과연 처음보는 일이다.
원래 이 계란 파는 여인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법제자가 말하는 대법의 진상에 대해 모두 인정했으며 대법제자가 준 호신부도 아주 달갑게 받았으며 또 특별히 헝겊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몸에 걸고 다니면서 대법제자가 준 여러 개의 호신부를 몸에 소중히 간직하고 다녔다. 매번 진상을 알려주는 대법제자를 만날 때면 헝겊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보이면서 마치 집안의 보물을 대하듯 하면서 대법제자에게 "고마워요! 고마워요! 모두 이 안에 넣어 두었어요!" 하고 말하곤 하였다.
길에서 이번에 만난 차사고에서 사람과 계란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대법과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여 호신부를 귀중히 여겼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다. 그녀가 천천히 진정되었을 때에는 이미 기사는 차를 몰고 가버린 뒤였다. 그녀는 일어나서 주머니 속의 호신부를 만지작거리다가 단숨에 깨닫게 되었다. 이튿날 그녀는 다급히 대법제자를 찾아가서 그 자리에 있던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였다. "다행히도 당신들이 준 호신부가 있었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제 나는 계란과 함께 모두 끝장날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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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인기를 끌면서 여기에 등장한 고조선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두고 잊혀졌던상고사에관심이 높아 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충남 논산에 위치한 백제종합병원 이덕희 회장(88)이 펴낸 2권의 역사책이 기존의 역사학자와는 다른학설과 증거를 제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회장의 저서에는 신화로 존재 했던 고조선의 실체와 수도 아사달과 관련한이 회장의 50여년간의 연구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역사는 신화가 아닌 실존한 역사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왔습니다. 길림성의 봉화산 일대야 말로 단군이 건국한 아사달이 틀림없습니다”
이 회장은고조선의 유적에 대해 설명하기위해20대 청년시절 만주에서 겪었던 영화보다 더 극적인삶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1920년 부여 출신인 이 회장은 학도병 징집을 피해 20살의 젊은 나이에 만주의 길림성 영길현으로 떠났다. 중국 의사 시험에 합격한 이회장은병원을 개원해 망국의 설움을 겪는 우리 동포들과 중국인들의 진료에 힘을 썼었다.
어느 날 그 지역 중의사들도 못 고친 한 부호의 아들의 깊은 병환을 치료를 해줬다. 그 중국인은 그 뒤로 이회장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호형호제를 하며 지내던 중 우연치 않게 고조선과 발해의 멸망에 대한 비사를 들려 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삼대비원(三大悲願)이라는 말 들어 본적이 있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중국 한나라의 한무제가 8월 보름 중추 월병속에 고조선인을 학살하라는 밀명을 넣고 한족들의 봉기를 부추겨 고조선을 멸망 시켰다는 참혹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3일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이 회장은 조선 상고사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다.때마침 독립운동을 하던 이춘실 선생과 만남을 통해단군의 발자취를 찾아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
“그 당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나라를 잃은 서러운 민족이었지만 언젠가 나라를 꼭 되찾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잊혀진 역사를 후손들에게 꼭 밝히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조선의 문자가 새겨진 목판이 전해내려온다는 원통루는 국공 내전시 소실됐다. |
만주에서 병원을 하던 6년간 이 회장은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재가리’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에 대한 사료를 모으고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답사와 연구를 통해 고조선의 초기 수도가 봉황산 주변이고 후에 천도한 곳이 중국 길림시 오랍가 지역이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
“길림성 계하진 남사공리에 있는 해발 365m의 봉황산 주변이 고조선 초기의 수도입니다. 봉황산은 백두산과 송화강 맥이 같이 뻗어 내려와 봉황과 공작새가 날개를 쭉 펴고 고개를 쳐들고 앉아 있는 듯한 수려한 산입니다. 이 산에 올라 보면 단군께서 건국하고 축조한 옥황각(玉皇閣) 구지(舊址)가 실존하고 있으며, 천제를 올리고 즉위하였던 제단인 남성대등을길림성에 살던 당시제가 확인했습니다.”
