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스웨덴 사람의 삶은 꼭 여름을 향해 사는 ‘해바라기 인생’ 같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에서 햇빛의 의미는 정말 특별하다. 지구 북반부의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스웨덴 북부지방에 가면 여름에는 백야가 있고 겨울에는 밤이 계속되는 지역이 많다.
이제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밤 11시가 되어야 어두워지고, 새벽 2시반이면 여명이 밝아온다. 잠이 많은 사람도 스웨덴의 여름에는 뜬눈으로 새우기가 십상이다.
백야를 즐기기 위해 ‘북구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스톡홀름에 몰려드는 행렬도 슬슬 늘어날 것이다. 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지에서 밴을 몰고 오는 사람들이다.
여름철 스톡홀름의 거리에는 필요한 부분만 살짝 가린 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흔하다. 한적한 해변에는 토플리스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곤 한다. 한 번 탑승하는 데 20만원 정도 드는 애드벌룬이 스톡홀름의 파란 하늘을 뒤덮는다. 모두 따갑게 내리쬐는 북구의 햇볕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렇게 관광객에게 점령당한 매력적인 이 도시는 겨울이 되면 싹 달라진다. 아침 9시경이 되어야 여명이 밝아오고, 오후 2시가 되면 벌써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무리 잠이 없는 사람이라도 스웨덴의 겨울엔 오후 3시만 되면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고 무겁고 낮게 뒤덮인 검은 구름 때문에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어둡고 추운 날씨가 많아 사람들은 실내 활동을 많이 한다. 빛을 즐기기 위해 집집마다 촛대를 창가나 집안 구석구석에 놓는다.
그 유명한 오레포슈와 코스타부다라는 크리스털 브랜드의 촛대가 유명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IKEA)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조립가구 위주의 중저가 전략을 내세운 데다 가족과 어두운 겨울에 함께 쇼핑하며 보낼 수 있는 가족놀이 공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어두운 겨울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려한 판매전략이, 스웨덴 국민의 가족적 문화와 맞아떨어졌던가 보다.
800년이나 된 고풍스런 도시 스톡홀름의 여름과 겨울의 이미지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스웨덴이 스포츠 강국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낮의 길이와 햇빛의 역할에 있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밤 늦게까지 축구클럽에서 시합을 즐긴다. 스톡홀름에서 4시간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밤새워 골프를 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스웨덴이 축구와 골프에서 강한 이유도 바로 낮의 길이 때문이다. 여성 골프 랭킹 1위인 아니카 소렌스탐도 매일 밤 10시30분까지 연습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여름철에 해가 길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눈이 많은 겨울철이 되면 낮 길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크로스컨트리(걷듯이 타는 스키의 일종)가 인기다. 집에서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오후엔 지방자치시설인 실내·외 링크에서 아이들이 아이스하키를 즐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아이스하키 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도 역시 햇빛을 잘 활용한 결과다.

스웨덴에서 햇빛이 갖는 의미가 이렇게 크다 보니 하지 때엔 전국적인 대축제가 벌어진다. 하지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절기이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에는 ‘마이스통’이라는 긴 장대를 세우는 의식이 있다. 1000년 전 바이킹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속의식인데 남성 성기를 의미하는 장대를 세워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 아들, 연인을 기리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해가 긴 5월과 6월엔 남성의 기(氣)가 가장 센 절기라 이때 아이를 갖는 커플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이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이듬해 3월, 스웨덴에선 신생아 출산율이 높은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때는 12월과 1월이라는 사실이다. 해가 없는 추운 겨울, 커플이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침대일 것이다. 스웨덴에서 2월과 3월은 가장 지루한 달이라고 한다. 6개월간 겨울이 계속되기 때문에 겨울의 끝자락인 마지막 한두 달이 가장 힘들다. 그때가 바로 2월과 3월이다.
이런 겨울을 보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햇빛이 쏟아지는 태국이나 스페인 등지로 여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태국과 스페인에 가 보면 스웨덴을 비롯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 사람이 많아서 현지에서 북구어를 써도 불편함이 없다고 할 정도다. 스웨덴은 1인당 해외 여행 일수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고도 알려져 있다.
이렇게 햇빛은 한 나라의 산업구조, 성생활, 취미, 스포츠 활동 등에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웰빙산업은 먹는 것보다 태양과 관계된 산업이랄 수 있다.
여름에 햇빛을 많이 쪼인 사람일수록 겨울의 우울증을 쉽게 이긴다고 한다. 여름이 춥고 비가 많이 온 해에는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요즘 이곳 병원에선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인조태양’을 만들어 환자들이 쪼일 수 있도록 한다. 자명종처럼 알람을 맞춘 시각이 되면 환하게 빛을 발해 스웨덴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또한 우울증 치료를 위해 햇빛이 많은 동남아시아, 스페인 등으로 떠날 수 있도록 보험회사가 치료비를 전액 지불하기도 한다. 이것도 햇빛과 관계된 스웨덴만의 현상이다.
햇빛은 민족성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은 왜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남과 잘 사귀지 못하는가’에 대해 연구한 한 학자는 그 이유를 스웨덴의 긴 겨울과 적은 일조량에서 찾았다. 햇빛이 적은 것이 사람을 폐쇄적이고 내면적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논리다.
올해는 5월이 되면서 스톡홀름에 유난히도 햇빛이 많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가벼운 옷차림의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수놓고 있다. 햇빛만 비치면 어린이에서부터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의 얼굴에까지 웃음과 미소가 흐른다. 그 모습이 해바라기들 같다. 20년 넘게 스웨덴에서 산 필자도 올해 여름을 또 어떻게 알차게 보내며 햇빛을 만끽할지 벌써부터 여름계획을 짜느라 즐거울 뿐이다. ▒
/ 최 연 혁 | 한국외국어대 스웨덴어과 졸업·스톡홀름대학 정치학 석사, 요테보리대학 정치학 박사, 현재 남스톡홀름대학 정치학 교수.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란 3개월 사랑하고 3년을 싸우고 30년을 참고 견디는 것 (1) | 2007.06.19 |
---|---|
“‘고래 사이의 새우’같은 한국, (0) | 2007.06.19 |
[세계의 민주독재자] 차베스, 푸틴, 아흐마디네자드 (0) | 2007.06.19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특별기고- 일류국가,일등국가 (0) | 2007.06.19 |
인생을 어떻게살지 노래가사로 느껴보면 (0) | 2007.06.12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