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를 팔기 위한 살인: 중공 정부가 벌이는 은밀한 국책 사업

 


[데이비드 킬고어, 캐나다 전 아태 담당 국무장관]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사악’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 정부도 자기 국민을 잡아다가 “아무 재판도 거치지 않고 너희들을 죽일 것이고, 너희 몸에서 주요 장기를 팔아넘기겠다.”라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NTDTV 제작부

출처 : http://ntdtv.co.kr/contents_view.asp?news_divide01=1002&news_divide02=2015&news_id=9978

 

최근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군 최고요직인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의 네 부장이 모두 교체됐다. 군사작전을 책임진 총참모부와 인사권을 장악한 총정치부는 후진타오 측근이 임명됐고 총장비부장은 시진핑과 가까운 장유샤가 임명됐다. (TV 캡쳐화면)

 

최근 중공 군부 고위층의 인사이동이 빈번한 가운데 최종적인 권력의 향배가 드러났다.


10월 15일 중공 국방부 사이트 최신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네 총부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총참모부는 팡펑후이(房峰輝. 61) 상장이 총참모장이 됐고, 장양(張陽)이 총정치부 주임이 됐으며 자오커스(趙克石)는 총후근부장, 장유샤(張又俠)가 총장비부장이 됐다.


총참모부 물갈이 후진타오의 완승


그동안 줄곧 장쩌민(江澤民)파가 장악해왔던 총참모부는 이번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됐다. 총참모부는 그동안 줄곧 장쩌민의 영향력하에 있었다. 하지만 장쩌민파 출신의 현 총참모장 천빙더(陳炳徳·71)는 나이제한으로 18대 이후 퇴임할 것으로 예상됐다.


외부에서는 이번에 후진타오(胡錦濤)가 자신의 심복인 현 베이징군구 사령관 팡펑후이(房峰輝·61)를 시기를 앞당겨 후임으로 임명한 것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총참모부는 사실상 군대 지휘권을 장악한 곳으로 중공군의 핵심요직이다. 후진타오는 그동안 줄곧 참모장연석회의를 만들어 군부 인사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현재 총참모부는 이전의 ‘1정 6부’에서 ‘1정 5부’ 구조로 변경됐다. 원래 6명이던 부총참모장중에서 2포병부대 출신의 웨이펑허(魏凤和), 난징군구 출신의 차이잉팅(蔡英挺)이 낙마했다. 또 원래 부총참모장이었던 마샤오톈(馬曉天·63)은 공군사령관으로 직책이 변경됐다. 그 외 수썬(树森), 장친성(章沁生·64), 쑨젠궈(孫建國) 등 다른 세 명의 부총참모장은 유임됐다. 새로 부총참모장에 발탁된 사람은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인 왕관중(王冠忠)과 전 총참모장 조리 치젠궈(戚建國)가 임명됐다.


이에 앞서 왕관중이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이 된 것은 사실상 후진타오의 승리로 풀이된다. 왕관중은 덩샤오핑(鄧小平)이 후진타오에게 배치한 인물로 후진타오의 오랜 심복이다.


군부 내에서 장쩌민의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며 그 상징적인 조치가 장쩌민의 비서 자팅안(賈廷安·59) 상장(上將·대장에 해당)이 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에서 물러난 것이다. 그 정도로 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자리는 막중한 자리로 군부 내 주요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다. 이후 후진타오 인사들이 급속하게 부상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면적으로 판세를 장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후진타오가 총애하는 총정치부 주임 장양


총정치부는 장양이 원래 주임 리지나이(李繼耐)를 대신해 일하고 있었다. 리지나이는 1942년생으로 이미 70세를 넘겼기 때문이다.


홍콩 매체들은 군사문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장양이 19일 오후 총정치부에 부임했다고 보도했다. 재신망 역시 장양이 총정치부에 부임했다고 보도했다.


