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문화(神傳文化)】


글/육문(陸文)
【명혜망 】 청나라 시대 학자이자 문학가인 기윤(紀昀)은 자가 효람(曉嵐)으로 직예헌현(直隸獻縣 지금의 하북성에 해당)사람이다. 건륭(乾隆) 황제 때 진사(進士)가 되어 관직이 예부상서(禮部尚書) 겸 협판 대학사(協辦大學士)에 이르렀다. 일찍이 서고전서관(四庫全書館)의 총찬관(總纂官 역주: 서적 출판 총책임자)을 역임했고 저 유명한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를 만들었다. 정말로 진리를 탐구하고 정화(精華)를 모았으며 심오한 진리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보건대 그의 독서가 얼마나 넓고 광범위하며 그가 들인 공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편집영역에서 가히 정교하고 뛰어난 작품들을 집대성했다고 할만하다. 그는 자신의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견해로 사람됨에서나 저술 중에서 신불(神佛)을 믿고 공경한 이야기들을 선택해 누구도 뒤엎을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관철시켰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의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는 무신론을 타파하는 예리한 무기이다. 그는 책속에서 대량의 사실(事實)을 들어 신불(神佛)의 존재를 입증했고 신불이 세도(世道)와 인심(人心)에 유리함을 선전했다.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7권 제 61편(원서에는 따로 장절 표시가 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서는 독자들이 찾아보는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 표시한다)에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1) 첫 번째 일화:

“한수립(韓守立)의 아내 유씨(俞氏)는 평상시 고모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효성과 공경이 지극했다. 고모 할머니는 오래전에 두 눈을 실명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치료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또 아주 경건하게 신불(神佛)께 기도를 드렸음에도 효과가 없었다. 이때 천성이 아주 교활한 한 사람이 그녀를 속여 “당신의 살을 베어 신등(神燈)을 밝히고 이렇게 신불에게 기도하면 당신 고모 할머니의 눈병이 나을 겁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유씨는 충직한 사람이라 그 사람이 일부러 자신을 속이고 우롱하는 것임을 모르고 정말로 자신의 살을 잘라 등을 밝히고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 사기꾼은 밖에서 그녀를 크게 비웃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으니 고모 할머니의 두 눈이 다시 밝아진 것이다!“

기효람은 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서 “유씨가 속임을 당해 살을 잘라 신에게 기도한 것은 우매한 행위이다(필자 주 : 기효람이 지적하는 것은 살을 잘라 신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우매한 행위이니 다른 사람이 함부로 따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그러나 그녀의 우매한 속에는 신불에 대한 경건함과 윗어른에 대한 순수한 효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경건함과 효성은 끝내 신불을 감동시켰고 신불은 그녀를 도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고 무지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극한 이치가 감겨 있다!”
“신불을 믿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이론에 따라 말하자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확실히 존재하며 또 나타났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런 사실의 출현은 그것에 여전히 도리가 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신불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일부 사람들이 너무나도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할 뿐이다.”

2) 두 번째 일화:

“왕희성(王希聖)이란 이름을 가진 거지가 있었는데 두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조금씩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길에서 보자기를 하나 주웠는데 그 안에는 황금 200금이 들어 있었다. 그는 길가 풀이 우거진 속에 보자기를 감추고는 그곳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황금을 잃어버린 사람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이 흐른 후 장제비(張際飛)라는 이름의 상인이 황급히 달려와 무언가를 찾았다. 왕희성이 그에게 무엇을 찾는지 물었다. 확인 결과 그가 찾으려는 물건이 바로 왕희성이 주은 보자기였다. 이에 왕희성은 보자기를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장제비가 금을 반으로 나눠 그에게 주려 하자 왕희성은 받지 않았다. 장제비는 이에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고 평생 동안 그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왕희성은 “내 몸이 불구인 것은 하늘이 내가 전생에 지은 허물에 근거해 내리신 징벌입니다. 내가 만약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이곳에 앉아 행복을 누린다면 앞으로 보다 큰 징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기어이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 어느 날 왕희성이 한 신묘(神廟) 안에 누워있는데 꿈속에 문득 한 취객이 와서 그의 두 다리를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아주 아프게 잡아당겼는데 취객이 간 후 그의 다리는 곧 정상상태로 회복되었고 행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왕희성은 건륭 기묘년(己卯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기효람은 이에 특별히 “장제비는 우리 집 어른과 잘 아는 사이이며 나도 그를 본 적이 있다. 이 일은 바로 장제비가 직접 내게 들려준 것이다.”라고 썼다.

이어서 기효람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왕희성의 선행은 마땅히 선(善)한 보답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편안히 여기고 다른 사람이 주는 보응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신불(神佛)은 그의 선한 마음을 보고 아주 소중히 여겨 곧 취객이 다리를 잡아당기는 방식을 이용해 그에게 보응을 준 것이다. 이 일화는 앞에서 언급한 일화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기에는 황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역시 지극한 이치를 내포하고 있다.”(기효람이 말하려는 의도는 바로 이런 신비한 일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사실 이는 모두 사실이며 아주 큰 이치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은 하늘의 이치이기에 당연히 지극한 이치이다.)

이어서 기효람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다른 이야기를 말한다.

“전에 과개주(戈芥舟)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우리 지역 『현지(縣誌)』편수관의 편집인원이 상술한 두 가지 일을 『현지(縣誌)』에 포함시킨 것을 비평했다. 황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며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기효람은 이에 대해 “『현지(縣誌)』에는 우리 현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사실들을 적었다. 전체 서적은 체제가 근엄하고 사법(史法)을 구비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기록한 것은 바로 필부들로 하여금 신명(神明)에 감동케 하여 이를 통해 선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각박한 세속을 바꾸려는 것이다. 이는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며 교육적인 의미가 아주 풍부한 진실한 일을 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기효람의 이 문장은 기술과 동시에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해 신기한 일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관점 즉, 무신론의 관점을 반박하고 있다. 과개주는 그의 선배이지만 기효람은 큰 시비 앞에서 양보하지 않고 조리 있게 힘써 반박했으니 이는 그가 유신론의 신앙과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선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각박한 세속을 바꾸려 한다(激發善心,砥礪薄俗)’는 것이다. 이 8자는 바로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해야 한다는 유신론자의 공동 소원을 밝힌 것이다.
“다 쓰러져가는 형세를 돌이켜 든든한 기둥이 되려하는데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라는 말과 “(현지(縣誌)에) 이 두 가지 일을 기록한 것은 바로 필부들로 하여금 신명(神明)에 감탄하게 하여 이를 통해 선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각박한 세속을 바꾸려는 것이다."라는 기효람의 말은 아주 투철하면서도 힘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기효람의 이 문장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한 주제를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자면 바로 다음과 같다.

“엄연한 사실 앞에서 신불(神佛)을 믿고 불법(佛法)을 선전하는 것은 정확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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