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장쩌민 장악 軍권 서서히 잠식

[대기원신문에서 펌]

장쩌민은 권력을 잃게 될 경우 자신의 일가와 측근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파룬궁 탄압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다ⓒ AFP/ Getty Images

[대기원] 제 17기 당 전국대표대회(17대)가 다가오면서 전 현직 국가주석 장쩌민과 후진타오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2006년 사업회보를 들은 후 “전 당의 동지들은 반드시 편안할 때 위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후진타오의 권력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중공 고위 관료들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강호에 있으면 몸을 가누지 못한다(人在江湖身不由己)”는 중국속담처럼 현재 적지 않은 중공 고위 관료들이 서로 눈치만 보거나 목숨을 걸고 한쪽에 서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중공의 관리 중 부패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공의 제도적인 특수성 때문에 관료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공 중앙의 한 관계자는 매일 100억 위안에 달하는 국유자산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개인, 당정부서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에서 반 부정부패의 이유로 고위관리를 처벌하는 것은 파벌간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자를 처벌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방법은 중국인들을 속이고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 가장 좋은 방법 중하나다. 근래 후진타오가 천량위(상하이 시 당서기)와 황쥐(黃菊, 상무부총리, 당 서열 6위) 등 장쩌민 측근 세력을 부정부패 혐의로 축출한 것은 장쩌민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반격이다.


장쩌민의 선제공격 - 후진타오 암살 미수 사건


지난 해 5월 1일 노동절, 산둥성 칭다오를 방문한 후진타오는 미사일 요격용 군함을 타고 황해에서 북해군함대의 훈련을 시찰하고 있었다. 갑자기 후진타오가 타고 있던 군함의 좌우측에 있던 군함 두 대가 후 주석을 향해 돌진하면서 함포사격을 가했다. 다행히 후는 목숨을 건졌으나 함께 있던 해군 병사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후진타오는 즉시 헬기로 현장을 탈출했고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곧바로 베이징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윈난성에 도착한 후진타오는 진상조사를 비롯한 사태수습을 지시한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당시 포를 발사한 군함에 타고 있던 장교가 자백한데 따르면, 장쩌민이 이 암살 명령을 내렸으며 북해군함대 사령관이자 해군 사령원(참모총장)인 장딩파(張定發)가 전화로 직접 이번 작전을 지시했다고 한다.


후진타오가 위험에 빠진 그 순간 장쩌민은 칭다오 근방에 있는 태산(泰山)에서 관광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후진타오는 보복에 들어간다.


지난 해 12월 14일 중국 해군 소식지인 ‘인민해군보’ 한 켠에 “중앙군위위원, 전 해군총사령원 장딩파 동지가 병으로 12월 14일 베이징에서 별세. 올해 63세”라는 기사가 올라왔으나, 신화사나 군 주요매체인 해방군보 등 주요 언론은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소식통에 의하면 장딩파는 암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죽었으며, 유족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후진타오의 역공 - 장쩌민의 수족 제거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진타오는 첫 번째로 감금되어 있던 장쩌민의 정적(政敵) 천시퉁(陳希同)의 보석을 허가해 치료시키는 한 편, 해군 부사령원 왕서우예(王守業)와 장쩌민의 비서이자 군위판공처 주임이었던 자옌안(賈延安)을 부정부패 혐의로 해임시켰다.


후의 세 번째 행동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 지역에 중기위(중앙기율검사위원회) 조사조를 파견해 반 부정부패 폭풍을 일으킨 것이다. 후진타오는 이 조치로 천량위, 황쥐 등 장쩌민의 최측근들을 제거했다. 천량위는 2006년 7월경 장쩌민에 의해 17대에 정치국 상위로 진입할 것으로 내정됐으나, 9월 21일 중기위는 정치국 상위에 ‘상하이 조사공작에 관해’ 제 3부 보고를 올렸다.


