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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집이라 그런지 대문을 들어서면 안대문까지 오솔길이 나타나고 양쪽에는 꽃길로 조성되어있습니다.
조선시대 외세침략을 많이 받을때 집인지 담장에다 덧문을 내어 달아나기 쉽도록 했습니다. 담장위의 기와가 일직선인 이런 담장과 문은 흔하지 않습니다.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입니다. 할머니가 관리하신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남자의 공간은 둥근기둥이고 여자의 공간은 사각기둥이랍니다. 앞쪽은 남자의 공간이고 뒷켠은 여자의 은밀한 공간입니다.
이제 불을때서 온돌방을 덥히기는 귀찮은 모양입니다. 보일러를 설치했네요. 이집은 하루밤만에 지은집이라 알려진 곳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품계지위에 따라 집을 지을수 있는 칸수를 정해두었는데 몰래 집을 지은것입니다. 짓다가 걸리면 부수어야 하므로 부숴지지 않게 달밤에 밤새 지었답니다. 일단 지은 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강제로 철거하지는 못합니다. 말하자면 레슬링선수 김일씨가 있었는데 박치기가 반칙이지만 워낙 빠른 순간에 박치기를 끝내 반칙을 선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했습니다. 이집은 그래서 대패질이나 뚫은 구멍이 엉뚱한데 뚫려 있기도합니다.
우리나라는 곧은 나무가 별로 없어 주로 소나무를 사용했는데 솔향이 그윽하고 몸에 좋기 때문입니다. 긴 재목이 없으므로 이렇게 이어서 썼는데 쇄기박기를 하였습니다.
몰래지은 집이지만 갖출것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재로 까지 지정이 되었으니...짜잔..
굴뚝은 아까 서민들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땅바닥에 연기가 깔리게도 하였지만 태평성세에는 번듯이 굴뚝을 높게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 굴뚝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기교를 부려 만든 것입니다.
차양은 햇볕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더울때는 문을 열어 둔채로 남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부엌에서 장독대를 바라본 광경입니다. 하나같이 운치가 있게 보입니다.
의식주중에서 장독대는 식에 해당하는만큼 소중한 곳입니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신은 방쪽을 향하지만 다시 나가야 할때는 이처럼 신의 방향을 바깥쪽을 향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곧 나가야 될 사람이라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문간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공간은 전부 남자의 공간입니다. 손님을 청해 한잔한다던가 시를 한 수 짓는다던가 하려면 대문밖에 보이는 경치가 있어야 하겟지요. 시가 아무렇게나 속에 들었다가 나오는게 아니라 시운이 감돌려면 주변 경관이라든가 흥취를 돋우는 뭔가 있어야 되지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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