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것이라면 후진국이라 별로 안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대부터 근세조선까지 중국으로 부터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하여 공산주의 정권이전의 중국과는 인연이 깊어 한번 음미해 볼만하다.

중국에는 조상이 덕을 쌓으면 자손들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있다. 청나라 때 한 지방에 부유하지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생 착하게 산 덕분에 그의 손자는 과거 시험에서 실력은 조금 모자랐지만 장원이 됐다. 

청나라 건륭(乾隆) 시기, 양주에는 류경정(柳敬亭)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빼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경(經)·사(史)·자(子)·집(集)에 통달했다. 부자였던 그의 조부 류약겸(柳若謙)은 베풀기 좋아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류 어르신’으로 불리며 존경받았다.

류경정은 19세 되던 해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과거 보러 경성으로 떠났다. 류경정과 하인은 가는 길에 방문사(方文寺)에서 묵게 됐는데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 창문 밖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퉁소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 보니 달빛 아래 젊은 서생이 가부좌를 하고 커다란 향로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눈처럼 하얀 옷에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손으로는 옥퉁소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다.

류경정은 음악에 능통했기 때문에 이 젊은 서생의 퉁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며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젊은 서생은 연주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류경정을 보고는 역시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소생은 강절(江浙) 지역 출신의 서생 진기운(秦起雲)이라고 합니다. 지금 과거 보러 경성으로 가던 중에 갑자기 흥이 돋아 한 곡 연주해봤습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는지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시·사와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야기하면 할수록 마음이 통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경성까지 함께 동행하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재능과 학식에 탄복했다.  류경정은 이번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기운을 만나고는 세상에 자신보다 나은 인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일 후, 두 사람은 경성에 도착해 과거 시험을 치렀는데 모든 수험생들은 각자 방 한 칸에 들어가 혼자서 치러야 했다. 시험지가 배부되자 류경정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신들린 듯 단번에 멋진 글을 써 내려 갔다. 그리고는 스스로 매우 흡족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감독하는 관리가 수험생들의 방에 불을 밝혀 줬고 수험생들은 밤새도록 답안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시험의 마지막 문제는 대련(중국에서 문과 집 입구 양쪽에 거는 글귀)이었다. 류경정은 첫 구를 보고 마음이 조금 떨렸다. 첫 구는 ‘숯은 검지만 불타면 빨갛고 재는 눈처럼 희구나(炭黑火紅灰似雪)’ 였다. 이 일곱 글자는 같은 대상을 세 가지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정말 보기 흔치 않은 특별한 구절이었다.

이 구절은 몇 년 전 한림원의 한 나이 든 한림이 쓴 글이었다. 류경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구절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진기운도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밤이 깊고 피곤함이 밀려와 류경정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쳤다. 눈을 뜨고 보니 백발의 노인이 앞에 서 있었다. 노인은 그의 답안지를 한 번 보더니 “젊은이, 자네의 글에는 맞지 않은 부분이 아주 많네!”라고 말했다. 류경정은 그 노인이 박식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급히 “선생님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노인은 그의 답안지에서 적절하지 않은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려주었다. 류경정은 속으로 감탄하며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노인은 “랑이리(浪依離)라 하오”라고 대답했다

류경정이 이상하게 여겨 “랑(浪)이라는 성도 있나요?”라고 묻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건 묻지 말게. 그 마지막 대구 문제는 풀었는가?”라고 말을 돌렸다. “소생의 학식이 많이 부족하여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구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인은 “이 구절은 매우 교묘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대구로 쓸 구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네. 자네 집에 밭이 있나?”라고 물었다.

류경정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노인은 다시 무엇을 심느냐고 물었다. 류경정이 “밀을 심는다”고 하자 노인은 “그게 바로 답이 아닌가? 밀이 어떤 색인가? 밀의 껍질과 밀가루는 어떠한가?”라고 말하며 웃었다. 류경정은 이 말을 듣자마자 책상을 탁 치면서 “깨달았습니다!”라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에서 들었던 말은 뚜렷하게 기억났다. 류경정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붓을 들어 다음 구절을 썼다. ‘밀은 노랗지만 밀기울은 자주색이고 속살은 서리 같다네(麥黃麩赤面如霜).’

3일 후, 시험관이 건륭제를 알현해 세 장의 시험지를 올리고 황제가 장원을 정해주길 청했다. 그중에는 재능과 학식이 가장 뛰어난 진기운과 류경정의 시험지가 포함돼 있었다.

건륭제는 양심전(養心殿)에서 세 장의 답안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진기운을 장원으로, 류경정을 2등으로 정하고 붓을 들었다. 그런데 황제의 붓은 류경정의 시험지 위에서 멈췄다. 답안지에 쓰인 마지막문제의 대련을 보고는 ‘이 대련은 정말 귀신이 쓴 것처럼 빼어나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그때 붉은 먹물이 류경정의 이름 위에 떨어졌습니다. 건륭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늘의 뜻이구나. 글은 진기운만 못하나, 조화로움은 류경정이 한 수 위다! 하늘이 정한 장원이로구나!”

이 소식이 양주에 전해지자 류씨 집안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지방관과 지역 유지들도 몰려와 축하했다. 류경정이 집에 돌아와 꿈 이야기를 하자 조부인 류약겸은 감동하며 “조상께서 덕이 많아 자손이 그 은혜를 입는구나!”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했기에 그의 조부 류약겸은 손자 류경정이 관직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덕을 쌓았다.

하루는 밭에 일하러 갔다가 난데없이 비석 없는 묘지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 묘지는 가난한 선비의 묘지였는데 그의 가족들은 죽은 후 시신을 묻을 곳이 없자 류 어르신이 잘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거기에 묻은 것이다. 류약겸은 그 사실을 알고 책임을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선비의 가족에게 돈까지 보태줬다.

그 후, 매번 농번기가 되면 류약겸은 무덤을 피해 밭을 양옆으로 갈게 했다. 그래서 무덤과 이어진 땅은 비어 있게 됐다.

봄이 되어 밭을 갈 때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어르신, 올해는 빈 땅을 갈아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권했지만 류약겸은 생각도 하지 않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한쪽을 비워두어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자마자 그는 깨달았다. 꿈에서 알려준 ‘랑이리’라는 말은 류경정의 꿈에 나타난 그 노인의 이름이 아니라 ‘한쪽을 비워두어라’는 뜻이었다!  ‘랑’은 중국어에서 비켜주다는 뜻이 있고 ‘이리’는 밭갈이라는 뜻이다.

류약겸은 급히 제사 지낼 향초와 종이를 준비하여 사람을 시켜 묘지 앞에 세울 비석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그 비석에 ‘한쪽을 비워둔 은인의 묘’라고 적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과 후대 사람들은 류약겸의 덕행이 류경정을 장원급제하게 만든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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