원래 알려진 군사위원회 명단 중에는 장양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대신 총정치부 부주임이자 장쩌민파인 자팅안(賈廷安·59), 총정치부 부주임이자 공청단파인 둥스핑(童世平), 시진핑의 태자당 소속인 해군 정치위원 류샤오장(劉曉江), 현 총후근부 정치위원 류위안(劉源·61), 이포병부대 정치위원 장하이양(張海陽·63)  등이 모두 유력한 총정치부 주임 후보들이었다.


때문에 장양이 최근 총정치부 주임에 임명되자 그를 놓고 군부 내의 다크호스로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장쩌민파 인물인 자팅안, 태자당인 류샤오장 등이 이미 중앙 군사위원회 각축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양은 후진타오가 직접 발탁한 장성이다. 2000년 8월 42집단군 정치부 주임으로 승진한 후 잇따라 세 차례나 승진을 거듭했다. 2002년에는 42집단군 정치위원, 그 후 2년도 안돼 53세의 장양이 광저우 군구 정치부 주임이 됐고 2006년 7월에는 중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9월 광저우군구 정치위원이 됐고 17대 중앙위원에 당선됐다. 지난 2010년 7월 상장으로 진급했다.


지난 2월 왕리쥔(王立軍) 사건이 발생한 후 중공 군사위원회의 각 대군구에서 후진타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때 장양은 광저우 군구를 대표해 선도적으로 충성을 표현했다.


올해 6월 5일에는 인민일보에 ‘시종 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 영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글에서 여러 차례 군대에 대한 후진타오의 절대적 영도를 언급했다. 이후 이 문장은 여러 관방매체에 전재되거나 또는 인용됐다.


중공 군부에서 총정치부 주임은 인사권을 장악한 곳이다. 중공 군대 체계에서 고위 간부로 승진하려면 총정치부 간부의 추천이 매우 중요하다.


총정치부 인사권은 다른 측면에서도 반영되는데 군부에서 군관들은 부패 내지는 정치적인 문제로 낙마하는데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이 바로 총정치부다. 물론 인사권은 최종적으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갖고 있지만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총정치부 주임의 제청과 추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에 장양이 총정치부 주임이 됐다는 것은 장차 중공 군부 내 인사권에 상당한 발언권과 함께 중공 정국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총후근부 류위안 승진 실패


중공 국방부 사이트에 따르면 자오커스(趙克石·62) 상장이 랴오시룽(廖錫龍·72)의 뒤를 이어 총후근부 부장으로 임명됐다.

사실 외부의 주 관심사는 군사위원회 부주석 가능성이 점쳐졌던 총후근부 정치위원 류위안이 원래 자리에 유임된 것이다.


2011년 12월 28일 오후 류위안은 총후근부 확대회의 강연에서 우선 후진타오를 찬양한 후 랴오시룽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류위안은 또 당시 총후근부 부부장 구쥔산(谷俊山)을 낙마시킬 때 자신과 랴오시룽이 공동으로 책임을 졌다.


류위안은 원래 시진핑이 중시하는 장성으로 알려졌고 시진핑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문에 시진핑이 그를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임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보시라이 사건에 연루된 까닭에 후진타오가 마음을 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총장비부장은 장유샤는 시진핑 인맥


중공 국방부 사이트에서는 이번에 창완취안(常万全·63)을 대신해 장유샤(張又俠. 62)가 총장비부장에 임명됐다고 했다.


이에 앞서 본지는 일찍이 차기 중앙주석에 시진핑이 총애하는 장유샤가 총장비부장으로 승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 바 있다.


2011년 시진핑이 각 대군구를 방문했을 때 장기간 선양군구를 책임졌던 군사위원회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69)가 수행한 적이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선양군구의 장유샤가 쉬차이허우의 관심하에 시진핑에게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보시라이가 윈난에 있던 14집단군을 시찰한 것이 알려진 후 14집단군 출신인 장유샤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낙마한 후 선양군구는 신속히 보시라이와 단절하고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장유샤는 올해 62세로 현직 7대 군구 사령관 중에서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동시에 태자당 출신이며 청두, 난징, 선양 등 여러 군구에서 경험을 쌓은 바 있다. 2007년 중장으로 승진했고 2011년에는 상장으로 진급했다.


