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야화】 서로 다른 법문(法門)의 수련 (상)

펀글-

바비(Bobby)는 나와 같은 진료실에서 10여 년을 근무해 왔다. 비록 그녀의 나이가 나보다 약간 더 많긴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또래로 잘 지내왔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이고 나는 한의사로서 임상에서 어려운 환자를 만나면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치료방법에 대해 묻곤했다.

바비는 힌두교의 일종을 믿었는데 아주 경건한 신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내게도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추천했으나 나는 완곡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사람이 왜 신앙을 갖자마자 종교 때문에 육식(肉食)을 할 수 없고 녹색 식물만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향수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수련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다.

언젠가 한 번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바비, 당신의 사부가 육식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콩으로 만든 인조고기도 못 먹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또 신선한 녹색채소만 먹게 한다면 겨울에는 모든 채소가 시드는데 그러면 무엇을 먹어야 하지요?”

“당신같이 총명한 사람이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나요? 그것은 녹색 채소가 신선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녀에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어느 한 법문(法門)에서 이렇게 녹색 식물만 먹게 한다면 나중에 당신들의 피부색까지도 변하고 말거에요. 마치 홍당무의 캐롯 성분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피부색이 노랗게 변색되는 것처럼요.”라고 하면서 약을 올렸다.

나중에 나는 운좋게 파룬궁(法輪功 역주: 중국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심신단련수련법.)을 만나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내가 수련을 시작하자 아주 기뻐하면서 더는 자신의 법문으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끌어들이려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줄곧 그녀의 뜻을 존중해 왔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 존중하면서 마치 평행선처럼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 그녀가 내게 도전적으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매년 한 차례씩 인도에 다녀오곤 했다. 한번은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아주 신비롭게 말했다.

“이번에 인도에 가서 사부님이 천정에서 걸어 다니시는 것을 뵈었는데…….”
“그래요? 거긴 어떻게 올라갔는데요?” 나는 호기심 있게 물었다.
“글쎄요, 어쨌든 방안엔 의자나 사다리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벽이 아주 높아서…….” 그녀는 득의양양하게 대답했다.

“바로 당신 앞에서 일어섰나요?” 내가 또 물었다.
“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당시 현장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아! 그래요.”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수련을 한 이후 나는 고기에 대한 집착을 아주 빨리 제거했고 평상시에도 별로 생각이 없어졌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전날 저녁에 먹다 남은 닭다리를 점심에 먹기 위해 가져온 것을 그녀가 보았다. 그리고는 “고기를 금지(戒)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걸어야 할 첫걸음인데 이것마저도 제대로 못한다면 이후에 어떻게 수련을 한단 말이예요!”하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지만, 사실 사람에게 아무런 집착심이 없다면 무엇을 먹던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말했다.

바비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사색에 잠긴 듯했다. 우리 병원에는 의사, 간호사와 직원들이 아주 많아서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이면 더러운 컵과 접시들이 휴게실에 수북히 쌓이곤 한다. 나는 새벽부터 파룬궁 공법을 연공하는 까닭에 연공 후에 습관적으로 그것들을 깨끗이 설거지해 왔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아무도 설거지하는 사람이 없기에 더러운 접시들이 수북히 쌓이곤 했다. 몇 차례 이런 장면을 본 바비는 즉각 “이곳은 당신들의 어머니가 살고 있지 않으니 자신의 설거지는 스스로 해주세요.”라고 큰 글씨로 붙여놓았다.

다음날 내가 출근해서 그녀가 써놓은 메모를 보고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모든 접시들을 다 닦아놓았다.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본 바비는 “저는 제자신이 참 부끄러워요. 왜 저는 구체적으로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수련의 일을 잊게 될까요?”

나는 그녀에게 수련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생활상의 매 한가지 작은 일에서부터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만 수련인의 풍모를 체현한 것이라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은 바비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늘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내게 묻곤 했다. 박해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을 때도 그녀는 나와 함께 환자와 의사, 정의로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명 받는 것을 도와주었다.

수련을 한 이후 나의 몸은 점점 더 좋아졌고 초기에 소업(消業)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던 것 외에는 더는 무슨 병에 걸린 적도 없었다. 그러나 바비의 신체는 점점더 쇠약해졌다. 보아하니 그녀는 끝내 녹색식물 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콩이나 쌀로 만든 각종 건강보조식품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만 불어도 감기에 걸리곤 했다.

그녀는 매번 인도에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병이 하나씩 생겼으며 내게 치료받으러 온 것만도 몇 차례나 된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여행피로에 저항력이 감소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중 몇 년 동안에 그녀는 서서히 각종 약물마저 복용하기 시작했다. 각종 종합비타민제, 단백질과 영양성분이 들어간 알약 등등. 그러나 나는 가면 갈수록 더 간단하게 먹었고 하루 두끼만 먹거나 심지어 한끼 밖에 못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신체는 점점 더 좋아졌다. 나는 음식이 많이 있으면 많이 먹고 없으면 적게 먹었으며 시간이 있으면 자고 일이 바쁘면 밤을 새기도 했다. 점차적으로 나는 내 몸이 내 필요에 따라 조절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바비가 옆에서 조용히 나를 관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생활, 일, 인물됨, 일처리와 더욱 중요하게는 한 수련인으로서 일상생활 중의 작은 일들을 대하는 태도 등을 관찰하고 있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글:옥림(玉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