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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중의(神傳中醫); 손사막(孫思邈)의 전설
작가: 홍명
중의(中醫, 한의), 특히 중국 고대 중의의 정수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신기한 지식을 얻었는지는 더욱 모른다.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사람이 신과 함께 살았던 휘황한 역사를 투철히 말해주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신화와 전설이 되었다.
『열선전전(列仙全傳)』 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손사막(孫思邈)은 화원(華原)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과 지혜가 뛰어났으며 7세 때 하루에 천자를 외울 수 있었다. 당시 독고신(獨孤信)이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신동이다. 하지만 천부적 재질이 너무 뛰어나 이 속세에서 할 일이 있을까 두렵구나.” 라고 했다.
손사막은 성장한 후 도가 노자(老子)의 책을 읽는 것을 즐겼다. 주선제(周宣帝) 때 혼란한 시기를 맞아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해 도를 배우고 연기양신(煉氣養神)하여 천문을 추리하고, 의약에 정통했으며 남몰래 적지 않은 좋은 일을 했다.
한번은 ‘작은 뱀’ 한 마리가 목동에게 상해를 입어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벗어 뱀을 구하고 상처에 약을 바른 후 풀 섶에 놓아주었다.
십여 일이 지난 후 문을 나서는데 흰 옷을 입은 영준한 소년이 말을 타고 지나고 있었다. 그 소년은 말에서 뛰어내려 손사막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제 동생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손사막은 깜짝 놀라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소년은 정성껏 손사막을 집으로 모셨다. 가는 도중에 그는 손사막에게 말을 타게 하고 자신은 말을 끌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리다시피 했다. 눈을 돌려보니 한 성곽에 도착했는데 속에는 꽃과 나무가 만발했고 집은 금과 옥으로 휘황찬란하여 왕가의 위엄이 있었다.
소년은 손사막을 안으로 청했고, 안에는 홍의(紅衣)를 입고 작은 두건을 쓴 사람이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영접했다.
그는 손사막에게 세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에 특별히 제 자식을 보내 청했습니다.” 그는 머리를 돌려 푸른 옷을 입은 남자 아이를 가리키면서 “요 며칠 전 저 아이가 혼자 집을 나갔다 목동한테 상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가 옷을 벗어 구해 주어 오늘이 있게 되었소.” 그러면서 청의 소년더러 그에게 절을 하게 했다.
그제서야 손사막은 며칠 전 옷을 벗어 뱀을 구한 일을 상기했다. 그는 남몰래 옆에 있던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은 “여기는 경양(?陽)의 수부(水府-역주: 용왕이 사는 곳)입니다”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가 구한 뱀은 보통 뱀이 아니라 용왕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홍의를 입은 용왕은 연회를 열어 손사막을 정성껏 대접했다. 삼일이 지나 용왕은 그에게 많은 진주, 보석을 주었으나 손사막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용왕은 그리하여 아들에게 명해 기묘한 처방 30개를 손사막에게 주었다. 헤어질 때 손사막에게 말하기를 “이 처방은 사람을 널리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용왕은 곧 인마를 준비하여 손사막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손사막이 이 약 처방을 사용해본 후 그것이 확실히 영험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약방문을 『천금방(千金方)』에 써 넣어 하나의 기서(奇?)가 되게 했다. 알고 보면 이 처방은 원래 선인(仙人)에게서 온 것이 때문에 영험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수문제(隋文帝)가 손사막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불러 관리로 임명하려 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그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몰래 말한 적이 있다. “50년이 지나면 성인이 나올 것인데 나는 그 때가 되면 성인을 도와 백성을 구제할 것이다.”
나중에 당태종(唐太宗)이 부르자 그는 경성에 갔다. 당태종은 그의 젊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내가 듣기에 도인은 모두 존경할 만하다고 하더니 원래 수도한다는 말이 정말입니다.”
영휘(永徽) 3년 손사막은 이미 일백여 세가 되었다. 어느 날 목욕 후 의관을 잘 정비한 후 손자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이곳을 떠나 어디에도 없는 고향으로 가야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는데 시신은 일 개월이 넘도록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관속에 넣고 장례를 치를 때 관속에는 단지 의복만 남아있었다.
당 현종이 난을 만나 촉(蜀) 지방에 피난 갔을 때 하루는 꿈에서 손사막이 웅황(雄黃)을 구하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 명해 열 근의 웅황을 아미산 꼭대기로 보내게 했다.
황제의 사신이 산을 절반 정도 올라갔을 때 한 사람을 만났다. 백발의 머리에 두건을 쓰고 무명옷을 입었는데 뒤에는 두 명의 청의동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큰 바위를 가리키며 “자네 그 약을 거기 놓게, 그 바위에는 황상께 감사하는 글이 씌어 있네.” 사신이 가 보니 과연 바위 위에 백여 개의 글자가 있었다. 사신은 그 글을 베껴 썼는데 그가 베끼면 바위 위의 글자는 그가 베끼는 것에 따라 한 글자씩 사라졌다. 다 베껴 쓰자 바위의 글은 모두 사라졌다.
눈을 돌려보니 한 가닥 흰 기운이 올라갔는데 약을 가져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중의는 중국의 오랜 수련에서 온 것이다. 중국 고대의 수련인은 자신의 수련을 통해 인류에게 휘황한 문화를 남겨놓았다. 수련을 떠나서는 영원히 중국 고대의 과학과 역사를 이해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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