보고서에는 천량위의 부정부패의 증거가 담겨 있었다. 이틀 간 진행된 회의 결과 정치국은 찬성 6표, 기권 3표로 천량위를 파면키로 결정했다. 9월 24일 아침 8시, 전용기를 타고 정치국 회의에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한 천량위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베이징 경비구 보위부에 의해 ‘보호’되어 옥천산 제2초대소에 감금된다. 그날 밤 쩡칭훙은 중앙의 결정에 따라 난징군구 보위국 제8지부대에 명령을 내려 상하이 공항 근처에서 천량위의 측근들이 탈출하는 것을 막았다.


후진타오의 군 장악 가속화


후진타오는 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은 이후 장쩌민의 손에서 실권을 빼앗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2006년 6월,대대적인 중앙경위국 인사이동이 시작됐다. 중앙경위국 국장은 여전히 시구이(장쩌민을 보위한 인물) 상장이 맡고 있지만 실권은 후진타오의 위사장(衛士將) 순즈궁 소장이 전부 장악했다. 또한 중앙경위국 소속 각 부서의 담당자를 전원 교체했다.  


2006년 6월 말,후진타오는 10명의 상장을 승진시켰다. 새로 권력을 장악한 상장들은 해방군 각 총부, 각 군 병종, 각 대군구와 국방대학의 책임자들이며 이들 중 일부는 내년 17대 이후 해방군 최고지휘기구인 중앙군위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뒤이은 인사 개편에서 장쩌민의 측근 장딩파를 대신해 해군 부사령원 우성리(吳勝利)가 해군 사령원(참모총장)에 오르고, 공군 사령원 차오칭천(喬淸晨)이 경질되고 쉬치량(許其亮)이 사령원이 된다.  

 

8월 말 후진타오는 다시 28명의 무장경찰 소장을 승진시켰는데, 이는 역대로 가장 큰 규모다. 이처럼 후진타오는 17대 이전에 차근차근 군권을 장악해 가고 있다.


‘부정부패’ 와 ‘파룬궁 탄압’ 건으로 장쩌민 압박


장쩌민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은 자신과 가족들이 저지른 부정부패가 탄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장쩌민이 1999년부터 주도해 온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탄압을 들 수 있다. 장은 뤄간,저우융캉, 자칭린 등 최측근을 동원해 파룬궁 탄압 전담기구인 610사무실을 창설했고,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무너뜨리고 육체적으로 소멸”하라는 원칙 아래 현재까지 이 수련자들을 탄압해오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 캐나다, 호주, EU를 비롯한 각국 행정부와 의회는 탄압 중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지난 해 7월, 캐나다 독립 조사단에 의해 폭로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생체 장기 적출 만행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진상규명 압력을 받고 있다.


장쩌민이 권력을 잃게 될 경우 파룬궁 탄압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후진타오는 부정부패와 함께 이를 주요한 ‘명분’으로 내세워 장쩌민과 측근들을 제거할 것으로 보인다.


저명한 중국문제 전문가 탕즈(唐子)는 유백온(劉伯溫)이 지은 예언서 ‘소병가(燒餠歌)’의 “猴子沐盤鷄逃架,犬吠猪鳴太平年” 라는 구절을 예로 들면서 중국이 현재 중요한 국면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원숭이해(2004년)에 변화가 시작되고(猴子沐盤), 닭의 해(2005년)에 닭장을 뛰쳐나오고(鷄逃架), 개(2006년)가 짖고(犬吠) 돼지(2007년)가 울면(猪鳴) 태평한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이는 ‘9평’(9평 공산당-2004년 11월 본보가 발표한 장편 사설) 출간으로 촉발된 중공 탈당과 이로 인한 중국 내 변화가 2005~2006년 잇따른 민주인사들의 망명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고, 세계 각국에서 중국을 향해 인권보호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현재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탕즈는 이른바 '태평한 시기(太平年)'를 2007년 가을과 겨울 사이로 예상했다. 현재는 후진타오가 장쩌민을 압박하면서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편의 예언은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설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