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선소전 안기생2편 고사 2007. 5. 22. 18:14

列仙小傳(24) 안기생(安期生) (2)

ⓒ 삽화 박영철
[대기원]진시황, 봉래산을 찾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자

진시황은 장생을 일심으로 추구하다가 불로장생술에 푹 빠졌다. 일찍이 각 지방의 많은 방사(方士)를 찾아가곤 하였다. 이제 다행히 신선 안기생의 허락을 받자 신선과 인연이 닿게 될 것이라 여겼다.

진시황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한 무리의 선단(船團)을 동해로 파견하여 자신이 갈 길을 미리 개척하도록 했다. 그러나 먼저 간 한 무리의 사자들이 ‘봉래산을 보았으나 다만 배를 해안에 댈 수 없다.’고 보고하는가 하면 또 바다 가운데 큰 상어가 있어 부대를 더 많이 보내야 한다고 하는 등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무리의 사자들은 한번 가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진시황은 이때부터 꼬박 10년을 시도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봉래산을 찾기는커녕 안기생의 얼굴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한무제도 삼신산을 찾았으나

세상에는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듯이 진시황이 죽고 백년 쯤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다시 안기생을 몹시 만나고 싶어 하는 군주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신선도에 푹 빠진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이다.

한무제는 방사 이소군(李少君)을 불러 신선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소군은 일찍이 동해상에서 ‘안기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안기생이 그에게 선조(仙棗: 신선들이 먹는 대추)를 주어 먹게 했다. 그러나 안기생은 봉래산 가운데 살고 있는데 성격이 괴상하여 뜻이 맞는 사람은 만나보고, 뜻이 맞지 않으면 숨는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에 한무제는 오히려 흥취가 일어나는 듯 몸소 목욕재계하여 제사를 지내고 방사들을 동해로 파견하였다. 수년이 흐르고 방사 이소군도 병들어 더 진척되지 않아 일단락된 사건이 있었다.

천세옹(千歲翁) 안기생의 내력

신선 안기생은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몹시 만나기를 갈구하던 신선이다. 고서적 중에는 안기생을 또 ‘안기’(安期)선생이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악의전(樂毅傳)’에서는 악의 가족 중에는 악하공(樂瑕公), 악신공(樂臣公)이 있는데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 황노지학(黃老之學: 도가)의 종사(宗師)라고 한다.

그 가르침의 연원도 기록돼 있다. 하상공(河上公)이 안기생을 가르치고, 안기생이 모흡공(毛翕公)을 가르치고, 모흡공이 악하공을, 악하공이 악신공을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서 하상공의 내력에 대해서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조차 그 출신을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갈홍(葛洪)이 쓴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안기생은 수련과 음식, 단약(丹藥) 등에 의지해 장생을 얻었으며 인간세상에서 일 천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혼원성기(混元聖紀)라는 책에는 안기생의 도술이 마명생(馬鳴生)에게 전해져, 마명생, 음장생(陰長生), 갈홍으로 이어지는 일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안기생은 동해상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다. 중국 남쪽, 북쪽을 망라한 많은 지방에 그의 종적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하남지방의 어떤 사람은 안기생에게서 큰 대추를 얻었는데, 연이어 3일을 구워야 비로소 완전히 익었다고 한다. 그 향기가 10리를 갔으며 병자가 먹으면 낫는 것은 물론 죽은 자도 먹으면 환생하였고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백일비승(白日飛昇)한다는 전설이 떠돌았다.

아무튼 안기생은 많은 서책에 등장하고 있는 높은 선비(高士)이면서 도를 닦아 자신을 깊이 감춘 선인이라 추측할 뿐이다.

(다음 호에는 신선 정령위 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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