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황실 여신(女神)들 글:천 년 구름


역사란 한 막 거대한 연극과도 같아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이번 연극 중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중 일부 배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거나 심지어 고통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사는 것이 죽기보다도 괴롭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배치했으며 당신 또한 그 역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 아울러 시공(時空)의 미혹을 벗어던지면 당신은 이런 배치가 비록 엇갈리고 복잡한 것 같아도 전혀 어지럽지 않고 지극히 질서가 있으며 그 자체 속에 현기(玄機)와 목적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만 갈래의 작은 시냇물이 강으로 모이고 천 갈래의 강이 끝내는 바다로 모이는 것처럼 말이다.


1. 신이 지팡이(神杖)를 휘두름은 무엇 때문인가?


옛 북경성(1949년에 공산화되기 이전의 북경)에는 각종 사당이 무척 많았는데 다 합치면 대략 천여 곳에 이르렀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관제묘(關帝廟 보통 관묘라고 하며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 관우를 모시는 곳이다)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옛 북경성에는 전문적으로 관공(關公, 관우)을 모시거나 관공을 같이 모시는 사당이 116곳이나 되어 관음보살을 모신 사원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관제묘는 전 중국에서 북경이 가장 많았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이전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


역대 제왕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아 관우(關羽)의 지위는 점차 높아졌고 점점 신격화되었다. 나중에는 관과 백성들의 보편적인 제사를 받아 ‘무왕(武王)’, ‘무성인(武聖人)’으로 불리며 ‘문왕(文王)’, ‘문성인(文聖人)’인 공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관공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적응했는데, 충(忠)과 의(義)의 화신으로 역대 봉건제왕들의 눈에 그는 충신의사였다. 즉 도원결의하여 함께 고생을 겪는 진정한 벗의 모습이자 의리를 말하고 위급할 때 충정을 바치고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보다 더 심오한 원인이 있다. 19세기말, 과거에 천제(天帝)를 역임했던 옥황(玉皇 한국에서는 보통 옥황상제라고 함)과 왕모(王母)는 한동안 천수(天壽)를 끝마친 후 일찍이 하계로 내려와 사람으로 환생했으며 그 빈자리를 대신한 이가 바로 관제였다. 민간에도 하늘의 일[天事]을 아는 고인(高人)들이 적지 않고 새로 천제가 된 관제에 대한 존경심에서 적지 않은 관제묘를 더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 관제묘도 아주 흥성했다.


그러나 세월은 유수와도 같아 눈 깜빡할 사이에 1980년대가 되었고 이때가 되어 인간세상에서 환생했던 옥황상제도 백년에 가까운 인생길을 마치고 천계(天界)로 되돌아갔다. 이때 관제는 옥제에게 자리를 양보할 뜻이 없었고, 옥제는 옥제대로 관제가 이미 백 년 동안 제위(帝位)에 있었으니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여겨, 다툼은 피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두 제왕이 담판할 때 말다툼이 생겼고 좋지 않은 말이 나왔다. 두 제왕의 격렬한 다툼은 한 여신(女神)을 놀라게 했고, 이 여신은 한 순간에 화가 치밀어 용두장(龍頭杖)을 휘둘러 관제를 바닥에 쓰러뜨렸고, 관제는 보름이 지난 후에야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여신은 누구이며 왜 그리 큰 화를 냈을까? 그녀는 바로 옥제가 하늘에 있을 때의 친 누나로, 이전에 송(宋)나라 때 인간세상에서 환생한 적이 있는 사노태군(佘老太君)이다. 그녀가 이번에 지팡이를 휘두른 것은 옥제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제의 언행이 옥제의 딸들에게 불손하고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관제는 원래 지상에 있을 때도 여자를 천시했는데 하늘에 올라가서도 이를 고치지 못했다. 한편 옥제의 딸이자 하늘나라의 7공주들은 여러 차례 역사의 배치에 의해 속세에 내려와 인간세상의 갖은 고난과 굴욕을 겪었다. 노태군의 이번 매질은 순전히 그녀들을 위해 편을 든 것이다.


