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선소전 장삼풍(2) 고사 2007. 5. 22. 18:16

列仙小傳(22) 장삼풍(張三豊) (2)

ⓒ 삽화/박영철
[대기원]땅에 묻은 이빨에서 연꽃잎이 솟아나다

촉 헌왕 주춘의 예물에 대한 답례로 장삼풍은 품속에서 한 손 가득 대추를 꺼냈다. 그 대추들은 반쪽이 붉고 반쪽은 푸른데 모두들 한 나무에서 자란 것들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손님들은 비록 뜻밖이라고 느꼈으나 장삼풍이 사전에 몸에 감추고 있었다고 여겼으므로 그리 신기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이때 장삼풍은 연회석에서 황금 잔 하나를 들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당의 흙이 있는 곳으로 나가도록 하였다.

장삼풍은 입안에 손을 넣어 이 하나를 뽑아내어 흙속에 묻었다. 이를 흙속에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에서 푸른색 싹이 트더니 자라기 시작하여 연잎이 되었다. 그 연잎에서 꽃대가 하나 쑤욱 올라오더니 연꽃 한 송이가 피었다. 연꽃 송이는 큰 쟁반만 하였다.

연꽃의 꽃 판은 매 판마다 가지각색의 반점이 있으며 꽃 판이 점점 많아지더니 거의 천개에 육박하였다. 연꽃의 휘황찬란한 빛깔이 집안에 가득하며 맑은 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손님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충심으로 기뻐하면서 심복하였다. 촉 헌왕 주춘 또한, 몸소 붓을 들고 시를 지어 장삼풍 진인에게 선물하고 이 날의 성대한 광경을 기록했다.

죽은 장삼풍의 관속에는 시체가 온데 간데 없고

장삼풍이 사천성에서 이러한 도술을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 장삼풍은 이미 한 번 죽었다고 한다. 이 때가 명나라 홍무(洪武) 24년 (1391) 9월이었다. 장삼풍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게송까지 남겼다. 죽은 후, 제자 양궤산(楊軌算) 등이 염을 하고 입관했다고 한다. 사천에서 들려오는 장삼풍의 기이한 소문을 듣자 제자들은 감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크게 먹고 제자들은 사부 장삼풍의 관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관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러한 소식이 경성에 전해지자 명태조 주원장은 사람을 시켜서 장삼풍을 찾았으나 이때부터 장삼풍의 행방이 묘연했다고 한다.

장삼풍 진인은 명나라 초기에 호북성 무당산(武當山)에서 도교 사업을 부흥시켰으며 그 곳에서 전국최대의 도관을 세웠다. 장삼풍이 일찍이 무당산을 방문했을 때 도관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잡초만 무성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이곳을 떠나지 말라, 이곳은 앞으로 크게 흥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삼풍 진인 기념관을 무당산에 짓다

명나라 영락제 때 사람을 보내 장삼풍 진인을 다시 찾았으나 종적이 묘연하여 무당산에 ‘태화궁관’(太和宮觀)을 지어 진인의 뜻을 받들었다. 이때부터 무당산은 도교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명 영종 때에는 장삼풍 진인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으며 그리고 ‘통휘현화진인’(通徽顯化眞人)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최근에 중국을 시작으로 하여 전 세계에 “법륜대법”(法輪大法: 파룬궁)을 전하고 있는 이홍지(李洪志) 선생은 장삼풍 진인의 태극권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시 한편을 지었는데 한 번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 태극(太極) -
진인개세장삼풍(眞人蓋世張三豊)
진인 장삼풍의 명성, 세상을 뒤덮었는데
대도무적천지행(大道無敵天地行)
큰 도를 천하에 펼칠 때 적이 없었다
후세위명난권법(後世爲名亂拳法)
후세 사람들, 명예를 위해 권법을 어지럽히는데
개오태극괴오명(改吾太極壞吾名)
나의 태극권을 고치고 내 이름을 무너뜨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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