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조선시대의 무예인 무예24기를 전승하며 수원에서 조선검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형국(33, 崔炯國)관장을 만나 무예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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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긴 무기와 짧은 무기의 조화를 이룬 진법인 '원앙진법'의 마지막 단체 격살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어우러짐 속에서 자신의 독선을 바로 잡음
최 단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허리가 너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다.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고 침을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장시간 오래 앉아있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대한검도회에서 검도를 시작했다. 대학진학 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를 배웠다. 군대 제대 이후 앞으로 무예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당시에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무예를 상품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무예 중에서도 우리 전통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게 가능성이 커 보여 무예24기를 전문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예사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무예가 왜 필요한가? 우리의 삶에서 무예는 얼마만큼 차지하는가? 역사에서 무예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 더 필요하고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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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주도 마상무예 전지훈련시 기창(騎槍) 연습 중 마상 기창 찌르기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대학 때 최 단장은 도깨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 단장의 위치를 종잡을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좀 전에는 꽹과리를 치고 있다가 잠시 후엔 칼을 들고 연마를 하고 있고, 다시 뭐 하는지 보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이고 있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4~5시간을 자며 참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어우러짐’이라 것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어우러짐은 함께 살기를 말합니다. 세상에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하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알리고, 다른 사람의 검증을 거처 나에게 되돌아온 것에서 나 자신의 독선을 발견하여 바로잡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어울려서 함께 커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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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시대 무과 과목 중 한가지였던 격구(擊球-서양의 폴로와 유사) 시범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상대의 악한 마음도 좋은 마음으로 포용하는 심검(心劍)
칼을 사용하는 무예의 기술연마는 한 가지 기술이 만 가지 기예를 아우르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거의 동일함의 반복이다. “제가 수련생들에게 지루함을 즐겨라! 지루함을 지나쳐서 그 지루함이 즐거움이 될 때 자신의 무예가 늘어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100번을 치고, 천 번, 만 번을 치더라도 그 손은 거기에 가 있고 그 칼은 거기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게 무예가 됩니다. 보통 사람한테 연필을 주고 어깨 위 5cm에 올려놓으라고 하면 대다수는 15cm가 넘는 위치에 올려놓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실제 몸이 느끼는 거리가 다른데 훈련을 통해 이것을 맞추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몸을 자신의 마음이 정확하게 통제하고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내 칼이 어디까지 움직여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스스로 혼자 운동할 수 있는 사범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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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앙진 돌격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사범의 단계를 지나면 의재검선(意在劍先)의 단계가 있다. 마음보다 칼이 먼저 가 있는 상태이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자기의 마음보다 칼이 먼저 거기에 가있는 상태이다. 축구경기에서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을 때 골키퍼 두뇌의 판단속도로는 도저히 킥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떤 골키퍼는 킥을 막게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가장 상승의 경지는 심검(心劍)의 상태입니다. 상대방이 무기를 쓰더라도 맨손으로 제압을 한다거나 그 사람의 악한 마음까지도 나의 선한 마음으로 감싸주고 포용해주는 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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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몽골 마상무예 전지훈련시 기사(騎射- 파르티안샷) 훈련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무예에서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무예는 사람들이 자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자연과 맞지 않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태도를 고쳐 줄 수 있다. 사람은 상대를 공격하고 싶어 하고 자기의 힘을 발산해보고 싶은 본능이 있다. 무예는 이러한 본능을 서로 정해진 규칙과 방법에 의해서 발산하게 하여 사람의 본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무예를 연마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다. 자신이 얼마나 작고 약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내가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상대방도 나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대방을 쉽게 보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며 존중해 주게 된다. “요즘 사람은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그 사람 탓이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누구 탓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는 바라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지도 않으면서 늘 남 탓만 합니다. ‘저놈이 세게 때려서 내가 맞은 거야’라는 생각은 무예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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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화성행궁에서 정기시범을 마치고 난 후 갑주를 탈의 한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요즘의 교육에 대해서 최 단장은 걱정이 많다. “요즘의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유약합니다. 몸의 크기는 커지고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정신력도 없고 체력도 없고 단지 몸만 있을 뿐입니다. 그 상태에서 외부적인 시련이 조금만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요. 참지 못하고 짜증을 잘 부리고요. 온실의 화초처럼 밖에서 비바람 맞고 햇볕 비추면 그 자리에서 고사하게 됩니다. 무예를 연마하게 되면 건강한 신체는 물론이고 자신의 한계를 알아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고, 어떤 일에 대해 쉽게 움직이지 않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대해 자기주장이 필요할 때는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밝히고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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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짚단 베기 장면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무예의 처음에는 자신의 강기를 표현
한국의 무예는 중국 일본 사이의 중간자적인 특성이 있다. “중국의 무예는 화려하고 도약이 많고 원을 사용합니다. 한국은 반달 같은 타원형의 느낌을 줍니다. 일본은 직선적이고 칼을 뽑고 넣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칼춤과 비교해 볼 때 무예는 중심의 이동을 놓치지 않는 반면 칼춤은 중심을 버려야 합니다. 칼끝이 만드는 선은 원래가 곡선인데 무예는 베는 물체를 통과하는 순간에는 직선이어야 하지만 칼춤은 곡선일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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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원안진에서 변형하여 양의진으로 전환된 모습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최관장은 (사)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시범단은 20여 명으로 구성되어있고 수원시의 보조를 받아 운영된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원의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45분 정도의 공연을 한다. 3월, 12월 혹서기(복중)에는 주말 공연만 한다. 최 관장은 수원시에서 수원조선검전수관을 운영한다. 어릴 때부터 무예의 정신을 자식에게 심어 주고자 특별히 수련을 요청하는 부모가 있다. 보통 전수관은 저녁 8:30~10:00까지 정규 수련 시간인데 회원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낮의 어느 시간이든지 수련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의 강기를 표현해야 합니다. 자기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어 자신이 가진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가?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이해한 다음에는 부동심이나 평상심 즉 한결같은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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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원화성행궁에서 정기공연을 마친 최영국 단장 ⓒ (사)무예24기보존회 제공 | | “앞으로 역사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해볼 계획입니다. 우리 사회에 조금 조금씩 묻어 있는 과거의 전통적인 수련법을 조사하여, 군사의 움직임과 훈련법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것들이 오늘날 어떤 영향을 끼치고 현재와 접합을 시켰을 때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수원에만 머무르고 있는데 내년에는 서울에도 진출하여 우리 무예를 널리 보급하고 싶습니다.”
수련문의) 수원조선검전수관 최형국 관장 전화: 031-892-1033, 017-627-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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