그럼 하늘나라의 이 공주들은 역사상 어떤 인물들로 환생했었는가? 그녀들을 당나라 때 저 멀리 대막으로 시집간 모란꽃처럼 아름다운 여인 왕소군[王昭君, 대공주], 재능이 출중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손상향[孫尙香, 5공주], 충성스럽고 용감하여 남자를 능가하는 반리화[樊梨花, 3공주], 정조를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며 갖은 고난을 겪어 낸 충신 악부인[충신 악비(岳飛)의 아내, 7공주], 자비롭고 착하며 박애하면서도 강인한 송경령[宋慶齡, 손문의 아내, 6공주] 등등이다. 그녀들은 중국민족의 빛나는 스타들이고 중국민족의 융합과 문화 발전을 위해 불멸의 공헌을 했다. 내가 여기서 언급한 것은 단지 그녀들의 일생일세에 불과하며 사실 그녀들도 여러 차례 사람으로 환생했었다. 예를 들면 7공주는 당나라 때에는 명장 이정(李靖)의 부인(나타의 모친)이었고 남송 때에는 악비의 부인이었으며 청나라 때는 강희제의 황비 등으로 태어났다.


노태군의 의도는 옥제와 관제의 제위 다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내 조카들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태군이 인간 세상에 있었을 때는 일생동안 많은 전쟁을 치러 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도리어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연로한 나이에 젊은이들을 먼저 전쟁에 내보냈고 그녀의 자손들은 앞 다퉈 전투에 나가 장렬히 전사했다. 비록 천여 년이 넘었지만 강인한 노태군도 이 때문에 슬픔을 느끼곤 했다. 노태군은 혼자 12명의 과부를 거느리고 서역을 평정하고 개선하여 돌아온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은거한 후 마음을 자연으로 돌려 한 마음으로 도를 닦았고 결국에는 육신이 신으로 수련성취 되었으며 백년 후에는 수식국(水息國, 음역)으로 옮겨갔다. 민간에서는 노태군의 백발이 다시 흑발이 되고 이빨이 떨어진 후 다시 자랐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2004년 어느 날, 하늘에 있던 몇몇 공주들이 수식국에 가서 고모(노태군)를 만났다. 뭇 신들은 노태군이 천여 년 동안 수련하면서 남긴 몇 묶음의 머리카락과 몇몇 작은 바구니에 담긴 이빨을 보고 모두들 감탄했다. 노태군은 뭇 신을 향해 웃으면서 “만약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이빨을 하나씩 주마. 너희 자손들이 고관(高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뭇 신들은 인간세상의 명리 부귀를 담담히 보기에 웃으면서 사절했다.


한편 옥제가 막 황위에 오르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질 때 또 한 차례 궁중 내란이 발생했는데 원래 그의 자녀와 몇몇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그에게 반항했던 것이다.


2. 온갖 고생을 겪었음에도 신위(神位)에 돌아오기 어려워


옥제가 새로 제위에 오른 후 어느덧 8,9년이 지났으며 그는 자신과 함께 하계에 내려가 다른 곳에서 환생한 왕모를 거의 잊어버렸다. 이때 왕모도 자신의 고달픈 인생을 끝마쳤지만 그녀는 천계(天界)로 올라오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 지 8,9년이 되었다.


