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사기·유리···잘라 붙여 만든 섬세한 조형

타이완의 타이난(臺南)시 중시(中西)구의 보안궁(保安宮) 지붕에 있는 젠녠. 공예가 예진루(葉進祿)가 제작하고 예밍지(葉明吉)가 복원했다.

타이완의 유명한 사당에는 하늘로 솟은 지붕 용머리에 젠녠(剪黏)이 있다. 용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듯하고, 세인들을 굽어보듯 신선이 웃고 있다. 화려하게 채색된 작품이 살아있는 듯 생생해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든다. 젠녠은 밋밋한 지붕을 장식하는 조형물이지만, 보이지 않아 믿기 어려운 천상의 세계와 전설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미혹(迷惑)을 일깨우기도 한다. 젠녠을 직역하면 ‘잘라 붙인다’는 뜻으로 구도(構圖)를 잡은 후 스테인레스강 와이어로 만든 골격에 재단한 조각을 묶고 시멘트 모르타르(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반죽한 것)로 모양을 잡으며 끼우고 붙여 채색한 작품이다. 중국 전통 예술이지만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타이완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젠녠을 3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예(葉) 씨 일가를 만나봤다.

예진루(葉進祿) 부자의 백년 전승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전해진 젠녠은 원래 칸츠(崁瓷)나 전화(剪花)라 불렸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에서 소실되어, 지금은 타이완 일부지역에만 남아있다.


타이완에서 손꼽히는 타이난 소재의 한 사당에는 용마루에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젠녠을 볼 수 있다. 용, 봉황, 짐승, 복록수(福祿壽) 삼성, 보탑(寶塔), 충효, 신선 전설 등이 담겨 있다.


일반 전통 공예와 달리 젠녠은 제작기간이 더 오래 걸린다. 구조 역학, 건축, 토목, 채색, 중국 남방지역의 독특한 도자기 공예예술품인 쟈오즈타오(交趾陶) 등 많은 공법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타이완 젠녠은 타이난(臺南) 안핑(安平) 예(葉)씨 가족으로부터 3대째 전승되고 있다. 백년 가업으로 이어받은 예술은 타이완 사찰 지붕에 다채로운 장엄함을 더했다. 할아버지 예중(葉鬃) 씨는 타이완 본토에서 젠녠을 시작한 대사 훙화(洪華) 문하의 제자이다. 그의 아들 예진루(葉進祿) 씨가 바통을 이어 받고, 손자인 예밍지(葉明吉) 씨에게 전해진 것이다.

젠녠(剪黏) 공예가 예밍지(葉明吉)씨가 그의 작품 '하늘을 뒤덮은 신룡(神龍)' 앞에 섰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일


4년 전 14회 글로벌중화문화예술 신촨상을 수상한 예진루(81) 씨는 어릴 때 부친 예중을 따라 젠녠을 배웠다. 아버지 문하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유독 예중 씨는 아들 진루 씨에 대해 특별히 엄격했다. 다른 학생들이 매일 저녁 중국의 전통 인형극인 포대희(布袋戲)나 가자희(歌仔戲)를 보면서 긴장을 풀었지만 예진루 씨는 휴식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가 놀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따라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먼저 필법을 잘 연습해야 공예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실수를 세 번 반복하면 뺨 한 대를 맞을 정도로 엄격했다. 높은 요구에 타고난 소질, 노력하는 태도로 예진루 씨는 탁월한 회화 기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젠녠을 하려면 반드시 그림을 잘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예진루 씨. 그의 회화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몇 년 전 초우둔(草屯)진 난푸(南埔)촌 천푸(陳府)장군 사당을 짓기 위해 그가 그린 젠녠 설계도를 보고 한 문화재위원은 다른 화가가 대필한 줄 알고 믿기지 않아 현장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게 했다가 예진루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말 위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자책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운명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작품을 제작할 기회가 많았다. 타이베이 신디엔(新店) 비탄밍성궁(碧潭明聖宮)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진루 씨는 다른 사공 백여 명과 경쟁하게 됐지만 제비뽑기에서 연속으로 9번이나 뽑히면서 순조롭게 기회를 얻었다. 그가 얻은 기회는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더 낮다며 다들 놀라워했다고 한다.

예 씨의 타고난 운명도 그렇지만, 젠녠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누구보다 깊다. 그는 30년 전 제작된 타이난 젠안궁(建安宮) 젠녠 작품이 버려진 것을 알고 50만 위안을 내고 사온 뒤 깨끗이 씻고 정리한 후 다시 원래 모양으로 복원시켰다. 복원된 작품이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사당 측은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

공무원, 뒤늦게 가업을 떠안다


어릴 때부터 젠녠 작품과 자료, 공구 속에서 자랐던 예밍지 씨. 그는 공예 도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만 가업을 이으려고 하지 않았다.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결혼해 자녀도 낳으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예진루 씨는 진지하게 말했다. “만약 가업을 잇지 않으면 조상을 뵐 면목이 없으며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밍지 씨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뒤늦게 시작했기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예밍지 씨는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말하지 못하고 미루는 사이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접한 터라 배우는 과정이 익숙했기에 배우는 속도는 빨랐다. 예진루 씨는 아들 밍지 씨와 작업실을 만들고 고적 복원 공사 등 젠녠 전승에 전력을 다했다. 예밍지 씨는 혼란했던 젠녠 관련 용어, 유래, 역사과정을 정리하고 글로 작성해 문화계, 정부기관에 소개하고, 젠녠 안내 해설을 가르쳤다.

예진루 씨가 제작한 젠녠 작품. 호랑이가 배불리 먹고 산으로 돌아가면서 돌아보고 있는 장면이다. 패기와 기세를 펼쳐 보이고 있다. 호랑이의 골격과 표정이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다. 몸에 난 털은 유리 천여 개를 붙여 제작했다.

박쥐가 머리를 내밀자 재물, 자손, 장수 등 세 신선이 날아와 재(財), 자(子), 수(壽), 복(福)을 모두 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재자수복(財子壽福)이 모두 내리다’라는 작품. 예밍지 제공

입체 젠녠 고안해 전시장 입성


보통 사당에 있는 젠녠 작품은 모두 벽에 박아 넣은 반쪽 신체만 있었다. 예밍지 씨는 젠녠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례에서 벗어나 입체 작품을 만들었다. 아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예진루 씨는 작품이 사당이 아닌 전시장에 들어 가게 되자 아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부 기관에 더 널리 보급할 수 있게 되자 예진루 씨도 입체 젠녠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예 씨 부자가 두각을 나타내자 주위 사람들의 비방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밍지 씨는 잇따른 오해와 비방을 듣지 않고 해석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할 뿐이었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안다’고 함께 일한 사람들은 점차 그의 됨됨이와 능력을 알게 됐다. 동료들이 이해해주기까지 예밍지 씨는 7~8년을 견뎌내야 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일거리를 맡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뒷거래를 하고, 어떤 사람은 사례금을 받고 방탕한 생활에 빠졌습니다. 당시 저를 비방하며 뒷거래를 했던 사람들은 점차 몰락해갔지만, 도덕을 지키고 향상하기위해 노력했던 저는 일거리가 많아 다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작품은 소실될 수 없기에 그들의 작품은 오점으로 남을 것이고, 결국 상처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하늘은 눈이 있거든요.” 그는 인과응보의 순리를 믿었다.

젠녠 재료 만들기. 옹기 조각을 칼로 자르고(①) 펜치로 조각을 내거나(②) 필요한 모양을 만든다.(③) 시멘트 모르타르로 모양을 잡는데(④) 재료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⑤) 사기 조각은 전통 젠녠 재료다.(⑥)

전통재료와 기법을 대체한 린탕


청나라 말기에는 물자가 모자랐다. 젠녠을 제작할 때 필요한 재료가 부족하자, 당시에는 파손된 기와나 도자기를 깨끗이 씻어 색칠한 후 가마에 간단히 구운 재료를 사용했다. 그러나 너무 무거워 재단하기 어려웠고 퇴색이 잘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광복 후 전쟁으로 파괴된 사당이 복원작업이 필요했는데, 당시 예중 씨가 복원해야 할 사찰은 20개에 달했다. 기와 조각이 모자라 제작이 어려웠던 그는 신주(新竹)에 있는 유리공장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색깔의 대형 유리구 제작을 요청했다. 완성된 유리구를 깨어 재료로 썼는데, 재단하기 쉽고 색깔이 화려해 당시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두께가 얇아 온도에 의해 변형되는 폭이 커서 끼워 넣은 유리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기와 조각처럼 두껍지 않으면서도 유리처럼 잘 파손되지 않는 옹기 조각은 색채도 풍부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재료다.


