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고 국제보건기구 6대 사무총장 1945~ 2006.5 )

이종욱 박사는 1983년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소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활동해온 탓에 국내에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수상이 UN 사무총장 자리를 마다하고 선택한 자리가 WHO 5대 사무총장이었다. 그만큼 기구의 중요성과 위상이 높고, 국제기구 서열로도 세 번째인 곳이 WHO인 것이다. 전 인류의 건강 증진과 질병 퇴치를 책임진 WHO에 처음으로 한국인이 6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이종욱 박사님은 봉사하는 삶을 왜 택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 박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전쟁 때 다섯살이었어요. 어머니 두 형제와 서울서 대구까지 60일 동안 눈보라 속을 걸었습니다. 그때 사람에 대한 연민을 처음 느꼈지요 " - 42p-


그는 영어,일어,불어,중국어까지 구사하는 세계인이었다. 평생 얼마만큼 노력하며 부지런히 지냇는지 알 수 있다.

" 퇴근 후에 집에 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프랑스 신문을 읽어, 불영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면서 최소한 한 문장이상은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은 외우고 난 후에 잠자리에 들지 .
육십 줄에 들어선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자네도 열심히 공부하게 "
- 26p-


" 나는 예방백신국장,결핵국장 등 요직을 역임했지만 그때마다 내 업무분야만 챙긴 것은 아니야
<NEJM>이나 <JAMA(미국 의사협회저널)> 등 세계적인 저널은 기본적으로 보았고 , 그때그때
국제적으로 큰 중요한 사안이 터지면 꼭 찾아서 자료를 읽어보곤 했지. WHO에서는 일정 직급 이상 올라가면 기구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해. 더 나아가 거기에 대해 자신만의 깊은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생존할 수 없고 리더가 될 수도 없어 "
- 27p-

2004년 쓰나미(津波. tsunami)가 발생했을 때, 저녁 7시 HAC(Health Action Crisis, 위기대응국) 상황실에는 근무자가 아무도 없었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이 끝난 후에는 퇴근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었다. 이종욱 박사님은 이렇게 설득햇다

"전 세계는 낮과 밤이 다릅니다. 우리가 잘 때 다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전 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우리는 24시간 긴장을 풀지말고 그들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
열띤 이종욱 박사님의 말에 이후에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 35p-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 화려한 외교관을 상상하지 마라. 그리고 편협한 인종주의나 속 좁은 애국심 같은 것으로는 국제기구에서 견디기 힘들다. 더군다나 열정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

38p-

이종욱 박사님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실패는 이미 자신 앞에 다가와 있다 고 여겼다 그래서 인지 사석에서도 부정적인 말과 태도 , 패배주의적 시각을 몹시 싫어했다
- 57p-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 , 그러고도 실패한 경우에는 포용하고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만약 실수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도전하겠는가?" WHO는 실패에 무릎 꿇지 않는다. 실패를 무릎 쓰고 늘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언제나 성공이라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7p-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해야 해. 돈이 없어서 전문인력이 부족해서 같이 일할 지원 인력이 필요해서,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렸다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 핑계를 대면 한이 없거든,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햇음ㄴ 일단 시작해야 해 "

이종욱 박사님은 항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경험으로 또 이제까지 WHO 에서 각 분야의 국장으로 성장해오면서 깨달은 것이다 - 129 -

“안 된다고 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 듯한 핑계가 생기지. 그러나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단 시작해서 밀고 가야 해. 그리고 이 일이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해. 이 일이 제대로 될까, 이 일을 목표 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회원국들에게 무슨 비판을 받을지 몰라 등등 시작도 하기 전에 고민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해. 옳은 일을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라고.”
 

대화

스페인 국왕을 만나기 전날에도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해서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는 " 어제 당신 조상들을 많이 만나보았다"고 미술관을 들렀던 일을 자연스럽게 화제로 올려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이것도 치밀하게 정상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이박사의 성격을 잘 드러난 사례다.
- 102



이집트 무라바크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1973년 중동전쟁 당시 공군참모총장으로 참전한 무라바크 대통령의 경력을 참조해 당시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이종욱 박사님에게 그런 질문을 왜 던졌느냐고 물었더니 "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느라 피곤한 대통령이 무슨 주제로 얘기하면 가장 기뻐하고 신날지를 심사숙고해서 준비한 질문 " 이라고 했다
"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맞은편 국가 정상이 하고 싶은 얘기를 질문하고 그걸 들어주는 것이 바로 내 임무야 " - 103p-




“지금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단돈 몇 십 달러가 없어서 결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 그래도 지구 한 편에서는 한 대에 몇 억 달러하는 전투기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미사일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에이즈에 걸린 부모에게 태어나 에이즈 바이러스를 물려받는 아이들도 있잖아. 그 아이들이 무얼 잘못했다고 일생을 질병으로 괴로워하다 죽어야 한단 말인가?”

북한 결핵 퇴치에도 많은 공력을 들였던 박사님은
결핵균이 이념을 알겠어? 결핵균 앞에서 무슨 사회주의고 민주주의가 있어? 약이 없으면 결핵 환자들은 그냥 죽을 수 밖에 없어 약을 보급하는 문제는 이념에 앞서 인류애의 문제야 "

항상 돈은 못살고 가난한 나라에 써야 한다고 했는데 가난한 나라에서 그 비싼 약값을 누가 낼 수 있겠냐면서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약값에는 연구비가 들어있지 않느냐고 반박하자 이렇게 말했다 . " 그럼 아프리카는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그건 돈을 많이 버는 나라가 베풀어야 하는 걸세 "


이종욱 박사님은 무조건 있는 사람, 잘사는 국가가 이들 후진국,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선을 베풀고 인적, 물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불평등을 가장 빨리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39~40 -


신형독감 경고

" 이렇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당장 금년에 신형 독감이 생기지 않으면 마치 양치기소년처럼 거짓말 했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어, 가끔은 신형독감이 유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할 때도 있다니까 하하 "

이런 걱정을 하기에 우리 파견근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종욱 박사님을 위로했다

" 만약 발생하지 않으면 WHO가 그만큼 대처를 잘 해서 예방한 것이고 만약 발생한다면 곧 바로 대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맞아 언제든지 미리 대처하는 것이 우리 임무지. 또 그런 상황을 회원국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야 "


결국 2005년 12월 1일 에이즈의 날 행사에서 이종욱 박사님은 자랑스러운 결과를 발표했다. 그때까지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환자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치료제를 공급받게 되었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에서 치료제를 공급받는 사람의 수가 3배가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 p.130~131



 




Steve Raiman -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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