현재는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당국의철저한 통제로인해갈수가 없어재확인이 안되지만 젊은 시절 봤던 길림성 일대에는 고조선의 역사를 알려주는 명승 고적의 기억이 이회장의 눈 앞에 선하다고 전한다.
아사달 지하 통로에 대한 도면을 직접 그리면서 설명하는 이덕희 회장. |
이회장은 해방 직후 고향인 부여로다시 돌아왔다. 한국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그 이후 부여군수에 부임해 행정경험을 쌓고 의사로서 부여와 강경에 병원을 개설해 현재의 백제종합병원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만주를 떠난 지난50년간 세월속에 그의 가슴속에는 길림성에 남아 있는 고조선의 유적들이 눈에 밟혀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연구를 하게 됐다.
중국과 국교수립이 논의되던 90년대 초 이 회장은 다시 만주를 찾았다. 가장 먼저 고조선의 문자가 전해 내려온다는 길림성의 원통루를 찾았지만 국공 내전에서 소실됐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원통루에는 조상들이 발명한 고조선 문자가 새겨진 목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일제 점령기 일본 관헌들이 반출을 시도 했지만 3차례나 비명횡사 한 후 포기한 사실이 있습니다.백의를 입은 민족만이 찾아 갈수 있해서 몇번을 수고문 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한무제에 의한 고조선 멸망을 증언한 한시와 만주에서의 사료와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2권의 책. |
한중 국교수립후 이 회장은 젊은시절 만주에서 보고들은 사료와틈틈히 중국과 대만등을 다니며 모은 자료를 토대로 두 권의 책을 내게 됐는데 바로 ‘송화강의 증언’과 여명의 종소리’이다. 이 책에는 이 회장의 50여년간 조선 상고사를 밝히기 위한 발자취와 증거와 귀중한 사료들을 정리돼 있다.
이재성 백제종합병원장. |
이회장은 동북공정작업 일환으로 우리 상고사의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가려는 중국의 정책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것 때문에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우리의 선조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놓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의 역사연구를 돕는 이재성 백제종합병원장은 "아버님이 평생 연구한 역사 사료를 정리해 우리 고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다시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왕조의 역사가 2~3백 년인 불과한 점을 비춰 볼때 우리가 고토 회복에 대한 역사 인식을지속적으로 갖는다면잃었던 만주의 동북 3성도 다시 우리 땅이 될 기회가 언젠가 올 수 있기때문이다.
“옛 고조선의 수도였던 길림성의 아사달 지역이 비밀리에 발굴이 중단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국민들이 우리민족의 상고사를 제대로 적시 할 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합니다. 만주가 과거 우리의 땅이었던 사실이란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덕희 회장은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올바른 역사 인식과 민족의 자긍심을 갖기 위해잊혀진고조선의 상고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 줄것 을 당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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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알선업자로 전락한 중국 의사들 | |
지난 3월 톈진 제일중앙병원 장기 이식 센터 주임 주즈쥔(朱志軍)은 대만 푸화호텔 로비에서 간장 이식을 원하는 환자들의 진료기록카드를 심사했다. 이에 대해 대만 위생국 쉐루이위안(薛瑞元) 국장은 “주씨가 사전 허가 없이 의료행위를 하고 비밀리에 장기 알선에 관여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사실이 증명되면 향후 주씨의 대만 입국을 거부할 수 있으며, 주씨를 초청한 단체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톈진 제일중앙의원은 아시아 최대 장기 이식 센터로 연간 600~700건의 간장 이식을 하고 있는데, 특히 수감된 파룬궁 수련자들의 살아있는 장기를 적출해 사용한 혐의가 짙어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자이(嘉義) 비뇨기과 전문의 황스웨이(黃士維) 박사에 따르면 광저우 경제기술개발구의원 장기 이식 혈액 정화과 주임 린민좐(林民專)이 매년 대만을 방문해 신장 환자와 면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의사가 해외에서 장기 이식수술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미 낯선 장면이 아니다. 이 자리에는 장기 알선 전문 브로커와 환자, 그리고 대만 의사까지 개입되어 불법 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이식받은 환자들의 수술경과가 나쁜 경우가 빈발함에도 불법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의술을 빙자해 절박한 환자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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