젠녠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게 되자, 제작시간이 길고 어려운 전통 재료 대신 린탕(淋塘)이 선보이게 되었다. 린탕은 빠른 속도로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고 잘 파손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격이 낮아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빨리 제작할 수 있기에 20여 년 전엔 젠녠의 재료로 가장 널리 쓰였다. 그러나 재단이 불가능하고 다른 색을 칠할 수 없어 멀리서 봤을 때 작품은 풍부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딱딱하게 굳어 있고 혼란스러워 수장가치가 없었다. 린탕으로 만든 작품은 기본 형틀에 붙이기만 할 뿐 다른 젠녠 작품처럼 잘라 붙일 필요가 없었다.


린탕이 성행하면서 수요가 줄자 시장은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업자들은 가격을 낮추다 더 낮출 수 없게 되자 시간을 줄이거나 재료를 적게 넣는 등의 방법을 썼다. “린탕은 대체할 재료였지만, 결국 젠녠의 명맥을 끊기게 한 선례가 됐죠. 당시 스승과 제자들은 린탕 시기를 거치면서 연령이 많아져 다시 전통 젠녠을 배우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예밍지 씨는 저렴하지만 전통 수공예품에 비해 차이가 많이 나는 린탕으로 더 어려워진 현실에 개탄했다.

전승할 사람 찾기 어려워

업계에서 예진루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의 문하에 있던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배우는 기간이 7~8년 정도로 다른 공예보다 훨씬 길고, 늘 기울어진 지붕을 오르내리며 일해야 하기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젠녠을 계승할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천히 실력을 키워간 예밍지 씨는 후임자가 없어 맥을 잇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는 “지금 일부 미술과목에 젠녠 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선택 수업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얕은 지식만 배우고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다”며 “고등학교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이를 평생 목표로 삼아야 새 사람을 배양할 수 있고, 전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업실에 놓인 작품은 생동감이 넘쳤다. 인물 표정은 예사롭지 않고 동작은 활기찼다. 예진루 씨는 서점에 가서 소재를 모으고 화가의 그림을 참고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어떤 소재와 방법으로 만들면 생동감이 넘칠지 고민하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두 사람은 이미 젠녠의 최고의 위치에 올랐지만 자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주 겸손했고 차분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바른 심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교훈을 이어받은 겁니다. 공예를 배우는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장점은 다른 사람이 말하게 하고 자신이 허풍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글/사진=주리리(朱莉利) 기자 (대기원시보)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1.30.~1905.8.19]

부그로는 생전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며 명성을 날리고 있던 화가였다.

그는 카바넬과 함께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의 보수적 가치를 지키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 때는 아카데미즘의 영향으로

대단히 형식적이고 판에 박힌

고전주의나 낭만주의같은 그림들이 대두되고 있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인상주의나 사실주의 등의 미술사조에 열광을 하지만,

그 당시의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인상주의 그림들은

"쓰레기같은 그림"으로 취급 당하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부그로도 역시 모네,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스케치 수준밖에 안 되는 그림'이라고 반대하며 계속 고전주의를 고집했다.

하지만 부그로가 죽고 나서

그 새로운 미술사조들이 인정을 받고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시간이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그는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다시 재조명 받게 되었다.





















영화 ‘소스 코드’의 콜터 스티븐스(제이크 질렌할 분)는 200만 명의 목숨을 노리는 테러범을 알아내기 위해 직전 열차 테러로 죽은 남자의 마지막 8분으로 들어간다. 사진=(주)데이지엔터테인먼트

'소스 코드(원제 Source Code)'는 우리가 몰랐던 우주의 철학적이고 감성적 요소들을 모험하는 SF영화다. 양복 입고 뛰는 액션에 '시카고 통근 열차'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 배경인 이 영화가 어떻게 우리가 모르는 우주를 그렸다는 건지 의아할지 모른다.

소스 코드는 현실적인 일상과 맞물려 존재하는 다른 공간, 즉 '평행 세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개한다. SF영화들이 주로 다룬 주제가 시간여행이었다면 소스 코드는 공간여행인 셈이다. 주인공은 지금 전개되는 삶의 시나리오를 바꾸기 위해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영화 초반 관객들은 콜터 스티븐스(제이크 질렌할 분)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듯 느끼게 된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여기 있는지 기억이 없는 콜터는 시카고 통근 열차를 탄 낯선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어안이 벙벙한 콜터와 마주보고 있는 여자, 크리스티나 워렌(미쉘 모나한 분)은 콜터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콜터는 그녀를 이제 처음 본 것 같다. 더 이상한 것은 8분 후에 열차가 폭발하고 순식간에 정체 모를 캡슐 안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화상통화를 해오는 공군 소속 콜린 굿윈(베라 파미가 분)과 대화를 통해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시공간 이동 기밀 시스템인 '소스 코드'를 이용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콜터는 동일한 시간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 즉 '평행 세계'에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와 신분을 갖고 행동할 수 있다. 기차 테러로 희생된 한 남자의 마지막 8분으로 들어간 콜터. 그의 임무는 열차를 폭파한 범인을 잡아 6시간 뒤 예정된 초대형 폭탄 테러를 막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행동은 이상하게 보이고 난관이 끊임없다.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주어진 '8분'도 가혹하리만치 수차례 반복된다. 열차에 탄 사람들에게서 단서를 알아가는 콜터, 그는 결국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을까.

'더 문'의 던칸 존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벤 리플리는 대의를 위한 희생과 의무, 일상적인 행복의 소중함이 복합된 흥미로운 개념을 선택했다. 영화가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이나 스릴을 넘어 삶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던 이유다. 8분의 시간이 있건 전반생이 주어지건 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건이 된 것은 매순간의 삶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가였다.

'소스 코드'는 한 사람에게 동시에 존재하는 평행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개념을 비롯, 군사연구에서의 도덕성, 바른 일을 위해 희생을 마다않는 정신 등 또 다른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영화 '인 디 에어'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 베라 파미가는 콜터의 상사 콜린 굿윈 역을 맡아 콜터가 임무를 수행하고 행복을 찾도록 돕는다. 파미가는 굿윈이 '소스 코드' 사용 중 나타난 도덕적 문제와 마주치며 모순을 겪는 과정을 믿을 수 없이 섬세하게 연기했다. 콜터 역의 제이크 질렌할이 안정적이고 질 높은 연기를 할 수 있게 한 파트너이자 영화의 감정선을 깊게 하는 역할로, 스토리 전개에서도 비중이 커 주연에 가깝다.

영화는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시간 여행이 아니라 공간 여행이라는 것도 마지막 반전에서 확실히 펼쳐 보인다. 관객은 갑자기 맞닥뜨린 '평행 세계'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행복을 추억하게 하는 마지막 광경에서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듯 눈시울이 뜨거워질지 모른다.

