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푸틴, 아흐마디네자드


베네수엘라 제2 국영방송 비베(VIVE)는 매주 일요일이면 정신이 없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오전 11시부터 ‘알로 프레시덴테(안녕하세요 대통령)’라는 1인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끝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매주 한 번 평균 6시간에 걸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자신의 국정 운영방향과 구체적인 정책을 설명하고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차베스 대통령은 장관을 불러 양팔을 휘저으면서 호통도 치고, 시청자와 공무원을 연결해 민원도 해소한다.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그는 지난해에는 무려 8시간을 방송해 방청객들이 오히려 진이 빠지기도 했다.

병상에 있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전화를 통해 대담을 하기도 하는 그가 가장 자주 비판하는 인물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전 세계 국가 중 이처럼 ‘언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국가 최고지도자는 차베스 대통령밖에 없을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마디로 자신의 ‘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방송하는 이유는 과거의 뼈아픈 경험에서 비롯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2년 보수세력의 쿠데타 기도로 정권에서 물러날 위기에 몰렸을 때, ‘라디오 카라카스 텔레비전(RCTV)’ 등 주요 방송이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방영하며 당시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들 방송이 쿠데타 세력을 간접 지원해왔고, 이후에도 자신을 비판하는 뉴스와 프로그램만을 방송해왔다고 보고 있다.

1992년 쿠데타를 기도하다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던 차베스 대통령은 무엇보다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정권을 유지하는 가장 필수적인 방법이라고 인식해왔다. 이후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호시탐탐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오다,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가 불발이 되자 아예 스스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의 쇼 프로그램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정부를 가장 많이 비판해온 RCTV를 손보기로 작심했다. 지난해 6월 RCTV의 방송 허가 연장을 승인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던 그는 같은 해 12월 실제로 연장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RCTV는 5월 27일로 폐쇄됐다. 베네수엘라에서 오래된 방송사인 RCTV는 지난 2월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차베스 대통령의 눈치를 살펴왔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도는 60%가 넘지만, RCTV 폐쇄 결정에 대해선 70%가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요즘 수도 카라카스에선 연일 차베스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수만 명의 국민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언론인도 베네수엘라 국기를 들고 언론 자유를 외쳤다. ‘국경 없는 기자회’ 등을 비롯한 국제 언론단체도 차베스 대통령이 비판을 틀어막고 자기 입맛에 맞는 언론만을 육성하려 한다면서 폐쇄조치를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연말까지 자신의 지지기반인 인디언 원주민을 위한 방송국 8개를 설립할 계획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4개 국영 TV 방송과 1개의 국영 라디오 방송 및 국영 통신사가 있다. 영세한 지역 언론은 대부분 정부의 광고를 수주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비판 기사를 보도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3선 연임에 성공한 차베스 대통령은 의회의 만장일치 결정으로 앞으로 1년 반 동안 경제·군사·안보·석유·교통 등 11개 분야 법을 포고령만으로 고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유하게 된 그는 앞으로도 언론통제의 고삐를 더욱 죌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국영 TV는 수만 명이 참여한 거리 시위를 보도하는 대신 5~10명의 시위대가 텅 빈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을 편파적으로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언론법에 따르면 정부는 방송사의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고 대신 발표문을 방송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해 182번이나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또 기자가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를 쓸 경우 6~30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오보를 써서 ‘공공의 평화’를 방해했을 경우 2~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언론탄압은 새로운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틈만 나면 민주주의의 신봉자임을 자임하고 있으나, 자신을 반대하는 언론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등 과거 독재자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당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차베스 대통령이 언론의 비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국제언론단체들은 차베스 같은 유형의 지도자를 ‘민주독재자’라는 새로운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차베스 대통령이 방송 허가권을 이용해 RCTV를 폐쇄한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올해 베네수엘라에서는 10여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일부 TV 방송사가 면허를 갱신해야 한하는데, 당연히 이들이 차베스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차베스 대통령과 함께 또 다른 대표적 민주독재자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거론된다. 러시아에선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2000년 이후 기자 13명이 살해됐지만 범인은 한 명도 잡히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10월 발생한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 기자 살해 사건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살되기 직전까지 체첸공화국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고문과 인권유린 행위를 폭로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러시아 언론은 그녀가 청부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2003년 7월, 그녀의 동료기자인 유리 슈체코치힌도 러시아 연방보안부(FSB)가 연관된 탈세 의혹을 취재하던 중 피살됐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여기자 살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할 것을 러시아 정부와 푸틴 대통령에게 요구해왔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러시아에서 희생된 기자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기는 힘들지만,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이 계속 살해되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언론통제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언론탄압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공포심을 유발시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수법이다.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언론탄압은 비판적인 언론사를 아예 통째로 사버리는 것이다.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 가스프롬 계열사인 가스프롬미디어는 지난해 11월 최대 신문인 프라우다를 인수했다. ‘진리’라는 뜻의 프라우다는 1912년 창간된 러시아 최대 신문으로 1991년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공산당 기관지로서 서방에 소련의 입장을 알리는 공식 창구 역할을 했다. 지금도 발행 부수 80만부를 자랑하며 러시아 최대 일간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스프롬은 사실상 크렘린궁이 경영하는 회사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볼 때 형식상 가스프롬의 자회사인 가스프롬미디어가 프라우다까지 집어삼킨 것은 크렘린궁의 언론 통제정책의 일환이다. 크렘린궁이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가스프롬미디어는 2001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보도해온 러시아 민영 방송사인 NTV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또 2005년 옛 소련 정부기관지였던 이즈베스티야를 매입했다. 소련 붕괴 이후 정론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이즈베스티야는 그동안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왔다. 가스프롬미디어는 이즈베스티야를 매입한 이후 연예·오락 신문으로 바꾸었다. 가스프롬의 또 다른 계열사 가스프롬인베스트홀딩은 지난해 9월 경제일간지로 유명한 코메르산트를 매입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민영언론으로 불리던 코메르산트도 역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이처럼 주요 일간지가 사실상 정부 손에 넘어간 이후 비판기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다음날로 편집국장과 해당 기자의 목이 잘린다. 때문에 러시아 언론인 사이에는 ‘정부를 비판하면 실직한다’라는 자조적 농담이 나돌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TV는 모두 정부와 공기업이 과반수의 자본을 쥐고 있고, 사실상의 정부 매체로 변신했다. 이러다 보니 크렘린궁의 언론통제가 공산독재 시절을 방불케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회원 수가 10만명인 기자조합의 사무실을 빼앗아 국영 영어 케이블 뉴스채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모스크바 소재 시민단체인 ‘극한 상황에 놓인 저널리즘 센터’의 분석가 미하일 멜니코프는 “비판의 영역이 날로 줄어 독자나 시청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천편일률적인 친정부 언론보도에 신문 구독률과 TV 시청률이 낮아지고 러시아 국민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나 러시아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란이나 짐바브웨는 아예 비판언론을 없애버리고 있다.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개혁파 신문인 샤르크(Sharq)는 지난해 9월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풍자한 만평을 실었다가 폐간됐다. 이 만평은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체스 판 위의 흰말을 상대하는 검은 당나귀로 비유한 뒤 당나귀 얼굴 주위를 하얗게 칠해 신성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촌스럽고 무지한 속내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2005년 보수 강경파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 이후 폐간된 이란 신문과 간행물은 수백 개에 이른다. 신문사의 폐간은 문화부의 직권 사항이다. 기자를 구속했다가 외부 비판이 거세지기 전에 재빨리 석방하는 ‘회전문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이란은 지금까지 수십여 명의 기자를 이런 수법을 통해 길들였다. 기자에게 ‘언제든 다시 체포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켜 자기검열을 강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란 언론법에 따르면 기자가 국가에 반대되는 ‘선전 행위’를 했을 경우 6개월~1년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에는 선전행위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또 기자가 기사를 통해 종교를 모욕했을 경우 최고 사형에서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오보를 내거나 공무원을 비판했을 경우 태형 74대와 함께 최대 2년형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이란 기자는 비판기사를 쓰려면 투옥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또 인터넷 웹사이트에 대한 대대적 검열과 폐쇄 조치도 단행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최근 인터넷서비스업체에 인터넷 속도를 초당 128킬로바이트로 제한하라고 명령했다. 이 조치로 500 명으로 추산되는 이란 인터넷 사용자는 외국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다운로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 조치를 외국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이슬람 문화가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교묘한 언론탄압 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의 개혁파 일간지 ‘에테마드’는 “정부는 서양 문화의 침입을 봉쇄하겠다는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란 정부를 비판하려는 외국 언론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란 정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해온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최첨단 필터링 장비를 이용해 인터넷 웹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검열하고 있다. 이란의 모든 TV 방송은 전부 정부 소유로 공식적인 정치 및 종교의 관점에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는 위성방송을 통해 외국 TV를 몰래 시청해왔다. 이란 정부는 최근 비밀리에 외국 위성방송을 설치했던 위성안테나를 단속해 수천 개에 달하는 위성안테나를 압수했다. 이란의 언론 통제는 무엇보다 신정(神政)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미국과 핵 문제로 맞서고 있는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으로선 국내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울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개혁파 언론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


