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마하 카싸파 존자(가섭 존자;아라한;라한)와 관련하여 게송 28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날 마하 카사파 존자는 '핍팔리 석굴'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테라는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라자가하 성에서 탁발을 해 와서

일정한 장소에서 음식 공양을 마치고 나무 밑에 앉았다.

마하 카사파 존자는 내적 현상 관찰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에 몰두하면서

신통력으로 많은 종류의 중생을 살펴보았다.

마하 카사파 존자는

어느 중생은 얼마만큼 마음이 집중되어 생활하고 있으며,

어느 중생은 얼마만큼 마음이 산만한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지,

또 어느 중생이 어떤 업으로 태어나며 죽어 가는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마하 카사파 존자가 이런 것들을 알아보려 하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 교외의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면서

역시 신통력으로 마하 카사파 존자를 관찰하고 계셨다.

그 결과 부처님께서는 마하 카사파 존자가

중생들이 업에 따라 태어나고 죽어가는 현상에 의문을 갖고

그것을 열심히 알려고 하는 것을 보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는

마하 카사파 존자의 지혜로는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곧 마하 카사파 존자 앞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카사파여,

중생이 태어나고 죽어서 다시금 새 부모의 인연을 만나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은 네 힘으로는 알기 어려우니라.
네 능력은 아주 적은 것이며, 여래만이 이에 관한 진실을 꿰뚫어 아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광명을 보내시어

부처님께서 바로 마하 카사파 존자와 마주 앉으신 것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신 상태로 다음의 게송을 읊으시었다.

현자는 마음 집중으로써
슬픔에서 벗어나 지혜의 정상에 올라
중생의 어리석음을 내려다본다.
마치 산 위에 오른 사람이
산 아래 사람들을 내려다보듯이.

1) 숙명통


두타 제일로 불렸던 마하 가섭 존자의 마음 집중 수행 이야기입니다.

마하 가섭 존자는 출가 수행자로서 의식주에 대한 소욕 지족과

무소유를 실천하는 두타행(頭陀行)을 지키는데 있어 으뜸이었다고 합니다.

가섭 존자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출가자로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두타행과 함께

마음 집중 수행에 전념하면서 탐진치의 삼독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해 나갔슴을 알 수 있습니다.

가섭 존자는 마음 집중 수행을 하면서

중생들이 업에 따라 태어나고 죽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중생들의 과거와 미래를 보며

왜 윤회하며 나고 죽는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숙명통이라고 합니다.

가섭 존자는 마음 집중 수행을 통해 숙명통을 증득하여

중생의 업을 살필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열망했슴을 알 수 있습니다.

 

2) 3명 6신통

그러나, 가섭 존자와 같은 아라한도

부처님의 지혜의 깊이와는 차이가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붓다가야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장면을 보면

부처님은 연기법에 입각한 4성제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3명(明) 6신통을 얻으심에 의해 정각을 이루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연기법에 입각한 4성제만을 이야기하는데,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에는 3명 6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3명은 첫째 중생들의 과거와 미래의 인연을 알수 있는 숙명통,

둘째 모든 공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현재를 볼수 있는 천안통,

셋째 모든 탐진치의 번뇌를 소멸한 누진통으로 인한 밝은 지혜입니다.

6신통은 3명인 누진통, 천안통, 숙명통 이외에

모든 중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의 마음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공간의 이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을 합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빠른 시간에 제도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이들을 4성제를 이해 납득시킨 것이 아니라,

3명 6신통으로 중생들 각각의 근기와 번뇌를 보시고 설법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3명 6신통은 신통력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근기와 번뇌에 따른 중생 제도의 능력으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3) 열망

아라한은 번뇌가 소멸한 존재입니다.

즉, 누진통의 존재입니다.

아라한은 번뇌가 없는 만큼

번뇌로 고통받는 중생의 번뇌는 볼 수 있지만,

중생의 시간적, 공간적 인연을 볼 수 있는 숙명통과 천안통의 능력은

부처님과 아직 큰 차이가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가섭존자에게 마음 집중을 수행하면

지혜의 정상에 올라 산 아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듯이

중생의 시간적, 공간적 윤회 과정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길수 있슴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하 가섭 존자는 마음 집중 수행을 하며 

중생의 업과 윤회의 과정을 아는 지혜를 열심히 원했습니다.

마하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열심히 마음 집중을 수행했다면 그와 같은 능력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하 가섭 존자가 내적 현상을 관찰하는 마음 집중에만 머물지 않고,

중생 제도를 위한 더 큰 신통과 지혜인 더 높은 경지를 향한 열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아라한일지라도 수행의 궁극은 아니며,

부처님과 같은 위없는 궁극의 지혜를 얻기 위한

더 높은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하는 것입니다.

<극락회상 티스토리에서 옮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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