액션과 상상, 삶과 행복, 도덕적 가치 등 놀라움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지난 10년간 가장 훌륭한 SF스릴러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공상과학영화를 보면서 현재의 삶이 소중함을 느낀다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국내 개봉은 5월 4일.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단서를 찾으려 우왕좌왕하는 콜터 스티븐스(제이크 질렌할 분)가 이상할 뿐이다. 상대역 크리스티나 워렌(미쉘 모나한 분)은 체포된 콜터를 진정시키려 한다. 콜터가 부딪힌 난관이다. 사진=Jonathan Wenk/Summit Entertainment


벗은 그림 예술 2008. 8. 8. 13:26
























































































크로싱, 엇갈린 운명

내 이름은 탈북자입니다 -1-

탈북자를 다룬 영화 ‘크로싱(엇갈림)’이 6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축구 선수 출신이자 탄광 노동자인 용수(차인표 분)가 아픈 아내의 약을 구하고자 탈북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담았다. 탈북자 유상준씨는 영화 ‘크로싱’의 용수와 많이 닮았다. 그의 인생이 바로 한 편의 영화, 크로싱(엇갈림)이다.
▲ 2007년 12월 16일, 인천공항을 들어오는 유상준 씨.
그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고 했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이 사진이 실린 신문을 주워서 스크랩 해 두었다. 그가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는 신문 기사였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16일, 그는 인천 공항을 빠져나왔다. 빡빡머리, 남의 것인듯 큰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럽다. 그러나 괜찮다. 출구를 따라 늘어선 마중나온 사람들, 그중에 그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종종걸음을 쳤다. 순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는 사람이 보이지는 않는다. 섭섭한 마음을 누르며 다시 살펴보니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 ‘아…. 내가 살아 돌아왔구나. 그런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구나.’ 그는 벅찬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번쩍들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웃는 사람처럼 그렇게 웃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그는 그때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이렇게 웃을줄도 아는구나.’
▲ 그의 기사가 실린 대기원시보.
그는 지금도 가끔씩 신문을 꺼내본다. 배우 수업을 받아도 이런 표정을 나올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단다.ⓒ 이미경
굶주림
북한에서 배급이 끊긴것은 93년 부터다. 시골 농사꾼이었던 그는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주민이 오천명 쯤 되는 리에 살았는데 그 중 70여 명이 죽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굶어 죽은’것은 아니라 ‘아파서’ 죽었다. 누가 굶어죽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반동이고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먹을게 없었던 98년, 그는 아내와 작은 아들을 굶주림으로 잃었다. 그와 큰아들 철민이도 죽지못해 살았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나 보다 하는거예요. 하지만 옆에서 사람이 굶어죽는데 그 옆에 사람이라고 온전하겠어요. 옆에 사람은 죽는데…. 몇 걸음 차이인거예요. 약한 놈 먼저죽고 그 다음 죽고 이런 거예요. 산 사람이 온전해서 살고 그런게 아니예요. 다 그저 비실비실 한 사람들이…. 시간차죠.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응, 네가 먼저 죽어. 그 다음 나는 어떻게 해가지고 쌀물이라도 입에 들어가면 사는거예요.”

그도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이 있었다.
“사람이 소변볼때 힘든거 모르죠. 그런데 사람이 소변보는 일도 엄청난 힘이 드는거예요. 우리가 건강하고 힘이 있으니까 못 느끼지는거지. 의식은 소변이 마려운 걸 알아요. 근데 소변 보자면 소변이 안나와요. 숨이 딱 끊어지면 소변이 나갈지 몰라도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소변이 안나와요. 나도 거기까지 갔다 온거예요.”

결심
언젠가부터 중국을 가면 살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어도 북한에서 죽는가보다 했던 그는 97년 여름 탈북을 결심했다.
“밖에 그런 세상이 있는거 모르는 거예요. 사람은 뭘 들어야 바깥 세상을 알지. 우리는 바깥세상 모르니까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국 사람들한테 북한사람 어떻다 얘기하면 또 저 놈 거짓말한다 할거예요. 경험을 안해봤기 때문에 상상을 못하는 거죠. 이 곳이나 북한이나 다 사람사는 사회인데, 사람사는 동네 다 비슷하겠지 그렇게 아마 생각하는거 같아요.”
지금 그는 한국에 있지만 탈북할 땐 한국에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한국은 적대국가였기 때문이다.
“저쪽에서는 전 백성이 군사훈련하고 그래요. 북한 정치체제가 일원화 돼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요. 뭐 겨울부터 봄까지 노동자들은 겨울훈련 나가고, 일상시 강연이나 선전을 통해서 남조선이 우리를 먹으려한다, 미군 놈들이 도발한다 밤낮 전쟁이야기죠.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분석하고 그런거 할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받은 정보는 그게 전부니까 그걸 믿게되죠. 그래서 나는 한국 올 생각은 못해봤죠.”
▲ 국경 근처에서 수비중인 경비대
ⓒ GettyImages
모험
그는 중국에서 100Km 떨어진 청진에서 살았다. 국경지역도 잘 모르고 어떻게 중국을 가는지 들어본 적도 별로 없다. 그저 뜬소문에 중국가면 살만하다는 말만 믿고 98년 4월 그는 집을 나섰다. 큰아들 철민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에 도착했다. 집 떠난지 5일만에 두만강변에 도착, 3일 동안 강변을 따라 걸으며 정찰을 다녔다.
“강은 못 건넜지. 그거 잘못건너면 죽는데. 두만강 따라 계속 상류로 올라가면 두만강도 엄청 작아요. 돌이 보이고, 잘하면 징검다리처럼 밟고 넘어가도 되요. 그런곳이 있는데 나는 아이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건너는 그런 큰 곳은 못가지. 그저 잘못하면 군대한테 잡히는데 그거 어쩝니까. 계속 상류로 가면서 두만강 살펴봤어요. 두만강에는 군대 아이들과 인민들이 순찰을 해요. 그때 잘못하면 꼼짝 못하고 잡히니까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여기 사람들 어떻게 행동하나 그거 살폈어요. 그래 계속 가다보니 잠복 초소 어디에 있고, 군대 어디에 있고 그렇게 걸어서 대홍당까지 갔어요”

감자를 줍는 척하며 강을 오르내리길 3일. 그러나 강을 건널 재간이 없었다. 그때 문득, 그는 경비대가 서 있던 자리가 생각났다. 경비교대 시간을 잘 맞추면 기회가 올 것 같았다. 교대시간을 얼추 짐작해 그는 올라오면서 봐 둔 경비대 가까이 갔다. 시간을 잘 맞춘 모양이다.
“근무서던 사람이 앞쪽으로 가고, 새로 근무 설 사람들이 아마 우리쪽으로 오는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쪽으로 오던 군인들은 그냥 우리랑 어긋나고…. 그 해 나무싹이 좀 빨리 났거든요. 그리고 두만강이 구불구불해요. 앞에 가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을때 두만강에 뛰어들었죠.”

그때부터 생과 사의 갈림길이 시작됐다. 운이 좋으면 강 건너 중국땅으로 갈 것이고 운이 좋지 않으면 경비대에 잡힐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넜다해도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아침 일찍 해가 푸릇푸릇 올라올 때, 이슬비 내릴 때 건넜어요. 대강 없는거죠. 다른 선택의 여지 없으니까. 오죽하면 강 건너 남의 나라땅으로 가겠어요. 거기 강 건너가면 누가 나를 어떻게 맞아줄지 진짜 모르잖아요. 이건 완전히 담보도 없는, 쉽게 말하면 모험이죠. 돌아설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넘어가는거지.”

다행히 철민이도 그도 몸이 쇠약하지는 않았다. 탈북하기 일 년 전부터 죽이라는 걸 먹지 않았다. 중국에서 사료로 나온 옥수수가루가 북한에 많이 들어왔다. 그 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고 나물에 묻혀 쪄 먹었다.
“그때는 맛있었어요. 또 그것도 못먹는 사람도 많았어요. 못 먹었길래 사람이 죽어나가는거지 먹으면 왜 죽고…. 도망가겠어요.”
운이 좋았다. 그도 철민이도 무사히 강을 건넜다. 덤불이 보여 얼른 뛰어 들어가 몸을 숨겼다. 한숨 돌리며 젖은 옷을 벗어서 물기를 짰다. 조금씩 이슬비가 멎고 해가 난다. ‘아…. 살았구나.’

이미경 기자
- "나도 신운에 나오는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제2부)
- 로빈 데일과의 특별 인터뷰

이분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참으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글 / 대만 카오슝 시, 허위

멕쑹똑暠튬
도취된 로빈 데일 씨, "나를 백분의 백 만족시킬 수 있는 공연을 즐겼다"


* 공연에서 내 꿈을 발견하다

인터뷰에서 데일 씨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꿈들이 내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세상을 더 좋게 그리고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런 꿈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해 왔다. 이를 위해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서로 다른 점들을 옆으로 제쳐놓으라고 요청하는 음악과 노래를 쓴다. 나는 그들이 나의 노래와 경지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것을 희망하면서 음악을 작곡하고 작사하고 음악회를 조직하고 밴드를 훈련시킨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희망이 단지 공상이며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다. 그들 둘은 평생 무료로 다른 사람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도왔고, 나는 나의 꿈을 좇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희망과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많은 해 동안 내 꿈들이 실현시키기 위해 일해 왔다. 나는 신운예술단을 만날 때까지 그처럼 많은 해를 기다려 왔다. 나는 많은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꿈을 가졌고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나는 진정으로 신운공연에서 나의 많은 꿈들이 대표된 것을 보았다.

