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아부의 명구가 있다. 제1공화국 시절,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어떤 장관이 이렇게 알랑거렸다는 것인데,이 말은 한국현대사에 길이 남을 아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가 하면 능력이고 처세술이지만 네가 하면 비열하다고 지탄받는 아부. 하지만 삶이 곧 아부이며 아부가 곧 삶이라는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도 즐비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은 ‘서양산’ 아부에 대한 모든 것을 시대적 저인망으로 훑어간다.
옥스퍼드 사전에는 시대별로 통용되었던 아부(flattery)의 뜻이 10개나 적혀있다. 고대 그리스인은 아부에 대해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정의했다. 중세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잠재적으로 사회를 동요시키는 요소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사회가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아부에 담겨 있는 경멸적인 뉘앙스의 농도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부는 죄악이 아닌,세상 어디서나 존재하는 애교 섞은 결점 정도로 인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부’라는 단어에 대한 조롱의 강도는 비로소 약해졌다. 옥스퍼드 사전의 마지막 열번째 항목은 “실수를 그럴 듯하게 얼버무려주고 완화시켜주는 것”,나아가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로까지 설명하고 있다.
아부가 먹혀드는 이유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아부는 세로토닌(포유동물의 혈액속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요약된다. 아부는 매우 기분좋은 생화학 반응을 뇌에 일으키게 하는데,침팬지나 인간이나 동일한 반응을 일으킨다. 힘이 약한 침팬지로부터 등을 긁어주는 아부를 받은 우두머리 침팬지의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하듯 아첨꾼이 허리를 굽히고 “각하,시원하겠습니다”고 속삭일 때 대통령의 세로토닌은 요동친다. 저자는 아부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종의 현실 조작이자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행하는 의도적인 거래다.”
아부와 권력은 늘 밀월 관계였다. 조금도 불평없이 클린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8년간 2인자의 자리를 지킨 앨 고어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점지될 수 있었다. 아부만큼 뛰어난 최음제가 없다고 믿은 헨리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에게 살살 녹는 아부를 바쳤다. 카터 행정부에서 교육복지장관을 지낸 조세프 캘리파노는 다른 관료보다 훨씬 많이 ‘대통령 각하’라는 말을 문장속에 삽입하는 능력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어느 시대든 백악관에는 아부의 드림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보면 청와대에도 아부 드림팀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워싱턴에는 지금도 의무적인 아부가 만연되어 있다. 매년 연두교서 발표장에서 벌어지는 긴 기립박수는 시간이 갈수록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아부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뿌리에 영양분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자잘한 아부는 조직이나 사회를 하나로 묶는 요소가 된다. 아부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상적인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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