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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민중들의 항의시위가 격화되자 중공 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리틀 후진타오’라 불리는 내몽골 당서기 후춘화는 직접 학교를 찾아가 간담회를 가지는 등 시위 저지에 나섰다.(인터넷 사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몽골 민중들의 항쟁이 1주일 넘어 계속되고 있다. 주말인 지난 5월 29일에는 무장경찰이 내몽골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시내 광장을 봉쇄하며 분위기가 긴장되었고 각급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현지 네티즌들의 증언에 따르면 광장 곳곳에 실탄을 장착한 많은 무장경찰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고 시내 중심가인 신화광장에는 장갑차까지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무장경찰이 오가는 행인들을 감시하고 있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시켰다. 언론에서는 평소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던 후춘화(胡春華)당 서기가 긴급히 시우치(西烏旗)로 달려가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핑궈일보(蘋果日報)’는 현지 시민들의 핸드폰에 끊임없이 공안국의 경고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용은 “일부 딴마음을 품은 자들이 ‘시멍(錫盟)’사건을 구실로 불법집회를 선동하고 있다”면서 시민들은 “가급적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티즌에 따르면 후허하호터시에서는 무선인터넷이 제한되고 있고 심지어 인터넷 접속도 차단되었다. 통신사에서는 이를 ‘반테러훈련’으로 선전하며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시우치의 몽골족 유목민 모리건(莫日根)이 채광에 반대하다 석탄운송차량에 치어 사망한 후 촉발된 몽골족의 항의시위는 시우치(西烏旗)로부터 네이멍구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23일 시우치에서 수십 명의 유목민들이 현지 정부청사를 찾아가 시위를 벌였으며, 24일에는 시우치 정부청사 앞에서 천 명이 넘는 몽골 민중들이 항의집회를 갖고 정부 측에 모리건에 대한 추도식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25일에는 시린하오터(錫林浩特)시 3곳의 학생 2000여 명이 봉쇄를 뚫고 시청 앞에 찾아가 지지시위를 가졌다. 26일에는 시린궈뤄(錫林郭勒) 양황기(鑲黃旗)에서 300여 명의 사람들이 정부 청사를 찾아가 항의를 했으며 27일에는 시린궈러 정람기(正藍旗)에서 수백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5월 29일 후허하오터시내 대학들에는 휴교령을 내렸다. 네이멍대학(內蒙大學)의 한 네티즌에 따르면 시험을 치는 도중 “시험이 끝난 후 곧장 기숙사로 돌아가라”는 발표를 들었다고 한다. 또 교내 곳곳에 사복경찰이 포진해 있으며 기숙사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고 학생들이 교문을 출입할 때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네이멍구 고등민족전문과학학교(內蒙高等民族專科學校)에서는 무장경찰이 교내에 진주해 있으며 학생들은 다만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중공을 찬양하는 비디오만 시청할 수 있다고 한다.
리틀 후진타오 후춘화 긴급 학교방문
갑작스런 몽골 민중들의 항의에 직면해 중공 당국은 몹시 당황하는 모습이다. 네이멍구일보(內蒙古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당서기 후춘화가 27일 시린궈러(錫林郭勒)의 한 고급 중학교를 찾아가 교사 및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보도에 따르면 후춘화는 “교사와 학생 여러분들은 안심하기 바란다. 범죄혐의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률절차에 따라 신속하고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며 법률의 존엄과 피해자 및 가족들의 권리를 단호히 수호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핑궈일보’는 중공 당국이 몽골인들의 의심과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당국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실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후춘화를 수반해 현지를 방문한 내몽골정치협상주석 런야핑(任亞平), 몽골족지역 주석 바터얼(巴特爾)의 역할에 대해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도에서는 내몽골 정세가 근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되자 현지 당정군(黨政軍)의 1인자이자 평소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던 후춘화(胡春華)의 앞길에 큰 시련이 닥쳤다고 했다. 만약 그가 효과적으로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중공 제6대 지도자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정국이 악화될 경우 후진타오조차 그를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47세의 후춘화 서기는 베이징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자원해서 티베트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1989년 라싸에서 티베트 민중항쟁이 발생했을 당시 티베트 당서기로 있던 후진타오가 그를 연락원으로 임명했다. 후진타오가 권력을 잡은 후 후춘화의 벼슬길은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웠고, 2008년 허베이성(河北省) 성장에 임명돼 중국 정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하지만 독분유 사건이란 암초를 만나 잠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번에 또 내몽골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설혹 과거 라싸에서 후진타오가 했던 것처럼 후춘화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그가 중앙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 셈이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최근 내몽골 시린궈뤄 멍롄(盟連)에서 현지 주민이 두 차례에 걸쳐 잇달아 사망한 사건이 광산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주민들의 심한 불만을 초래했다. 5월 10일 시우치(西烏旗)의 몽골 유목민 모르건이 초원을 멋대로 운행하는 석탄 운송차량을 저지하려다 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5일에는 시린궈러 멍아바가치(盟阿巴嘎旗)의 마니투(瑪尼圖)광산에서 탄광주가 사람을 동원해 항의하던 현지 민중을 폭력적으로 구타해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다.
이에 폭발한 내몽골 민중들이 수일간 당국의 몽골인 차별과 초원에 대한 대규모 파괴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항의시위를 벌이며 줄곧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해 온 당국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차별이 있는 한 항의는 계속될 것
미국에 본부를 둔 남몽골인권정보센터(南蒙人權信息中心)의 한 책임자는 몽골인들이 30일 자치구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할 예정이며 당국에서 긴급계엄을 선포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또 당국이 신장 위구르족을 압제한 방법으로 몽골족을 압제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압제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몽골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초원에 대한 약탈을 중단하지 않으면 몽골족의 항의도 중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센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시린궈러와 퉁랴오(通遼) 등의 형세는 아주 긴장된 상태이며 시우치로 통하는 길목마다 군경이 경비를 서면서 외부 학생과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한편 홍콩에 본부를 둔 중국인권민운정보센터(中國人權民運信息中心)에서는 내지(內地) 도시의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신장에 파견되었던 여러 무장경찰부대들이 이미 명령을 받고 내지로 동원되었다고 한다.
중공당국의 초원에 대한 약탈과 파괴
로이터는 이번 내몽골 사건이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내몽골의 면적은 중국 전체면적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데 최근 들어 석탄채굴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초원이 심하게 파괴되었다. 현지 유목민들은 초원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정부와 교섭을 가졌으나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일찍이 시우치(西烏旗) 농촌생산대에서 일하다 다시 시우치로 돌아간 작가 라오구이(老鬼)가 블로그에 발표한 문장에 따르면 현지에 있던 많은 작은 탄광들이 큰 탄광으로 변했으며 초원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내몽골은 2010년 14.9%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중국에서 네 번째로 1인당 GDP 만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유목민들에게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초원의 생태환경은 아주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일부 지방정부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심지어 사사로이 자원채굴 허가를 남발해 수질과 대기 모두 심하게 오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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