왕모는 전에도 여러 차례 하계에 내려와 환생한 적이 있다. 두 번은 제왕의 가문에 태어났고 두 번은 평민 가문에 태어났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의 모친인 오국태(吳國太)가 바로 그녀이고 그녀의 딸 손상국은 바로 5공주가 환생한 것이다. 송나라 때는 요나라 소(蕭)태후가 바로 그녀이다[주: 소태후는 요나라 경종(景宗)의 황후이자 성종(聖宗)의 모친인 소작(蕭綽)을 말한다. 자는 연연(燕燕)이고 역사에서는 황태후로 칭한다. 그녀는 병약한 경종을 모시고 14년간 국정을 이끌었고, 또 어린 성종을 도와 27년간 섭정했는데 40년간이나 요나라를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그녀는 혁신을 주장했고 한수 이북을 향했으며 요나라는 그녀의 통치 하에서 번창했다. 한마디로 요나라의 재능있는 여자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다. 또한 중국역사상 첫째로 뽑히는 여걸이다) 소태후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었는데 바로 하늘나라의 공주가 환생한 것이다.


왕모는 이번 생에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번 생은 갖은 고난과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부친은 성실하고 선량한 농민이었지만 어머니는 인간성이란 전혀 없고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우는 악독한 여자였다. 그녀는 단 하루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모두 아버지의 품과 등 뒤에서 보냈고 5살 때 악독한 어머니에 의해 남의 집에 민며느리로 보내졌다. 그녀는 진(陳) 씨 집의 민며느리가 되었다. 먹는 것이라곤 마른 나뭇잎, 입은 것은 닳아빠진 홑옷, 이불은 마른 풀과 도롱이였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잠도 못자고 날이 밝을 때까지 실을 뽑아야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도 아주 혹독하여 가끔 그녀가 ‘밥’을 먹다가 절인 반찬을 집기라도 하면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좋은 것만 먹으려한다고 욕을 했고 또 젓가락으로 그녀의 어린 손을 때리곤 했다. 6,7살 난 어린 아이가 얼음과 눈이 뒤덮인 산과 고개를 넘어 물을 길어야 했는데 한번은 산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부상에 가슴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물통이 망가진 것을 가슴 아파했다. 망가진 물통 때문에 또 한바탕 매를 맞아야 했다. 3년간 민며느리 생활을 한 후 새카맸던 댕기머리는 어느덧 누렇게 말라버렸다.


그녀는 평생 두 번 팔려갔다. 한번은 14살 때 어머니에 의해 팔렸고 또 한 번은 30여 세 되어 남편이 죽은 후 친척 중의 악한 여인에 의해 팔렸다. 그녀는 일생동안 9명의 딸을 낳았지만 그 중 8명은 전쟁으로 어지럽던 시기에 죽어버렸다. 비록 평생을 고달프게 살았지만 그녀의 정직하고 인자한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친과 남동생은 나중에 초기 공산당에 가입하여 강도가 되었다. 전에 여러 차례 부잣집 물건을 강탈한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얻어온 재물이 깨끗하지 않다고 여기어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아울러 악독한 어머니 및 못난 남동생과 관계를 끊겠다고 맹세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그녀는 전에 일본인에게 밥을 해준다는 명의로 일본군에게 잡혀온 한 젊은 여인을 놓아준 적이 있으며 자신은 이 때문에 오히려 일본인의 혹독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왕모가 지옥에 떨어져 있던 8,9년간 그 악왕묘(악비사당. 역주: 남송 시대 명장 악비는 간신 진회의 모함에 걸려 살해됐지만 나중에 그의 충성을 높이 평가받아 악왕으로 추증되고 그의 사당도 악왕묘로 불린다.) 사당 앞의 신조(神鳥)는 남쪽 천문을 향해 8,9년을 울었다. 또 왕모의 딸들이자, 하늘의 공주들은 어머니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주 조급하게 여겼다. 그날 천병천장의 몇명 영수들도 왕모를 위해 불만을 토로했다.


