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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수(왼쪽) 국방장관과 김정일 위원장
96년 강릉 잠수함 사건땐 50일간 집에 못들어가
치과 치료시기 놓쳐 틀니 해 · 14년된 콩코드 아직도 몰아
軍복무 단축, 종교적 병역 거부 수용 등 “現정부 코드와 타협” 지적도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입력 : 2007.10.19 22:57 / 수정 : 2007.10.20 10:01
- 최근 김장수 국방장관의 행태에 대해 현역 및 예비역 군인들은 물론 정치권, 인터넷상의 댓글을 포함한 여론 등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지난 10여 년간 군이나 군 수뇌부가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은 많지만 이번처럼 군 수뇌가 사회 여러 분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면 김 장관은 정말 소신이 뚜렷하고 의연한 모습을 견지해온 사람인가. 지난해 11월 그가 국방장관에 내정됐을 때 군 안팎의 대체적인 반응은 “현정부 코드와 별로 맞지 않는 듯한데 어떻게 육군참모총장에게 장관으로 곧바로 파격 발탁이 됐을까”하는 것이었다.
줄곧 순수 야전군인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한 그는 작전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군내의 대표적인 작전통이다. 육사 27기로 소위 계급장을 단 뒤 9사단 대대장, 7사단 5연대장,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1군사령부 작전처장, 6사단장, 합참 작전기획부장, 7군단장을 역임했다.1996년 9~10월 1군사령부 작전처장 시절 강릉 잠수함 사건 때문에 50여일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며 작전을 지휘하느라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병원에 가지 못해 결국 이 다섯 대가 모두 썩어 틀니를 해야 했다. 7군단장 시절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지휘관’ ‘부하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는 지휘관’으로 부하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고 당시 그의 밑에서 일했던 장교는 전했다. 그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봤던 한 관계자는 “평소 김 장관은 ‘아들도 육사를 나와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데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의 아들은 육사 62기로 임관해 현재 육군 중위로 복무 중이다.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도 그의 검소한 생활이 화제가 됐었다. 14년이나 된 1993년식 콩코드 차량을 김 장관이 갖고 있는 사실이 공개돼 의원들로부터 “매우 청빈한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국회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장관은 비교적 소신 있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김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은 6·25전쟁 이후 최대 안보 위기이며 이로 인해 남북간 전력 불균형이 발생한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중심당 이인제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하고 “한반도에서 위협세력은 북한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다. 평화는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힘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평양에서의 꼿꼿한 인사가 화제가 돼 ‘정상회담 스타’가 된 뒤에도 부하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에선 김 장관이 의도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이 부각될 경우 자칫 권력 핵심부에 밉보일까 우려해 “군대예절이 원래 그렇게 하도록 돼 있다. 오랜 군생활로 그런 행동이 몸에 배 그런 것이다”라고 해명하는 데 주력했다. 김 장관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국방부에 복귀해 참모들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뒤 “공연히 그런 고생할 필요 없다. 구구하게 해명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지시를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또 정상회담을 전후해 NLL 문제 등과 관련해 일부 참모들에게 “솔직히 고민스럽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NLL에 대한 입장을 바꾼다면 더 이상 내가 아니지 않겠느냐”며 이름과 장관직을 걸고 소신을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 장관이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이후의 국방장관 가운데 가장 군의 자존심과 권위를 세워준 장관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군 일각에선 김 장관의 일부 행태를 들어 결국은 현정부의 코드와 타협하는 스타일이고 그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 장관이 육군참모총장이었을 때 군사법제도 개선안 추진이 가장 큰 이슈중의 하나였다.
현 정부 권력 핵심부가 이른바 군 개혁의 핵심과제중 하나로 군사법제도 개선을 추진했으나 야전 지휘관들의 반발이 커 진통을 겪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이런 군내 여론을 대변해 한동안 반대했으나 막판엔 ‘조건부 동의’를 하며 ‘타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군 수뇌 가운데엔 이상희 합참의장만이 유일하게 끝까지 반대했었다.
지난해 11월 장관에 취임한 뒤엔 군 안팎의 비판과 반발이 많아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역점과제들을 ‘해결’했던 것도 그런 예로 꼽힌다. 보수진영이 거세게 반대했던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을 2012년4월까지 전환키로 합의한 것,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일었던 군 복무기간 단축을 결정한 것, 국방부가 계속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던 종교적 병역거부를 수용한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김 장관이 자신의 명예와 관련해선 언론과 여론 등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 일간지에 한 보수단체가 광고를 통해 김 장관의 방북을 만류하며 ‘제2의 이완용이 되려 하느냐’라고 한 데 대해 노발대발, 법적인 대응까지 검토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으나 참모들이 만류해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김 장관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한다.
“김 장관이 육군참모총장에서 국방장관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됐을 때 군 일각에선 사실 두 가지 우려가 있었다. 하나는 국방장관은 정치적인 판단과 처신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야전에서 곧바로 올라와 장관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 장관이 소신이 있으면서도 일부 대가 약한 면이 있어 결국은 현 정부의 코드에 맞추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이 두 가지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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