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하정숙
[대기원] ‘신의(信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노(盧)나라의 미생(尾生)이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보름달이 뜨는 날 밤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다 소나기에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죽은 인물이다. 이러한 미생을 두고 예전 사람들은 신의의 대명사로 추앙했으나, 요즘 사람들은 융통성이 너무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서 미생의 죽음을 가치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미생의 연인은 물론이고, 가족, 친지, 친구에게 고통을 남기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미생이 차라리 신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은 미련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사람들은 미생의 ‘정신’을 본 것이지 미생의 행위 결과를 두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 미생이 강물에 휩쓸려 죽을 때까지 다리 아래에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만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 또한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오는지 안 오는지 두고보자는 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버틴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기다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미생 정신의 가치는 물질적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는 제나라 왕이었던 환공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환공이 노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자 노나라 왕은 자기 나라 수읍 땅을 내 놓으며 휴전을 청했고, 이를 수락하는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노나라 장군 조말이 갑자기 뛰어들어 환공의 목에 비수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그동안 빼앗은 땅을 내 놓으라 하면서 목숨을 위협했다. 환공은 급한 나머지 요구를 들어준다고 했지만 위협에서 벗어났을 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조말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관중이 정색을 하면서 “폐하께서 그자에게 협박당해 어쩔 수 없이 한 약속이었다 할지라도 약속은 약속이므로 지켜야 하옵니다. 만약 조말을 죽인다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으로 화풀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라고 했고, 환공 또한 관중의 말에 따랐다.

불공정한 상태에서 맺은 약속일지라도 ‘신의’를 지키려한 선인들의 아름다운 덕목이 재삼 그리워진다.
<글:공영화,학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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