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한옥은 유지하기가 힘들어서 현대는 건물이 유지관리가 편한 콘크리트나 철골구조추세라 한옥을 철거하고 양옥으로 많이지어 그래서 한옥을구경하기쉽지않습니다. 남은 전통한옥이나마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많이 엿보입니다.

도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이인데 대문간 2층구조는 무슨 일제시대에 만든거 같기도 하고..

담장은 황토를 쌓으면서 군데군데 돌을 박아 비가 많이 와도 흙이 흘러내려앉지 않게했는데 보존차원에서 공사를 하면서 이상한 신식공법을 도입하여 마을 주민들과 마찰이 생겼다고 한다. 제대로 좀 조사를 해서 설계를 해야지 옛적의 미를 살리기 위해 돈을 들여 새로 공사하는데 그렇게 했답니다. 여기 담장에 박인돌은 여기서 난 돌을 사용한거 같지만 바닥이나 길에 깐것은 전부 외부에서 반입한것인데 외부돌도 우리나라것이 아니고 중국같은데서 싸구려로 들인 이상한 색깔의 넙적한 모양의 돌이었습니다. 담장이나 디딤돌이나 어디든 둥근돌을 사용해야지 판석은 구들장에 밖에 쓸데가 없습니다.이지방에서 나는 돌이나 우리나라에서 나는 돌을 쓰는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마을이 세월이 흐르면서 성씨도 몇번 바뀌어 먼저 들어왔떤 성씨는 떠나고 또 새로 들어온 성씨도 떠나고 하면서 세번정도

바뀌어 이제는 홍씨의 터로 자리잡은 듯합니다.

우리 서민한옥은 주로 굽은 소나무를 베어다가 볏집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좀 양반께나 하거나 권세를 잡은 집안은 곧은 소나무를 베어다가 기와지붕으로 한옥을 지었습니다. 서민도 쭉 곧은 소나무 쓰면 안되나 싶지만 양반들이 텃세를 하여 구하지 못하고 양반들이 굽어서 베어가지 않은 쓰고 남은소나무를 취하다보니 그렇게 된것입니다.

대부분 절에는 기둥이나 보에 갈색의 방부제를 칠했지만 한옥은 이처럼 자연상태로 말려서 집지을때 사용했습니다.방부제는 변하지 않게 하려는 요즘사람들 욕심때문에 개발된 것인데, 속에있는 나무결이 전혀 보이지않으니 좋은 것은 아닐것입니다. 나무결을 보이게 하기위해 방부제를 칠하지 않고 늬스를 칠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자연상태의 나무가 제일 좋은 것이지요. 이마을의 목재는 전부 원목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한옥은 아파트와 달라 문만나오면 전부 마당이라 꽃이 많고 정원이 군데군데 자리한다. 식물은 산소를 뿜으니 움직이는 생명체는 산소로 호흡하니 좋은 것이다. 또 몌전처럼 호롱불이나 촛불 관솔불을 피워 밤새워 글공부를 하던 선비들에게는 녹색은 눈의 피로를 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핑크티를 입은 분은 문화해설사인데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어떻게든 많이 알려주려 애를썼습니다. 고마운 분입니다. 뒷모습이라 좀 미안합니다. 바로 보이는 게 바깥대문이고 안쪽에 안대문이 보이는데, 바깥대문에는 바닥에 돌이 하나있고, 이 돌을 딛고잠겨진 대문의 판자를 이은 수평대각목을 발을 딛고 대문상단에 보를 넘으면 해설사 서있는 위치에 내려오게 되는데, 여기에 춘궁기에 서민들이 먹을수 있는 양식을 넣은 독(항아리)을 놓아두었답니다. 이 독에 담긴 곡식을 필요한 만큼 챙겨서 다시 대문을 넘어 나와 자기집에 가져가 끼니를 해결 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먹고싶으면 넘어와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서민을 생각할 줄 아는 돈 있는 양반이나 향토지주들이었겠지요. 품삯이야 주었겠지만 이고장 농민들을 이용해 농사를 지을수 있었으니 고마움을 표현한 거라 생각된다. 물론 돈있다고 다 베푸는게 아니고 다 심성에 달렸으니...


집은 옛집이지만 요즘사람들이 살아 티를 빨아 문앞에 걸어두어 말리고 있습니다.

흙은 비가 오면 걸어다니기 불편하므로 돌로 징검다리를 놓아 대문에서 대청까지 연결해줍니다.

예전에는 봄이되면 가을철에 수확한 곡식이 다 거들나서 춘궁기라 했습니다. 그래서 끼니를 굶지않고 살아갈수있는 돈있는 양반이나 여유가 있는 권세가들은 밥을 지으면 불을 때서 굴뚝에서 연기가 나니 끼니를 못떼우는 서민들이 굴뚝의 연기를 보면 배고픔을 참기 힘드므로 굴뚝을 마당아래 낮게 내어 연기가 마당에 깔리게 하여 연기를 보지못하게 하므로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답니다. 풀있는곳의 네모난 곳이 굴뚝입니다.

장독대는 집을 지어 그속에다 넣지않고 마당의 한켠에 분리해 바닥에다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서민이나 양반이나 집을 지어 살수잇는 규모가 지위에 따라 정해져 있었습니다. 서민은 몇칸, 몇품벼슬은 몇칸 이런식으로 크기를 정해 규모를 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호화스럽게 살지 못하도록 규제했습니다. 따라서 지붕이 없어도 되는 데 지붕을 이게 되면 장독대가 살집의 평수를 까먹게 되므로 장독대는 지붕이 없게 한 것입니다.

촌이라 그런지 지금은 쓰는지 모르겠지만 TV안테나도 보이고 위성안테나도 보입니다. 중국에서는 일반인들이 정부서 보게한 것외에 못보게 하기위해 위성안테나를 설치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그것 하나만으로 살만한 나라인것은 분명합니다.



밖에서 이집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알기위해 내다볼수 있도록 담장에다 구멍을 뚫어두었습니다. 늘 감시하는것은 아닐테고 필요할때 밖을 내다보는 거겠지요.

한옥은 항상 물론 서민은 좀 다르지만 기와집에만 살아도 마당에서 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대청이나 마루를 거쳐야 방안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요즘 아파트의 발코니라 할까 완충공간이겠지요. 그래야 방안에서 밖에 누가와서 헛기침을 하면 하던것을 이리저리 치울 시간이 있을겁니다. 첨마루가 없다면 갑자기 들이닥치면 남에게 보이기 싫은것을 보이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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