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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난 중국의 농촌에선 지금 무슨 일이? 그들이 떠난 중국의 농촌에선 지금 무슨 일이? 중국의 대도시에선 크게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득이 일정한, 정규직에서 일하며, 계절에 맞는, 반듯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자질구레한 물건과 과일을 팔고,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폐품을 모으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행정 시스템에 따르면, 이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도시주민과 농촌주민으로 나뉘어 지지요. 중국 사회에는 호구(戶口, household registration system)라고 하는 요상한 제도가 있습니다. 호구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1950년대 초기에 만들어진 제도로, 당시 한정된 자원과 수많은 인구수를 용이하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우선 중국 인민들을 거주지역에 따라 크게 도시주민과 농촌주민으로 나뉘었죠. 도시주민은 국가로부터 식량배급을 받고 교육, 주택, 취업,의료 등 여러가지 사회 복지 혜택을 받아 온 반면에, 농촌 주민은 이런 사회서비스로부터 배제되었습니다. 또한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농촌 호구를 갖은 사람이 도시지역으로 이민(!!) 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선 한정된 사회자원과 어마어마했던 인구를 용이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만든 불가피한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1980년대 초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이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호구제도가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대량의 농촌 거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꿈을 찾아 도시지역으로 물밀듯이 흘러들어 온 것이지요. 이 이주민들을 일컬어, 신분은 농민인데 공장에서 일을 한다 하여 농민공(農民工)이라고 합니다. 혹은 유동인구(流動人口, floating population)라고도 하는데요, 이들은 고학력을 가진, 정규직에서 일을 하는 합법적인 외지인(外地人)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현재까지 농민공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수치는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수가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농민공의 유동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지요. 혹자는 농민공들이야 말로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의 숨은 공로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의 대도시의 건설 공사장에서 지하철역을 만들고, 공장을 짓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또한,중국의 3대 경제권 지역에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초'저렴한 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바로 농촌지역에서 올라온 농민공들입니다. 하지만 농민공들은 중국 대도시에서 심한 괄시와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우선 도시주민이라는 신분이 없기 때문에, 도시 주민들이 누리는 여러가지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한계 때문에 자녀들을 정식 학교에도 입학 시킬 수도 없죠. 실제로 상해에서는 농민공 자녀를 위한 학교를 놓고 논쟁이 많습니다. 이런 민간인이 세운 학교는 주로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혀져 있습니다. 호구제도는 현재, 일종의 신분제도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농촌호구를 갖고 있으면, 그 자녀가 도시에서 태어났을지라도 농촌 호구를 갖게 됩니다. 즉, 불평등이 대물림 되는 것이지요. 이들은 중국의 사회 체제가 만들어낸, 중국 대도시의 이방인입니다. 상해 변두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민공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의 한달 임금은 약 1000위엔 정도로, 저렇게 길거리에서 1위엔짜리 전병으로 아침을 해결합니다. 지난 여름, 중국의 한 NGO의 도움을 받아, 중국 서부 농촌지역으로 현지조사를 하러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촨성 북부에 위치한 이 농촌지역은 주민의 절반 이상이 동부 연안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왜 고향을 떠나는 것일까요?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농촌 외부에서 오는 원인으로, 중국의 동부/서부 지역의 경제발전 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하다는 점입니다. 농촌에서 힘들게 농사지어봤자, 한달에 200위엔을 벌까 말까 하는데, 도시지역에서는 한달에 최소 1000위엔을 벌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농촌 내부에서 생긴 원인으로, 농촌에 잉여 노동력이 넘친다는 점입니다. 스촨성은 중국 대륙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유명한데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인구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지를 분배할 때, 땅을 못받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현지조사 중 인터뷰를 했던어느 촌 간부가 고백하길, 토지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보니, 자신이 나서서 젊은이들을 도시로 내보내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장거리 버스역입니다. 예전에는 광동과 절강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오갔지만, 현재는 이용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운행을 안한다고 합니다. 