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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고고학자 마리에트는 대피라미드 근처에서 금도금 장식물을 발견했는데 얇은 두께와 광택을 지닌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대피라미드의 환기창 안에서 발견된 철제판 역시 얇은 금도금이 되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식기도 오늘날 전기도금법에 의한 것보다 더 얇고 윤기가 나는 금도금으로 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금도금 방법 중 금 박막을 얇게 입힐 수 있는 것은 진공 중에서 한쪽에 금을 입힐 물체를 놓고 맞은 편에서 금을 가열해 증발시키는 진공 증착 방법과 금이 녹아 있는 전해액 속에 금속 물체를 넣고 전류를 흘려서 그 표면에 금박이 입혀지도록 하는 전기 도금법 등이 있다. 그런데 고대에 진공 증착 방법을 사용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기도금법을 사용했다고 쉽게 단정짓기도 어렵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700년 전에 건설된 것이고 유럽인들에게 전기는 서기 1800년 무렵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가 전지를 발명하면서부터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떨까?
19세기에 쿠프 파라오의 대피라미드를 탐사하던 노먼 로키어 경은 피라미드 깊숙한 곳에서 석벽에 새겨진 복잡한 그림을 발견했다. 그런데 당시 널리 쓰였을 횃불이나 기름 램프의 그을린 자국을 피라미드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피라미드 깊숙한 곳의 캄캄한 석벽에 이렇게 복잡한 그림을 조각할 때 어떤 조명을 사용했던 것일까?
놀랍게도 고대에 전기가 사용됐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기록은 도처에 많이 남아있다.
이집트 중부에 있는 덴데라 신전 중 하토르 여신을 모신 신전 제17호실에는 특이한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에는 수행자들이 커다란 전기램프를 잡고 있다. 그것들은 제드(Djed)라는 기둥에 받쳐져 있으며 전선 같은 것을 통해 한 상자에 연결되어 있다. 제드 기둥은 절연장치로 설명되는데 기둥의 상부가 이상한 콘덴서(집전장치) 같은 모습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자체가 발전 장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한 이집트 사원의 정면에는 높이가 3m이고 꼭대기에 동으로 된 덮개를 씌운 깃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이 기원전 320년 경의 프톨레마이오스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1485년 4월 로마 부근의 아피아 도로(Via Appia)에서는 젊은 여성의 유해가 들어있는 대리석관이 발견되었는데 시체는 살아있는 것과 같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발견에 대해 학자들은 최초의 고고학 발굴이라고도 부르는데 봉인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불타고 있는 램프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500년 동안 불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1500년 동안 램프를 꺼지지 않게 한 힘은 무엇일까?
위의 사례들은 고대에 전기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전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제 유물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1938년 바그다드 부근에서 독일의 고고학자 쾨니히(Wilhelm KÖnig)는 티그리스 강변의 고도 셀레우키아의 유적에서 주둥이가 아스팔트로 메워진 10cm 정도 크기의 구운 점토 단지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철로 만든 가느다란 축(軸)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납땜을 한 것 같은 얇은 동판이 있고 녹슨 철 막대가 들어 있었는데 이런 유물은 계속적으로 발견되었다.
이 유물에 대해 『포퓰러 일렉트로닉스』는 1964년 7월 호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리로 된 실린더(원통)에 마치 화학반응에 의해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철심봉이 들어 있었다. 실린더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60 대 40의 납-주석 합금으로 때워져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쾨니히는 그것이 전지의 일종이라고 판단하였고,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 바그다드를 지배했던 파르티아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여기에 사용된 산이 무엇인가를 분석한 후 같은 종류, 같은 농도의 산을 다시 넣고 작은 전구를 접속시켜 보았다. 그런데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전구처럼 전구가 밝게 빛났다. 그 후 유사한 것이 이라크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아스팔트 마개를 사용하여 최대 10개에 이르는 전지를 직렬로 배열하여 금이나 은으로 된 장신구의 전기 도금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연구원 그레이(Willard Gray)는 쾨니히의 자료를 읽고 호기심으로, 전지로 추정되는, 고대의 그것을 복제했었다. 증발되어 버린 전해물 대신 황산동과 초산을 넣고 소형 전구를 연결하여 두 차례에 걸친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 전기가 발생했으며 두 번 모두 전지는 2분의 1볼트의 전압을 18일 동안 유지했다. 전해액에는 5퍼센트의 초*황산동용액이 쓰였는데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황산과 쿠엔산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그렇다면 고대 사람들은 정말 전기는 물론, 전지까지 사용했던 것일까? (글 : 이종호 – 과학국가박사)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식기도 오늘날 전기도금법에 의한 것보다 더 얇고 윤기가 나는 금도금으로 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금도금 방법 중 금 박막을 얇게 입힐 수 있는 것은 진공 중에서 한쪽에 금을 입힐 물체를 놓고 맞은 편에서 금을 가열해 증발시키는 진공 증착 방법과 금이 녹아 있는 전해액 속에 금속 물체를 넣고 전류를 흘려서 그 표면에 금박이 입혀지도록 하는 전기 도금법 등이 있다. 그런데 고대에 진공 증착 방법을 사용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기도금법을 사용했다고 쉽게 단정짓기도 어렵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700년 전에 건설된 것이고 유럽인들에게 전기는 서기 1800년 무렵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가 전지를 발명하면서부터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떨까?
