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한역에 들어서는 청량리발 강릉행 열차<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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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03.8km의 태백선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철도이다. 중앙선 제천역에서 갈라져 나와 영월, 함백, 고한, 태백 등을 거쳐 백산역에서 영동선에 합류된다. 오늘날 중앙선, 영동선과 연결된 태백선은 고리 모양의 환상선을 이루지만, 처음 개통된 1955년 12월 31일에는 제천에서 영월까지 38.1km에 이르는 영월선만 완공되었다. 그 이후 1957년 3월에는 영월에서 함백까지의 22.6km, 1966년 1월에는 예미에서 고한까지의 30km, 1973년 10월에는 고한에서 태백까지의 15km, 그리고 1975년 12월에 태백에서 백산까지 9.3 km 구간이 완공됨에 따라 제천에서 백산까지 태백선의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태백선의 19개 역 중 하나인 고한역은 해발 705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기차역 가운데 추전역(해발 855m)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한역과 추전역 사이에는 백두대간의 굵은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정암터널이 뚫려 있다. 길이 4505m의 이 터널은 경부고속철도의 황학터널(9970m)과 전라선의 슬치터널(6128m)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철도터널로 유명했다.
이처럼 해발고도가 높고 평지도 거의 없는 강원도 내륙의 첩첩산중에 태백선 기찻길을 부설한 것은 오로지 무연탄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서였다. 고한읍 일대의 자연부락인 고토일, 물한, 소두문동, 두문동, 만항, 갈래 등의 마을에는 탄광개발 직전인 1950년대 중반까지도 총 780여 가구의 화전민들만 살던 오지였다. 그러다 태백선의 개통과 함께 본격적으로 탄광촌이 조성되자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침내 사북읍으로부터 분리되었던 1985년 당시의 고한읍 인구는 무려 3만2800여 명으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탄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부터 고한읍의 인구와 고한역의 석탄수송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그리고 고한역에서는 2001년 12월 이후로 더 이상 석탄수송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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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한역 주변의 초저녁 풍경<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고한역 자체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강원도 첩첩산중을 헤치며 달리는 태백선 열차에 몸을 싣고 고한역을 오가는 길에 만나는 창 밖 풍광은 꿈결처럼 아름답다. 아찔할 정도로 깊은 골짜기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자락이 연이어 나타난다. 이처럼 하늘과 가까운 고지대의 철로를 달리는 태백선 열차는 ‘하늘열차’라고도 불린다.
고한역 앞에는 ‘가정의 행복까지 배팅하진 마십시오’라는 경구가 적힌 시계탑이 서 있다. 역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카지노가 자리 잡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경구이다. 이곳 고한역은 폐광 이후 썰렁하거나 황량해진 태백선의 많은 역들과는 달리, 제법 활기가 느껴진다. 2001년에 개축했다는 역사 건물도 깔끔한데다가 하루에 상·하행선 각각 7~8회씩 정차하는 열차 이용객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는 덕택이다.
고한역 근처에는 하이원리조트, 만항재와 함백산, 정암사 등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여행명소가 많다. 그 중 하이원리조트는 폐광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원랜드에서 조성했다는 대규모 종합리조트이다. 내국인 전용카지노뿐만 아니라 해발 1000m대에 위치한 골프장, 해발 1426m의 백운산 정상에서 하강하는 스키장,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음악분수, 360도로 회전하는 레스토랑 등의 다양한 레저, 위락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옛 탄광지대에 들어선 하이원리조트 주변에는 총길이 84km의 운탄길(석탄운반도로)이 사통팔달로 연결돼 있다. 울창한 숲을 지나고 전망 좋은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이 길은 MTB 하이킹, 트레킹, 산악마라톤, ATV(4륜오토바이) 등의 산악레포츠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한 해발1100m대의 하이원호텔에서 백운산 정상(1426m)까지는 1시간 30분(편도) 가량 소요되는 등산코스도 개설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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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백산 자락 백두대간 능선의 주목 군락 <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해발 1330m의 만항재 고갯길 전경 <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고한역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만항재(1330m)는 함백산(1573m)에서 태백산(156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우람한 등줄기를 타고 넘는 고개이다. 하이원리조트 골프장에서 운탄길을 타고 동쪽으로 40여 분쯤 달려도 만항재 정상에 당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운탄길은 전구간이 비포장 흙길인데다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한 벼랑 구간도 있으므로 지프형 승용차가 아니면 진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언제나 상쾌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대는 만행재 고갯마루에서는 함백산과 태백산이 지척이다. 이 고갯마루와 함백산 사이의 고원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종류의 야생화가 철따라 피고 지는 산상화원이 펼쳐져 있다. 특히 만항재 일대에는 오붓한 화원탐방로가 조성돼 있어서 느긋하게 소요하며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함백산 정상 아래의 산등성이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간다는 주목의 군락지도 있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고 서 있는 아름드리 주목의 자태가 불끈불끈 치솟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만큼이나 우람하고 당당해 보인다. 사방으로 시야가 훤히 트인 함백산 정상은 천혜의 전망대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영월, 정선, 태백의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조차도 굽어보일 정도로 눈맛이 시원하다. 고한역과 고한읍내, 하이원리조트까지도 또렷이 보이고, 운이 좋으면 장엄한 해돋이와 화려한 일몰까지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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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마노탑과 정암사 전경<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함백산의 북동쪽 기슭에는 천년고찰 정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정암사는 오대산 중대,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불전으로 이곳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두는 대신에 밖에다 계단(戒壇)을 설치하거나 사리탑을 세운다.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의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도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높이 9m의 칠층모전석탑인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갖고 온 마노석으로 쌓았다고 한다. 건축 수법도 정교하고 전체적인 조형미와 단아한 기품이 두드러져 보이는 탑이다. 게다가 이 탑이 위치한 산중턱에서는 정암사 주변의 비좁은 골짜기와 육중한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마다 단풍잎을 모두 떨군 만추에도 절집 주변의 숲은 여전히 짙은 초록빛을 띤다.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 고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잠시 두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전나무숲 특유의 청징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
| |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 사이의 강변을 따라가는 레일바이크<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여송정에서 바라본 아우라지처녀상과 나루터<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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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면 화암동굴 내부의 유석폭포 <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정선 오일장날마다 공연되는 정선아리랑 창극 <출처:여행작가 양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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