나는 신운공연의 배경에서 푸른 산, 맑은 호수들,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 아름다운 포플러와 버드나무들을 보았다. 남자들은 남성미를 그리고 여인들은 여성미를 표현했다. 나는 자애, 도량 넓은 어머니, 아들의 충성심과 효성을 보았다. 동시에 다른 장면에서는 정의, 배려와 자비를 묘사했다. 나는 사람들이 불의에 대항하는 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인생의 진리와 믿음에 대한 신념과 충성, 하늘로부터의 계발과 인도를 실제로 탐사하는 경험을 했다. 천상으로부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아한 무용을 보면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즐기면서, 나는 처음으로 완전한 충족감을 느꼈다. 나는 백퍼센트 만족했다!

이 젊은 남녀배우들은 정말 매우 매우 매력적이다! 하나의 수정처럼 맑은 가슴을 본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이 끊임없이 다음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 급히 행동하면서도 매 얼굴에는 순결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공연은 정말로 특별하다! 매우 특별하다! 내가 본 것은 내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나를 세속적인 문제들로부터 잠시 구원해주었다. 나는 내 심령의 집으로 돌아왔고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았으며 행복하다."

* 신운에서 나의 꿈을 되찾다

"우리는 종종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꿈이 어떻게 현실로 될 수 있는가? 나는 다만 공연을 본 후에 많은 일들이 분명해졌다고만 말할 수 있다. 나는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데 마음을 열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운공연은 판단의 기준인, "眞, 善, 忍"을 전해준다. 공연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은 사람들에게 자제와 관용을 가지도록 가르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진실하기를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들을 속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나는 우선 내가 제고되어야 한다고 이해한다. 누구라도 만약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유익한 점은 한 사람이 제고된 후,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것이고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을 개변시킬 것이다. 사실 우리 어느 한 사람이 행동을 잘하고 더 좋게 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좋게 개변될 것이다!

'만왕하세(萬王下世)' 중 한 장면에서 하늘은 우리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메시지를 받을 것이다. 제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본 것을 볼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 만약 당신이 믿어도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아마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확실치 않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무엇이 아주 좋고 무엇이 정말 나쁜지 볼 기회를 줄 누가 나타나든지 또는 무엇을 만날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어느 누가 좋은 길을 내딛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자신은 불운을 당할 것이다. 나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불운하다. 각 개인은 자신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꿈이 언제 실현될 수 있는가? 젊을 때 우리는 빨리 자라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매일매일 자라야 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바로 거의 무엇인가 나타나거나 무엇인가 일어날 시간 같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다. 나는 신운을 본 후, 신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이를 준비하도록 신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 얼후(2줄로된중국현악기) 연주가 나를 나의 꿈 중 하나로 데려갔다

"나는 기타연주자이며 얼후 마스터인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얼후를 좋아한다. 나는 얼후가 동방의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숙련된 얼후 연주자가 되려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후 연주자는 훌륭한 손의 기술이 필요하고, 또한 훌륭하고 감동스런 음악을 연주하는데 심혈을 쏟아야 한다.

나는 얼후가 연주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연주가의 기술이 아주 능숙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안다. 더구나 그녀는 음악에 감정과 경험을 넣어 영혼과 가슴으로 연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연주는 매우 매우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직접 연주했고 나를 나의 꿈 중 하나로 데려다 주었다."

대만에 사는 스코틀랜드 음악인 - 로빈 데일과의 특별 인터뷰1부
- "나도 신운에 나오는 노래들을 불러보고 싶다"-


로빈 데일은 대만의 인기 음악인이다. 사람들은 그를 "음악의 로빈훗"이라고 부른다. 2008년 3월 5일, 데일 씨는 카오슝에서 신운을 보았다. 그는 무용, 음악과 노래로 시작해 배경과 의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들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는 전 공연 내내 전달되는 메시지가 탁월했다고 말했다. 노래들이 그의 가슴을 메아리쳤고 그 역시 노래들을 부르고 싶었다.


인기 음악인 로빈 데일 �:"나도 신운에 나오는 노래들을 불러보고 싶다!"


(다음은 데일 씨와의 인터뷰 발췌문이다)

* 나는 천상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동양에서 자랐다. 그래서 중국 고전무용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연예계에 있고 많은 세계급 공연들을 보았다. 나는 신운공연을 보는 순간부터 이것이 매우 독특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프로그램이 제일 좋았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전체 공연 내내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배경 또한 완벽했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전반 프로그램의 의상, 무용, 음악, 노래와 메시지들이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대단히 즐겼다. 아름다운 선녀들과 반주되는 음악은 마치 내가 천상에 있는 듯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나는 작곡가이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전문가의 각도에서 볼때, 신운의 음악은 매우 아름답고 감동을 준다. 음악 작곡이 완벽하며 안무와 잘 결합되어 있다. 음악은 배경과 색체와도 잘 어울린다. 이것은 놀랍다! 이것이 바로 왜 음악이 중요한가 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나로 통합시키기 때문이다.

* 행복으로의 길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가족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정의를 위해 싸웠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의사들이었다. 그들은 환자들을 무료로 봐주곤 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 나의 노래들은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랑으로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강조하는데, 당연히 진(眞)과 인(忍)에도 초점을 맞춘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의복, 좋은 자동차를 원하는데, 다만 모든 것이 대단해야 한다. 이것은 항상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평생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그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만약 당신이 항상 당신 자신을 위해 산다면, 당신은 당신이 얻을 수 없거나 성취할 수 없는 것들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불행하게 될 것이다.

신운 예술인들의 미소는 그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미소는 매우 행복한 미소들이다. 내게 말하라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선(善)이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미소가 그처럼 순정하고 밝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다만 공연 자체를 위해서만 공연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우리에게 알리고 싶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진(眞)"이다. 항상 "진" 즉,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 또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의미의 선(善), 이것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忍)"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요하다. 나는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모든 사람들은 그 메시지의 일부 또는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단순한 메시지는 무용과 신체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스토리들은 선과 악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었고, 사람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인도한다. 공연에서는 또 우리에게 정의와 선량을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라고 말해준다.

내가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한 후, 나는 작곡가에게는 책임이 있고 이것을 이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이 당신에게 이 재능을 주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책임이 있다. 당신의 노래가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은 사람을 바른 길로 걷도록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당신이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돈을 위해 세상의 미혹 속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나는 내 생각들이 예술가들과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 공연 내내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따라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백인 사회자를 만나고 싶다. 나는 또 무대 뒤에 있는 예술인들도 만나 훌륭하면서도 깨닫게 해주는 공연에 대해 진지한 감사의 마음도 전달하고 싶다.

(주 : 인터뷰 후에 데일은 신운예술단 단장인 리웨이나 여사를 만났다. 그는 단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를 보내고 단체에게 그의 CD를 선물했다.)

* * * *

* 배경

50대 후반인 로빈 데일은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그는 청소년 시기에 아버지와 함께 대만에 왔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많은 대만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중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자랐고 홍콩, 중국 그리고 대만에 걸쳐 비즈니스를 했다. 70년대에 그는 자오즈양과 가깝게 일하면서 베이징을 대신해서 서방국가들과의 통신을 맡았다. 1989년 6월 4일 학살 이후, 그는 베이징의 학생탄압에 대한 항의 음악 CD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그는 중국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비즈니스 연결을 잃었다. 그는 나중에 대만의 핑퉁현에 자리를 잡고 음악인이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그의 음악을 만들고,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운 프로그램의 탁월한 구상



최근 운 좋게 신운(神韻)예술단 유럽 공연을 몇 차례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보면 볼수록 공연 프로그램의 정밀하고 오묘한 배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운은 시공을 초월한 신비한 여행으로 내용이 풍부하고 시공의 폭이 넓으며 다루는 면이 아주 넓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심오해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초월했다. 신운공연은 오천년 중화문화의 찬란한 역사를 정선(精選)해서 두 시간 가량의 짧은 시간에 무대 위에 재현했다.

