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처벌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치판을 24년 넘게 주물러온 장쩌민은 자신의 정치 텃밭인 상하이에서 현재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을 전담하고 있는 조사팀이 상하이로 급파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지난 11일 범죄 조사및 기소를 담당하는 상하이 검찰 공식사이트에 상하이에서의 부패 관리 조사가 본격적으로 착수됐다는 공고문이 올라왔다.
상하이에서의 조사 착수 발표가 있자마자 왕종난(王宗南) 광명식품유한공사(光明食品有限公司, Bright Food Group) 회장이 뇌물수수 및 횡령죄로 체포됐고 재판 대기 중이다. 왕 회장이 체포된 실제 이유는 그가 장쩌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과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恒)의 가까운 관계였다는 데 있다.
상하이는 장쩌민의 정치 야망이 시작된 출발지이자 권력 기반을 닦은 곳이다. 장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상하이 당서기였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자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상하이에서 반체제인사들을 가혹하게 처벌했던 장쩌민이 눈에 들어왔다. 덩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옹호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실각시킨 후 장쩌민을 베이징(北京)으로 불러 올렸다.
지휘권을 잡은 장쩌민은 1989년 6월 4일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베이징에서 중앙 권력을 쥔 장쩌민은 상하이 출신의 무명 정치인들을 당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로 승진시켰다. 바로 그들이 장이 20년 넘게 중국서 독재 권력을 누리기 위한 광활한 정치 네트워크의 핵심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이다.
표적 장쩌민에 조준
시진핑은 국가주석 취임 후 19개월 넘게 반부패 운동을 광범위하게 실시하면서 장쩌민파에 속한 최고위급 인사들을 숙청했다.
반부패 척결의 정점을 찍은 사건은 지난 7월 29일 전 공안부 총책 저우융캉(周永康)이 조사를 받는다는 공식발표였다. 하지만 저우융캉의 낙마와 그에 대한 처벌이 시진핑의 장쩌민파 숙청 프로젝트의 끝이라는 인식이 현재 빠르게 불식되고 있다.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다는 당국의 발표 직후, 중국공산당의 대변인 격인 인민일보는 “대형 호랑이(고위 부패관료를 일컫는 중국 속어) 저우융캉 처벌이 반부패 운동의 끝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저우는 혼자 당 고위직에 오른 것이 아니며 그를 임명한 상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쩌민이 저우를 승진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논평은 삭제됐지만, 중국 누리꾼들은 일찌감치 이 기사를 복사해 퍼 날랐다.
대기원은 지난달 장쩌민파 2인자 쩡칭홍(曾庆红)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반부패 운동은 부패 관리들에 대한 소탕작전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파의 대형 호랑이들이 전부 포획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 표적은 장쩌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주 왕종난 회장이 체포된 것을 보면 장쩌민의 권력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쩌민이 자신의 권력 기반지인 상하이에서 측근인 왕 회장의 체포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은 장이 자신의 핵심 요새에서 조차 무력(無力)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시진핑이 장을 추격하기 위해 우세를 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공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는 시 주석의 취임 직후부터 중국 전역에서 수천 건의 부패관리 사건을 처리했고, 현재 상하이에서 조사 중이다. 중기위의 반부패운동 전략은 우선 가장 취약한 부패 관리들을 잡아낸 후 이들과 연결된, 즉 부패의 몸통과 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관리들이 드러나게 한다. 이 과정은 핵심 표적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포획될 때까지 계속된다. 결국 최종 표적은 전면 포위돼 속수무책이 된다.
‘교착상태’
관영 매체 신화사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중공 관리 8만 5000명이 부패관련 조사를 받았다.
이 광범위한 반부패 운동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26일 시진핑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부패 세력과 반부패 세력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시의 발언이 있은지 나흘 뒤, 고위 관리 4명에 대한 처벌이 발표됐다. 그들은 중국군 최고 실력자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 석유방 페트로차이나의 전 회장 장제민(蔣潔敏)과 왕용춘(王永春), 전 공안부 부부장 겸 전 610사무실 (파룬궁 박해 전담 부서) 주임인 리둥성(李東生)이었다.
장쩌민파 소속의 고위 관리들이 한꺼번에 일망타진 되는 극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장파는 계속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서 발행하는 중국어 잡지 ‘차이나 어페어스(China Affairs, 中國事務)’의 우판(伍凡) 총편집장에 따르면, 중국군은 장쩌민이 임명했던 지금은 퇴임한 궈보슝(郭伯雄)을 계속 따르고 있다. 우판은 “중국의 7개 군(軍)행정 지역들 가운데 광저우(廣州)와 베이징 군구를 포함해 몇몇 군구가 시진핑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들은 궈보슝과 궈보슝 무리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NTDTV에 말했다.
궈보슝에 의해 군이 시진핑에 불복종하는 상황은 당 중앙에 저항하는 장쩌민파의 오랜 행동패턴과 일치한다.
후진타오는 10년 동안 중국공산당의 이름뿐인 지도자였다. 후진타오가 공식적으로 국가주석이었을 때, “명령은 중난하이 문밖을 나가지 못하다”는 속담이 유행했었다. 중난하이는 중국공산당의 본부로 베이징에 있다.
시진핑이 중공의 완전한 총책을 맡으려면 그것은 장쩌민파 즉 장쩌민을 처벌해야만 가능하다.