공주들 중에서 특히 맏이인 대공주의 재간이 가장 컸고 6공주는 말재주가 가장 뛰어났다. 대공주가 왕소군으로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감탄했지만 사실 그녀는 천계에서 성격이 아주 강인하여 옥제와 비슷했다. 그러나 6공주는 성격이 온화하고 말재주가 좋은 것이 왕모를 닮았다. 대공주에게는 완벽한 도법(道法)이 있어서, 매 한가지 법술(法術)에 매 한가지 법보(法寶)가 있었다. 내가 알기에는 요귀를 자르는 참요검(斬妖劍), 요귀를 비추는 거울인 조요경(照妖鏡), 신선을 묶을 수 있는 밧줄, 혼을 빨아들이는 병 등 네 가지 보물이 있다. 이 네 가지 보물은 모두 지극한 영성(靈性)이 있다. 요귀를 자르는 참요검은 요귀를 자를 뿐만 아니라 또 신선도 자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향해 검을 내보내도 자동적으로 되돌아오고 절대 무고한 이를 해치지는 않는다. 옥제조차 대공주를 다소 두려워할 정도였다. 몇몇 천장(天將)도 아주 대단한데, 그중 한 명은 성격이 강렬하고 목소리가 아주 커서 화를 내면 천둥과도 같아서 하늘과 땅밑에서도 모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왕모를 하늘 궁궐인 천정(天庭)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떠들었다.


왕모가 천계로 되돌아온 후에는 봉황관을 쓰고 용두장을 짚고 다시 위엄을 펼쳤다. ‘지반(地盤)’을 다시 장악했는데 ‘지반’은 주로 인간세상의 큰일을 배치하는 것이다. ‘지반’과 ‘천반(天盤)’은 상대가 되며 ‘천반’은 옥제가 직접 장악하고 있다. 왕모가 귀위(歸位)한 후 팔방의 신성(神聖)들이 모두 축하하기 위해 입조했고 그중 한 명이 바로 그녀를 계속 주목해왔고 또한 그녀와 원수지간이었던 사태군이다. 그녀들은 전에 송나라 때 천지가 뒤집힐 정도로 서로 죽이고 싸웠다. 과거에 인간세상에서는 철천지원수였지만 지금 서로 만나니 오히려 더 반가워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노태군은 옥제의 하늘의 친누나이고, 왕모(소태후)와 태군은 송나라 때 인간세상에서 철천지원수였다. 하늘에서는 시누와 올케지만 역사의 배치는 가끔 얼마나 잔혹한가! 사실 그녀들, 이 신들은 일생의 뜨거운 피로, 심지어 생명으로 역사를 썼고 사람들에게 무엇이 ‘충성(忠)’이고 무엇이 ‘의리(義)’인지 알려주었다. 충효절의(忠孝節義)는 신이 사람들에게 정해준 사람이 되는 표준인 동시에 또한 민족간의 융합을 촉진하고 인류를 이끌어 문명으로 나아가게 했다.


나중에 왕모는 설의(雪衣 눈처럼 하얀 옷)에 작은 모자를 쓰고 지옥을 순시했다. 많은 생명들이 지옥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슬퍼했지만 금생에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가 지옥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어떻게 대마초를 피워 가정을 풍비박산 냈고, 자신을 진씨 집에 민며느리로 보내 어떻게 온갖 시달림을 당했는가에 대해 잊을 수 없었다. 또 어머니가 성실한 아버지를 어떻게 깔보고, 오랫동안 소위 ‘혁명동지’와 한데 어울려 간통하고 밖에서 싸돌아다니며, 악독한 마음으로 자신을 팔아버린 것도 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팔려간 후 부친은 이로 인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다 황천길에 오른 것도 잊을 수 없었다. 왕모의 말로 설명하자면 이런 개돼지보다 못한 사람은 사람의 모친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왕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왜 당신처럼 이렇게 큰 神도 평민의 집에 태어나 그렇게 큰 고생을 겪습니까?"