공연은 아득히 먼 원고(遠古)시대 만왕(萬王)이 세상에 내려오는 ‘만왕하세(萬王下世)’의 맑고 맑은 우주와 법광(法光)에 잠긴 선경(仙境)에서 시작해 바다 속 선녀가 하늘하늘 춤추는 ‘선녀답파(仙女踏波)’, 천고에 충혼을 남긴 악비(岳飛)의 ‘정충보국(精忠報國)’에서 성세천조(盛世天朝)의 대당(大唐)의 북치는 병사들을 연기한 ‘대당고리(大唐鼓吏)’, 티베트 장족(藏族) 소녀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설산백련(雪山白蓮 역주: 올해 한국 공연에서는 빠짐)’과 몽골 청년 기사들이 준마를 타고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초원목가(草原牧歌 역주: 올해 한국공연에서는 빠짐)’에 이르기까지. 또 강남 여인들의 음유(陰柔)하고 완곡한 자태를 표현한 수수(水袖), 노오란 손수건을 들고 개나리꽃이 활짝 핀 봄 풍경을 표현한 ‘영춘화개(迎春化開)’에서, 깊은 내포를 지닌 시적인 가사를 담은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가수들의 노래, 얼후(二胡) 연주에 이르기까지 또 각성한 후 선념으로 부처와 인연을 맺는 ‘선념결불연(善念結佛緣)’에 이르기까지 매 프로그램은 각기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하나로 결합하면 마치 진주를 모아 목걸이를 이루는 것처럼 신운은 중화기관(中華奇觀)을 펼쳐냈다.

사람에 따라 신운공연을 보고 서로 다른 감동을 받지만 전문가일수록 오묘한 정수를 음미할 수 있다. 가령 ‘항아분월(嫦娥奔月)’의 경우 일반인들은 감동적인 이야기와 감상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항아와 남편인 후예의 수련 층차의 차이로 이해하기도 한다. 항아는 중생들의 근심을 제거하고 난을 해결하려는 넓은 흉금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항아는 영약 훔친 일 후회하고 있으리, 푸른 하늘 밤마다 홀로 지새는 마음(嫦娥應悔偸靈藥 碧海青天夜夜心)”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신운의 줄거리가 전체 인류역사를 재현했다고 말한다. 사람의 기원을 알려주는 ‘만왕하세’에서부터 시작해 역대 왕조의 풍토와 인정, 세태의 변화 및 사람이 마땅히 준수해야 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생명에 대한 겸손과 하늘을 공경하고 명(命)을 아는 처세태도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다시 생명의 의의에 대한 ‘각성(覺醒)’에 이르고 최후에는 다시 ‘진상을 찾은’ 후 ‘신의 길에서 힘차게 분발해야 함을’ 아는 데에 이른다. 이 일체는 바로 인생의 가장 큰 의혹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이 일체는 바로 인간세상 큰 연극의 주제가 아닌가? 현재 중국에서 발생한 수련인에 대한 박해는 매 사람의 양지와 선념을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누가 ‘선념이 우러나와 부처와 인연을 맺을’ 수 있으며 누가 자신을 위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가?

비록 신운은 깊이 있는 내포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세인들 앞에 펼쳐 보였다. 까막눈이거나 유치 아동이거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다 각자 자신의 이해력의 기초위에서 프로그램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격식은 신운의 가장 큰 풍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직면한 시험으로 매 사람에 대해 가장 큰 규모로 정확한 답안을 돕는 자비로운 구도의 진실한 체현이기 때문이다.

왕화

뉴욕 최상류층 필수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


뉴욕 트렌드·럭셔리 라이프 담은 미드 '가십 걸'
극중 등장 디지털제품 대부분이 한국 브랜드 화제

미국드라마 '가십 걸'에서 국산 디지털 제품들이 잇달아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십 걸'은 화려한 상류층 생활과 주인공들의 스타일리시한 패션으로 높은 인기를 얻은 TV 드라마로 국내에서는 캐이블 채널
온스타일을 통해 지난 3일부터 방송 중이다.

'가십 걸' 첫회와 2회가 3일과 4일 공개되자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이 들고다니는 디지털기기 중 휴대폰과 MP3가 LG와 삼성의 제품임을 발견, 제품의 이미지를 블로그에 올리는 등 일제히 반겼다.

'가십 걸'의 두 여주인공 세레나와 블레어가 극중 사용하는 휴대폰은 모두 LG 제품. 또한 남자주인공 네이트가 지닌 MP3는 삼성 제품으로 그가 음악을 듣는 장면이 등장할 때 마다 MP3에 새겨진 삼성 로고가 클로즈업 되기도 했다.

미국 방영 당시에도 해당방송사인 CW 홈페이지에 이 제품들의 모델명을 묻는 문의가 쇄도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온스타일 김제현 팀장은 "'가십 걸'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한국 제품들을 발견하면서 놀라는 눈치"라며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는 한국 제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적지 않은 재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십 걸'은 온스타일을 통해 매주 월·화요일 오후 11시에 방송되고, 매주 토요일은 오후 12에 재방송한다.

한국아이닷컴 한병규기자
신운예술단이란 예술 2008. 2. 22. 16:30

신운예술단(神韻藝術團, Divine Performing Arts)은 정통문화의 정수를 재현하고 이를 인류에게 펼쳐

보이기 위해 미국에서 창립된 예술단체입니다. 5천년의 유구한 신전문화(神傳文化)와 정통인류문화(正統人類文化)를 주제

로 한 경이로운 작품들을 통해, 가장 선(善)하고 가장 아름다운(美) 프로그램을 관중들에게 선사합니다.

신운예술단은 2005년과 2006년에 미국과 캐나다 주요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했고, 2006년 2월, 미국 빌보드 차트 "콘서트" 부문

7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뉴욕, 시카고, 토론토, 동경, 시드니, 타이완, 서울 등 32개 도시에서의 80여 차례 순회

공연을 통하여 20만여 명의 관객에게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선보였습니다. 2008년 전세계순회 공연에서는 4개 대륙(아시아/

호주/유럽/북미) 70여 개 도시에서 200여 회 공연에서 60여만 관중의 관람이 예상됩니다.

1월 일본공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오늘22일부터24일까지 서울 경희대평화의전당 에서

26일부터27일까지 부산 KBS홀에서 공연이 있슴니다. 공연명은 "신운스펙태큘러"입니다

신운예술단원 소개

신운예술단 단장
궈시우 (Xiu Guo)

