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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살풍경
좀 더 나아가면 “광기가 어린 살풍경은 귀신이라도 잡을 듯했다”(이기영의 ‘고향’)는 표현도 나온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당(唐)대의 유미파(唯美派) 시인 이상은이 본격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그는 '잡찬(雜纂'이라는 책에서 여섯 가지의 살풍경을 들었다. 흐르는 맑은 물에 발 씻기, 화사한 꽃 위에 바지 올려놓고 말리기, 가파른 산에 집 짓기가 앞의 세 개다.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는다는 고인의 가르침을 어긴 행위, 꽃의 가치를 모르고 빨래만을 생각하는 속됨, 가파른 산 앞에 놓인 집의 답답함을 꼬집은 것이다. 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기, 꽃 앞에서 차 마시기, 고요한 숲에서 “길 비켜”라고 외치기. 뒤의 세 개다. 꽃을 두고는 예부터 술이었지, 차를 마신다는 건 이상했던 모양이다. 숲속의 고요를 깨뜨리는 월권(越權)도 못마땅하다. 정작 주목하고 싶은 것은 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기(焚琴煮鶴)다. 자고로 거문고와 학은 문인의 상징이다. 문사들에게 이는 생활의 일부이자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의탁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거문고와 학에 관한 고사와 성어는 퍽 많다. 이 말은 간혹 문사의 정신이 현세의 답답한 상황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선비 스스로 취하는 극단의 행위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문사들의 정신과 지혜가 속절없이 망가뜨려지는 세태를 풍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최고 지성의 한 축을 이루는 대학 총장들이 망신을 당했다. 각 대학 총장 152명이 대통령 앞에 불려가 일장의 훈시를 받은 26일의 청와대 영빈관 모습이다. 명목은 토론이라지만 마이크 잡은 대통령 앞에서 총장들은 그저 훈계와 경고만 들었단다. 늘 기득권과 소외집단으로 사회를 가르는 대통령에 의해 이들 총장은 졸지에 ‘완장 찬 사람’이자 어중간한 ‘가진 사람’으로 분류됐다. 제대로 반박하기도 어려웠다고 하니 어쨌든 앉아서 당한 셈이다. ‘선출된 권력’에 거침없이 훼손되는 지성의 상황이 거문고와 학이 불에 타는 살풍경의 모습이다. 청와대의 살풍경. 어제오늘의 세태는 아니지만 이번은 꽤 씁쓸하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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