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이 의상이나 가전제품, 휴대전화 등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작년 2월 파리에서 열린 프레타포르테에서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선보인 필기체의 한글 디자인 의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후 이상봉 씨의 한글 디자인을 LG전자에서 출시한 휴대전화에도 적용되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휴대전화의 뒷면에 새긴 샤인폰은 출시 2주 만에 영국에서만 20만 대가 팔렸다. 최근에는 손글씨(캘리그래피)로 장식한 가전제품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소위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하는 ‘데카르트(Tech + Art)’의 새로운 경향이다. 이 밖에도 한글 디자인은 서예, 서각, 전각, 한글춤, 도자기, 의상, 넥타이·스카프·가방·지갑 등 액세서리와 패션소품, 티셔츠, 생활용품 등 생활과 산업의 제반 분야에 확산되어 조용한 디자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한글이 세계 문화상품 시장과 디자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렌은 “한글은 현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라고 하며 세계 디자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한글은 완성형 문자수가 11,172자로 세계 어떤 언어보다 많은 문자를 조합해 낸다. 그 중 일반적으로 쓰이는 완성형 문자수는 2,350자이다. 로만 알파벳 26자, 일본어 104자보다 월등히 많아 디자인 측면에서 소재가 다양하다. 한글이 우리의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국 수상 대처는 “Design, or Resign(디자인하라, 아니면 사임하라)”이라는 말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갈파했다. 제품의 부가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어 디자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한글이라고 하는 강력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한글 본연의 현대성과 조형미를 토대로 다양한 글꼴을 개발하고 색상, 크기, 명암, 굵기, 기울기 등을 응용한다면 1만 자가 넘는 완성형 문자로 수천억 개에 달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세계적 명품인 펜디, 구찌, 페라가모의 디자인 문양은 단순히 영문자 몇 개로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한글은 훨씬 다양하고 심미성있게 디자인될 수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응용한 디자인이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면 우리나라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제품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글 하나만을 소재로 삼아 다양한 생활용품, 산업용품에 적용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수십 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한글이 우리에게 주는 블루오션이며 데카르트 마케팅의 새로운 개척지이다.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순위(세계 25위)가 경제력 순위(세계 13위)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것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이미지가 빈약해서다. 옥스퍼드 언어학 대학의 연구 결과 한글은 과학성, 독창성, 합리성에 있어서 현존하는 문자 중 세계 1위로 판명이 났다. 이에 더하여 예술성까지 함유한 것으로 알려진다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문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국가브랜드 차원에서 한글 디자인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한류 바람으로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한글이 아름답고 디자인적 감수성이 풍부한 한글의 이미지를 그들에게 전달한다면 한글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가 우리 민족 최대의 기회라고 한다면, 한글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면, 한글은 ‘한류의 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유의 핵심 소재로서의 한글이 한류와 함께 세계 곳곳에 전파되어 ‘홍익 한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한글을 응용한 패션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디자이너다.

그의 한글 디자인은 현재 옷 뿐 아니라 핸드폰, 이불 등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조만간 그의 한글이 들어간 담배도 나올 예정이다.


그는 9월말 파리 컬렉션과10월 열리는 모스크바 컬렉션 참가를 앞두고있다.
"파리 컬렉션 참가는 올해로 벌써 6년째네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여성복 디자이너 중 올해 파리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는 제가 유일한 것 같아요. 한때 국내 디자이너가 7명까지 참가했던 적도 있는데 다들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 남아 안타깝습니다."
2002년 처음으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했던 그는 그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파리 컬렉션과 전시회를 통해 옷을 선보여 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해에는 20개국에 1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는 실적을 올렸다.
그는 "한 번 고개를 돌린 바이어를 다시 잡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처음엔 힘들더라도 꾸준히 전시회와 컬렉션에 참가해 바이어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9.30 열리는 파리 컬렉션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정착한 한글 패션 뿐 아니라 소나무 그림이 들어간 의상도 선보일 예정이다. "패션쇼에 앞서 전시회를 통해 소나무 의상을 선보였는데 바이어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여기에 용기를 얻어 패션쇼에도 소나무 의상을 선보이기로 했죠. "
그의 한글 디자인 역시 처음에는 "과연 이게 통할까"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이름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데 크나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그의 디자인은 이제 패션 이외의 분야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핸드폰에 이어 최근에는 그의 한글 디자인이 적용된 이불이 출시됐으며, 조만간 그의 한글이 들어간 담배와 찻잔도 나올 예정이다.
"KT&G의 의뢰로 저의 한글 디자인이 담뱃갑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이 담배 출시 행사가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데 이것과 겸해 모스크바 컬렉션에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러시아는 현재 중국과 함께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목하는 큰 시장인데 참 좋은 기회죠."
10.26 열리는 모스크바 컬렉션에서는 김소월의 시구를 담은 한글 패션과 함께 러시아 문호 푸슈킨의 글을 러시아어로 담은 의상도 선보일 예정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이하늬 씨와 미스 러시아 출신이 함께 모델로 무대에 선다.
그는 "한글처럼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고유의 문화가 외국사람들 눈에는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