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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오쥔 "나는 왜 중국 과도정부를 지지하는가" | |
내 대답은 간단했다. “중국 과도정부는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며, 중국인민은 일찍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 이 권리를 만들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거절하겠는가. 이 정부를 우대통령이 세웠건 정대통령이 세웠건 누가 세웠건 간에 나는 모두 지지한다. 또한 그들의 지도하에서 기쁜 마음으로 한 명의 좋은 시민이 될 것이다.” 누군가 물었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게 바로 ‘주권재민’이 아닌가. 대통령은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인민의 지지와 보통선거를 통해서만 될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 인류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만들었다. 현대에는 UN '세계인권선언‘은 법률적 규정을 만들었다.” 문 : “하지만 중국 과도정부는 선거를 안 거치지 않았는가?” 답 : “현재의 중국은 모두들 알고 있는 이유로 보통선거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선거와 주권재민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과도정부는 이를 목표로 분투하며 ‘이 목표가 실현되면 바로 해산을 선포한다’고 공표했다. 이렇듯 중국 과도정부의 설립은 법률적 기초뿐 아니라 보통 군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상의 기초를 구비하였다. 보통 군중뿐 아니라 도도한 정치인들도 사고를 거쳐 과도정부를 승인할 것이다. 만약 진정한 정치세포가 구비된다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과도정부를 승인하고 인정하고 지지할 것이다. 과도정부는 당신의 찬란한 정치인생을 위해 큰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중국 과도정부를 지지하는가? 중국인민이 과도정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천 마디 말도 다음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갈망” 1. 중국인민의 갈망 (1) 경제적 부와 생활의 행복에의 갈망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이 경제적 부와 생활의 행복을 특히 갈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840년 아편전쟁부터 중국의 자급자족 자연경제는 몰락하기 시작했고, 끊임없는 전쟁과 영토할양, 배상금지급 등으로 중국인민은 극도의 빈곤상태로 향하고 있었다. 1949년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연이은 경제정책의 실패는 중국사회의 대기근을 조성하여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문화대혁명은 지도자에 대한 공경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욕구를 소멸시키고, 백성들은 인간의 본능과 경제적 부,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기본 권리마저도 모두 박탈당했다. 한 세기 동안 중국인민들은 빈곤선상에서 계속 투쟁해왔다. 그래서 개혁개방시기 중국인들은 경제적 부를 위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일했으며 중국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사회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중국사회생활의 다른 한 부분은 다음이다. (2) 공평,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갈망 1949년 건국이후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다지기 위해 행한 일련의 투쟁은 사회생활의 다른 부분을 반영하였다. 일체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돌고, 공산당은 공평, 공정, 정의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홍(紅)’과 ‘독재’의 토론에서 ‘홍(紅)’이 두드러졌다. 공산당을 지지하고 공산당을 뒤따르는 것이 정확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중용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소용없다. 당신이 꼬리를 치켜들고 공산당을 감히 존경하지 않으면 당신은 우파 아니면 정신이상자이다. 그래서 한 순간에 (공산당의) 공적과 은덕을 노래하는 것이 성행하고, 아부하고 떠받는 것이 유행이 됐다.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들은 ‘대중들’에게 비난받고, 밀고자, 배신자, 남의 어려움을 틈타 해를 입히는 자들이 환영받았다. 모든 사업장에서 별 볼일 없는 공산당지부 서기라도 반대하면, ‘반당’으로 낙인찍히고 18층 지옥으로 떠밀렸다. 어디에 공평과 공정이 있다고 하겠는가? 인민들은 분노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공적을 노래하고 아부 떠는 것의 최대 수혜자는 마오쩌둥이다. 그는 중공의 정권쟁취에 미친 가장 큰 공로로 최고의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했고, 그가 증오하는 동지들에게 최대한의 위세를 부렸다.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이 마오쩌둥의 손아귀에 놀아난 것으로, 그는 중국공산당을 계속 공격하고 뽑아냈으며 훼멸시켰다. 이를 위해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와 원한을 이용했다. 