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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정이 흐르는 흙이요, 물이요, 산이요, 들이요, 개울이요, 집들이요, 마을들이요 농토들이요, 정이 출렁거리는 바다에 싸인 섬이더라...’ 남도 특유의 넉넉한 인정과 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보물섬, 진도우리나라 최남단 해남 땅끝에서도 더 남쪽 끄트머리의 작은 땅 진도는 기름진 들과 바다 때문에 옥주(沃州)라고 불리며 남도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미 풍류에서는 감히 대적할 곳도없으니, 시, 서, 화, 창의 찬란한 문화 예술을 꽃 피어온 ‘예술의 본고장'. 진도처럼 자랑 거리가많은 땅도 드물다. 옛날 진도에는 낯선 남자가 들어오면 아낙네들이 길을 막고 노래 한가락을 시켜만족스러우면 길을 터 주었다고 한다. 만약 잘 부르지 못하면 빈정대거나 놀렸다는 풍습이 있었을정도로 노래 한가락 못하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했다고 하더라.어디 소리 뿐이랴? 예로부터 유배지로 쓰인 진도 땅에 귀양을 왔던 이는 거의가 풍류깨나 읾음직한양반들로 그들은 지난날 누렸던 부귀영화를 잊으려 노래나 글로 자신의 처지를 담아 그리며 ‘귀하신’ 그들의 시름을 이곳의 고유한 노랫가락과 춤사위로 달래주었을 것이리라. |
흰 갈기 휘날리는 물살에서 쏟아 나오는 용맹함이 어디 이 뿐이랴?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 위에 수채화 그림처럼 펼쳐진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진도. 진도여행의 시작은 바로 진도 대교에서부터다. 기자처럼 건망증이 심한 관광객들은 진도대교가 생긴 후부터 해안도로를 달리지 않아서인지 섬이란 사실을 깜빡 잊곤 한다. 허긴 향긋한 바다 냄새가 전혀맡아지지 않으니 그것도 그럴 만도 하겠다. 진도 대교를 한 눈에 보고자 전망대에 올랐다. 대략 300m 내외의 폭을 가진 바다, 그 깊고 푸른 남해 바닷물이 대교를 가로질러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해남군 끝과 진도군의 끝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마치 한걸음에 건너 뛸 수 있을 것만 같은)가 바로 '울돌목' 인데 한자 이름으로 명량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량 대첩의 현장인 이 곳은 조수가 들고 날 때마다좁은 이 해협으로 바닷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드는데 이는 젊은이가 소리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까지 인다고 한다. 특히나 조류에 한번 휩쓸리면 대형 기선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물살이거칠고 사납다고.이순신 장군의 용맹의 진원지, 울돌목에 세워진 '진도 대교' 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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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는 굽이굽이 힘차게 여울졌던 전쟁 유적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고려시대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이 유난히 많다. 세방리를 빠져 다시 남쪽으로 돌아나가다 만나는 임회면 남도리에는 바다를 마주한 남도석성도 그 중에 하나. 진도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 할때에 먼저 가리킴직한 곳이 불멸의 충혼이 서려있는 남도석성이다. 이 성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최후를 마친 곳이다.섬이 가로막은 터라 바다 쪽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지만, 높이 185m의 남산을 낀 마을에서는 산을 오르면 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기 때문에 이 마을을 남해안의 군사 요새로 썼던 듯하고 그런 이유에서 남도 석성도 쌓았음직하다. 크기가 비슷한 돌을 차곡 차곡 쌓아놓은 남도석성은 보기에도 짜임새가 뛰어난 성임을 알 수가 있다. 담쟁이 덩굴이 실타래처럼 뒤얽혀있는 이 성은 돌로 쌓아졌지만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이 아주 잘되어 있는 것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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