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형 사회공헌 낙서장 2007. 7. 3. 17:46
[여적] 우물형 사회공헌
[경향신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자동차왕 헨리 포드. 19세기 후반 미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이들 3인방은 당대 최고의 부자라는 점 말고도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막대한 부를 거머쥐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번 돈만큼은 정승같이 썼다. 자선사업에 거액을 쾌척하며 부자의 책무를 실천했다. 이들의 선례가 후배 부자들에게 이어져 기부는 사회공헌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포드재단은 거액의 기부금을 운용해 얻은 수익으로 지금도 다양한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사무용품 판매회사인 ‘기브 섬씽 백’의 설립자 마이크 해니건은 기업가인지 자선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1991년 설립 이래 2년마다 매출을 2배씩 늘리는 이 회사는 해마다 세후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그간 시민단체 150여곳에 기부한 돈이 300만달러가 넘는다. 향후 10년간 1억달러 기부를 목표로 하는 해니건은 “사업은 더 가치있는 일에 쓸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록펠러처럼 억만장자가 된 뒤에 뭉칫돈을 쾌척하는 게 아니라 해니건은 버는 대로 기부하겠다는 생각이다.

보령제약의 김승호 회장이 독특한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10월 보령제약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김회장의 사재를 털어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치매 노인 등을 수발하는 별도의 노인요양회사를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재단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공익성이 강한 영리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을 공익재단에 기부해 지속가능한 사회공헌사업을 펼쳐나가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김회장은 재단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물이 계속 솟는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거액의 기금을 마련한 뒤 그 기금의 이자나 투자수익 등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공익재단과 달리, 기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제3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록펠러 방식과 해니건 방식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공익재단이자, ‘우물형 사회공헌’의 실험인 셈이다. 용각산과 겔포스로 지긋지긋한 천식과 속쓰림을 다스려온 보령제약의 김회장이 내놓을 ‘사회적 신약’에 벌써부터 눈길이 끌린다.

〈유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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