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을 이어온 선행의 씨앗

임효생(林孝生)과 대정동 ‘한우물 동계(洞契)’

[대기원]도시 주변의 산업화, 도시화 개발 물결 속에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요즈음, 3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마을 공동체의 미덕을 잘 지켜가고 있는 ‘동계(洞契)’가 있다. ‘임효생(林孝生)’이라는 한 농민의 ‘나눔의 정신’이 밑거름이 되어 현재에도 ‘공동체의 삶’을 조용히 실천해 가는 대전 유성구 대정동 ‘한우물 동계’가 바로 그것이다.

한우물 동계의 유래

‘동계(洞契)’는 예부터 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마을 공동체의 미풍양속이다.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 한우물이라 불리다 대정동(大井洞)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바뀐 대전 유성구 대정동에는 약 300여 년 전부터 동계가 이어져왔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이, 다만 ‘동네의 어떤 할아버지의 선행’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1990년 마을 일부를 대규모 유통단지건설로 개발 조성하던 중, 마을 야산에 묻혀있던 임효생 추모비를 발견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대전향토사료관의 양승률 학예사와 이 마을 출신의 대전시 공무원 윤병옥 씨, 한밭문화마당 임헌기 대표 등의 노력으로 2005년 동계의 구체적인 유래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임효생은 조선 현종, 숙종, 경종(1659~1724) 시대 이 마을에 살았던 농민이다. 그는 흉년으로 전국적인 기근이 심하고 전염병이 창궐할 때, 수확한 곡식을 모두 내놓아 이웃을 도왔고 죽기 전에는 남은 재산을 모두 마을 공동재산으로 기부했다고 한다.

1724년 임효생이 사망하자 영조는 그의 선행에 종2품에 해당하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는 벼슬을 추서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그가 자손도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뜻을 받들고 마을 후손들에게 그의 선행을 알리기 위해, 매년 음력 10월 그믐에 제사를 모셨고 ‘동계’를 만들어 그가 남긴 재산을 마을공동재산으로 관리하고 운영해 왔다.

동계의 회원 자격은 마을에서 태어나 만 40세가 넘은 주민 가운데 한 집에 한 명으로 제한했다. 현재는 마을의 개발로 토박이들이 많이 떠나, 회원수가 70여명(정회원은 30명)이며 연령은 48세부터 85세까지 다양하다.

부친 때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동계장 임영국(54)씨는 “어렸을 때 동곗날은 동네 잔칫날이었어요. 동계장 어른이 마을 한가운데서 징을 치고 큰 소리로 모이라면 우리 꼬마들은 모두 줄을 서서 떡을 받아 맛있게 먹었지요.”라고 유년시절 동곗날에 대한 기억을 말해 주었다. 유통단지 개발과 직장 관계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작년부터 임씨는 동계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정동 출신의 30~55세 젊은이 80여 명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