궈시우 단장은 1954년 중국 중남(中南)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중남종합극무용단에서 무용가로 활동했으며, 1960년에 광조우 종합음악무용단에 입단하였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무용선생, 안무가,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의 자질과 경험으로 인하여 1988년에 종합무용단 단장이 되었고, 그녀가 미국에 가기 전까지 남중국예술대학교 예술단과 남중국대학교 무용단의 단장으로 활동해왔다.
궈여사는 40년 이상 무용을 지도한 경력이 있으며 다수의 우수한 무용가를 배출해 내었다. 제자들 중에는 이름난 무용대회에서 상장을 받은 제자들이 다수 있다. 그들은 세계 각지 각 분야에서 주연으로 무용교사로 또는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궈여사는 미국 페이티안예술대학(Feitian College of Arts) 교장이며 본 대학 무용학과를 책임지고 있고, 올해 초, 4개월 동안 전 세계 32개 도시를 돌며 80여 회 이상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리비나 (李維娜)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중국 최고의 무용학교인 베이징무용학원을 졸업했다. 리비나는 전문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이며, 연극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안무지도자이다. 호주 시드니무용단, 맥도날드 대학, 레드펀 원주민무용극단 등 호주의 여러 무용단체에서 고전 발레를 가르쳤다.
고전 발레 외에도 인물성격을 표현해내는 극안무 연출에 출중한 재능을 지녔다. 최근에는 TV프로그램 연출에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는데, 45분짜리 다큐멘터리 “세 여인”은 2003년 NTDTV에서 방영된 후, 중국 내 인터넷 상에서 대흥행을 거뒀다.
2006년 ‘여성의 달’을 맞아, 뉴욕주 의회는 그녀의 지도력과 인성에 대한 공헌을 인정하여 그녀에게 ‘탁월한 여성지도자’ 상을 수여했다.
한편 그녀는, 배우로서 호주SBS, ABC, 채널7, 채널9 등 호주 방송국의 연속극에 출연했으며, 호주 영화TV와 라디오 스쿨에서 제작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미쉘런 (Michelle Ren)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라오닝성 태생인 런미얼은 6세 때부터 예술체조훈련을 받았으며 이 때부터 이미 무용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이미 다양한 무대경험을 쌓았으며, 1997년 랴오닝성 도리배(桃李杯)무용대회에서 청소년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중국 문화부가 주관하는 대중문화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다. 그녀는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 축하공연을 비롯한 수많은 대규모 공연에서 솔로 및 수석무용수로 무대에 섰다.
런미얼은 2002년 미국으로 건너온 후 무용지도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지도한 무용단은 2004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Showstopper’ 무용대회에서 최고영예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대회에서 무용지도자 솔로 부문에서도 최고영예 대상을 수상했다.
왕쉐쥔 (王學軍)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베이징 출신으로 북경무용학원을 졸업하고 광저우에서 실력있는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1991년 호주로 이민해, 1992년 시드니 무용단에 입단해 이 무용단의 최고작 “Synergy with Synergy”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루이스 팔코(Louis Falco) 작품 Black and Blue에서 키드 레프티(Kid Lefty) 역을, “The Beast in Beauty”에서 야수 역을 맡는 등 많은 무용극에서 주연배우로 발탁됐다. 또한 “Ellipse”, “Air and Other Invisible Forces”, “Berlin”, “Free Radicals”, “The Protecting Veil”, “Body of Work” 등 그래미 머피(Graeme Murphy)의 작품에서도 주연을 연기했다.
시드니 무용단과 함께 유럽과 북미, 멕시코,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지에서 공연한 바 있다.
장톄쥔 (張鐵鈞) 안무가
뛰어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현재 캐나다 토론토 국립발레학교 교수이며 연화예술단(蓮花藝術團)의 예술총감독이기도 하다.
중국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민속무용과 궁중무용을 포함하여 다양한 중국전통무용을 소화해내는 등 뛰어난 기량으로 이름을 떨쳤다.
장톄쥔은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녀는 파룬궁 수련자로서 지역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2002년 캐나다 토론토 시정부로부터 ‘국가우수공로상’을 수여 받았다.
탄쥔이 (談駿毅)
피아니스트, 작곡가
베이징 중앙음악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중국가극무극원 (歌劇舞劇院)에서 피아니스트와 풍금 연주자로 활동했다.
많은 성악가와 무용수, 연주가들과 호흡을 맞췄으며,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예술학과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합창단의 음악지도자를 역임한 바 있다.
기업가이기도 한 탄쥔이 선생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 학사와 국제금융 MBA를 취득하여 많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상파블로시 시정(市政)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장민 (姜敏)
소프라노 성악가
헤이룽장성 예술단의 솔로 성악가 출신. 캐나다와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열어왔다.
장민은 중국 및 서양 성악 창법을 두루 섭렵했으며, 2004년부터 NTDTV 전세계화인 신년축하 공연과 북미지역순회공연에 3년째 솔로로 출연하고 있다.
세페이룽 (謝佩蓉)
피아니스트 Pianist
세페이룽은 대만 태생으로 6세부터 피아노, 비올라, 발레 수업을 받았다. 그녀는 피아노 전공으로 보스턴 대학 학사, 존스 홉킨스 피바디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트포드 대학의 하트스쿨에서 연주학위를 취득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첸훙콴, 보리스 슬러츠키, 게리 슈타이거발트, 닐 래러비로부터 사사 받았다.
현재 솔로 피아니스트 뿐 아니라, 미국의 여러 도시와 대만 타이베이에서 실내악연주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들린 롭로이스 (陈美容)
무용수 Dancer
메들린 롭로이스(Madeline Lobjois)는 파리의 서부 지방에서 성장했지만 중국문화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10살부터 중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에 그녀는 플릇을 배우기 시작했고 전문적인 발레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나중에 비천무용학교에 입학하여 무용단원이 되었다. 무용수로서 신체 소질이 탁월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학업을 포함한 매사에 성실하다.
관구이민 (關貴敏)
테너 Tenor
‘중국의 성악 황제’로 일컬어지는 관구이민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중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테너이다. ‘중국 국무원이 선정한 “제 1급 성악가”이며, 중국 외무부로부터 “뛰어난 전문가 및 공헌자”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중국영화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로로 영화 사운드 트랙 50여 곡을 녹음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생동감이 있으며, 고음에서도 무한한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구이민은 서양의 벨칸토(bel canto) 창법을 중국 전통 발성법과 접목시킨 독특한 창법으로 넓은 음역을 소화해낸다. 1980년대와 90년대 관구이민에 의해 유명해진 많은 곡 들은 20세기 중국 음악 전통에서 확고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첸루탕 (陳汝棠)
지휘자 Conductor
중국국영교향악단의 전신인 중앙악단의 첼로 연주가로 30년 간 활동했으며, 국가1급 예술인 칭호를 수여했다. 예술계에서 연주가, 지휘자, 오케스트라 수석책임자 등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1983~1990년까지 중앙악단의 수석책임자로 있으면서 교향악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수백 차례의 교양콘서트를 개최했다. 1986년에 중국 최고 지휘자 11명을 포함하여 800명 이상의 음악가들이 참가한 “베이징 교향악의 봄” 콘서트를 개최한 주요 멤버이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중국 전역에 방송되었으며 대단한 성공을 일궈내며 베이징 음악사에 큰 획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1987년 중앙악단은 미국 24개 도시를 순회하며 뉴욕링컨 센터, 워싱턴 DC 존 F 케네디 센터와 같은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는 중국중앙악단과 중앙합창단, 내몽고방송예술단악단, 선전(深圳)예술학교악단 지휘를 역임했으며, 2004년 NTDTV 전세계화인 신년 공연의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천국악대(天國樂隊)와 천음교향악단(天音樂團)을 지휘하고 있다.
치사오춘 (戚曉春)
얼후 연주가 Erhu Soloist
상하이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제 14회 “상하이의 봄” 국제 ‘얼후’ 대회에서 연주가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녀가 헐리우드 보울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영화 “The Joy Luck Club”의 배경음악은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보스톤, 뉴욕, 토론토, 휴스톤,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 공연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양젠성 (楊建生)
알토 성악가
중국 최고 예술교육기관인 중앙음악학원을 졸업, 중국 중앙악단에 알토 성악가로 입단했다.
1988년 전국청년가수 방송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1994년 함부르크 음악 연극아카데미에서 유학하기 위해 중국을 떠나,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과 예술이 만난 스펙태큘러 디지털 배경 완벽한 고증 거친 머나먼 세계로 떠나는 관문
NTDTV 스펙태큘러 중국전통 무용의 멋진 향연
【정견망】 치샤오춘(戚小春) 얼후(二胡) 연주의 감동은 너무나 깊어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며 ...
NTDTV 스펙태큘러 중국전통 무용의 멋진 향연 ...
【대기원】 항우(項羽)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힘과 용기로 일찍이 거록(鉅鹿)...
【대기원】 먹고 사는 근심이 없어진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정서를 도야(陶冶)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며 아름다움을 향수하게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중국전통악기중 하나인 얼후는 심오한 비장미를 표현할 수 있다.
NTDTV에서 주최하는 전 세계 중국 신년 스펙태큘러가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역대 스펙태큘러에서 중국 고대의 소재와
신운예술단 공연의 눈부신 의상은 무용동작들 만큼이나 각 무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배후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을 가리키는 수많은 명사들..
중국 고대에는 태자(太子)를 또 저군(儲君 군주가 되길 대기한다는 의미)이라고도 불렀다. 훌륭한 후계자를 배양하는 것은..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배후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을 가리키는 수많은 명사들..
【대기원】 창힐(倉頡)이 한자(漢字)를 만들자, 천지가 놀라고 귀신들이 울었다...
【대기원】 ‘신운(神韻)’이란 두 글자는 신(神)과 운(韻)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
【대기원】 작년에 40여개 도시를 순회 공연한 이후 미국 신운예술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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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서울공연은 2월22일부터24일까지 경희대평화의전당에서, 부산은 2월26일,27일이틀간 세차례부산KBS에서 개최되고 현재 인터파크에서(신운스펙태큘러공연) 예매중입니다.
신운예술단(神韻藝術團, Divine Performing Arts)은 정통문화의 정수를 재현하고 이를 인류에게 펼쳐 보이기 위해 미국에서 창립된 예술단체입니다. 5천년의 유구한 신전문화(神傳文化)와 정통인류문화(正統人類文化)를 주제로 한 경이로운 작품들을 통해, 가장 선(善)하고 가장 아름다운(美) 프로그램을 관중들에게 선사합니다.