국가별 언론 자유

언론 자유, 북한 195개국 중 꼴찌… 한국은 66위

언론탄압은 체제나 정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독재 또는 권위주의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은 합법적이건 비합법적이건 구별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언론통제에 나서고 있다. 최근 정권 유지 위기에 빠진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무가베 대통령은 국내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며, 모든 언론인과 매체는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정보위원회의 허가를 얻어야 활동할 수 있도록 언론법을 만들어 놨다. 허가 없이 활동하는 언론인은 무조건 징역 2년형에 처하도록 하는 등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하고 있으며, 정부를 비판할 경우엔 신체에 대한 위협은 물론 체포, 구금되고 재산까지 몰수된다.



전 세계에는 이들 국가보다 더 나쁜 언론탄압 국가도 많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5월 3일)을 맞아 국제언론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07년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195개국 중 최악의 언론 부자유 국가는 북한(195위)이고, 다음인 공동 191위로는 미얀마, 쿠바, 리비아, 투르크메니스탄이 꼽혔다. 베네수엘라(163위), 러시아(165위), 이란(182위), 짐바브웨(186위)는 이들 국가보다 언론 자유가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대만(33위)과 일본(39위)이 우리나라(66위)보다 언론 자유가 더 많다는 것이다. ‘언론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이용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 이들 국가의 언론통제 실태를 보면서 새삼 생각난다.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