‘사활(死活)’
시진핑이 반부패 운동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 더욱 강력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반부패 운동의 성패에 시의 사활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6일 시진핑은 정치위원회에서 한 연설에서 “부패에 대항해 싸우려면 죽고 사는 것과 평판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당 최고책임자로 공식 임명되기 전,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시진핑을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한 장쩌민파의 쿠데타 계획이 드러나면서 시진핑은 장과 그 일당을 상대로 반부패 운동을 일으켰다.
2012년 2월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에 주재한 미국 영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뒤 중공 중앙의 손에 넘겨져 베이징으로 압송됐다. 이 과정에서 왕리쥔은 장쩌민과 저우융캉(周永康)이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를 중공 총서기로 앉히기 위해 시진핑 취임 직후 시를 제거하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시진핑에 대한 위협은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끝이 아니었다. 대기원은 2013년 베이다이허(北戴河) 당 지도부 회의가 열리고 있던 시기에 시진핑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번은 저우융캉이 한 회의장에서 시한폭탄으로 암살을 시도했다. 다른 한번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던 시진핑을 독침으로 암살하려고 했다.
미국서 발행되는 중국어 잡지 월드저널(World Journal)은 이번 달 6일 궈보슝의 쿠데타 계획에 관한 소문이 중국군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고 보도했다.
시와 장의 권력투쟁, 그 동기는?
서구 언론들은 시진핑과 장쩌민 간의 권력 투쟁의 무자비성을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공 정치판이 잔인하다는 전제하에 시와 장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근본적 이유를 놓치고 있다.
시진핑이 자신에 대한 장파의 암살 기도를 알게 된 이상 장파는 시에게 정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장쩌민은 왜 시진핑을 자신의 적으로 선택해야 했을까? 파룬궁 박해가 바로 그 이유다.
장쩌민은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보시라이, 리둥성, 그 밖의 중공 최고위 관리들과 음모를 꾸며 중국 국민을 상대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다.
파룬궁정보센터의 언론 담당에 따르면,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 수련자들을 박해하는 운동을 시작한 이래 파룬궁 수련자 수십만 명이 감금됐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9년 1억 명에 달했던 전통심신수련법인 파룬궁 수련자들을 없애려 했던 것이다. 생활 속에서 진선인(眞善忍)의 원리를 실천하던 선량한 시민들을 범죄자로 몰아넣었다.
중공은 수련자들을 감금해 고문과 세뇌를 가했다. 중국서 벌어지는 파룬궁 박해 관련 소식을 전하는 밍후이망(Minghui.org, 명혜망)에 따르면, 고문과 학대로 사망한 확인된 수련자만 3776명에 이른다. 하지만 파룬궁 박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은폐로 인해 실제 사망자 수는 몇 배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파룬궁 수련자들은 강제장기척출을 위한 표적이 됐다. 강제장기적출 실태를 조사한 데이비드 킬고어와 데이비드 메이터스가 2011년에 펴낸 공동저서 ‘핏빛 장기적출(Bloody Harvest)’과 탐사보도전문기자인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이 쓴 ‘학살(The Slaughter)’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8년까지 파룬궁 수련자 6만 2000명이 장기 적출로 살해됐다.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장기적출로 인한 사망자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과 장쩌민파는 시진핑을 두려워한다. 시진핑은 이 반인륜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파룬궁 박해를 끝낼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이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요구가 쇄도할 것이다.
장쩌민파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권력을 다시 잡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결과, 시진핑 암살 시도까지 저지르기에 이른 것이다.
부패 체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부패척결을 구실로 삼은 중공 최고책임자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장쩌민 파를 상대로 한 시진핑의 부패 척결은 단순히 장파만이 아니라 중공 체제 자체를 표적으로 한다.
장쩌민이 중국 대중들 사이에서 어릿광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장은 자신이 중국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인식을 당 내에 퍼뜨렸다. 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당 전체에 부패를 만연시켰고 그 대가로 장은 관리들의 충성심을 얻을 수 있었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종종 중국공산당의 부패 양상에만 주목해 장쩌민이 저지른 부패의 규모를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장쩌민의 부패 규모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또, 중공의 부패를 다루는 분석가들은 중국의 부패 문제가 중국 국민에겐 얼마나 긴급한 사안인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시민들은 부패에 대해 생각할 때, 불빛을 번쩍이며 거리를 쌩하고 지나가는 고급 수입차나 관리들의 애첩, 사치스런 식사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암에 걸리는 곳이라는 것, 오염된 식품, 유독한 물, 숨이 턱턱 막히는 대기오염에 대해 생각한다.
중국 국민들은 장쩌민이 권력을 쥐기 전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 시스템 거의 폐지된 상태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장쩌민 지배 하에서 어떻게 노교소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커졌는지를 알고 있다.
중국인들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처벌하는데 사용했던 저우융캉이 고안한 ‘(사회)안정유지관리시스템‘이 이제 자신의 농장과 집을 당국에 빼앗겨 항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이용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 시민들은 윤리성이 철저히 파괴된 사회를 보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끔찍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한 나라의 도덕성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자문한다.
장쩌민 처벌
부패를 이용한 통치 체제를 격파하는 가장 큰 상징은 장쩌민을 처벌하는 것이다. 당의 주요 핵심 관리들이 장쩌민이 시진핑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볼 때 장이 던지고 있는 영향력의 그물이 소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시진핑은 반부패 운동으로 정화된 중국공산당을 국민들이 지지해 줄 것을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 국민들의 당에 대한 신뢰를 되살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은 미래로 나아가는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다. 운동이 끝나면 한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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