그 위력이 엄청나서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반대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고, 머리를 들어 마오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덩샤오핑은 “결정된 사안을 영원히 뒤집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마오쩌둥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갔다. 이는 폭군독재 하에서 일어선 위대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인민의 힘과 중국공산당내의 혁명역량을 이용하지 않고 중국의 정치개혁을 추진한 것은 유감이다. 어쩌면 중국인민들은 아직도 마오쩌둥의 ‘반란에는 이치가 있다(造反有理)’는 미몽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덩샤오핑은 인민과 중공당내의 진보세력에 의하지 않고 중공당내 보수세력과 일당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세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권력을 다시 세웠다. 문화대혁명과 문혁이전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분석이 없었기 때문에 철저한 반성과 분석을 감히 하지 못한다. 중국은 “돌을 더듬어 가며 강을 건너는” 신중한 방식으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은 ‘당의 영도’하에 지속됐지만 실제로는 공산당 일당이익을 보호하는 정치구조 하에 진행된 것이다. 개혁개방의 실제의의는 중공이 마오쩌둥의 무능하고 독재적이며 어리석고 반이성적인 통치에서 벗어나 인민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것이지만 결국 중공의 독재정치에 계속 굴복해 겨우 이어 온 것에 불과했다. 새로운 형세 하에서도 불공평과 불공정은 계속되었고 정경유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로 인해 결국 ‘6・4’가 발생했다. ‘6・4’의 비극적인 결말은 중국인민의 슬픔이다. 여러 면을 종합해 볼 때 한 가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의사소통의 부족, 최상층과 최하층의 의사소통의 부족, 사회 각 계층의 소통과 대화의 부족은 몇 사람의 이익을 제외하곤 중국 전사회가 고통의 열매를 삼키게 하였다. 이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이다. 유감스럽고 매우 슬프다. 반성도 평가도 없고 경험과 교훈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중공은 제3세대 지도자로 바뀌었지만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자신의 물리관성에 따라 뒤돌아보지 않고 전국인민을 인솔하여 계속 전진한다. 새로운 중공지도자는 전 세대 지도자의 ‘혁명경험’이 없지만 오히려 중공의 일관된 행동방식과 통치방식을 계승했다. 바로 언론봉쇄다. 언론은 공산당이 결정한다는 이론을 만들고 수천 번, 수만 번 끊임없이 반복한다. 공산당은 정치적으로 다르다고 판단되면 싹이 자라기 전에 모두 소멸시킨다. 파룬궁, 종교인사, 민주인사, 최근의 권리수호인사 등... 경제적으로는 정경유착이 더욱 보편화되어 부패, 횡령사건들이 대규모로 수면에 떠올랐다. 사회적 불공평, 불공정은 눈앞에 역력하다. 중공조차도 자위에 의존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선전하던 경제성과는 현재 거품이 붕괴될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숨겨져있던 중국사회의 모순이 공개되면서 저항이 시작되었다. 정치적 태도가 분명한 저항은 국외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중국 과도정부가 탄생했다. 이 저항은 점차 중국내로 전파되고 있다. 설마 중국은 ‘6․4’가 다시 일어나야 하는가? 설마 중국은 ‘조반유리’가 필요한 것인가? 중국사회는 진보가 필요하다. 중국 백성은 사회공평, 공정이 필요하며 동시에 안정과 조화도 필요하다. 인심은 조화사회의 건설로 향하고 있다. 중국인민들은 아무리 격렬한 방법이라도 중국인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역사는 단순히 반복될 수 없다. 중국은 굴기해야하며, 중화민족은 문명과 진흥이 필요하다. (3) 국제사회속의 평등과 자긍심에 대한 갈망 1949년 이전 중국인민은 침략과 치욕 속에서 생활했다. 1949년 이후 마치 좋아진 것 같았지만, ‘중국인민이 일어섰다’는 이유로 국외의 동포를 보호할 수 없었다. 지난 60년대나 개혁개방이후의 90년대나 우리는 인도네시아 화교가 학살과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지난 세기 우리는 다른 나라에 ‘혁명’을 수출하고 지지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재난을 당했고 그 속에서 평화롭게 살던 화교들이 최대의 희생자가 되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는 중국인민의 복리, 자연자원과 환경을 희생하여 전 세계에 값싼 상품을 바치고 있다. 우리는 ‘레이펑’을 배우는 것인가? 하지만 세계인민 특히 선진국 사람들은 우리의 ‘레이펑정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중국인민의 복리를 빼앗는 동시에 그들의 일할 권리도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중국인민에게 인권을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중국인민은 괴로움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디는 것을 유명하다. 하지만 중국의 자원은 얼마나 남았는가? 중국의 환경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자손에게 남겨줄 것은 얼마나 있는가? 우리의 지도자, 위대한 공산당은 설마 생각해보지 않은 것인가? 설마 우리 중국인이 그렇게 멍청한가? 설마 우리 중국인이 영원히 세계의 하등 시민이 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미 집의 노예가 되었다. 설마 우리 중국인이 영원히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2. 개인의 희망인가? 다수인의 희망인가? 