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에 등떠밀린 한반도 나비



[한겨레] “서울 근교 산에 가면 파리떼처럼 흔했던 봄어리표범나비가 1990년대 들어 한 마리 보기도 힘들어졌어요.”

김성수 한국나비학회 부회장(경희여고 교사)은 ‘순식간’에 일어난 이 변화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권태성 국립수목원 박사는 경기 광릉수목원에서 이뤄진 1958년 조사에서 두 번째로 많았던 들신선나비가 1998~2005년 조사에서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봄어리표범나비나 들신선나비는 모두 북방계통이다.

반대 현상도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분포하던 남방부전나비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광릉숲과 파주 고령산에서 관찰되지 않았지만 최근 이들 지역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나비의 하나가 됐다.

박규택 강원대 교수팀은 지난해 8월 서해 대청도에서 유인등에 날아든 커다란 낯선 나방 10종을 채집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말레이시아나 수마트라 등에 분포하는 아열대 나방들이었다.

주요한 산림병해충인 솔나방은 1년에 한 번 번식한다고 알려졌지만 1990년대 중반 경기, 충·남북, 경기 지역에서는 연간 2차례 번식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의 나비와 나방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문가들은 변온동물이라 기온변화에 민감한 데다 세대가 짧은 이들이,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기후변화의 첫 희생자가 됐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박해철 농업과학기술원 박사는 198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춘 상제나비를 예로 들었다. 이 나비가 중국 동북부에는 아직 흔하고, 우리나라에 먹이식물인 개살구, 털야광나무 등이 그대로 있는데도 사라진 데는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비 253종 가운데 만주, 연해주, 한반도 중·북부에 주로 사는 북방계통이 238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붉은점모시나비, 상제나비, 산굴뚝나비 등 북방계 나비들은 서식지 파괴와 남획에다 기후변화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최근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권태성 박사는 각각 1950~1970년대 조사자료가 있는 광릉, 설악산, 앵무봉(고령산)의 나비를 최근 조사 결과와 비교한 결과 195종 가운데 42종이 감소했고 36종은 증가했다고 밝혔다. 봄처녀나비, 들신선나비 같은 북방계 나비는 모든 곳에서 줄어들었다.

길잃은 남방계 나비가 점차 많이 발견되는 것도 기후변화의 증거이다. 김성수 부회장 등의 연구를 보면, 1997년 전국에서 끝검은왕나비 등 8종이던 길잃은 나비의 종수는 2002년 제주에서만 남방공작나비 등 15종에 이르렀다.

북방계가 사라지는 대신 남방계가 늘어난다면 별 문제 없는 건 아닐까. 박해철 박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비 한 종이 절멸하면 그 먹이식물은 물론 그 나비를 잡아먹거나 기생했던 생물들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새 도입종은 먹이식물에 큰 피해를 주는 등 생태계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나비연구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감시하는 유력한 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영국에선 100년 이상 나비관찰이 축적돼 기후변화 연구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며 “전국을 일정한 면적의 격자로 나눠 나비애호가들의 자발적 관찰결과를 집계하는 모니터링 사업을 펼칠 만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탄광 속 카나리아?=19세기 유럽의 탄광에서 광부들은 갱내로 들어갈 때 카나리아가 든 새장을 앞세웠다. 공기 오염에 민감한 조류인 카나리아가 울음을 멈추거나, 횃대에서 떨어지면 유독가스가 있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래한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육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위험을 알리는 상황이나 수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