왕모는 "이 신이 세상에 내려와 고생을 겪고, 수난을 당하며,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모두 공덕을 쌓는 것으로 이를 일러 고생 중의 고생을 겪는다고 합니다. 사람 위의 사람[人上人]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엇을 일러 사람 위의 사람이라고 하는가? 바로 신을 말합니다. 만약 단지 누리기만 하고 재물을 헤프게 탕진한다면 역시 개나 돼지, 소나 말로 태어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살인했으면 목숨을 갚아야 하고 빚을 졌으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보세요. 바로 이전 왕조에서 황제였던 사람이 인도(人道)를 지키지 않고 재물을 헤프게 쓰더니 지금도 여전히 거리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만약 천도(天道)를 위반하는 큰 나쁜 일을 했다면, 예를 들어 무고한 사람을 마구 살해하거나 그 신선이 도를 위배했다면 역시 피하기 어려운데 바로 하늘의 번개(雷劈)를 맞습니다. 당신이 한번 보십시오, 하계에 내려온 신들 중에 고생을 겪지 않는 이가 누가 있나요? 설사 하계에 내려와 황제가 되었다 해도 날마다 국사에 조바심을 내고 백성을 위해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3. 연극 배역을 어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으랴?


나는 일부 신화와 전설에서, 예를 들어 《봉신연의(封神演義)》, 《서유기》 속의 많은 신들이 모두 진짜이고 그들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 기본적인 사실 역시 진실임을 발견했다. 민간 설화 속의 설강(薛剛)이 당나라를 반대한 후 설가의 온 식솔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반리화(樊梨花)가 300여 명의 설씨 가문을 죽이려 할 때 반리화의 사부가 나타나 이는 하늘의 뜻이니 하늘의 뜻을 위배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여 사람들을 풀어주었는데 이런 불가사의한 일도 진짜였다.


일부 신화와 전설에서는 옥황상제에게 7명의 딸이 있다고 하는데 이 말도 빈말이 아니다. 옥제에게는 7명의 딸과 아들 2명이 있었다. 그리고 신화인물 속의 나타(哪吒), 양전(楊戩), 화산성모(華山聖母)는 모두 진짜다. 일곱 공주가 인간세상에서 환생한 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아주 똑똑히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일부분만 이야기할 것이고 민간전설과 신화에서 말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만 중점적으로 말하겠다. 아마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고 할 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만약 여러분이 믿지 못하겠다면 그냥 이야기로 간주하기 바란다.


(1) 양전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양전은《봉신연의》,《서유기》에서 나오는 인물이며 또 역사의 진실한 인물이다. 단지 그의 어머니에 관해 잘못 전해진 것이 있다. 신화소설 《서유기》에서 작가는 양전의 어머니를 옥황상제의 여동생이라고 했지만 사실 옥황상제는 천계에 누나만 있을 뿐 여동생이 없으며 더욱이 그 여동생이 사사로이 속세에 내려온 일이 없다. 그리고 당시 양천우(楊天佑)의 배필은 대공주로 즉 대공주가 바로 양전과 화산성모의 어머니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신(神)과 사람(人)이 함께 하던 연대이므로 많은 신들이 모두 인체를 갖고 있었다. 대공주와 양천우의 혼인은 옥황상제가 결정한 혼인이며 대공주가 사사로이 세속에 내려온 것이 아니다. 양천우의 집은 대대손손 선량하고 공덕을 쌓았는데 본래는 자손이 가득해야 했다. 후에 대공주는 일남일녀를 낳았으니 바로 양전과 화산성모이다. 대공주가 두 아이를 낳은 얼마 후 인간세상에서는 전란이 발생했고 대공주는 할 수 없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 궁전으로 올라갔다. 당시 화산성모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대공주의 행위는 천계를 오염시켰고 옥황상제는 신의 계율에 따라 대공주를 하늘 감옥에 넣었다. 두 아이는 모두 14살 난 7공주가 데리다 키웠다. 후에 7공주는 인간세상에서 평민으로 태어나야 했고 대공주 역시 속세에 내려와 7공주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로써 7공주가 자신의 아이들을 키워준 은혜에 보답한 셈이다.


(2) 7선(仙)은 사사로이 인간 세상에 내려간 것인가?