내 개인의 경력과 창업사를 통해 중국의 정치, 경제의 한 부분을 알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나는 ‘정치심사’를 받았지만, 두 귀는 더 이상 바깥소식을 듣지 않고, 일심으로 내 일을 하였다. 나는 창업을 시작했다. 나는 경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정부(공산당)와 연계할 수 없다. 적어도 시간상 보상할 수 없다. 나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정부관료와 티격태격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 창업은 ‘자수성가, 자력갱생, 자급자족’으로 시작했다. 1983년에 창업하여 1998년까지 15년간 나는 국가은행의 대출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1993년 개발구내의 토지 두 곳을 살 때도 일원 한 푼 빌리지 않았고 은행대출을 받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이 빌리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T제품 외에 나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내가 개발한 신제품은 모두 1:10 이후 1:100까지의 고수익을 얻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경영의 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가 은행업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제품을 개발했을 때 상황에 변화가 발생했다. ‘국보강소관’(다른 강소관과의 기술적 차이 때문에, 이 용어를 일부러 사용한다) 이 제품개발의 산업연계성이 높고 기술 개발요소가 많아서 나는 사회자원과 융자가 정말 필요했다. 하지만 사회는 나에게 등을 돌렸다. 어떤 이가 말했다. “당신은 왜 이리 머리가 둔한가. 그것을 다른 사람이 하도록 주어라.” 민영기업? 안후이에는 경제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진정한 민영기업은 한 개도 없다. 부동산 개발 상인만 튼튼할 뿐 아무런 배경이 없는 민영기업은 경제적으로 매우 허약했다. 또 신제품이 성숙해지려면 길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자신의 실패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겉치레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베이징에 도착한 후 많은 부분을 접한 결과, 많은 기술발명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교적 성숙한 기술일지라도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현실생활에서 대부분의 기술발명은 결함이 있거나 성숙되지 못한 것이지만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발명과 지식 등의 소프트 파워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석유자원이 풍부한 걸프국가들도 석유고갈 이후를 걱정하는데 인구평균보다 자원이 적은 이 대국은 정말 가련하다. 2006년과 2007년 중국경제는 쾌속발전했지만, 자금은 부동산시장을 들끓게했고 광산으로 몰렸다가 전 국민을 주식투기로 몰아넣었다. 이는 중국경제에 존재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시 생각하면 나 왕자오쥔은 수천만 위안의 자금만 있으면 한 산업을 갱신할 수 있고, 모 정부관원이 골치아파하는 수억 위안을 동원한 형상공정을 진행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가장 좋은 자원인 석유, 전력, 통신, 금융 등은 국가(공산당)에서 독점하고 있다. 그들의 경제효율은 매우 낮지만 관원들의 수입은 오히려 굉장히 높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바꾸고, 그들의 눈에 든 사람은 승진할 수 있다. 전체 국민에게 자원, 기회에 대한 거대한 불공평을 조성했다.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는 부동산개발 중 부패와 횡령이 최고조에 달하여 집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많은 사람들이 집의 노예로 전락했다. 확실히 중국경제는 관리경제와 당경제에 의해 망가졌다. 3. 중국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이는 근대 중국역사과정에서 항상 제기되었던 오래된 화제이다. 하지만 오늘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현실적 의의뿐 아니라 실천적 의의도 지니고 있다. 중국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어떻게 가는가? 우리가 국제 주류사회를 주시하지 않는다 해도, 지난 90년대 시작된 소련과 동유럽의 민주혁명 이후 국제 주류사회는 미국, 유럽이 중심이 된 민주국가이다. 민주는 이미 세계의 대세이자 조류가 되었다. 2006년과 2007년 중국주변국가와 지역의 정치형세를 살펴보자. 동쪽부터 시작해보자. 일본 - 아시아의 ‘유서깊은’ 민주국가로 최근 2년 동안 정국이 동요했지만 정부가 교체되었고 여전히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 - 20년의 민주노선은 한국을 현대화로 뛰어들게 하였다. 남한과 북한, 한 곳은 천당이며 한 곳은 지옥임을 중국 백성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대만 - 민주화의 노선에서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대만은 이미 민주 대중화(大中華)의 모범이 되었다. 홍콩 -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파만파로 높아졌으며, 홍콩민중의 민주의식은 최고로 높아졌다. 베트남 - ‘조용히’ 민주로 향하고 있다. 태국 - 민선정부는 전복됐지만 인민들은 여전히 민주를 지지하고, 민주 정치체제를 지속하고 있다. 미얀마 - 중국인민에게 더욱 친밀한 국가인 미얀마는 중국의 정치노선과 거의 동일하다. 1989년 중국에서 ‘6・4’가 일어났고, 그 전해 미얀마에는 인민탄압이 발생했다. 2007년에는 군정부에 의한 제2차 인민탄압이 발생했다. 