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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남아의 한족 “아버지”
——— 숙총림씨가 조선족류량아를 10년간 키워준 이야기
2007/10/01 흑룡강신문
병이 위중한 한 조선족 소년(곽문학)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생존능력을 잃고있을때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한 漢족 ”아버지”가 뜨거운 손길을 뻗어 그에게 수만원(위안)의 돈을 써가며 병을고쳐주면서 10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이 남아를 키워냈다
엄마찾아 떠난 소년 류랑아로
46세의 그의 어머니 리명순(李明顺)씨는 흑룡강성 림구현 주가진 모촌의 농민이다 . 1989년 아들 곽문학(郭文学)이 3살때 리혼하고 남편은 타향으로 그림자를 감췄다. 리씨는 몸에 남아있는 돈 200원과 함께 어린 아들을 시형의 가족에 맡기고 생계유지로 심양을 향해 떠났다. 1998년, 13살의 곽문학은 엄마를 그리다 못견디어 남몰래 집을 떠나 심양으로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심양에 도착한 곽문학은 주위사람들의 관심속에서 그의어머니가 일한다던 상점의 주소로 찾아갔으나 어머니는 일찍이 다른곳으로 떠나가고없었다. 막무가내로 그는 날마다 길거리를 헤매게 되었다. 어느 하루, 맘씨고운 한 택시운전수가 길거리에서 로숙하는 문학이를 눈여겨봤는지 그를 태워 심양방송국으로 찾아가 방송을 통해 그의 어머니를 찾게 했다. 사람찾기 방송이 며칠이나 잘 나갔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심양수용송환소(收容遣送站) 에서는 곽문학을 목단강으로 추방했다. 목단강으로 돌아온 문학이는 죽어도 촌에있는 큰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쓰면서 시내에서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나중엔 교구의 철령진에 가서 낮에는 시장부근에서 다른사람들을 도와 일을 해주며 끼니를 떼우고 날이 어두워지면 공사장의 담벽밑에서 잠을자곤 했다. 게다가 종래로 병원에 가 보이지도 못한 다리의 궤양(潰瘍 )은 형편없이 감염되여 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하루하루의 날새우기가 일쑤였다.
그에게도 '집'이 생겼다
거리를 류랑하는 곽문학은 일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철령하의 한 식품가계에서 밀가루 음식을 만들고 있는 한 복무원이 퇴근길에 숙총림(宿丛林)경리를 찾아가 자기가 직접보고 알게된 한 조선족 류랑아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마음씨 고운 숙총림은 즉시로 곽문학을 찾아 제집으로 데려갔다. 당시 숙총림의 집안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였다. 두 칸의 침실에 아들과 셋이서 사는데 문학을 데려오자마자 나이가 좀더 먹은 자기 아들과 같이 한칸방에 자도록 했다.
이튿날 총림씨는 지체없이 곽문학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상처의 감염이 너무도 심하여 어떤 병원에선 아예 절단수술을해서 어린 생명이나 보존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린나이에 한쪽다리를 잃는다면 장차 그의 앞날은 어떠하랴, 몹씨 안달이 난 총림씨는 곽문학을 데리고 도처로 돌아다니면서 괜찮다고 하는 병원, 소문난 의사들, 모든 의료기구들을 찾아다니면서 진찰을 받았고 약도 썼다. 아울러 천여원의 돈을 들여 한달이 훨씬 넘는기간 치료주사를 계속 맞게했다. 총림씨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곽문학의 다리는 염증이 점점 적어지면서 기적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수소문끝에 문학의 전후사실을 알게된 어머니 리명순씨는 너무도 감격되여 심양에서 품팔이로 벌어온 돈 900원을 내놓으며 총림씨에께 감사를 표시했지만 총림씨는 끝내 사절하고 말았다. 리명순어머는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림구로 되돌아가려고 며칠이나 아들과 상론했지만 아들의 부동의로 어쩔수가 없었다. 그 동안 생명의 은인 숙총림씨가정과 굳은 인정을 익힌 문학이는 총림의 집을 떠나려 하지않았고 총림씨가정에서도 문학이어머니의 생활이 아직도 넉넉지 못하니 문학이를 계속 자기집에 머물어 있게해달라고 요구했다. 리명순씨는 감격의 눈물을 가슴속으로 삼켜가며 계속 총림일가에 아들을 맡겨놓은채 또 다시 심양으로, 품팔이의 길에 나섰다.
진심으로 부르는 '아버지'
곽문학이는 어려서부터 뽈차기를 즐기고 음악테프를 듣기좋아하는것을 알게된 숙총림씨는 시내에 나가 축구공도 사다주고 노래테프도 마련하여 주었다. 평시에 문학이가 한족음식인 물만두를 잘 먹는것을 발견한 총림일가는 경상적으로 물만두도 만들어 같이 식사를 했으며 문학이의 옷에 때가 오를때면 총림씨의 부인은 제때에 옷을 깨끗히 썻어 주었고 매번마다 문학이의 다리가 새로 아파날때면 총림씨는 친히 문학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총림씨일가의 다함없는 관심에 깊이 감동된 문학이의 입에선 숙총림씨를 아버지라고 부름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마다 신년, 춘절기간이 고향에 돌아오면 리명순은 명심해서 생명의 은인인 숙총림 가정을 찾았다. 다문 얼마라도 그들의 성의에 보답하느라 많지않은 돈을 내놨지만 번마다 “우리일가는 모두 문학이를 좋아해요, 당신네 생 활도 변변치 않는데…… 우리가 문학이를 돌보는 것도 응당한 일이요”하며 오히려 리명순 어머님을 위안했다.
자난해 숙총림씨가 정리실업을 했다. 그가 경영하던 국수공장(挂面厂)도 문을 닫았다. 비록 집안의 형편은 좀 군색해 졌지만 그래도 문학이를 제집에 있게하면서 잔돈도 주어, 즐기는 음식을 사서 먹으라고 했고 부인은 항상 문학이의 옷을 깨끗이 빨아 주었다. 얼마전 22살이 된문학이는 목단강시 서5조로에있는한 돼지도살장에 출근하게 되였다
숙총림 부부는 종래로 곽문학에게 아무런 요구도 제출한 적이없다. “오로지 앞으로 곽문학이가 완전히 자립될때만이 우리는 마음을 놓겠소,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않습니다.” 리명순과 문학이에 대한 숙총림일가의 심심한 사랑의 관심이어린 말이다.
며칠전, 필자가 리명순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리명순씨는 이미 한국으로 가 인천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 아들을 길러준 한족아버지와 그의 일가에 꼭 큰 은덕을 갚겠습니다.” 리명순씨의 눈물겨운 감격의 다짐이였다.
/리헌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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