신운예술단은 2005년과 2006년에 미국과 캐나다 주요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했고, 2006년 2월, 미국 빌보드 차트 "콘서트" 부문 7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뉴욕, 시카고, 토론토, 동경, 시드니, 타이완, 서울 등 32개 도시에서의 80여 차례 순회공연을 통하여 20만여 명의 관객에게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선보였습니다. 2008년 전세계순회 공연에서는 4개 대륙(아시아?호주?유럽?북미) 70여 개 도시에서 200여 회 공연에서 60여만 관중의 관람이 예상됩니다.
신운예술단 단장
궈시우 (Xiu Guo)
궈시우 단장은 1954년 중국 중남(中南)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중남종합극무용단에서 무용가로 활동했으며, 1960년에 광조우 종합음악무용단에 입단하였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무용선생, 안무가,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의 자질과 경험으로 인하여 1988년에 종합무용단 단장이 되었고, 그녀가 미국에 가기 전까지 남중국예술대학교 예술단과 남중국대학교 무용단의 단장으로 활동해왔다.
궈여사는 40년 이상 무용을 지도한 경력이 있으며 다수의 우수한 무용가를 배출해 내었다. 제자들 중에는 이름난 무용대회에서 상장을 받은 제자들이 다수 있다. 그들은 세계 각지 각 분야에서 주연으로 무용교사로 또는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궈여사는 미국 페이티안예술대학(Feitian College of Arts) 교장이며 본 대학 무용학과를 책임지고 있고, 올해 초, 4개월 동안 전 세계 32개 도시를 돌며 80여 회 이상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리비나 (李維娜)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중국 최고의 무용학교인 베이징무용학원을 졸업했다. 리비나는 전문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이며, 연극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안무지도자이다. 호주 시드니무용단, 맥도날드 대학, 레드펀 원주민무용극단 등 호주의 여러 무용단체에서 고전 발레를 가르쳤다.
고전 발레 외에도 인물성격을 표현해내는 극안무 연출에 출중한 재능을 지녔다. 최근에는 TV프로그램 연출에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는데, 45분짜리 다큐멘터리 “세 여인”은 2003년 NTDTV에서 방영된 후, 중국 내 인터넷 상에서 대흥행을 거뒀다.
2006년 ‘여성의 달’을 맞아, 뉴욕주 의회는 그녀의 지도력과 인성에 대한 공헌을 인정하여 그녀에게 ‘탁월한 여성지도자’ 상을 수여했다.
한편 그녀는, 배우로서 호주SBS, ABC, 채널7, 채널9 등 호주 방송국의 연속극에 출연했으며, 호주 영화TV와 라디오 스쿨에서 제작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미쉘런 (Michelle Ren)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라오닝성 태생인 런미얼은 6세 때부터 예술체조훈련을 받았으며 이 때부터 이미 무용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이미 다양한 무대경험을 쌓았으며, 1997년 랴오닝성 도리배(桃李杯)무용대회에서 청소년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중국 문화부가 주관하는 대중문화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다. 그녀는 1999년 마카오의 중국 반환 축하공연을 비롯한 수많은 대규모 공연에서 솔로 및 수석무용수로 무대에 섰다.
런미얼은 2002년 미국으로 건너온 후 무용지도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지도한 무용단은 2004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Showstopper’ 무용대회에서 최고영예 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대회에서 무용지도자 솔로 부문에서도 최고영예 대상을 수상했다.
왕쉐쥔 (王學軍)
안무가 겸 수석무용수
베이징 출신으로 북경무용학원을 졸업하고 광저우에서 실력있는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1991년 호주로 이민해, 1992년 시드니 무용단에 입단해 이 무용단의 최고작 “Synergy with Synergy”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루이스 팔코(Louis Falco) 작품 Black and Blue에서 키드 레프티(Kid Lefty) 역을, “The Beast in Beauty”에서 야수 역을 맡는 등 많은 무용극에서 주연배우로 발탁됐다. 또한 “Ellipse”, “Air and Other Invisible Forces”, “Berlin”, “Free Radicals”, “The Protecting Veil”, “Body of Work” 등 그래미 머피(Graeme Murphy)의 작품에서도 주연을 연기했다.
시드니 무용단과 함께 유럽과 북미, 멕시코,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지에서 공연한 바 있다.
장톄쥔 (張鐵鈞) 안무가
뛰어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현재 캐나다 토론토 국립발레학교 교수이며 연화예술단(蓮花藝術團)의 예술총감독이기도 하다.
중국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민속무용과 궁중무용을 포함하여 다양한 중국전통무용을 소화해내는 등 뛰어난 기량으로 이름을 떨쳤다.
장톄쥔은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녀는 파룬궁 수련자로서 지역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2002년 캐나다 토론토 시정부로부터 ‘국가우수공로상’을 수여 받았다.
탄쥔이 (談駿毅)
피아니스트, 작곡가
베이징 중앙음악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중국가극무극원 (歌劇舞劇院)에서 피아니스트와 풍금 연주자로 활동했다.
많은 성악가와 무용수, 연주가들과 호흡을 맞췄으며,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예술학과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합창단의 음악지도자를 역임한 바 있다.
기업가이기도 한 탄쥔이 선생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 학사와 국제금융 MBA를 취득하여 많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상파블로시 시정(市政)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장민 (姜敏)
소프라노 성악가
헤이룽장성 예술단의 솔로 성악가 출신. 캐나다와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열어왔다.
장민은 중국 및 서양 성악 창법을 두루 섭렵했으며, 2004년부터 NTDTV 전세계화인 신년축하 공연과 북미지역순회공연에 3년째 솔로로 출연하고 있다.
세페이룽 (謝佩蓉)
피아니스트 Pianist
세페이룽은 대만 태생으로 6세부터 피아노, 비올라, 발레 수업을 받았다. 그녀는 피아노 전공으로 보스턴 대학 학사, 존스 홉킨스 피바디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트포드 대학의 하트스쿨에서 연주학위를 취득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첸훙콴, 보리스 슬러츠키, 게리 슈타이거발트, 닐 래러비로부터 사사 받았다.
현재 솔로 피아니스트 뿐 아니라, 미국의 여러 도시와 대만 타이베이에서 실내악연주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들린 롭로이스 (陈美容)
무용수 Dancer
메들린 롭로이스(Madeline Lobjois)는 파리의 서부 지방에서 성장했지만 중국문화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10살부터 중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에 그녀는 플릇을 배우기 시작했고 전문적인 발레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나중에 비천무용학교에 입학하여 무용단원이 되었다. 무용수로서 신체 소질이 탁월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학업을 포함한 매사에 성실하다.
관구이민 (關貴敏)
테너 Tenor
‘중국의 성악 황제’로 일컬어지는 관구이민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중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테너이다. ‘중국 국무원이 선정한 “제 1급 성악가”이며, 중국 외무부로부터 “뛰어난 전문가 및 공헌자”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중국영화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로로 영화 사운드 트랙 50여 곡을 녹음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생동감이 있으며, 고음에서도 무한한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구이민은 서양의 벨칸토(bel canto) 창법을 중국 전통 발성법과 접목시킨 독특한 창법으로 넓은 음역을 소화해낸다. 1980년대와 90년대 관구이민에 의해 유명해진 많은 곡 들은 20세기 중국 음악 전통에서 확고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첸루탕 (陳汝棠)
지휘자 Conductor
중국국영교향악단의 전신인 중앙악단의 첼로 연주가로 30년 간 활동했으며, 국가1급 예술인 칭호를 수여했다. 예술계에서 연주가, 지휘자, 오케스트라 수석책임자 등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1983~1990년까지 중앙악단의 수석책임자로 있으면서 교향악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수백 차례의 교양콘서트를 개최했다. 1986년에 중국 최고 지휘자 11명을 포함하여 800명 이상의 음악가들이 참가한 “베이징 교향악의 봄” 콘서트를 개최한 주요 멤버이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중국 전역에 방송되었으며 대단한 성공을 일궈내며 베이징 음악사에 큰 획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1987년 중앙악단은 미국 24개 도시를 순회하며 뉴욕링컨 센터, 워싱턴 DC 존 F 케네디 센터와 같은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는 중국중앙악단과 중앙합창단, 내몽고방송예술단악단, 선전(深圳)예술학교악단 지휘를 역임했으며, 2004년 NTDTV 전세계화인 신년 공연의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천국악대(天國樂隊)와 천음교향악단(天音樂團)을 지휘하고 있다.
치사오춘 (戚曉春)
얼후 연주가 Erhu Soloist
상하이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제 14회 “상하이의 봄” 국제 ‘얼후’ 대회에서 연주가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그녀가 헐리우드 보울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영화 “The Joy Luck Club”의 배경음악은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는 보스톤, 뉴욕, 토론토, 휴스톤,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 공연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양젠성 (楊建生)
알토 성악가
중국 최고 예술교육기관인 중앙음악학원을 졸업, 중국 중앙악단에 알토 성악가로 입단했다.
1988년 전국청년가수 방송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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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운 공연에 감동하는 필라델피아 관중들

