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시바카시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물이 길거리에 삽시간에 고여 차가 다니기가 힘들었다. 물을 헤치고 치트라 집에 도착했다.

밀폐된 집안은 습했다. 마음만큼 방도 어두웠다. 갑자기 내린 비로 방안은 눅눅하고 답답했다. 천장에선 낡은 선풍기가 푸득푸득 돌고 있었다. 하지만 선풍기는 방안을 더 덥게 만드는 것 같았다.


기자가 들어가자 TV를 보는 치트라가 눈앞에 들어왔다. 기자를 보자 잠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부끄러운 듯 덮고 있던 얇은 담요를 코 위까지 더 올렸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치트라는 14세 소녀였다. 20대 남성인 기자를 보는 순간 상처를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치트라는 60cm 정도 되는 파란색 탁자 위에 누워 있었다. TV는 치트라에게 유일한 친구였다.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려고 하지만 잘 돌아가지 않았다. 몸에 앙상하게 붙어버린 손과 마디가 사라진 손가락으로는 리모콘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두번ㆍ세번ㆍ네번 눌러야 채널 하나가 넘어갔다.

치트라는 4년 전 폭죽공장에서 일하다 화재로 온몸이 타버렸다. 손가락은 마디가 모두 붙었다. 입도 타버려 입술은 흉하게 밑으로 처졌다. 턱과 팔은 가슴에 붙어 움직일 수가 없다. 인근 대도시 마두라이에 있는 병원에서는 모두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더 큰 병원에 가봐야 했지만 차로 2시간을 달려 마두라이에 가야 했고 거기서도 1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화상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 있는 첸나이에 닿을 수 있었다. 빚에 허덕이는 치트라 가족 형편상수술은 불가능했다.

폭발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인도 소녀 치트라. 어둠속에서 TV만 벗삼아 살던 소녀에게 조금씩 꿈이 피어납니다. 한국인의 후원으로 진료를 받게 됐습니다. /박종인기자

4년 동안 치트라는 한번도 바깥에서 걸어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부끄러워서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치트라는 온종일 누우면 누워 있으면 하루종일 무슨 생각하냐 보니까 "잠시 말을 안하다가 예전에 바깥에서 뛰어 놀던 생각, 학교에서 공부할 때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치트라 가족도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비와 약값으로 약 4만2000루피(약 98만원)을 빌렸는데 이자만 매달 4%씩 약 3000루피(7만원)이었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공부해야 할 나이 있는 16살 언니와 11살 남동생 모두 나가서 인쇄 공장에 나가 돈을 벌고 있었다.

엄마 순더람마(42)씨는 "나도 원래는 나가 벌어야 하는데 치트라 간호하느라 나갈 엄두가 안난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치트라를 지켜야 한다, 만약 애가 낫는다”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벌러 가겠다.

이제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성형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유니세프가 지원한 후원금으로 한국기아대책은 치트라를 대도시 첸나이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게 할 계획이다. 치트라에게는 새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술하면 얼굴이 깨끗해진다고 설명하자 치트라 눈은 초롱초롱해졌다. “낫는다면 정말 열심히 뛰어 놀겠어요”라며 또“꼭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4년 내내 치트라 곁을 지켜온 엄마 순더람마(42)씨는 두 손을 모았다. “수술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너무 기뻐 눈물이 난다”며 “치트라가 나을 수만 있다면 훌륭한 아이로 길러 고마운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선물로 받은 토끼인형에 치트라는 그 자리에서 스위티라는 이름을 지었다. “스위티를 보면서 도와주신 한국에 있는 모든 분들을 생각할게요.” 치트라는 보드라운 스위티를 계속 쓰다듬었다.

치트라 엄마 순더람마씨는 기자가 사라질 때까지 배웅했다. ‘와나감(인도 타밀어, 정말 감사합니다)’하는 치트라 엄마에게 어느덧 새로운 희망이 보였다.



소녀, 사랑으로 다시 '웃음꽃'

[크로스미디어 'Our Asia2' 그후]
인도 성냥공장 12세 문니스와리

"훌륭하게 커서 꼭 보답할게요"

[크로스미디어 'Our Asia2' 그후]
학교를 다닐수 있게 된 루빠



[인도 시바카시=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