하지만 2008년 초 미얀마는 정권을 ‘백성’에게 돌려주기 시작했다. 인도 - 국내의 복잡한 종교, 인종문제와 각종 사회모순을 민주정치체제를 통해 해결하였다. 후발국가로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 최근 민주선거의 승리는 미국 정치가들에게 독재정권을 이용해 반테러를 할 필요가 없으며, 과도한 열정으로 민선정부를 지원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진정한 독립자주의 민선정부가 반테러에 미치는 기여도는 매우 크다. 미국인민뿐 아니라 현재 세계 각국의 인민과 지식계는 테러리즘을 반대하고 싫어하며, 테러리즘의 최종결과는 모두 독재정권이다. 중국의 서부는 민주혁명을 거친 독립국가연합체 국가로 민주화가 진일보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북부의 러시아도 포함되며 어느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러시아를 예로 들면, 러시아의 민주화혁명이 철저히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공산당시대의 독재체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중국공산당은 오로지 자신의 일당독재만을 위하여 심각한 민족희생을 저지르고, 짝사랑의 웃음거리를 연출했다. 지난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중국외교는 갈지자 스텝으로 중국인민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현재 현실상황을 보면 중국은 이미 민주국가들에게 포위당했다. 중국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국공산당이 일관된 봉쇄정책과 우민정책을 취하고 백성들에게 정치토론의 공간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는 중공자신의 정치지혜를 국한시키고, 중공을 보수적이고 무능력하게 만든다. 현재 세계와 중국의 형세는 모두 변화가 발생했다. 중국공산당이 이 대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상투적인 말만 계속 한다면, 자신들이 채택한 주먹구구식의 정책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결국 중국공산당 자신이다. 현재 많은 중국의 상황중 하나만 예를 들겠다. 현재 중국의 권리수호 현상이 보편적으로 발생했고 점차 조직화, 대규모화되고 있다. 그들의 지도자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권리구호를 만들거나 권리수호 대열의 행위규범을 만들 줄 안다. 만약 모 성의 권리수호 대열이 위풍당당하게 베이징으로 진군하여 톈안먼광장에서 정좌한다면, 제2의 성, 제3의 성의 권리수호 대열이 이에 호응하여 베이징으로 집결하여 톈안먼광장에 모두 정좌한다면... 2006년과 2007년 베이징의 상방인들은 국보와 경찰에 의해 백 명씩 베이징 밖으로 압송됐다. 만약 수천 수만, 수십만의 권리수호 대열이라면 무장경찰이 출동하여 구금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1989년 ‘6・4’의 전의 톈안먼광장의 형세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에 아직도 덩사오핑식의 정치 독재자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는 기반이 허약하여 반드시 군대에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현재 중국군대에 위안스카이식의 군사 독재자가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만약 있다면 그 역시 기반이 약할 것이다. 만약 제2, 제3의 위안스카이가 나타난다면, 해방군 병사들은 그를 사로잡을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지 않는다. 협상은 중공에 가장 좋은 활로이다. 4. 세계가 중국에 주는 한차례 기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전 세계가 중국에 주는 한차례 기회이다! 올림픽정신은 평화, 민주, 상호이해, 공정경쟁의 원칙으로 인류 당대(當代)의 문명, 인류의 지혜와 힘을 충분히 체현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중국정부(중공)에 대해 엄숙한 승낙을 한 것은 올림픽 정신의 추진 하에 자신을 씻고 혁명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중국 인민들은 세계가 중국에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울러 주인이 되어 세계 각국 친구들을 환영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인민들은 또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올림픽 정신을 중국에 전파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에 융합되어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높이 제창할 때면 물론 중국과 세계를 격리시키는 인터넷 봉쇄란 있을 수 없다! 중국 인민들은 아주 총명하기 때문에 궈취안(郭泉) 선생, 정춘주(鄭存柱) 선생 등 그들은 이미 조직하기 시작했다. 모든 정치 세포의 중국공민들은 모두 이 유리한 시기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중국에서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정당을 조직하며 자신의 정치적 재능을 펼치고 검증해야 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고,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려는 중국공민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이 신임하는 정치조직을 선택하고 참가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고뇌를 해결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이는 또한 억울한 사건을 제거하고 권리를 지키는 열쇠이다! 