7선이 속세에 내려와 동영(董永)과 혼인한 것도 진실이다. 신화 《천선배(天仙配)》도 사람과 신이 함께 있었던 그 시기에 발생했으며 당시에는 신선들도 인체가 있어 모태에 들어갈 필요 없이 직접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있었다. 7선이 내려와 동영과 혼인한 것도 옥황상제가 결정한 혼인이다. 주로는 동영이 자신을 팔아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자 한 마음이 천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었다. 후에 7선은 속세에 내려와 백일만 머물렀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인간세상의 생활이 너무나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집은 참대로 지었고 밥그릇은 흙을 구워 만든 것이며 가끔 한 밤중까지 잠을 자다가 큰 바람이 불면 방 전체가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때 7공주는 왕모가 가장 총애하던 딸이었다. 7명의 공주에게는 모두 사부가 있었으며 7공주의 사부는 신통이 아주 대단한 천계의 도고(道姑)였다. 도고는 7공주의 영리함을 좋아했고 자신에게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7공주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7공주가 속세에 내려가는 일은 도고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혔다. 옥황상제는 비록 엄격했지만 역시 신선 중에서 위망이 지극히 높은 도고를 무시할 수 없었고 도고가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것 역시 정리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7선을 천궁으로 불러들였다. 그 시기 선계(仙界)와 지계(地界)의 생활은 아주 차이가 났는데 어느 신선도 속세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부 이야기에 선녀가 속세에 내려온 것은 천계가 적막해서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찾으러 내려온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우스갯소리다.


(3) 공주들의 환생 이야기


지난번 문장에서 나는 대공주가 전생에 왕소군이었고, 3공주는 반리화, 5공주가 손상향, 6공주가 송경령, 7공주가 악부인(악비의 부인)이자 청나라 강희제의 비로 환생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역사와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로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다.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2공주와 4공주의 전생에 대해 말해보겠다.


2공주와 4공주에 대해 나는 그녀들의 일세(一世)만 알 뿐이다. 2공주는 대략 193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평민으로 태어났으며 실제 나이는 60~70세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40여 세로 보인다. 현지 사람들도 그녀는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왕모의 딸임을 희미하게 알고 있었고 매년 8월 15일 반도회에는 그녀의 왠선(元神)도 가서 참석했다. 그녀에게 있어 하늘나라의 일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의 왠선은 갈 때마다 선계의 아름다움과 흥성함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돌아올 때 은색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신선이 그녀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리면 그녀는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그녀는 70여세 되던 시기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천궁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녀는, 사람은 어차피 죽을 것이고 70여세까지 살았으니 더 살면 요귀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농약을 마셨다. 자살은 장난이 아니며 그녀는 천당으로 가지 못할뿐더러 또 지옥에 떨어져 고생을 겪었다. 2공주의 이런 어리석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숨이 나온다. 왕모는 이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고 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4공주는 평민으로 태어났다. 16살 무렵, 한 서생에게 시집을 갔고 후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다. 서생은 후에 북경에 들어가 장원급제했고 어느 높은 관리의 마음에 들어 그 집 사위가 되었다. 그 후 서생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소식조차 없었다. 4공주는 집에서 위로는 시부모를 공경하고 아래로는 아들딸을 키웠다. 산과 들에 있는 야채와 야생 과일로 생계를 유지했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아들을 공부시켰다. 그녀의 아들은 왕모가 내려 보낸 문곡성(文曲星)이 환생한 인물로 대단히 총명했다. 이 아들은 또한 4공주의 유일한 의지였다. 20년 후 아들은 연달아 장원에 급제했으며 비로소 고생을 끝내고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녀가 겪은 일생은 진상련(秦湘蓮)과 흡사하다.