그와 그의 부친인 장쭝쉰(張宗遜)상장은 장전, 장하이양 부자(父子)와 함께 해방군 역사상 보기 드문 부자 상장이다. 장유샤는 성격이 거친 편으로 1979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고 현재 7대 군구 사령관 중에서 유일하게 실전 경험을 갖고 있다.


장유샤와 장하이양은 또 시진핑과의 관계가 아주 좋다. 과거 중공이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 장쭝쉰과 시중쉰(習仲勳)이 산깐닝 야전집단군에서 같이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장쭝쉰이 집단군 사령관, 시중쉰이 정치위원을 맡아 6개 여단을 관할했다. 장유샤는 또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산시(陕西)성 출신이다.


진징(金睛) 기자

로크 주중 美 대사 차량을 습격한 배후는

9월 18일 로크 중국주재 미국대사의 차량이 대사관 입구에서 시위대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영상 캡처화면)

 

9월 18일 美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 입구에서 게리 로크 중국대사의 차량이 약 50명의 중국 시위대에 포위됐으나 중국보안요원의 보호 하에 겨우 대사관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약 50명의 시위대는 손에 오성홍기를 들고 있었고 미국 대사관 주변을 맴돌며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벌였으며 길가에는 10여 명의 경찰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건현장 사진을 보면 검은색 차량이 대사관에 들어가려다 시위자들에 포위됐다. 하지만 중국공안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고 단지 차량을 파손하지 말라고만 외쳤다. 이때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차량 전면 우측에 꽂힌 성조기를 뽑았다. 한바탕 소란이 발생한 후 수수방관하던 무장경찰이 차량 앞을 가로막았지만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량을 향해 여러 개의 생수병을 집어던졌다. 나중에 차량이 출발한 후에도 시위자들은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면서 대사관 주위를 계속 돌았고 “미국 제품을 배척한다, 미국은 돈을 갚아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렇다면 이번에 로크 미국 대사의 차량이 습격당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꾸몄을까?


우선 미국 대사관 앞에 수십 명의 시위대가 나타나 구호를 외쳤지만 가로막는 경찰이 없었다는 것은 이번 시위가 사전에 중공 경찰 측의 동의를 얻었음을 의미하고 베이징 정법(政法)계통의 배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시위대가 로크 대사의 차량이 미국 대사관 정문에 도착함과 동시에 입구에 나타난 것을 볼 때 로크 대사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크 대사의 일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중공 고위층 인사만이 가능하다.


셋째, 로크 대사의 차량 습격사건이 발생한 것은 공교롭게도 미국의 파네타 국방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군부와 정계의 고위 지도자와 회견하는 중에 발생했다. 아울러 파네타는 하루 뒤인 9월 19일 ‘실종’된 지 2주 만에 업무에 복귀한 시진핑(習近平)과 회견할 예정이었다. 시진핑은 올해 2월 미국 방문 기간에 미국 측에 좋은 인상을 남겼고, 미국 측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왕리쥔(王立軍)이 미국 측에 넘긴 보시라이(薄熙來)-저우융캉(周永康) 모반계획을 알려준 것이다. 시진핑이 미국 국방장관과 회견하기 직전에 로크 대사가 습격당한 것은 시진핑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로크 대사의 차량 습격사건을 획책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일 관계가 긴장될 때 중·미관계 역시 더욱 긴장되게 만들어 중공 최고위층에게 압력을 가하고 중국의 현 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을 획책한 자와 전국 여러 도시에서 반일시위를 주도한 배후의 계획자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18대 이후 권력을 잃고 청산될 처지에 몰린 저우융캉을 중심으로 한 장쩌민(江澤民) 파 잔당들임이 분명하다.


샤샤오창(夏小強·중화권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