▲ 필라델피아 메리엄 극장에서 ‘전세계화인신년만회’를 보고 감동하는 관중들
ⓒ 다이빙[戴兵]기자
[대기원] 지난 1월 4일, 현지시간 저녁 10시 30분, 신운(神韻)뉴욕예술단 ‘전세계화인신년만회(華人新年晩會)’ 첫 공연이 미국 필라델피아 메리엄 극장에서 성황리에 막을 몰려 관중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필라델피아는 신운예술단 ‘전세계신년화인만회’ 전세계 순회공연의 첫 방문지였다.

4일부터 6일까지 성황리에 이어졌던 5회 공연은 필리델피아 관중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관중들은 국제 일류 수준의 공연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내년에도 또 공연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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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만"
원본 : 베니스의 상인(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곡












원본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에서 방영돼 90%가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이 두바이 국영방송인 `두바이 TV'를 통해 14일부터 방영이 시작됐다.

대장금은 대예배(주마)일인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4시30분 2차례씩 앞으로 2개월여 간 두바이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전 지역 시청자를 찾아간다.

이 드라마는 현지 규정에 따라 아랍어로 더빙 됐으며 `궁중의 보석'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편성됐다.

한국관광공사 두바이 지사(지사장 김배호)는 대장금 등 외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한국 드라마의 방영을 위해 그간 두바이의 주요 방송사와 꾸준히 접촉, 이번에 대장금 방영을 성사했다.

김배호 지사장은 17일 "한국 드라마가 동남아와 일본, 중국은 물론 이란에서까지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두바이 방송국 측에서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방영 초기이니 만큼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대장금과 연계한 한국 관광상품 홍보를 위한 여러 전략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두바이TV에선 최근 한국 드라마 `슬픈 연가'도 방영, 일부 중동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이스라엘에서 인기를 끌었다.

hskang@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투입한 MBC TV '태왕사신기'(극본 송지나ㆍ박경수, 연출 김종학ㆍ윤상호)가 국내 드라마사에 새로운 기록을 또 추가한다. 사상 처음으로 드라마 전편을 일본 극장에서 개봉한다.

'태왕사신기'의 마케팅, 판권 판매 등을 맡고 있는 SSD는 "'태왕사신기' 24회 전편을 내년 초 일본 극장에서 차례로 개봉하기로 일본 굴지의 한 영화사와 합의했다"고 밝힌 뒤 "현재 구체적인 상영 스케줄에 대해 세부 논의를 하고 있으며, 이 영화사는 일본 전역에 영화관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도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개봉이 이뤄질 것"이라고 17일 밝혔다.

드라마로 제작된 영상 전편이 TV 방송 후 극장을 통해 다시 개봉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이례적인 시도다.

SSD는 "'춤추는 대수사선'처럼 영화와 드라마로 동시에 제작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드라마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예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드라마 퀄리티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상황에서 일본 영화 배급사들로부터 상영 제의가 이어져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태왕사신기'는 일본에서 12월3일부터 NHK TV를 통해 전파를 탄 후 내년 초께 스크린에 걸릴 예정이다.

SSD는 "드라마를 시청한 후 좋은 화질로 극장에서 다시 보기를 원하는 수요가 많을 것으로 일본 측은 판단하고 있다"면서 "우리 드라마의 영상 수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HD카메라로 촬영된 이 드라마는 별다른 추가 편집 없이 디지털 영화관에서 상영이 이뤄진다. 다만 한 번에 몇 회를 묶어서 상영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회당 상영기간과 상영 순서 등 구체적인 스케줄도 논의 중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리는 '태왕사신기'는 총 제작비가 550억~570억 원에 달하는 초대작이다. '욘사마' 배용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모래시계'의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손잡고 만들어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20%대 중반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전체 24회 중 현재까지 9회까지 방송됐다.

cool@yna.co.kr




(끝)

아직은 앳되기만한 어름산이 서주향(안성여중 3년)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미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가네

안성지방에 전해지는 속요의 한 대목이다. 그만큼 바우덕이는 뭇 사내들의 속을 끓게 만들었으며, 줄 위에 올라 어름산이로써 그리고 남사당패를 이끄는 꼭두쇠로써 유명했다. 그리고나서는 아무 미련도 없이 훌쩍 떠나 방랑의 길에 오르고는 했다.

청룡은 서우면에 있는 청룡사를 말한다. 이 곳에는 남사당패들의 근거지가 있었다. 봄철부터 전국을 다니면서 기예를 보여주던 남사당패들은 청룡사를 근거지로 겨우내 기예를 익히고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줄에오르기 전에는 늘 긴장한다.

나이 어린 어름산이 서주향은 안성에서 몇 번인가 보았다. 안성남사당에 대한 책을 쓰느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남사당패라 늘 염두에 두고는 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때마다 찾아가고는 했기 때문이다. 난 늘 주향이르 볼때마다 바우덕이의 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안성남사당보존회에는 줄을 타는 어름산이가 더 있다. 그리고 어름산이가 아니라고 해도, 츌중한 인물과 뛰어난 기예를 지닌 바우덕이의 후예들이 많다.

금강산축제장에서 펼쳐진 서주향의 줄타기는 그래서 더 애틋한 마음을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영상으로 편집을 하면서 용량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줄을 타고나면 언제나 인기가 그만이다. 사람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기도...

http://blog.daum.net/arttradition/12767587

재치 넘치는 한 여자의 애틋한 로맨스

영화 ‘비커밍제인’


[아츠뉴스] 자신과 결혼하면 부귀영화 누릴 수 있다며 형식적인 청혼을 하는 차갑고 매력 없는 남자, 자유분방하고 오만하지만 항상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남자.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과연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까.

지금의 여성들도 충분히 할 법한 이런 고민은 이 영화 속 주인공 18세기 작가 오스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딸 아내 어머니로서 의무를 다해 현모양처로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 글쓰기를 좋아하는 제인 앞에 법학을 공부하는 톰 리프로이가 나타난다. 그 둘은 서로의 자존심으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지만 제인의 가난한 가족들은 재산 많은 위즐리와의 결혼을 종용한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오만과 편견’의 위대한 작가 제인 오스틴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다. 실제로 작가 오스틴의 편지에 따르면 그는 스무 살 때 톰 리프로이라는 남자를 만났고 사랑을 했지만 대부분의 편지가 태워져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영화는 극의 재미를 주기 위해 여기에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 영화는 때론 사랑이 중요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전부가 아니며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는 진부한 명제를 알려주는 관습적인 멜로드라마이다. 제도, 관념, 금전에 의해 가로막힌 제인과 리프로이의 열정적인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결혼에만 목을 매고 ‘사랑타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관이 뚜렷한 한 여성의 힘겨운 삶의 감성에 테두리를 정하고 있어 관객들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에 다가가기 위해 애쓴다. 사랑에 대한 맹목적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소박한 일상 곳곳에 배어있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비커밍 제인>은 따뜻한 감성을 적시는 올 가을 관객들에게 잔잔하지만 오래 기억될 여운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