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안에 “재산 빼앗길 수 있다” 불안 고조
‘이민은 이제 선택 아닌 필수’사회 의식 팽배

중국인 이민자 수,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


중국 부유층들 사이에서 ‘이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런 중국 부유층의 ‘탈중국’ 이민 러시는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제주도의 한 레저개발 회사를 찾아 투자 정보를 얻고 있는 중국인들.

사진=(주)라온레저개발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요즘, 미국행을 간절히 꿈꾸는 이들이 있다. 바로 중국의 부유층들이다. 2011년(회계연도 기준) 미국 투자이민 프로그램인 EB-5 비자 발급에서 중국인 비율은 75%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특히 2012회계연도(2011년 10월~2012년 9월)에 접수된 중국인 투자이민 신청은 현재까지 2969건으로 2년 전 787건에서 약 4배가 늘었다. 앞서 5년간 이 비율이 전체의 50%에 채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오름세다.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투자이민도 늘어나 캐나다 이민국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2011년 7월 ~ 2012년 6월) 투자이민 신청 700건 중 697건은 중국인 신청이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2월부터 제주도에 50만 달러 이상 투자해 휴양체류시설을 매입한 외국인과 가족에게 영주권(거주자격 취득 후 5년 이상 체류 시)을 주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이를 노리고 많은 중국 부유층들이 몰리고 있다. 벌써 서울 여의도 공원 면적(22만 9000㎡)의 6배가 넘는 땅이 중국 부유층들 손에 들어갔고, 영주권 취득도 기대하고 있다.

중국 부유층들 사이에서 ‘이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런 중국 부유층의 ‘탈중국’ 이민 러시는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왕리쥔 前 충칭시 공안국장의 망명 소동과 보시라이 前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태는 보 전 서기를 비호하는 태자당과 공청단 간의 권력투쟁 양상이 되면서 베이징 내 쿠데타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올 가을 시진핑 부주석이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받는 세대교체가 10년 만에 이뤄지는 만큼 현재 중공 내부의 권력 암투는 극에 달하고 있다.

공산당 독재체제에 불안감 고조

이에 공산당 내 치열한 권력투쟁을 목격한 중국의 부유층들이 불안한 국내 정세를 감안, 비상사태에 대비해 이민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로 투자 차원의 이민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8.1%를 기록해 지난 200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민 신청이 급증함에 따라 접수가 중단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이민 중개업체에는 캐나다 퀘벡주로 가겠다는 이민신청자가 무려 2만 3000명에 달했다. 해당 업체는 2700명만 받고 접수를 중단했다. 업체 관계자는 “투자이민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선호도가 높은 나라는 한도가 찬 상황이어서 더 이상 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하는 중국인도 늘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한 세인트키츠네비스(이하 세인트키츠) 등이 그 대상이다. 면적이 261㎢로 작은 섬나라인 세인트키츠에선 45만 달러(약 5억 원)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바로 시민권을 받는다. 자국 거주가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여권도 우편으로 발송된다.

해외 이민자 중 중국인 이민자 수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으며 증가폭은 전 세계에서 단연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투자이민 신청자 가운데 중국인의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국 상류층의 해외 이주 현상이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투자이민을 신청한 1885명 가운데 중국인이 772명이었다. 미국에 투자이민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위안(약 1585만 달러) 이상의 투자 가용자산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수치다.

앞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 역시 중국의 상류층이 해외 이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억 위안 이상의 자산가 중 27%가 투자 이민 신청을 마쳤으며, 47% 역시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무원 관료 천(陳) 씨는 “중국 부유층들 대부분이 이민을 원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내 돈이지만 언제 어떤 불합리한 방법으로 공산당에 모든 재산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극심한 양극화로 사회 전반에 번진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따른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1%의 부자가 부의 70%를 점령한 중국에서 부자에 대한 혐오감은 전례 없이 커졌다.

천 씨는 이어 “현재 중국에서 뇌물을 받지 않은 관료는 거의 없어, 추후 제재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이민을 가는 것”이라며, “뇌물수수 등 비리가 많을수록 반드시 이민을 선택하며 남아 있는 사람은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문제 전문가 허안취안(何岸泉)은 또 다른 현상으로 중국 고교생 대부분이 미국 고등학교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목적은 미국 학교에 가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미국 고교 시험에 응시하는 이유는 미국 대학에 들어간 후 기회가 되면 미국에 계속 남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valor09@epoch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