여기서 또 6공주 송경령을 말해보자. 송경령은 60세 이후 정사(政事)에 담담했고 마음이 조용해지기만 하면 신통이 있었다. 가끔 집에서 잠을 자지만 왠선(元神)은 나가서 천지를 돌아다녔고 또 여러 차례 우리 집에도 놀러왔었는데, 단지 기색이 총망해 보였다. 내가 어릴 때 본 적이 있는 일부 국내 선전물에서 송경령과 송미령을 마치 적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녀들의 자매정은 아주 깊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겠다. 2003년 3월, 어느 날 하늘에 있는 6공주가 7공주에게 말하기를, "일곱째야, 나는 속세에 내려가서 여동생을 보고 와야겠다. 며칠 후면 그녀의 생일인데 이번이 그녀의 마지막 생일이란다."라고 했다. 7공주가 "언니 여동생이라고요? 어느 여동생이요?"라고 묻자 6공주는"바로 미국에 있는 장(蔣)부인 말이야, 그녀는 올해 106세로 곧 수명이 다 할 거야."라고 답했다. 나중에 한 대법제자가 중국 국가안전부에 잡혔고 이 대법제자는 그녀들과 연분이 있었는데 6공주가 급히 대공주에게 불려갔다. 후에 그녀들은 신통을 써서 이 대법제자를 구출해냈다.


왕모와 어떤 신들도 나에게 7공주가 악비의 부인으로 태어난 일부 속세 이야기들을 알려주었다. 그 시기 악비의 집은 무척 가난하여 구차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날 왕모는 아직도 악비 일가의 일부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기 악비의 부인은 두 아들(악운, 악뢰)를 낳았고 딸을 하나 낳았는데, 딸의 아명은 대모(大毛), 소모(小毛), 삼모(三毛)였다. 그들은 늘 비가 온 후 숲 속에 자라는 지권피라는 일종의 풀을 먹고 살았다. 세 아이들은 어릴 때 모두 허약했다. 악운은 12살에 전투에 참전했다. 악비 부자가 간신들에 의해 살해된 후 악비 가족은 황범(皇犯)이 되어 풀조차도 먹을 수 없었다. 악부인 역시 이로 인해 상심이 지나쳐 눈물이 거의 메말랐다. 나중에 하늘에 있는 왕모는 자신의 딸이 너무나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머금고 딸을 천궁으로 데려왔다. 후에 악왕(岳王)은 강희대제로 태어났고 7공주는 의비(宜妃)로 태어났다. 강희는 의비를 몹시 사랑했는데 아마도 그들 전생의 이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호기심이 아주 강해서 전에 웃으면서 왕모와 공주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들은 어떤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이 좋습니까? 황제나 황후로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평민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까?"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모두 좋지 않다고 말했다. 황제로 태어나면 조국과 백성을 위해 걱정해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살해할 수 있어 여러 세(世)를 거쳐도 갚지 못할 빚을 지게 된다. 황후로 태어나도 궁중 안의 암투가 극심하다. 7공주가 황후로 태어났을 때 황후자리를 노리고 있던 악독한 황비에 의해 궁이 불타 하마터면 불에 타서 죽을 뻔 했다. 다행히 왕모가 미리 알고 7공주를 공중에서 데려갔다. 왕자로 태어나도 좋지 않은데 황위를 다툴 때면 형제간에 서로 반목하고 서로 죽여야 한다. 평민으로 태어나도 고생을 겪어야 하고 좋은 날이 없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공주와 부마로 태어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좀 편안하다. 그러나 다음 생에 무슨 역을 맡는가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뭇 여신(女神)들은 모두 다시 속세에 내려오는 것을 싫어했는데 또 역사의 큰 연극도 최후에 도달했음을 알고 있다. 오로지 고층의 신으로 성취되어 더 이상 윤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가장 좋은 것이다.



※역주: 송경령(쑹칭링 1892~1981) 중국의 혁명지도자 손문의 2번째 처로 1925년 손문이 죽고 나서 국민당이 좌우로 갈리자 좌파를 지지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대륙에 남았고 1981년에는 인민공화국 명예의장으로 지명되었다.


송미령 1897년 광둥성에서 태어나 2003년 10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106세를 일기로 타계. 국민당 우파 장개석의 2번째 아내로 언니인 송경령과는 친자매 사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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