전에는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자주 고향으로 돌아왔었지만, 지금은 도시로 나가면 대부분 거의 안돌아 온다고 합니다. 농민공들은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매달 받은 월급 중에서 아끼고 아껴 남은 돈을 고향집으로 송금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한 3년 정도 밖에서 일하고 모은 돈으로 집을 새로 짓습니다. 또 농민공 중 아주 극소수이지만, 도시지역에서 일을 한 경험을 살려, 고향에 돌아와 창업을 하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입가에 웃음을 띄고 있던 이 가방 가게 부부는 광동지역의 한 대만계 가방 제작 공장 약 10년 넘게 일을 했다고 합니다. 외지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10년 넘게 성실히 일을 하자, 사장의 신뢰도 받게 되고, 또 많은 기술도 배웠다고 하네요. 지금은 그 기술을 살려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차렸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가 도시로 떠난 이 지역은 많은 문제점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한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입니다. 허름한 시설에, 엉망인 교실. 이곳에서 과연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마을 간부의 설명에 의하면, 교사들도 대부분 도시로 떠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대부분의 마을에서, 맨발로 무리지어 뛰어 노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리유슈유얼통(留守兒童) 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 아이들은, 부모들이 대부분 도시지역으로 떠나고 농촌에 남겨진 아이들 입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아들이 3명이나 있지만, 모두 도시로 나간 뒤 연락이 끊겨 홀로 지내시는 노인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자녀가 있기 때문에 기초 생활 보호 제도도 신청 못하고, 마을 간부가 구해 준 빈 집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농민공은 크게 1세대 농민공과, 2세대 농민공으로 나뉘어 지는데요, 1세대 농민공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로, 도시지역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한 후 대부분 농촌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제 2세대 농민공은 1990년대 후반 부터 현재까지 도시로 떠난 사람들로, 이들은 대부분 도시지역에서 정착을 합니다. 이 가족은 부모와 중학생 나이의 아들로 이루어진 기족인데, 도시에서 일을 하다 적응을 못해 농촌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집과 토지가 이미 없어져서, 빈집을 구해 살고 있고, 역시 도시로 떠난 사촌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소득이 변변치 않아 다시 기회를 봐서 도시로 나갈 계획이라고 하네요. 자신들의 가장 큰 희망은 아들이라면서, 아들이 얼른 자라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라고 있다 합니다. 이 할아버지 역시,자녀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또 자신이 언제 변고가 생길지 몰라, 저렇게 영정을 미리 준비해놓았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는 아직 걸음도 못걷는 손녀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손녀를 낳고 5개월도 안되서 도시로 나갔다고 합니다. 매달 생활비도 부쳐주고, 돈을 모아 집도 지었지만, 아직 옹알이도 못하는 아이를 떼어놓고 집을 떠나야만 했던 급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 사진 찍는다고 할머니가 예쁜 노란 원피스까지 꺼내 입혔지만,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아이의 부모가 몇년 전에 함께 도시로 떠났는데, 아이 엄마가 혼자 다른 도시로 떠난 후, 아이 아빠도 연락이 안된다고 하네요. 농민공들이 도시로 떠난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겠지만, 중국의 농촌지역 역시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가족제도를 매우 중시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과거 인민공사 제도(人民公社)가 실패하고, 가족책임승포제(家庭責任承包制)가 성공한 이유도 가족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인민공사제도, 가족 책임 승포제 모두 중국의 농촌 개혁운동으로, 인민공사제도는 중국의 전통적인 농촌 생산단위였던 가족을 해체하고, 농민들을 공사(公社)를 단위로 해서 재조직했습니다. 즉, 농민들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 따로 분리되어, 집단 거주를 하고, 함께 농사짓고, 함께 밥을 먹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일도 공사의 관리자들이 일괄적으로 관리한 것이죠. 그 결과, 중국 농촌의 농업생산량은 현저하게 감소했고, 1980년대 초기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가족책임승포제를 전격 실시하면서, 끝없이 추락했던 농업생산량이 급반등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책임 승포제는 말 그대로, 한 가족이 일정한 크기의 땅이나 호수를 분양(?) 받아 자신의 농사를 짓고, 과일을 재배하고, 물고기를 양식한 것으로, 가족이 다시금 중국 농촌의 중요한 생산단위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서부지역 농촌은 두번째 위기을 겪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세계 경제 체제의 발전에 따른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적인 중국 진출과, 중국 정부의 동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차별적인 경제성장 정책이 야기한 위기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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