현재 인터넷 매체의 사람들도 이미 조직하기 시작했고 사이트 운영자(網絡老板)들도 조직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위대한 역사시각에, 사회가 새롭게 판을 짜는 가운데, 자신이 사업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게 하려면 인터넷과 매체는 사회대중의 이익과 하나로 묶여 있어야 한다! 조직하자! 정당과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독립노조와 권리수호단체를 조직하자. 이는 2008년 중국인민이 올림픽을 맞이하는 위대한 장거이다! 이는 중국 인민들이 보편적으로 인권을 쟁취하는 자각적이고 광범위한 행동이다! 이는 중국인민들이 일어나 반드시 해야 거쳐야 할 세례(洗禮)이다! 이는 민주적인 중국이 반드시 거쳐야 할 정치세례이다! 중국 인터넷과 각 종류의 매체 봉쇄는 철저히 타파되어 중국인의 사상이 전에 없이 해방되면 중국이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이다. 반대로 만약 중국 인터넷매체의 봉쇄가 지속된다면 중국은 도리어 아주 혼란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중국 과도정부(過渡政府)를 옹호하는 원인이다! 현재 중국에 존재하는 문제는 중국의 상층과 하층, 중공의 ‘좌파’와 민주파, 중공의 수많은 간부․당원과 중국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인터넷 매체의 봉쇄는 각파, 각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 이런 행위가 합법적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더욱이 이런 행위가 현재 중국에서 여전히 지속 되어야 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런 행위는 이미 불법이고 유효하지 않으며 더욱이 인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심을 얻지 못하는 이런 행위는 단지 사람들의 반감을 살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고 사람들이 분노하면 극단적인 행위가 발생한다. 중국정부(중공)가 계속 인터넷 매체를 봉쇄하는 것을 겨냥해 중국과도정부는 이미 군사행동을 시작하는 것을 포함한 총통령(總統令 대통령령에 해당)이 있다. 여기에서 나는 중국 과도정부에 몇 마디 말을 하고자 한다. 국내 인민들이 권리를 수호하는 행동을 지지하는 것은 정확한 것이다. 군사행동을 취할 권리를 포함한 인민의 각종 권리를 널리 알려 자신의 선언, 성명 및 총통령 속에 천명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정치노선이 되어선 안 된다. 물론 현재 중국의 국정과 세계적인 큰 추세를 막론하고 모두 이것을 정치노선으로 삼을 수는 없다!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보자면 신해혁명(辛亥革命) 기간에 모든 혁명당 조직의 기의(起義)는 다 실패했다. 그러나 신군(新軍)의 자발적인 우창(武昌)기의는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깊은 계발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정황으로부터 본다면 미얀마 군사정부는 작년에 비록 승려들의 시위를 탄압하긴 했지만 올해는 도리어 더 큰 압력을 받아 국민들에게 정부를 돌려준다는 계획을 선포했다.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공산당이 일관되게 선전해온 계급투쟁과 너 죽고 나 살기 식 이론이 황당한 오류임을 볼 수 있다. 비록 개혁개방을 통해 중공이 ‘계급투쟁’이란 문자를 지우긴 했지만 역사에 대한 총결과 반성 및 비판이 부족한 관계로 중공의 혈관 속에는 여전히 ‘계급투쟁’ 피가 흐르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이미 점차적으로 마오쩌둥이 정권을 무력으로 탈취한 소위 ‘혁명’이 중국 인민들에게 그 어떤 좋은 점도 가져다주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오늘 유사하게 이런 종류의 무력을 이용해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는 반드시 사회 대다수 사람들의 반감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슬픈 군대는 반드시 승리한다(哀兵必勝)’는 이치를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만약 중국에서 다시 ‘6.4’와 유사한 인민 대 도살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군대 내의 목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해방군의 절대다수가 모두 인민을 보호하는 편에 설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당신들의 요청에 의해 중국 과도정부에서 중공과 담판하는 특별대표로 선임된 것에 대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금년 2월 5일 나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쩡칭훙 부주석과 장쩌민 전 국가주석에게 각기 나의 개인적인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나는 중국 과도정부의 특별담판대표로서 나의 행동원칙은 담판을 견지하고 충돌을 화해시키며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민심에 순응해 평화적으로 과도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방대한 자원을 이용해 현재 중국의 헌정(憲政) 개혁을 이끌어나가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나는 또 앞으로 수시로 각 영수 및 중국 과도정부, 해외의 각 역량 및 중국공산당을 제외한 중국 국내의 각종 정치조직과 단체들이 소통하는 통로를 만들 것임을 표시했다. 분명한 것은 평화적인 과도(過渡)는 실천 중에서 나의 정치노선이다. 