19세기에 쿠프 파라오의 대피라미드를 탐사하던 노먼 로키어 경은 피라미드 깊숙한 곳에서 석벽에 새겨진 복잡한 그림을 발견했다. 그런데 당시 널리 쓰였을 횃불이나 기름 램프의 그을린 자국을 피라미드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피라미드 깊숙한 곳의 캄캄한 석벽에 이렇게 복잡한 그림을 조각할 때 어떤 조명을 사용했던 것일까?
놀랍게도 고대에 전기가 사용됐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기록은 도처에 많이 남아있다.
이집트 중부에 있는 덴데라 신전 중 하토르 여신을 모신 신전 제17호실에는 특이한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에는 수행자들이 커다란 전기램프를 잡고 있다. 그것들은 제드(Djed)라는 기둥에 받쳐져 있으며 전선 같은 것을 통해 한 상자에 연결되어 있다. 제드 기둥은 절연장치로 설명되는데 기둥의 상부가 이상한 콘덴서(집전장치) 같은 모습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자체가 발전 장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한 이집트 사원의 정면에는 높이가 3m이고 꼭대기에 동으로 된 덮개를 씌운 깃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이 기원전 320년 경의 프톨레마이오스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1485년 4월 로마 부근의 아피아 도로(Via Appia)에서는 젊은 여성의 유해가 들어있는 대리석관이 발견되었는데 시체는 살아있는 것과 같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발견에 대해 학자들은 최초의 고고학 발굴이라고도 부르는데 봉인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불타고 있는 램프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500년 동안 불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1500년 동안 램프를 꺼지지 않게 한 힘은 무엇일까?
위의 사례들은 고대에 전기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전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제 유물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1938년 바그다드 부근에서 독일의 고고학자 쾨니히(Wilhelm KÖnig)는 티그리스 강변의 고도 셀레우키아의 유적에서 주둥이가 아스팔트로 메워진 10cm 정도 크기의 구운 점토 단지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철로 만든 가느다란 축(軸)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납땜을 한 것 같은 얇은 동판이 있고 녹슨 철 막대가 들어 있었는데 이런 유물은 계속적으로 발견되었다.
이 유물에 대해 『포퓰러 일렉트로닉스』는 1964년 7월 호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리로 된 실린더(원통)에 마치 화학반응에 의해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철심봉이 들어 있었다. 실린더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60 대 40의 납-주석 합금으로 때워져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쾨니히는 그것이 전지의 일종이라고 판단하였고,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 바그다드를 지배했던 파르티아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여기에 사용된 산이 무엇인가를 분석한 후 같은 종류, 같은 농도의 산을 다시 넣고 작은 전구를 접속시켜 보았다. 그런데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전구처럼 전구가 밝게 빛났다. 그 후 유사한 것이 이라크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아스팔트 마개를 사용하여 최대 10개에 이르는 전지를 직렬로 배열하여 금이나 은으로 된 장신구의 전기 도금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연구원 그레이(Willard Gray)는 쾨니히의 자료를 읽고 호기심으로, 전지로 추정되는, 고대의 그것을 복제했었다. 증발되어 버린 전해물 대신 황산동과 초산을 넣고 소형 전구를 연결하여 두 차례에 걸친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 전기가 발생했으며 두 번 모두 전지는 2분의 1볼트의 전압을 18일 동안 유지했다. 전해액에는 5퍼센트의 초*황산동용액이 쓰였는데 당시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황산과 쿠엔산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그렇다면 고대 사람들은 정말 전기는 물론, 전지까지 사용했던 것일까? (글 : 이종호 – 과학국가박사)
복원된 축전지 | 덴데라의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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