나는 이것 역시 전국 인민과 세계 인민들의 중국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몇 통의 편지를 발송한 이후 나는 몇 분 영도들이 내 편지를 받을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그날 저녁 내가 컴퓨터를 켰을 때 나는 갑자기 내 컴퓨터에 대한 봉쇄와 소란이 이미 전부 없어졌고 원활하게 해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확실히 나도 좀 믿기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나 개인의 컴퓨터에 대한 봉쇄와 소란은 이미 전부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바탕 격동과 희열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하늘에서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는 이 빛나는 별빛이 만약 대낮의 태양처럼 그렇게 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받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찬란한 햇빛은 생기로 충만하며, 단지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에만 편리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이 인류에게 부여한 생명의 원동력이다! 5. 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평가 작년 10월, 내가 첫 번째 공개편지를 발표한 이후 아주 많은 전화가 걸려왔고 나 개인의 안전에 대한 염려를 표시했다. 나는 이는 내가 언론의 금지구역을 깨고 첫 번째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금년 1월, 내가 두 번째 공개편지를 발표한 이후 또 일부 전화가 왔고 나더러 계속 ‘말하길’ 원했다. 나는 “나의 대포는 사명을 완수했으니 마땅히 그만두고 휴식을 취해야 겠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중국지식인과 중공 당내의 이론가들, 그들이 장악한 사실과 데이터는 나보다 훨씬 풍부하고 정확할 것이며 그들은 나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경제인으로 나는 마땅히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오직 ‘소통’이 필요할 때에만 나는 나와서 활동할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www.greenxlh.com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중국 민간의 나스닥이라고 정했다. 중국은 가장 풍부한 인력 자원이 있기 때문에 교육과 과학기술의 창조를 통해 인력(人力)자원을 인재(人才)자원으로 승화시킨다면 중국은 진정한 대국으로 굴기(崛起)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중국은 기술을 발명할 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술발명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궤도와 그것을 힘차게 추진하고 산업화시키고 상품화시키는 메커니즘이 부족하다. 이런 메커니즘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기술발명과 인재는 보다 많아지고 활성화 될 것이다. 동시에 신기술, 신상품이 시장에 추진되는 과정 중에 대량의 백만장자를 육성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 선진국에서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는 것들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인민들은 자금의 가치 상승에 아주 관심이 많다! 만약 돈을 어느 곳에 투자해도 모두 유실되고 모두 가치가 절하된다면 사람들은 돈을 저금할 곳이 없게 되는데 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개혁개방으로 중국 사람들은 드디어 돈을 좀 만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위대한 당은 도리어 어떻게 인민들의 노동성과를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권력은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융은 당에서 독점하고 있다! “곤궁해지면 변혁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부자들도 자신의 재산을 보호할 방법이 없음을 발견하고 마음이 심란한데 이 사회에 어떻게 ‘조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나는 독단적으로 중국 민간의 나스닥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내가 호언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행동준칙은 분명히 부자들의 투자에 대한 위험이 최소라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여기서 중국의 부자들에게 알려준다. 중국 민간의 나스닥으로 오라고! 돈이 안전하게 돈을 벌게 해줄 것이다! 만약 내가 운이 좋아서 살 수 있다면 나는 장차 중국의 산업기술혁명에 비교적 큰 공헌을 할 것이다. 물론 자신의 운명에 대해 나 역시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나의 이 ‘대포’가 죄를 짓는 것은 일반인이 아니라 이익집단에 매수된 흑사회(黑社會)나 혹은 어느 극단분자이기 때문에 몇 발의 총알이나 혹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나를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이 역시 나를 성취시킨 것이다! 만약 나 왕자오쥔이 살아생전에 힘이 아주 작고 심지어 아주 가련하다고 말한다면 그럼 내가 죽은 후의 힘은 비할 바 없이 강대해질 것이다! 나의 죽음은 대대적으로 중국민주화 노정을 앞당길 것이다! 이런 강대한 힘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지금 조금도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심이 아주 충실하다! 나의 운명이 국가의 운명에 따를 수 있다면 나는 아주 행복하다. 왕자오쥔(汪兆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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